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112화 (112/113)

세한삼우(6)

나는 바위 뒤에 숨어 유매 일행을 살펴보았다.

산 정상에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미 농성의 태세를 갖춘 학생회 팀에게 파고들 만한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투시를 풀고 고개를 빼꼼 내밀기만 해도 즉시 발각당할 것이다.

‘안 좋은데.’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부회장은 까다로운 능력을 지닌 정령들을 숨풍숨풍 뽑아내기 시작할 테고, 방비가 굳건해지면 유매와 학생회장의 포격에 모든 팀이 일방적으로 쓸려나가는 그림이 된다. 잠시라도 주의를 끌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돌연 뒤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발원은 하나의 폭풍이었다. 저 멀리서 숲의 한쪽을 통째로 끌어들여 분쇄한 일격. 도저히 개인의 기술이라 볼 규모가 아니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차대엽을 억지로 막아세우게 한 곳 근처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학생회 팀은 그렇지 못했다. 전혀 상정해두지 않은 수준의 화력. 자신들에게 확실한 위협이 될 만한 존재의 출현에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 전원의 의식이 숲 쪽에 쏠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 몸이 자리에서 점멸했다.

“뭘 그렇게 재미있게 보고 있대?”

나는 서로 등지고 서있던 회장과 부회장의 사이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나타난 날 보고 두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걸 본 양 눈을 크게 떴다.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할 동안 자신들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경악.

오로지 유매만이 날 보며 이제야 나타나셨냐 피식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난 한쪽 손을 들어 인사해주었다.

그리고 놀란 것도 아주 잠깐, 두 사람은 내가 착지하기도 전에 이미 평정을 되찾고 대응을 시작했다. 적의 위험도는 미지수. 그렇기에 떠보기 없이 전력으로 박살낸다. 베테랑인 둘이라면 분명 그런 반응을 보여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악령초래···.”

“─검광만화경.”

터져나온 흑과 백의 아지랑이. 부회장의 등 뒤에서 검은 악령이 솟아올랐고, 회장의 검에 새하얀 섬광이 내렸다.

순위전의 끝,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최종기를 얼굴 보자마자 양쪽 동시에 대접받게 됐다. 과잉진압이란 말로도 부족한 폭거에 나는 미소지었다. 만일 작은 기술로 천천히 제압하려 들었으면 내 패배였을 것이다.

“끝이다.”

“그쪽이.”

자세를 낮춘 회장에게 내가 마주 웃어주었다. 이내 새까만 악령이 배후에서 나타나 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동시에 회장의 칼집에서 샌 검광이 몇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발도광이 멀리 떨어져있는 적을 섬멸하는 포격이라면, 만화경은 검이 닿는 거리에서 사용하는 학생회장 최강의 기술. 빛의 칼날을 십수 개로 분열시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숫자의 참격을 전방위에서 일거에 작렬시키는 절기였다.

그리고 나는 아주 느긋한 움직임으로, 흘러넘치는 검광을 해방하려는 회장의 칼자루에 툭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이내 당장에라도 터져나올 것 같았던 검광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다시 검광을 모으려 해도 흐릿해진 빛의 잔상만이 흔들릴 뿐이었다. 순간의 적막. 자신의 능력이 파훼됐다는 걸 깨달은 회장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끝.”

나는 학생회장에게 것 보라는 듯 칼자루 쪽을 턱짓했다.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지만, 유매 팀은 나 혼자서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자세빈에게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혈통능력을 강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걸맞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한 능력에만 특화하도록 바꾸는 것. 마력의 발로를 강제로 제한하는 것. 버릴 수 있는 것은 전부 버리는 것. 그 대표적인 예시가 학생회장이었다.

학생회장의 검광은 속도와 위력, 사거리 모두 완성형에 가까웠다. 검광 하나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무결점의 능력이다. 그렇기에 세한 최강. 하지만 그 강력함은 완전한 정신통일을 담보로 해 처음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온갖 견제가 들어오는 실제 전투 상황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집중을 잃으면 모은 검광은 무력하게 흩어진다. 그런 까다로운 능력으로 세한기전의 정점에 섰다는 건 정신이 아득해질 수준의 단련으로 강철의 의지를 체득했단 거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정신 능력자였다.

집중을 유지하는 훈련을 했든 말든, 직접 의식을 잡아당겨 흔드는 것만으로 극한의 몰입 따위 쉽게 깨져버린다. 나른하게 졸고 있는 아이의 뺨을 꼬집으면 깜짝 놀라 깨어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 그대로 저항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력한 능력의 대가로, 학생회장의 모든 마력은 오로지 검광을 생성하기 위해서만 회전한다. 즉 검광을 모을 수 없게 된 지금 학생회장은 맨몸에 그 검은 단순한 날붙이. 그런 것쯤 염력만으로 뽑지도 못하게 눌러놓을 수 있다.

“벌 받은 거예요.”

“뭐···?”

“그런 무서운 걸 귀여운 후배한테 향하면 쓰나.”

유경명 같은 괴력의 소유자라면 떨쳐낼 수도 있겠지만, 학생회장은 어디까지나 기교파였다. 그녀가 기를 쓰고 검을 빼들려 해도 칼집만 부르르 떨릴 뿐이었다. 정면에서 힘싸움으로 누굴 이겨보는 건 아주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중간에서 내 손목을 붙들었다.

“은비를 일 대 일로 정면에서 틀어막다니, 이번 1학년들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건지···. 하지만 상대가 나빴어.”

부회장은 이미 싸움이 끝났다는 듯 담담히 고했다. 뒤에서 내 얼굴을 더듬으며 올라오던 악령의 손이 두 눈을 가렸다. 누구게 하고 장난을 치는 듯한 포즈였다. 악령은 저주 계열 혈통능력의 극치. 저주한 대상을 그 즉시 기절시킨다.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솔직히 말하면 말도 안 되는 효과였다. 결승에 올라온 차대엽이 얼마나 강하든 저주 대책이 되어있지 않으면 기절하고 끝이었다. 게다가 대책을 준비해와도 그 대책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게 부회장이란 인간이다.

힘을 숨기고 있던 세한기전의 진짜 최강.

심지어 인간뿐만 아니라 의식이 있는 존재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기절시켰다. 물론 대요괴쯤 되면 기본적으로 저주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저항력을 가지고 있고, 요호라면 깜찍한 짓을 한다는 듯 웃으며 가볍게 되돌려주겠지만.

그럼에도 상대만 잘 만나면 누구든 일격으로 끝낼 수 있는 탓인지 끝까지 플레이어블로 풀리지 않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의식을 빼앗아 기절시킨다니. 웃기지도 않는 효과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악령의 저주가 내 의식 표면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쳐냈다.

“상대가 나빴던 건 선배들 쪽이고.”

자세빈의 악몽을 놀이동산처럼 걸어다닌 내 의식을 이런 애들 장난으로 빼앗으려 들다니 당치도 않다. 역으로 반격당한 악령은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흩어졌고, 그와 동시에 여유롭게 서있던 부회장이 피를 쿨럭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저주 계열 능력의 약점은 성공하지 못할 시 자신에게 반동이 되돌아온단 것이었다. 금예린 같은 정통 주술사 가문의 후계자라면 그걸 대신 받아내줄 제물을 준비해놓겠지만, 뒷배가 없는 부회장은 스스로 반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

상대의 몸을 무겁게 하거나 상태를 악화시키는 정도의 귀여운 저주라면 잠시 마력이 울렁거려 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악령은 문답무용으로 적을 기절시키는 최상위 저주. 당연히 반동도 장난이 아니었다.

쓰러진 부회장의 몸에서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올랐다. 온몸의 마력이 꼬이고 비틀려 그걸 필사적으로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은 싸우긴커녕 제대로 설 수도 없겠지. 검을 빼어들려 애쓰던 학생회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그녀에게 있어 부회장은 하나의 목표였다. 입학하고서 지금까지 3년간, 셀 수 없이 도전했지만 학생회장은 부회장인 그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런 파트너가 눈앞에서 새파란 1학년 애송이에게 쓰러졌으니 그야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동요할 줄은 몰랐다.

“네가···!”

“어?”

학생회장이 억지로 짜낸 검광을 마구잡이로 폭주시켰다. 빛을 담아두던 칼집은 깨졌고, 제어불능의 검광이 주인의 몸까지 상처입혔다. 자기 피부가 찢겨나가고 있는데도 학생회장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폭주를 재촉했다.

채찍처럼 휜 검광이 또 학생회장의 한쪽 어깨를 찢어냈다. 공격하기도 전에 자신이 더 큰 상처를 입는 이판사판의 특공. 그녀는 이미 반쯤 이성을 잃고 있었다. 아예 제정신이 아니어서야 내 능력으로 의식을 흔들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식은땀을 흘리는 내게 학생회장이 한 걸음 다가왔고.

“그만.”

흔들리는 검광째로 학생회장이 땅바닥에 쾅 엎어졌다. 고작 칼 하나 못 빼들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던 내 염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하고 순수한 마력의 독재. 유매가 학생회장의 몸 전체를 마력으로 찍어누른 것이다.

“끈질겨. 처음부터 당신들로는 무리라고 했잖아.”

쓰러진 회장의 옆을 지나치며 유매가 말했다. 자기 동료가 둘이나 쓰러졌는데도 유매의 표정에 위기감은 없었다. 말싸움에 이기고선 내 말이 맞았지? 하고 과시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를 유매가 돌아보았다.

“뭐 할 말 있다는 표정이네.”

나는 뺨을 긁적이며 유매에게 대답했다.

“음···. 선배들한테 너무 무례한 거 아니냐?”

“하, 무례한 게 어느 쪽인데.”

내 말에 유매는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입만 살아서 나는 싸움 못하네 뭐네 온갖 엄살 다 떨더니 봐. 결과는 어때? 학생회란 치들이 둘이 달려들어 박살이 났지. 이게 다른 사람들을 바보로 보는 게 아니면 뭐야.”

“아니, 그거랑 이건 다른 문제지.”

철면피 까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다. 검광에 베여 상처입은 학생회장도, 악령의 반동에 쓰러진 부회장도 내가 뭘 한 게 아니고 자기 능력으로 자해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뿐사뿐 걸어온 유매가 코앞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입으로는 못 이긴다 엄살 피워도, 사실은 내가 상대여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생각하고 있지.”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에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바닥을 보다 고개를 들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어.”

웃으며 고백하자 유매도 마주 웃어주었다. 그것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반쯤 죽여버릴 거라 결심한 미소였다. 화 풀라고 진정시키기엔 이미 한참 늦었다. 나는 이 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둬야겠다 싶어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리고 난 수업 끝났는데 학교 남아있는 거 진짜 질색이거든? 학생회 같은 건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해야지. 웬만하면 그냥 어울려주겠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못 져주겠다.”

“잘 됐네. 너 질색하는 거 구경하는 게 내 취민데.”

그리고 유매의 등 뒤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다섯 개 떠올랐다. 웬만한 기사들이 필살기로 쓸 만한 위력의 주문을 인사 대신처럼 간단히.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유매는 서로 다치지 않도록 적당히 힘조절을 할 생각 따위 요만큼도 없었다.

“해보자고 한 번···.”

나는 땅에서 둥실 떠오르며 염력을 끌어올렸다.

* * *

산 정상에서 다섯 개의 화염구가 떠올랐다.

연락용의 봉화라도 피워올린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직후 울려퍼지는 폭음과 진동. 저 위에서 지금 전투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다른 팀들은 결코 그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돌입해야겠군.”

“현장에서는 어느 쪽에 가세하죠?”

“학생회부터 떨어뜨린다. 그 둘은 너무 위험해.”

앞에서 달리는 건 선도부장인 민유리였다. 선도부 견장을 달고 있는 두 사람이 익숙한 듯 주변을 경계하며 그녀를 뒤따랐다. 자타공인 세한 최강의 능력자인 회장과 부회장은 다른 팀과 협공해서라도 최우선으로 배제해야 할 적이었다.

산을 올라가는 도중 다른 팀과도 마주쳤지만 전투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지금은 서로 싸우기보단 위쪽의 상황을 확인하는 게 먼저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당들을 다시금 미행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했어. 너는?”

“나는 찰과상 정도야. 그 애가 중간에 멈춰줬으니까.”

기척을 숨긴 채 다른 팀들의 뒤를 밟고 있는 건 회장과 부회장이었다. 상당히 피폐해진 부회장과 달리 학생회장은 그나마 멀쩡한 상태였다. 검광을 계속 폭주시켰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동료가 제동을 걸어주었다.

자해에 가깝게 날뛰던 자신을 진정시켜준 유매의 마력. 거친 말을 내뱉긴 했지만 그것은 성격이 솔직하지 못한 탓이겠지. 사실은 동료가 다치는 걸 내버려두지 못하는 상냥한 아이임이 틀림없었다. 그 아이라면 좋은 회장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차기 회장의 뒤통수를 치려는 이 일당들을 역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민유리와 선도부 정예들의 전투능력은 훤히 파악하고 있다.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 해도 자신과 부회장의 협동이라면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잠깐. 멈춰라.”

그렇게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던 도중, 민유리가 손을 올려 동료들을 제지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훑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손끝에 베인 상처가 생겼다. 또르르 흐르는 피에 민유리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실인가.”

그 말대로 이 앞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이 누군가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넓은 산등성이를 전부 감싸 봉쇄할 만큼 막대한 양의 실들은 불길한 마력으로 강화되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상태였다.

주변의 감지를 끝낸 민유리는 혀를 찼다. 보아하니 실들을 둘러쳐놓지 않은 건 정상까지 나있는 돌계단 하나 뿐이었다. 대놓고 이쪽으로 올라오라 유도하고 앉아 있다. 물론 조금만 주의하면 실들을 다 끊어내며 나아가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

이런 곳에서 능력을 낭비하는 것도, 제거 작업에 발목 잡혀있느라 산 정상의 싸움에 개입할 때를 놓치는 것도. 그 와중 자신들이 역으로 다른 팀에게 덮쳐질 가능성도. 민유리의 판단은 실을 무시하고 나아가는 게 악수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쪽 생각대로 돌계단을 통해 올라가줄 수밖에 없다. 팀원들과 고개를 끄덕인 민유리는 방향을 돌려 현술사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간지 얼마 안 되어 온 산등성이에 실을 둘러친 범인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은세연이 그곳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앞에 다가오든 말든, 그것에 신경쓰는 건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저 끊어진 곳을 다시 보충하고 더 많은 실을 짜내는 데에 집중하며 산길의 봉쇄를 더욱 강화해갔다. 그리고 은세연 앞에 두 사람이 서있었다.

“선배도 누구 부탁 받고 여기 왔다 했나요?”

“응. 데이트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제 쪽은 제발 와서 방해 좀 해달라고 울고 불고 하던데. 둘 다 친구니 누구 편을 들어줄 수는 없다고 사양했지만.”

반장이기도 하고, 하며 한 소녀가 뺨을 긁적였다.

온화하게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은 싸움터가 아닌 다과회 테이블에라도 앉아있는 것 같았다. 산을 올라온 이들은 잠깐 벙쪄있다 하나의 이변을 눈치챘다. 이 돌계단 주변에서만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살랑이며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몸에 두른 마력을 거둬.”

“네?”

“어서!”

민유리의 일갈에 선도부원은 재빨리 마력을 거두려했지만 한 박자 반응이 늦었다. 그의 어깨에 자그마한 눈송이 하나가 떨어지자, 마력째로 얼어붙으며 연결된 팔 전체에 서리가 내렸다. 이 계단은 이미 마녀가 중재하는 영역이었다.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제대로 나선다면 학년 최강의 자리에도 손이 닿을 거라 평가받는 2학년의 하얀 마녀. 그리고 손님을 두고 자신들끼리 떠들었던 게 실례였다는 듯, 그 옆에서 사슴뿔을 한 소녀가 긴 언월도를 치켜들었다.

“죄송해요. 이 앞으로는 통행 금지라서.”

뺨에는 작은 비늘.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불꽃의 마력은, 떨어져내리는 눈에 닿아도 얼어붙지 않는다. 꽉 눌러닫은 뚜껑 틈에서 살짝 새어나오는 정도의 양일 뿐이지만, 주하리는 적룡의 마력을 꺼내 쓰는 요령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언월도의 날에 불꽃의 마력이 휘감겼다. 원래부터 주하리는 순수한 무투파. 주문은 고사하고 마력을 몸에 두르기조차 힘든 눈의 나라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뒤에 두 선배도 몰래 지나가려는 생각은 말고요.”

언월도를 들어 가리킨 주하리의 행동에 선도부장이 놀라서 휙 뒤돌아봤다. 가리킨 곳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내 주하리가 걸음을 내딛으려 하자, 그제야 회장과 부회장이 체념한 얼굴로 나타났다. 부회장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네. 은폐는 분명 완벽했는데. 따로 감지 능력 같은 걸 사용한 기색도 없었고. 대체 어떻게 눈치챈 거야?”

“경험에 따른 감이예요.”

다른 학생들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정점의 자리를 쟁취한 학생회의 두 사람에게 새파란 1학년생이 경험을 운운하다니. 하지만 실제로 주하리의 눈을 마주한 두 사람은 부정할 수 없는 무게를 느꼈다.

설령 셀 수 없이 마물들을 베어온 일류의 기사라고 해도 저런 눈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부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부터 요주의였던 유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두 1학년은 경계할 필요조차 못 느꼈던 무명. 그런데 한쪽은 산 하나를 덮을 정도의 현술사에, 다른 한쪽은 깊이를 재지 못할 눈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다.

“진짜 이번 1학년들은 어떻게 돼먹은 건지···.”

이 말도 대체 몇 번째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눈의 나라 안에서 정령들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비장의 수인 악령은 한동안 사용 불가. 회장 또한 아직 검광을 제어하는 데에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다. 후배들과 한바탕 놀기에는 딱 적당한 수준의 패널티였다.

“직접 싸우는 건 오랜만인데.”

무기에 정령을 깃들인 부회장이 해보자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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