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삼우 (7)
유매의 손짓에 화염구들이 적을 향해 날아갔다.
기본적으로 주문의 투사체는 별다른 세공을 하지 않는 이상 일직선으로만 뻗어나갔다. 마력을 몸 밖에 방출하면 정밀한 조작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기사들에게 마법사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초인끼리의 싸움에서 궤도가 뻔한 공격을 맞아줄 리 없고, 큰 주문을 준비할 시간을 벌도록 가만히 놔둬줄 리도 없다. 마법사들이 안전한 곳에서만 포격하며 정면 승부를 꺼리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유매는 그러한 역사를 알지 못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알까보냐, 하고 코웃음을 칠 것이다. 마법사는 원래 혼자서는 제대로 못 싸우니 남들 뒤에 숨어서 지켜달라고 아양이나 떨어라. 그 따위 헛소리에 순순히 알겠다 끄덕여줄 수 있을 만큼 유매는 성격이 좋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 상식이고 원칙이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힘으로 비틀어서라도 굴복시키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마력독재.”
유매가 손끝을 까닥이자 직선으로 날아가던 화염구들이 일제히 송한솔에게 고개를 돌렸다. 외부로 방출한 마력은 조작할 수 없다는 대전제에서 유매만큼은 처음부터 예외였다. 어떤 속임수도 잔재주도 없는 주문의 자유로운 방향 전환.
그것은 이미 쏘아져 날아가고 있는 화살의 궤도를 고쳐쓰는 것과 같은 반칙이었다. 조금이라도 마법의 소양이 있는 자가 옆에서 보았다면 말도 안 된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일일이 신경 써서 조작하는 건 머리가 아프지만.”
저 뺀질이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은 감수할 수 있다. 유매는 주문을 급하게 폭발시키지 않고, 송한솔을 확실하게 구석에 몰기 위해 화염구들을 산개시켰다. 이제 와서 옆으로 틀어 빠져나가려고 해봐야 늦었다.
“잡았다.”
유매는 확신을 담아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직후. 도망치던 송한솔이 돌연 앞으로 몸을 돌렸다. 불꽃과 정면으로 마주대하는 태세. 전혀 당황하지 않은 눈동자가 각 화염구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내 송한솔이 가속하며 곡선을 그렸고, 그때마다 화염구가 서로 충돌하며 폭발해갔다.
터져나오는 굉음. 흩어지는 불꽃을 등지고 송한솔은 어떻게든 해냈다는 듯 무릎에 손을 짚었다. 유매는 표정을 굳힌 채 그런 송한솔을 바라보았다. 분명 손바닥 안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촐랑대며 도망치는 거 하난 참 잘해.”
“심리전이라 해주시지.”
유매는 메마른 표정으로 송한솔의 말을 되뇌었다.
“심리전 말이지···.”
방금 송한솔은 차대엽처럼 민첩한 움직임으로 주문을 따돌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속도 자체는 대단할 게 없었다. 다만 모든 화염구를 한계까지 끌어들인 뒤, 기세를 못 이기고 주문끼리 충돌하도록 교묘히 짜둔 동선으로 유도했다.
처음 움직일 때부터 계산을 끝내두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빠른 것은 몸이 아니라 머리의 속도 쪽.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유매의 생각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화염구의 궤도를 송한솔은 너무 깔끔하게 읽어냈다.
그렇기에 유매는 다시금 자신의 가설에 대해 확신을 얻었다. 이내 유매가 고개를 들어 송한솔과 눈을 마주쳤다.
“눈치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무슨 능력인 건지.”
심리전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확실히 절묘한 표현이었다.
“대충 느끼나 보지? 남이 생각하는 걸.”
빈틈밖에 없어 보이는 주제에 절대 빈틈을 찔리지 않는 것도, 이상할 정도의 상황 대처 능력도. 그게 사실이라면 전부 설명됐다. 마력을 시각화하는 모자령이나 힘의 흐름을 포착하는 귀안처럼, 송한솔에게도 특별한 감각이 있는 것이다.
“골치 아프네.”
적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사람을 상대하는 분야 어디에서든 끔찍하게 강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어떤 능력이라도 파고들 빈틈은 있다. 중요한 것은 대항할 방법을 준비해올 수 있었느냐. 그것을 체현해온 게 눈앞의 송한솔 본인이었다.
쓰러뜨릴 방법은 물론 생각해두었다. 애초에 방학 동안 유매는 거의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빠져나가기 선수인 저 송한솔을 납작쿵 눌러버릴 수 있을까 하고.
유매는 지난 방학 학장실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욕심쟁이라서 말이야.’
학장은 찻잔을 건네주며 대뜸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마왕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 이런 생각을 했지. 이 성도 같이 가져가고 싶다고. 그만큼 마왕성이라는 물건은 특출났네. 난 소위 천재라 불리는 인종이기에 뭘 보고서 진심으로 감탄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 성만큼은 별개였어.’
멘토링을 해주겠다 불러놓고 이 사람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유매는 굳이 불평하지 않았다. 노인의 변덕엔 인내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유매는 고향에서의 생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소지은 학장이 말했다.
‘하지만 마왕성이란 마왕의 자리를 잇는 자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공용 비품 같은 것이지. 사유물로 삼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그러면 내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나?’
갖고 싶으니까 그냥 가질게, 하고 말리는 부하들을 싹 다 죽여버렸나. 하며 한창 피 튀기는 상상을 하고 있는 유매에게 학장은 서랍을 열어 낡아빠진 서류더미를 꺼내보였다.
그것은 극도로 복잡한 하나의 청사진이었다.
본질을 간파하는 눈을 지닌 그녀가, 마왕으로 군림하던 내내 닥치는 대로 엿보며 베껴쓴 마왕성의 술식들. 어디까지나 마왕성의 부속품이기에 성 밖에선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지만, 쌓인 시행착오의 메모들은 그걸 극복하려는 역사였다.
‘단독으로 기능할 수 있게 개량하는 데에 오십 년쯤 걸렸지. 그마저도 너무 복잡해져서 실전에선 영 못 써먹고.’
마왕성이란 환경 안에서만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술식을 밖에서도 쓸 수 있게 억지로 개조했다. 본판의 절제미는 온데간데 없고 누덕누덕 기워붙인 탓에 사용자의 부담도 심해진 열화판. 그럼에도 아무튼 작동은 한다. 그것이 중요했다.
회로 구성이 조금만 어긋나면 발동 자체가 힘들 만큼 조잡한 술식이라도, 마력이 한 방울만 누출돼도 과부하해 기능을 멈춰버리는 시행착오 도중의 실패작이라도. 유매라면 순전히 자신의 역량만으로 실전에서 통용되게끔 만들 수 있다.
효율 따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가 하나 뿐. 유매 주변에서 십수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 술식의 이름은 무도회장.
무도회장이라곤 해도 귀족들이 모여서 사교를 즐기는 장소는 아니다.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술식에 둘러싸인 자가 누구나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춤추게 되기 때문에. 마법진에서 뻗어나온 대포들이 일제히 송한솔 쪽을 겨누었다.
“춤추자, 송한솔.”
원통형의 포신들은 무대의 주역을 비춰주는 조명을 연상시켰다. 그 정체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 요격 포대. 마법진들과 연결되어있는 관제 술식이 전투 상황을 분석해, 끊임없이 적에게 유리한 각도, 속성, 타이밍의 포격을 퍼붓는다.
능력자가 피를 토하며 단련해온 나날들에 침을 뱉는 듯한,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적을 쓰러뜨려주는 편리한 시스템. 유매가 구현한 무도회장의 포대는 십수 문 정도였지만 마왕성 안에서라면 최소 오십이 넘는 포대가 적을 에워쌌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도를 눈 깜짝할 사이 감지해내는 송한솔이 상대라면, 이 미학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인스턴트한 전투 방식은 또 한 가지의 이점을 지닌다.
“읽지 못할걸. 내 생각으로 발사되는 게 아니니까.”
새하얀 빛이 모여가고, 포신들이 굉음을 울리며 광선을 쏘아냈다. 마구잡이로 적을 조준해 쏘아대는 게 아니라, 피한다 해도 다음 포격으로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도록 각 마법진들이 긴밀하게 연동하고 있다. 유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술식을, 나아가서는 마왕성이란 물건을 만들었을 초대 마왕이란 작자에게 기가 찼기 때문이었다. 술식의 표현 방식엔 반드시 작성자의 성향이 어느 정도 묻어나오기 마련이었고, 극단적인 경우 그 인간의 본질마저 드러내주었다.
그리고 유매가 읽어낸 초대 마왕의 인상은 한 마디로 게으름뱅이의 끝이었다. 술식 전체에 지독할 만큼 배여있는 건 전투란 행위 자체에 대한 완강한 거부. 바로 눈앞에 적이 있어도 자긴 움직이기 싫다는 오만하기까지 한 방만이었다.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도구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했던가. 그렇기에 더더욱 술식의 짜임새는 소름이 돋을 만큼 훌륭했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움직여야 할 상황이 오는 게 끔찍이도 싫다는 것처럼.
춤추는 포신들이 한 발씩 섬열의 빛을 쏘아낸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행해지는 포위 사격. 벗어나기 위해선 오랜 연구와 궁리 끝에 구축된 시스템을 상대로 사람 하나가 그 자리에서 수십 수 앞까지를 읽어내 외통수를 불러야만 했다.
그동안 자신은 여기 가만히 서서 허둥지둥 광선을 피하며 필사적으로 고민하는 송한솔의 곤란한 표정을 느긋하게 감상하면 될 뿐. 스스로 싸우기 싫다는 겁쟁이의 사고방식엔 찬동할 수 없지만, 이런 것도 가끔은 괜찮은 여흥이었다.
그리고 이내 비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한 무도회장의 포격 속에서, 하나의 신형이 춤추듯 움직이며 다가왔다.
“뭐야.”
마법진의 대포들은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며 적에게 광선을 퍼부었다. 스포트라이트를 연상시키는 빛. 현란한 조명은 무대의 주역에게 숨지 말라는 듯 끊임없이 쫓아가 비추려 든다. 송한솔은 계속 춤추었고, 이내 무도회장이 우뚝 멈추었다.
“신경질내며 마구잡이로 쏴대는 편이 차라리 나았어.”
유매의 눈동자가 떨렸다. 사실 자신 또한 이것마저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파훼될 때까지 송한솔이 얼마나 고생을 할까 옆에서 구경이나 해보자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엔 당황한 기색 하나 없다.
“패턴이 있는 걸 공략하는 건 내 특기라고.”
광선의 포격을 뚫고 코앞까지 다가온 송한솔은, 오른손을 들어 유매의 손에 손깍지를 끼었다. 무도회장의 술식을 회전시키고 있는 동안은 다른 주문을 사용할 수 없다. 그걸 알고 있다는 듯 도망치지 못하게 유매를 방패로 삼은 것이다.
두 사람을 겨누고 있는 포신들은 당장에라도 포격을 쏘아낼 수 있음에도 유매가 휘말려버리기에 조용히 멈춰있었다. 송한솔에게 손을 잡혀있는 유매는 작게 눈썹을 찌푸렸다.
“잘난 척 하지 마. 너 이거 전에 본 적 있지.”
“들켰나?”
어깨를 으쓱이는 송한솔에게 유매가 쯧 혀를 찼다.
“어이가 없어. 마왕성에 침입해보기라도 했어?”
“해봤다고 하면 해봤을 수도 있고.”
송한솔이 또 알려줄 듯 말 듯 사람 짜증나게 하는 화법으로 말했다. 전황은 완전한 교착 상태. 아마 유매가 마력을 돌려받기 위해 무도회장의 술식을 해제하는 순간, 송한솔은 그 아주 잠깐의 무방비 상태를 틈타 공격해올 속셈이었다.
상대를 이도 저도 못하게 옭아매는 짜증나는 방식. 송한솔다운 전투법이었다. 하지만 해법은 간단했다. 유매는 손깍지를 낀 왼손을 슬쩍 바라보고선, 조금 뜸들이다 말했다.
“계속 이러고 있으려고.”
“놓으면 쏠 거잖아···.”
“안 놓으면. 못 쏠 거 같아?”
그야 당연히 못 쏘지. 푸하하 웃으려던 송한솔은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에게 강렬한 적의가 닥쳐오는 걸 느낌과 함께, 유매라는 인간은 한다면 한다는 성격임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무도회장의 대포들이 섬광을 발했다.
“이런 미친···!”
거대한 폭발. 어떻게든 염력을 끌어내 순간이동한 송한솔이 숨을 내뱉었다. 진짜 쏠 거라 미리 읽어내지 못했으면 도저히 시간에 못 맞췄을 것이다. 그리고 유매는 무도회장의 집중포격을 정면에서 받고도 아무 상처 없이 서있었다.
“매너가 없네. 자기 쪽에서 먼저 잡아놓고 내빼다니.”
유매는 비어있는 손바닥을 높이 들어 살짝 흔들고는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송한솔을 올려다봤다. 초토화된 땅에서 그 몸을 둘러싸고 있는 건 반투명한 마력의 보호막이었다.
그걸 보고 일의 전말을 이해한 송한솔이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간이 큰 거야···.”
자길 겨누고 있는 무도회장에 강제로 포격 명령을 내린 뒤, 광선이 날아오는 도중 술식을 해제하고 마력으로 보호막을 전개했다.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쏜 다음 총알에 맞기 전 검을 빼들어 튕겨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미친 짓이었다.
마력 조작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없다면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기행. 술식이 해제됨과 동시에, 공중에 떠있던 마법진들이 흩어지며 무도회장이 사라져갔다. 고깔모자를 눌러쓴 유매가 콧숨을 쉬며 송한솔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도망쳐다니기만 하려고? 시간 끌고 있으면 내가 알아서 쓰러져주기라도 할 것 같아?”
“당연하지.”
유매의 질문에 송한솔은 물어볼 것도 없다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그것은 하나의 확신이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등에 소름이 돋는 그 말. 이 대회의 참가자 전원을 쓰러뜨린 다음 다시 너에게 싸움을 걸겠다는 고지식한 검귀의 몰살 선언.
그 녀석이 전부 쓰러뜨리겠다 말한 이상 반드시 그렇게 된다. 중간에 괴물을 만나든 혼자 남아서 적들에게 둘러싸이든 어떻게든 전부 박살낸 뒤 이쪽을 탈락시키러 돌아온다.
그리고 산길 쪽에서 뚜벅뚜벅 걸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