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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빌어봐-52화 (52/240)

52화

살아 있는 창녀의 다음 목표는 자유로운 창녀였다.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리듬에 맞춰 속살을 부드럽게 조이고 풀었다.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고 윈스턴의 낯빛을 읽었다.

“읏….”

곧 요령을 터득한 그레이스는 성기가 빠져나갈 때 아래에 힘을 꾹 주었다. 오므라든 속살에 붙들린 포피가 위로 당기며 감각점이 몰린 선단을 거칠게 문질렀다.

“하아, 아랫입을 놀리는 기교가 어제와는 다르군.”

이기려고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던 짓까지 하며 기를 쓰는 게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였다. 그러곤 그는 곧 뒤틀린 인간답게 그레이스에게 조롱을 퍼부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잘하네. 어제 내가 가르쳐 준, 입으로 빠는 법을 이렇게 쓰다니. 응용력도 좋군.”

뜨거운 살갗이 빈틈없이 맞닿았다. 땀에 젖어 미끄러지는 몸을 윈스턴은 으스러트릴 듯이 끌어안고 난폭한 허리 짓을 이어 갔다. 성기는 질 끝에 턱 박히기 무섭게 내벽을 쓱 긁으며 뽑혀 나갔다.

잘한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레이스의 노력이 정말 통하는지 어젯밤 그가 사정하기 전처럼 허리 짓이 불규칙해졌다. 쾌락에 정복당한 몸이 그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입술 또한 통제 밖인 듯 계속해서 그레이스의 입술을 게걸스레 삼키고 젖은 구멍 속을 혀로 탐욕스럽게 후벼 댔다.

“아, 기분 정말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마음껏 떠들어. 이 대결에서 이기는 건 나야.

곧 자유를 얻는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엉덩이를 흔들기까지 하며 그의 성기를 마구 치대던 때였다. 기다란 손가락이 맞닿은 치골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흑, 그만! 이건 반칙이야!”

“규칙은 미리 정했어야지.”

손이 묶인 채라 음핵을 맹렬히 굴리는 손을 떼어 낼 수 없었다. 하체를 들썩여 손을 피하려 했지만 그마저 윈스턴의 몸에 깔려선 부질없는 짓이었다.

정말 악착같은 손놀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거듭된 마찰에 피가 몰려 터질 듯 부풀어 있던 음핵이 순식간에 찌르르하게 울기 시작했다.

“흣, 안 돼….”

자꾸만 차오르는 절정감을 억누르려고 손톱이 손으로 파고들도록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힘을 주는 바람에 더욱 팽팽해진 살에 단단한 살덩이가 콱 처박힐 때마다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다. 그는 그레이스의 몸을 이미 다 파악해둔 듯 한곳만 집요하게 난타했다.

퍽.

“하윽!”

윈스턴은 그녀를 짓누른 채 잔혹하게 허리를 찍어 내리고 또 찍어 내렸다.

“하, 하지 마.”

저 악마에겐 쾌감 어린 패배를, 내겐 처절한 승리를.

오직 그걸 위해 놀리던 아래는 이미 그레이스의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윈스턴을 자극하겠단 여유 따위는 없기에 뻐근한 아래의 힘을 탁 풀어 버렸지만 내벽은 주인의 명령 없이도 제멋대로 수축했다.

“안 돼. 아흣, 안….”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냥 가.”

“헉! 싫, 하윽!”

결국 내벽을 뭉근히 문지르던 살덩이가 콱 처박히는 순간 턱 끝까지 차오른 성감을 이기지 못했다. 그레이스는 제 땀으로 젖은 테이블 위에서 온몸을 파드득 떨며 허무하게 가 버렸다.

쾌감 어린 패배와 처절한 승리는 무슨….

결국 얻은 건 처절한 쾌감뿐인 패배였다.

“벌써 간 거야? 너무 쉽게 졌잖아.”

“흑….”

“나한테 그렇게나 박히고 싶었던 거야? 숙녀라 차마 밑이 헐도록 박아 달라는 말은 못 하고. 이런, 내가 무심했군.”

눈꼬리를 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뜨거운 살덩이가 빠짐없이 핥아 먹었다.

“그래도 이기려 노력하는 척 정도는 해 줬어야 네 체면이 살지 않았겠어?”

귓가에 간사하게 속삭이던 입술이 떨어져 나가는 동시에 아직도 움찔움찔 경련하는 살 틈에서 성기가 쭉 뽑혀 나갔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살덩이가 움푹 팬 아랫배에 머리를 대자마자 틈을 벌리더니 농도 짙은 백탁액을 주룩 싸 갈겼다.

“하아….”

주름이 깊게 패어 있던 놈의 미간이 펴졌다. 하지만 눈빛에 짙게 어린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 후론 어젯밤 침대에서와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박히고 또 박히고 끝없이 박힐 뿐이었다.

“아흑, 더는….”

“가. 박히고 싶은 만큼 가.”

그 후로 윈스턴은 몇 번 더 대결을 제안했다. 강요를 못 이겨 억지로 응하고 무참히 지길 몇 번 했을까. 그레이스에겐 그만하자는 말을 할 기력도 남지 않았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널브러진 여자를 내려다보는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 아래와는 정반대였다.

“넌 네가 날 쥐락펴락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줄 알았겠지. 제 몸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흐리멍덩했던 청록 빛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싸늘한 연하늘 빛 눈을 마주하자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 꿰뚫어 보고 있었어.

저자는 그레이스가 고문을 피하고자 그를 은밀히 유혹했다는 걸 처음부터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건방지게 꾀를 쓴 대가는 치러야 할 거야.”

그건 이미 치르고 있어. 그레이스는 눈으로만 대꾸한 후 고개를 돌렸다.

“네 모친이란 여자의 손에 죽거나 창창하던 앞날을 망친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한 줄로 세우면 여기서 저택 입구까지 이어지고도 남을 거야. 달리 말하자면 네게 이 짓을 하고 싶어 안달 난 놈들의 줄이 그만큼 길다는 거야.”

나를 그놈들에게 던져 줘. 여기서 나를 꺼내 서부 사령부든 수용소든 그놈들이 득시글한 곳에 던져 줘. 제발 나를 여기서 내보내 줘.

몇 번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새카만 천장, 땀에 반질반질 젖은 테이블, 갖가지 밧줄과 족쇄, 목줄이 걸린 벽.

“하아…. 다시 엎드려.”

쿵쿵 치받는 힘에 테이블이 다시 들썩였다. 그레이스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그녀의 손목을 짓누른 손을 응시했다.

손목시계의 바늘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있었다. 윈스턴 부인은 아마 아들이 반군 때문에 바빠 저녁을 놓치는 줄 알 것이다.

‘틀린 건 아닌가.’

차가웠던 테이블은 뜨거워진 지 오래였다. 정액과 애액이 질척하게 번진 금속 상판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몸을 윈스턴은 억눌러 가며 박아 댔다.

테이블 끝에 두 다리가 힘없이 매달려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발목을 뱀처럼 문 족쇄에서 축 늘어진 쇠사슬이 몸을 뒤틀며 바닥을 긁었다.

잘그락잘그락. 철퍽철퍽.

건조한 쇳소리와 질퍽하게 젖은 살 소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불협화음 속에서 멍한 눈으로 제 손목을 눌러 쥔 손만 바라보았다.

몸도 정신도, 모두 만신창이였다.

족쇄는 모두 풀린 지 오래였지만 그레이스는 움직이지 못했다. 윈스턴이 마지막으로 사정하고 버려두고 간 자세 그대로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숨을 쉬는 것만도 버거웠다.

멍한 눈은 문이 없는 욕실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면대 위의 거울 앞에 선 남자는 넥타이의 모양을 바로잡는 중이었다.

곧 그가 비누 향을 풍기며 욕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의자에 걸어 두었던 재킷을 입던 남자가 눈매를 좁혔다.

아직도 바르르 떠는 다리를 우윳빛 액체가 타고 흐르다 검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수치스러워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지만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는 힘겹게 시선을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강제로 느낀 절정 때문에 아직도 헐떡이는 여자를 장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남자가 무감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자 혼자 일을 치른 꼴이었다.

분명 사령부에 보고했을 거야. 난 곧 어디론가 호송될 거야. 그럼 구출될 거야. 그러니까 며칠만 더 버텨.

그가 샤워를 하는 동안 되뇌었던 말을 그레이스가 다시 주문처럼 외던 순간이었다.

“식사는 하루에 세 번.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당번병에게 편하게 말해. 청소는 원래 네 일이었으니 네가 하도록. 빨랫감은 당번병에게 식사를 받을 때 주도록 하고.”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런 걸 왜 내게 말해 주는 거야? 왜 겨우 하루 이틀 갇혀 있을 사람에겐 필요 없는 수칙을 정해 주는 거냐고!

눈으로 따졌지만 윈스턴은 계속 사무적인 태도로 ‘고문실 수칙’을 읊을 뿐이었다.

“신문과 훈련은 별일 없는 한 매일 한두 차례. 내가 직접 실시할 거야.”

“…훈련?”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묻자 그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몸은 최고급 창녀인데 실력은 형편없어. 네 총사령관 각하께선 무슨 배짱인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보냈으니 내가 가르칠 게 많겠군.”

“자, 잠깐….”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는데 윈스턴은 등을 돌려 테이블 반대편으로 향했다.

쫙. 의자에 걸려 있던 싸구려 스타킹이 무참히 찢어졌다.

“스타킹은 내가 사 준 걸로 신도록.”

“윈스턴, 잠깐. 가지 마. 얘기 좀….”

“내가 말했을 텐데. 넌 내게 명령할 처지가 아니야.”

어젯밤과 똑같았다. 그레이스는 매몰차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절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쉴 새 없이 희망을 주었다가 뺏길 서슴지 않은 남자에게 뭘 기대했어.

“그렇지만 제발….”

쾅. 문이 닫혔다. 철컥. 잠그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를 보내 줘.”

우아하고 고귀한 명문가의 주인이자 유능한 군 장교, 레온 윈스턴 대위의 가면을 쓴 짐승이 떠났다.

그에게도 야만적인 육욕이 있다는 증거인 여자를 가두어 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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