< 효파경 (4) >
진소란의 비대화한 새까만 날개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더욱 더 커져갔다. 핏물이 튄 얼굴은 이미 인간이 지을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두억시니가 기쁨을 참지 못하며 소리쳤다.
<훌륭해. 완전히 탈선해 한계를 넘고서도 인간인 그대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형질. 더욱 마음을 무너뜨려라. 너야말로 나의 축복, 내가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기적이다!>
여기저기 찢어진 피부 사이에서 붉은 촉수가 얇게 흘러나와 하늘하늘 춤췄다. 두억시니에게는 천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자신과 같은 격의 대요괴나, 생명으로서 완벽하게 안정화되어있는 혈왕들. 생물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린 탈선자들.
그런 천적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기에, 특수능력에 의존하는 두억시니 입장에서는 공략할 답이 없었다. 정면에서 그런 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장기말이 있다면야 상관없겠지만, 그런 것이 쉽게 손에 들어올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두억시니에게 돌파구가 찾아와주었다.
여차할 때 은신처로 쓰려고 한 부유섬에서 우연히 찾아낸 기적. 처음에는 흥미 본위로 조사했던 것이지만 그 숨겨진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흑익. 마음대로 탈선하면서도 본질은 혼혈인 그대로 있을 수 있는 특이체질을 지닌 돌연변이.
혼혈은 혼혈인 이상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다. 완전히 탈선한 강력한 개체를 복속시켜 자신의 장기말로 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이걸 손에 넣어 완전히 동화할 수만 있다면 탈선자라는 생명의 구조를 이해해 탈선자들 또한 자신의 장기말로 변이시킬 수 있게 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됐다. 자신과 동화한다면 그 시점에서 상태가 고정되어버린다. 할 것이라면 완전하게 탈선시킨 뒤 동화해야만 한다. 인간의 마음이 무너져버릴 만큼 강렬한 충격을 줘서, 단숨에 한계를 부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실이 지금 눈앞에 맺히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뻗은 거대한 흑익을 보고 가죽을 완전히 찢어낸 두억시니가 진소란을 향해 새빨간 촉수를 내뻗었을 때, 수십 갈래의 촉수가 그대로 찢어져 공중에 흩어졌다.
경악에 빠진 두억시니가 주변을 살피자, 길 저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푸른 도깨비불이 활활 불타는 듯한 안광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신검을 손에 쥐고 있는 검귀가.
“···같이 가자는 말도 안 듣더니.”
두억시니의 앞에 선 차대엽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 * *
혈통시대의 이야기를 떠올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 두억시니를 빨리 찾아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두억시니를 잡지 못해서 아쉽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두억시니가 이곳에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자, 마을의 정문을 노려보고 있는 차대엽이 눈썹을 찌푸렸다.
“왜 여기 마물이 있지.”
차대엽은 손바닥 위에 신검을 발현시켰고, 진소란 또한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긴장은 했지만 위기감이 느껴지는 얼굴은 아니었다. 이미 둘 모두 어지간한 상위 마물 정도는 충분히 토벌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그리고 진소란이 뛰쳐나가서 베어내기 위해 발로 땅을 박찼다. 솔직히 진소란의 속도는 나로서는 반응할 수조차 없었지만, 달려가기 전에 달려가려고 하는 의사가 미리 전해져왔기에 제때 맞춰서 염력을 끌어내 제동을 걸 수 있었다.
<마인드맵 확장 : 염동력 Lv.5>
아무런 전조도 없이 공중에서 발을 걸린 진소란이 꼴사납게 넘어져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몇 번 콜록이고 기침한 진소란이 휙 고개를 돌려 날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냐!”
진소란은 마물이 한 짓이라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곧장 나에게 따져들었다. 그야 아무런 마력도 발산하지 않고 단숨에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는 했다. 순위전 때 내 능력을 꽤 보여줬으니 진소란도 눈치챌 것이다.
“내가 안 멈췄으면 백 퍼센트 후회했을걸.”
“음···? 뭔가 함정이라도 있는 건가.”
“함정이라면 함정이지···.”
그리고 나는 옆에 서있는 차대엽에게 부탁했다.
“혹시 큰 상처 안 내고 못 움직이게 제압할 수 있나?”
“상처 없이 제압하라니···. 어려운 요구인데.”
“할 수 있어? 없어?”
“한 번 시도라도 해보지.”
차대엽의 눈에 귀안의 빛이 깃들었다. 이내 차대엽이 한 손에는 자신의 신검인 백류, 다른 한쪽 손에는 초대 검성의 신검을 들었다. 그리고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마물의 옆까지 다다랐다. 마물이 포효했다.
커다란 마물의 동작은 앞발을 크게 휘둘러 내려찍으려는 것이었다. 차대엽은 대단히 침착하게 마물의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검귀의 눈은 힘의 흐름을 읽는다. 팔꿈치로 마물의 가슴을 찌른 차대엽은 아주 간단히 마물을 넘겨 넘어뜨렸다.
쿠웅! 마물의 거체가 땅바닥에 쓰러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순식간에 형상을 변환한 초대 검성의 신검이 둥글게 휘어져 마물의 몸을 구속했다. 마물은 마구 날뛰었지만 차대엽은 전혀 휘둘리지 않고 발 하나로 마물을 제압했다.
“대단하군···.”
“그래. 저 커다란 놈을 단숨에···.”
“아니. 대단한 건 그 부분이 아니라, 저 잠깐 동안에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숙고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골랐다. 이후의 선택지까지 전부 고려하고서.”
진소란이 자긴 절대 따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녀 또한 차대운을 상대로 생사가 갈리는 순간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실날같은 가능성을 잡아내는 훈련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사와 본능에 기반한 것이었다.
차대엽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전투의 논리에 따라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 이쪽이 우위를 잡을 수 있게 수싸움을 하는 것이다. 귀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겠지만, 여기까지 완성도를 끌어올린 것은 차대엽의 노력과 센스였다.
“이 정도면 실전에서도 문제 없이 쓸 수 있겠어.”
차대운은 지금 것은 실전에 들어가지조차 않는다는 듯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방금 이야기를 들으니, 차대엽이 새로 익히게 된 기술이 무엇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생각한다. 일종의 정신통일에 가까운 기술. 본능에 맡겨서 싸우는 타입의 반사적인 스피드를 살리면서, 신중히 판단해 싸우는 합리적인 스타일의 날카로움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 그득한 검귀의 오의.
비상비비상 자체는 순위전 때도 사용했던 차대엽의 원래 기술이었지만, 달라진 것은 그 깊이였다. 반쯤 유체이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 기술은 더욱 감도를 올리기 위해 완전히 무아지경에 들어섰다간 폐인이 될 위험이 있었다.
이를 테면 잠깐 동안 물에 잠수해있는 감각이다. 잠수한 채 고요한 세계에 빠져있는다고 해도, 다시 헤엄쳐서 올라올 수 있을 정도에서 멈추지 않으면 익사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차대엽은 아마 위험한 선을 살짝 넘어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 속도의 반응과 수싸움의 설계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완전한 전투 몰입 상태에 들어갔다. 그런 무리를 가능케 한 비밀은 바로 초대 검성의 신검에 있었다.
‘초대 검성의 신검에는 의식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차대엽이 비상비비상의 한도를 넘어 몰입해도 무아지경이 되어 순간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의식을 초대 검성의 신검 쪽에서 잡아당겨줄 수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마물을 제압한 차대엽을 바라본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느꼈나 보네? 검의 의식.”
“교감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야. 존재만 알았을 뿐.”
그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일단 인식에 성공한 이상 신검과 교감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겠지. 그렇게 신검합일의 실마리를 잡게 되면 차대엽은 단숨에 몇 단계를 건너뛰어 강해진다. 말 그대로 주인공다운 폭발적인 성장 속도로.
그리고 나는 제압되어있는 마물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참···.”
단지 몰래 숨어있기만 하려는 거라면 백익 혼혈들을 마물로 변이시킬 필요는 없었을 텐데, 이런 짓을 한 걸 보니 두억시니 님께서 본격적으로 농성을 시작하시려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 양반들이 마물이 되어버린 건 어느 정도 내 책임이기도 했다. 날개섬 침식은 원래대로라면 한참 나중에 일어날 사건일 텐데, 혈왕이 본격적으로 눈에 불을 켜고 두억시니를 찾고 있기에 황급히 이쪽으로 도망친 모양이니까.
나는 팔짱을 끼고 잠깐 생각에 잠겨보았다.
두억시니는 혼혈의 형질을 강제로 폭주시켜 마물과 같이 변이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마을에 있는 백익 혼혈들을 마물로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이 능력이었다.
그 능력의 원리는, 피의 폭주를 억지로 발생시켜 탈선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강제로 탈선에 실패시키는 것이다. 두억시니의 능력이 걸린 상태에선 이성도 혈통능력도 잃고 추하게 비틀린 형태의 짐승이 되어버린다.
저 능력의 무서운 점은 자신의 군세를 만들 수 있다는 점보다 무조건적인 무력화에 있었다. 원래 사람은 대요괴를 이기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기에 별 상관이 없지만, 가끔 두억시니를 이길 수 있는데도 저 능력 때문에 억울하게 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능력의 상성 또한 실력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짜 탈선처럼 비가역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두억시니가 폭주를 풀어주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되돌릴 수 있는 변이인 것이다. 나는 옆에 선 진소란의 손을 붙잡고서 말했다.
“잠깐 나 좀 도와줘.”
“응?”
“가능한가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
내 생각에는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차대엽에게 마물이 날뛰지 못하게 옆에서 제압해달라 부탁하고, 진소란의 손을 잡은 채로 눈을 감고 염력을 이끌어냈다.
눈앞에 있는 마물에게는 둥지에서 날뛰는 보통 마물과 달리 분명하게 의식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다만 검은 천으로 감싸인 전구처럼 빛을 내지 못하고 극도로 흐릿해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쓰러져있는 마물의 의식에 천천히 접촉했다.
그리고 손을 잡고 이어져있는 진소란에게 눈을 감아달라 말했다. 마물의 의식은 새까만 바다의 파도가 폭풍우와 함께 몰아치고 있는 감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의식은 검은 바다 맨 밑바닥에 잠겨 사실상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휩쓸릴지도 모르는 혼탁한 급류였지만, 심상세계에서 숙련된 정신 능력자인 나는 원자력 잠수함을 타고 있는 것과 같은 강력한 존재였다. 나는 어떻게든 새까만 바다를 헤집고 들어가 그 아래의 의식에 손을 뻗었다.
까마득한 아래의 의식과 겨우 연결되었다. 여기부터가 중요했다. 나는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 진소란과도 의식을 연결했다. 몰아치는 새까만 바다의 심상에 진소란이 흠칫 놀랐다. 머릿속에 모르는 정보가 쏟아져내리는 기분일 것이다.
“당황하지 마. 내가 꽉 잡고 있으니까.”
“으음···.”
“천천히 저 빛을 당겨줘. 네 그 힘을 썼다가 다시 되돌릴 때의 느낌으로. 몇 번이고 계속 시도해봐도 되니까.”
원래 나 말고 다른 두 의식을 연결시키는 건 상당히 묘기를 하는 것과 같은 섬세함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마물이 되어있는 백익 혼혈의 의식은 거의 없는 것에 가까웠다. 그저 희미해져서 이쪽이 하자는 대로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진소란이 감각을 전해오기 시작했다. 둔재는 설명을 몇 번을 해줘도 알아듣질 못하고, 수재는 설명을 알아듣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해내며, 천재는 설명해주자마자 한 번에 해낸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진소란은 천재의 부류였다.
“···응?”
옆에 서서 마물의 상태를 지켜보던 차대엽이 놀라 눈썹을 씰룩였다. 진소란이 한정 탈선에서 돌아오는 요령으로 이쪽에 의식을 끌어당길 때마다, 새까만 바다에서 끌어올린 희미한 빛이 조금씩 원래 모습을 되찾으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읏!”
그리고 집중에서 깨어난 진소란이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차대운이 구속하고 있던 마물을 바라보았다. 입을 벌린 진소란이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곳엔 눈을 감은 백익 혼혈 한 명이 누워있었다.
< 효파경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