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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104화 (104/113)

학생회배 (4)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군가 마왕성의 보안을 무력화하고 침입한 흔적이 발견되어 현장에선 지금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천년서생의 눈이라면 뭔가 단서를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와서 봐달라는 게 그쪽 요청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음료수 빨대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인수인계 다 해주고 갔는데 예전에 퇴사한 직장에서 자꾸 문제 생긴다 연락 오면 짜증 나잖아. 비슷한 거 아냐?”

“전혀 달라! 마왕에게 있어 마왕성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심복이다. 그 할망구는 수십 년간 자길 지켜준 충견이 앓아누웠다는데 코웃음을 친 셈이야.”

호들갑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마왕성은 실제로 건축물보단 성의 형태를 한 거대한 골렘에 가까웠고, 스스로 일하고 움직이는 성을 보면 살아있는 존재처럼 애착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학장은 그런 감상적인 부류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런 인간이라도, 이쪽이 이기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성을 살펴보러 와줄 거다. 그런 인간이니까 더더욱.”

확실히 학장이라면 그럴 것 같긴 했다. 시련에는 확실한 보상이 따라줘야 한다는 게 그녀의 교육 이념이었으니까. 나나 자세빈이나 우승만 한다면 아무 걱정할 게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대회에 세한의 올스타가 총출동했단 점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답이 없는 게 지금 저기 화면에 비치고 있는 팀이었다. 난 쓰레기통에 음료수를 버리며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자세빈도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경기장에 있는 건 회장과 부회장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세한 최강이다 따위의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으며 주인공을 맞이해야 했을 세한기전의 두 정점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유매의 눈치를 보며 한창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아앙! 능력의 충돌이 대련장의 결계를 뒤흔들었다. 상쇄된 여파만으로도 바깥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휘두르는 혈통능력의 완성도가 다르다. 연습이랍시고 둘이서 저렇게 살벌하게 치고받고 있으면 의도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즉, 이 수준에 따라올 수 없는 놈들은 끼어들지 마라.

어중이떠중이들이 난립해 대회가 재미없게 되는 건 사양이라는, 지극히 오만한 시선이 느껴지는 퍼포먼스였다. 그럼에도 불평할 수 없는 건 그들에게 실제로 나머지 일곱 팀을 빠짐없이 압도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돌아와 앉은 내게 자세빈이 화면을 턱짓하며 말했다.

“저게 학생회인가? 꽤 만만찮아 보이는데.”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확실히 말해 회장과 부회장은 내 개입으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한 지금의 진소란과 금예린이 상대라도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었다. 그만큼 기본적인 체급이 달랐다. 말이 학생회지 세한기전의 전교생을 힘으로 찍어누른 두 사람인 것이다.

세한의 학생회장 유은비와 부회장인 김유현.

회장 쪽의 능력은 아주 심플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빔이 나간다. 무아지경이 되어 온전히 검에 집중할수록 광선의 파괴력도 상승했다. 칼집 안에서 빛을 모아 한 번에 내쏘는 발도광(抜刀光)은 초장거리에서의 저격까지 가능했다.

‘검광술사.’

무장은 검이지만 마법사 쪽에 더 가까운 능력이었다. 근거리에서도 원거리에서도 전부 강력한, 빈틈이 없는 전투 스타일. 웬만한 학생들은 학생회장이 눈 깜짝할 사이 서너 발씩 욱여넣는 검광 한 줄기조차 제대로 받아내기 힘들어했다.

‘유매 상대로는 눈 마주치자마자 끝이지만.’

그야 아무리 대단한 혈통능력이라 해도 발동하기 위한 마력 자체가 증발하면 자연히 무력해지기 마련이었다. 단련한 강함이나 역량의 차이 따위 내 알 바냐는 듯 압도적인 상성 하나로 찍어누르는 게 참 유매답단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회장의 경우엔 조금 더 특이했다. 자신의 마력으로 정령이라 불리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빚어내, 그것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싸우거나 무기 속에 깃들었다. 여러 특성을 지닌 정령들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꺼내는 전천후의 능력이었다.

능력 자체의 강함보다 단련과 활용을 중시하는 노력가라는 점에선 주하리와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손바닥 안에서 빚어낸 여러 속성의 정령들을 순식간에 배합해 원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은 부회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곡예였다.

하지만 순위전의 끝, 학생회장이 패배한 뒤 그 옆에 조연처럼 서있던 부회장이야말로 진짜 세한기전 최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러한 평가는 반전된다. 누군가가 회장을 쓰러뜨릴 때까지 조용히 감추고 있었던 그 혈통능력의 이면.

‘악령.’

성실한 노력가는 개뿔이. 겨우겨우 이겼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런 걸 꺼내며 2차전에 돌입하는 건 반칙이었다. 게다가 차대엽과는 완전히 상성이라 정공법으로는 답도 없었다. 처음 당했을 땐 무슨 강제 패배 이벤트 같은 건 줄 알았다.

‘유매 상대로는 눈 마주치자마자 끝이지만.’

그야 정령을 빚을 재료인 마력이 통째로 증발하는 사태를 어떻게 막아낸다 쳐도, 정성 들여 만들어놓은 정령들의 회로를 마음대로 꼬아놓을 수 있는 저 독재자에게 부회장 같은 섬세한 기교파는 무력하게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마력독재와 마력중재의 조합은 말도 안 됐다. 혈통시대에서도 나중에 유설이 죽은 뒤 각성한 유매 정도나 사용할 수 있는 비기니까. 모든 혈통능력에 대한 카운터였다.

마녀공예를 통해 자기 언니의 능력까지 쓸 수 있게 된 지금, 세한에서 유매를 능력으로 꺾을 수 있는 인물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애초에 마력이 없어 상성 문제에서 자유로운 내가 아니면 대치한 그 시점에 시합 종료인 것이다.

이내 자세빈이 얼굴을 굳힌 날 보며 콧숨을 쉬었다.

“너쯤 되는 녀석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줄은 몰랐는데. 저런 녀석들 따위, 이쪽보다 요만큼 더 강할 뿐이잖아.”

“너는 걱정 없어서 좋겠다.”

“걱정 없어서 좋겠는 건 네 쪽이다.”

자세빈이 즉답했다. 불만으로 가득 찬 눈초리는 나에게 지금 정말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지적하는 것 같았다.

“다른 데에 한눈팔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실력 차이가 한두 단계 나는 정도야 어차피 너니까 멋대로 이겨버리겠지. 하지만 그 녀석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다.”

“···차군 말이야?”

“그래. 저 콧대 높은 3학년들은 아무리 방심하지 않는대도 내심 너를 한 수 아래로 보겠지. 하지만 네 친구인 그놈들은 달라. 반드시 널 박살 낼 만반의 대책을 준비해올 거다.”

즉, 단순히 스펙이 높을 뿐인 학생회의 선배들보단 날 잘 알기에 핀포인트로 약점을 찔러올 차대엽네 팀이 더 위협적이라는 소리였다. 차대엽은 물론 팀원인 금예린과 진소란에게도 같이 다니며 내 능력들을 꽤 보여줘버렸고 말이다.

‘능력이라 하기도 부끄러운 잔재주긴 한데···.’

평소부터 차대엽을 의식하던 자세빈의 과민반응이라고 흘려듣기엔 대단히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실제로 학생회의 둘을 어떻게 공략할지는 이미 대충 견적이 나와 있었다.

반면 차대엽네 팀이 나 하나 잡겠다고 죽자고 달려들면 나는 아주 곤란해질 것이다. 차대엽의 성격을 생각하면 여기서 싸워봐야 둘 다 손해라고 설득해봤자 귓등으로도 안 들을 테고. 그리고 이런 경우 내가 취하는 방식은 한 가지였다.

안 싸워준다.

“좋아. 그럼 네가 맡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싸우겠다 의욕을 불태우는 차대엽네 팀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 같은 소시민이 작정한 그놈들과 정면에서 맞붙겠다는 건 조금 번거로운 방식의 기권일 뿐이었다. 자세빈이 눈썹을 찌푸렸다.

“···차대엽을 나한테 맡긴다고?”

“정확히는 너랑 현미나한테 맡기겠단 거지. 쓰러뜨려달란 소리는 안 해. 학생회 쪽은 내가 어떻게든 힘내볼 테니, 걔네들이 날뛰면 그동안 적당히 발 정도만 묶고 있어줘.”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는 나쁜 쪽으로 인기가 많아 유매와 차대엽 양쪽 모두에게 표적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하나씩이라면 또 모를까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머리를 굴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그러자 자세빈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내가 못미더워 불만인 눈치가 아니었다.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자세빈이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의외군.”

“의외라니?”

“매일 붙어다니던 녀석들이 요 며칠 미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길래, 친구끼리 큰 무대에서 결판이라도 낼 생각인가 싶었는데. 이쪽이 끼어들어 훼방을 놔도 상관없는 거였나?”

자세빈의 말에 이번에는 이쪽이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오해를 하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누구의 방해도 들어오지 않는 차대엽과의 정정당당한 일기토 따위 이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나를 보고 자세빈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가. 그럼 문제없겠군. 쩨쩨하게 발이나 묶고 있을 생각은 없어. 내 선에서 깔끔하게 전멸시키고 합류하지.”

“···무례한 놈이군. 이쪽도 비장의 수라는 게 있어. 너야말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줬는데 성과도 못 냈다간 봐라.”

“몸 좀 사리지? 걔네 아마 너보다 세.”

이내 맞은편의 문이 열리고, 대련장에서 나온 현미나가 이쪽에 손을 붕붕 흔들었다. 한쪽 어깨엔 산타를 연상시키는 큰 꾸러미가 들쳐메여 있었다. 후배 교육 좀 시켜주겠단 선배들을 명랑하게 전부 후려패고서 명찰을 싹 쓸어온 것이다.

저번 순위전에선 공중에 뜬 나를 보고 씩씩대며 화내다 퇴장한 게 끝이니 별 주목을 받지 못했겠지. 하지만 저 깐깐한 자세빈이 전투능력 하나만으로 차기 마왕의 오른팔에 어울린다 판단한 녀석이다. 그녀 또한 상식 밖의 괴물이었다.

“이 정도면 본선 진출은 걱정 없겠지!”

현미나가 꾸러미를 뒤집자 명찰들이 촤르륵 쏟아졌다. 해맑은 목소리에 나와 자세빈은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 * *

“신출귀몰.”

고급 한식당의 맨 안쪽 방. 금예린이 주선한 식사 자리에서 차대엽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옆의 테이블에는 금예린이 밤새 작성해온 전략의 개요가 프린트되어 놓여있었다.

“각 지점마다 결계를 설치한 뒤 여기저기 전이해가며 기동력으로 전장을 제압한다. 확실히 대단한 작전이야.”

자료를 읽어본 차대엽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금예린은 우쭐대는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촤악 펼쳤다.

“후후. 검귀의 보증을 받으니 든든한걸요? 사실 실전에서 쓰기엔 무리가 있다고 쓴소리를 들을 것도 각오했는데.”

차대엽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 말에 미소 짓던 금예린의 입꼬리가 굳었다. 칭찬한 직후 거절이라니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금예린은 애써 성질을 삭히며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차대엽은 이미 할 말 끝났다는 듯 먼 곳만을 바라보았다.

결국 참지 못한 금예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사양이라는 건데요! 이 방법이면 아무리 그 사람이 상대라도 무조건 선공권을 잡을 수 있다고요! 설마 딱히 이기려는 생각도 없이 안일한 마음으로 권유했던 거라면···.”

말하던 금예린은 흠칫 입을 다물었다. 미처 다 숨길 수 없는 투지가 차대엽의 온몸에서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올려다보는 표정은 대단히 진지해, 화를 내던 금예린도 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납득은 별개의 문제였다. 상대는 아주 작은 힘만으로 그 요호를 떡하니 잡아낸 송한솔이다. 정공법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분명히 말해 금예린이 생각하는 송한솔의 전력 평가는 차대엽보다 위였다. 순위전에서 보여준 차대엽의 전투능력은 확실히 괴물 같은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심으로 싸웠을 때 송한솔 쪽이 당할 거란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아시겠어요? 이런 말을 하면 수석의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인간이 상대인 이상 불리한 건 우리예요.”

“안 상해. 당연한 말인걸.”

차대엽의 대답에 금예린은 살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송한솔은 차석이고 그는 수석일 텐데, 자신이 도전자 쪽이라는 걸 이렇게 시원스레 인정한다는 건 예상외였다. 이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차대엽에게 금예린이 큼큼 헛기침을 했다.

“이야기가 빨라서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책략을 준비해야 한다구요. 당신이 제일 잘 알 거 아녜요? 당신 친구가 평소에는 경박하게 실실 웃고 다녀도 사실 얼마나 빈틈없는지.”

“이길 생각은 있어. 아마 누구보다 많이.”

“아니, 훌륭해. 그렇지만 나는 사양하겠어.”

“딱히 경박하진 않은 것 같은데···.”

어쨌든 금예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할 수 있었다. 싸움에 있어서 불리한 쪽은 반드시 무언가 수를 써야 한다. 약자가 강자에게 비책 없이 정직하게 도전해봤자 백 번 싸워 백 번 질 뿐이다. 하지만 차대엽은 이미 생각을 굳혔다.

“이번만큼은 반대야. 정공법 이외로는 안 돼.”

“혼란을 틈타 급습한다든가, 약점을 찾아내 찌른다든가. 그런 건 한솔이의 주무대지. 남이 특기인 영역에서 싸우려 들어봤자 의미가 없어. 기습이나 포위를 해봤자 절대 상대해주지 않을걸. 안 싸우는 데에 있어서는 도가 튼 녀석이니.”

“뭐라고요?”

차대엽은 애초에 뒤통수 치기 싸움으로 송한솔에게 이기겠다는 생각 따위 해본 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전략은 하나 뿐. 눈에 보이는 모든 상대를 모두 박살내며 전진해, 마지막에 송한솔 한 명만 남는다면 그땐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쪽의 작전을 역이용하고 말 것도 없는 그저 야만적인 힘싸움. 그것이야말로 송한솔을 쓰러뜨릴 차대엽의 비책이었다. 너무하다 싶은 폭론에 금예린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아예 작전 없이 싸우자고요?”

“그 자리에서 유연하게 판단하자는 거지.”

“그게 작전 없이 싸우잔 거잖아요!”

차대엽의 태연한 대꾸에 금예린이 부채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차대엽은 차대엽대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라는 듯 찻잔만 홀짝였다. 의견차는 쉬이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 끼어든 건 이제야 식사를 끝마친 진소란이었다.

“그럼 저 소리에 따르자고요···?”

“굳이 그렇게 입씨름을 할 필요가 있나?”

금예린이 당신 제정신이냐는 듯 진소란을 쳐다봤다. 하지만 진소란은 신경 쓰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래.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되지 않나? 어차피 네 작전대로 결계를 타고 다닌다면 언제든 합류할 수 있을 테고.”

굳이 둘 중 하나의 의견만을 따를 필요 없이, 차대엽은 차대엽대로 움직이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금예린의 작전엔 적들의 시선을 끌어줄 미끼 역할이 있어줘야 효과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금예린이 턱에 부채 끝을 갖다대 눌렀다.

“양동이라는 건가요···.”

얼핏 들으면 단순한 발상이었지만 곱씹을수록 이치에 맞았다. 굳이 전력을 분산하는 건 일반적으로 악수였지만, 결계를 타고 전이해 다닌다면 그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하던 금예린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 그래도 역시 혼자서는.”

“괜찮아.”

그렇게 말한 차대엽은 맞은편에 앉은 금예린이 아니라, 거기서 몇 걸음 옆의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빤히 먼 곳을 쳐다보던 시선. 말 그대로 귀신이 들린 듯, 그곳에 누군가의 모습이 비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대엽의 허리에 매인 초대 검성의 신검이 작게 진동했다.

“지금은, 누구한테도 질 것 같지가 않아.”

그리고 차대엽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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