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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빌어봐-50화 (50/240)

50화

울컥하는 감정을 참으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짓씹어 물던 찰나 조롱기 가득한 정적이 깨어졌다.

“올라가.”

윈스턴이 눈짓으로 철제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끝에 걸터앉자 그가 일어서서 다가왔다. 채찍 끝이 그레이스의 어깨를 가볍게 찔렀다. 누우란 뜻이었다.

테이블은 차디찼다. 무심결에 웅크린 팔다리를 윈스턴이 잡아챘다. 테이블의 다리에 매달린 족쇄가 그 끝에 하나씩 채워졌다.

“넌 역시 이게 어울려.”

피가 튀어도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천장.

약간의 흥미와 기대감, 그리고 까마득한 거리감이 담긴 관찰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남자.

차가운 금속 테이블에 사지를 활짝 벌린 채 묶여 올려다보고 있자니 제 처지가 뼈저리게 실감 났다.

해부대 위의 생쥐.

무력한 미물로 전락한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에서 비로소 잔혹한 희열이 옅게 비치기 시작했다.

장교복 재킷이 의자에 반듯하게 걸쳐졌다. 소매를 가지런히 접어 올리며 다가오는 남자를 지켜보는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저 남자, 흰 셔츠를 입은 군인이 아니라 흰 가운을 입은 미치광이 과학자로 보였다. 메스와 포셉을 들고 그녀를 한낱 고깃덩이로 만들, 그런 미치광이 말이다.

다가오던 그가 멈칫했다. 싸늘한 시선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인 고급 스타킹 상자에 머물렀다.

곧 상자는 치워지고 그 자리에 그레이스의 이름이 적힌 서류철이 놓였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윈스턴이 여유롭게 ‘신체검사’를 준비하는 사이 그레이스는 몸을 걷잡을 수 없이 떨기 시작했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팔다리를 오므렸다. 여린 살만 족쇄에 아프도록 짓눌렸다.

드르륵.

무거운 쇠가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들리자 숨이 멎었다.

‘저건 설마….’

서랍에서 니퍼를 꺼내는 소리처럼 들리는 건 제발 착각이길. 이 고문실에 무엇이 있는지를 너무 잘 아는 것부터가 고문이었다.

‘빌어먹을….’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윈스턴의 손에서 니퍼가 날을 번뜩였다.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오므려 숨기는 순간 그가 조소했다.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굴더니 너도 별수 없는 인간이군.”

그래, 애석하게도.

그레이스도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인간이었다. 고문을 견디는 훈련을 받은 적 있다지만 그건 ‘견디는 법’을 알려 줄 뿐. 즉, 중요한 정보를 누설하지 않고 버티는 훈련이지 손발톱이 뽑히는 고통을 무디게 해 주진 않았다.

혹은 치아가 뽑히는 고통일지도.

서슬 퍼런 니퍼 끝이 입술을 덧그리자 그레이스는 이를 사리물었다.

차가운 날은 곧 입술에서 떨어져 나갔다. 윈스턴이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눈을 맞춘 채 알몸의 굴곡을 니퍼로 천천히 훑었다.

“너와 난 꽤 지독한 인연이야. 아니지, 블랜차드가 지독하다고 해야 하나?”

“흣….”

“창녀를 보내 내 아버지를 죽이더니 내겐 그 창녀의 딸을 보내다니.”

이건 아버지의 죽음을 조롱하는 것이자 그를 우습게 본 것이다. 레온은 참을 수 없었다.

존경하는 어머니를 향한 조롱을 참을 수 없는 건 그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내 어머니가 창녀면 네 아버지란 사람은 고작 창녀의 손에 죽은 형편없는 군인이지.”

건방진 여자. 제 처지도 모르고.

레온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여자도 곧 다른 반군들처럼 그에게 자비를 빌게 될 것이다.

“이런, 눈물겨운 애정이군. 지옥에 있는 네 모친이 널 참 자랑스러워하겠어. 작전에 실패하고 내 고문실의 창녀 신세로 전락한 딸이라니.”

쾅.

몸 위를 배회하던 니퍼가 벌어진 다리 사이로 떨어졌다. 테이블이 울리는 동시에 그레이스는 몸을 떨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니퍼의 날은 음부를 향했다.

“리들 양, 고마워. 하필이면 내게 잡혀 줘서. 덕분에 제대로 복수를 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겠군. 천국에 계신 아버지를 뵐 면목이 생겼어.”

그는 하얗게 질려 차가운 입술에 엄숙하게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네 부모가 내 아버지께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나?”

“…….”

“모른다면 내가 가르쳐 주지.”

이번엔 니퍼 대신 승마용 채찍의 끝이 그레이스의 몸을 훑었다. 세모난 가죽이 손톱 끝을 하나씩 가볍게 때릴 때마다 그레이스는 새파랗게 질려 갔다.

“손톱을 모조리 뽑고….”

이제는 알겠다. 왜 테이블에 묶어 두었는지. 이렇게 묶어 두고 무얼 하려는지.

‘리처드 윈스턴의 검시.’

혁명군을 부검대 위의 시체처럼 묶어 두고 제 아버지의 검시 보고서를 읽어 준다. 신체 부위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보고서를 끝까지 읽은 후에는 그 내용을 포로의 몸에 그대로 시연한다. 직접적인 사인 직전에야 멈추는…. 아니, 가끔은 멈추지 않는 고문법이었다.

수두룩한 고문 기술자 중에서도 레온 윈스턴이 가장 악명을 떨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걸 내게 하려는 거야. 난 죽고 싶지 않아.’

그 고문을 당하고도 운 좋게 살아남은 자는 모두 실성했다. 그레이스는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어제, 이 남자가 저를 저질스럽게 범하려 할 때보다도 지금이 더 두려웠다.

“그리고 음낭의 왼쪽을…. 잠깐, 넌 음낭이 없잖아.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흐음… 어떻게 할까.”

꽤 즐거워하는 목소리였다.

“아흑!”

윈스턴이 그레이스의 다리 사이로 채찍 끝을 밀어 넣었다. 납작한 가죽이 달라붙어 있던 음순을 가르고 음핵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저속한 희열이 번뜩이는 눈을 마주하는 순간 그레이스는 살길을 보았다.

차라리 내게 발정해.

“아, 제발, 흣, 그만….”

야릇한 비음을 내며 일부러 몸을 비틀었다. 놈이 어젯밤 손에서 놓지 못하던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윈스턴의 눈빛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제발 내게 발정해.

“아흣, 이게, 복수야? 적어도 너희 아버진 어제의 나처럼 겁탈당하진 않았을 텐데?”

“겁탈이라니. 그건 거래였어. 아, 이건 겁탈이 맞아.”

윈스턴은 결국 발정했다.

그는 순식간에 벨트를 풀고 피가 단단히 몰린 성기를 꺼내 들었다. 주인만큼이나 머리끝까지 성이 난 분신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처박힌 곳은 그레이스의 입이었다.

“윽, 흐읍….”

몸이 사정없이 위로 끌려갔다. 테이블 밖으로 걸쳐진 머리가 뒤로 꺾이며 활짝 열린 목구멍으로 자비를 모르는 독사가 파고들었다.

“읍….”

사나운 허리 짓을 따라 육중한 테이블이 삐걱거렸다.

“하아….”

감탄에 가까운 신음을 흘린 윈스턴이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굵다란 살 기둥이 깊숙이 박힐 때마다 불룩 솟았다가 빠져나가는 순간 훅 꺼지는 것이 그레이스에게 보이진 않아도 생생히 느껴졌다.

인간의 영혼이라곤 없는 듯, 옅기만 한 눈동자가 어젯밤처럼 음탕한 희열을 이글이글 불태웠다. 그레이스는 짐승의 눈을 바라보며 안도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범해지며 기뻐하는 건 비참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참한 짓을 해서라도 끔찍한 고통과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이었다.

“창녀의 정의가 뭔지 알아?”

대가에 몸을 파는 여자.

목숨을 건지고자 몸을 파는 것도 창녀라면, 그래, 난 죽은 성녀보단 살아 있는 창녀가 되겠어.

“끅….”

윈스턴은 그레이스가 숨을 꺽꺽대며 몸을 비틀자 타액으로 진득하게 젖은 성기를 뽑아냈다.

“하아, 신체검사를, 계속하도록 하지.”

그 후로 잔인한 생체 검시는 음란하기 짝이 없는 신체검사로 탈바꿈했다. 그레이스는 윈스턴의 욕구가 식지 않도록 가벼운 저항과 야릇한 신음을 이따금 곁들여 주며 난잡한 손길에 얌전히 응했다.

“아흣, 아파…. 하지, 마….”

“이건 내가 어제 깨문 자국이군. 내가 생각해도 짐승 같았어.”

윈스턴은 여전히 생쥐를 해부하는 과학자처럼 굴었다. 다행인 건 미치광이가 아니라 색정광이란 점이었다. 그는 그레이스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 ‘검사’를 하더니 수치스러운 관찰 결과를 실험 보고서라도 쓰듯이 서류에 기록했다.

“흠… 마시멜로를 주무르는 느낌이라고 쓰면 될까? 어떻게 생각해?”

가슴을 쥐고 반죽처럼 치대던 윈스턴이 비열한 웃음기를 내비치며 물었다. 군 관계자 누구나 볼 수 있는 기록에 가슴의 감촉 따위가 남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

하지만 그레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 말라고 애걸하면 더 치욕스러운 말을 서류에 쓸 것이다.

“손에 달라붙는 촉감도, 빠는 느낌도….”

그는 들으란 듯 젖꼭지를 한번 길게 빨아 당겨 쪽 소리를 크게 냈다.

“흣….”

“훌륭해. 그 깡말랐던 소녀가 꽤 야하게 컸군. 그건 마음에 들어.”

끔찍해. 어릴 적의 그 다정했던 소년이 이토록 악랄한 사내로 크다니.

가슴을 놓은 손이 납작한 배를 더듬어 내려가더니 습한 밀지 속에 깊이 파묻혔다.

“읏, 헉, 그만, 아흑!”

“기분 좋아? 마음에 무척 든 건 잘 알겠는데 내 손가락 좀 놔줄래?”

쩍. 손가락이 뽑혀 나가는 순간….

“아!”

쨍그랑. 두 발목에 매달린 쇠사슬이 테이블에 거칠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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