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나 안 보고 싶었어?”
싸늘한 눈빛만으로도 답은 충분했을 거다.
“난 자기 생각만 했어.”
어떻게 괴롭힐지, 그 생각뿐이었겠지. 섬뜩한 말을 연인이라도 대하듯 다정하게 하다니. 미치광이.
문득 평소와는 다른 그의 옷차림이 그레이스의 눈길을 끌었다.
윈스턴은 연회색 정장을 베스트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격식보다는 요즘 유행을 따른 듯한 갈색 구두의 코가 그레이스의 종아리를 노골적으로 훑었다. 조금 전 그녀의 눈을 가렸던 넥타이는 네이비 색이었다.
역겨운 훈장을 제외하면 무채색뿐인 장교복 차림으로만 이곳을 찾던 남자가 꽤 멋을 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데이트라도 있었나 보지?”
“응. 그랬는데 도저히 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그 여자를 바람맞히고 네게 왔지.”
‘영광이지 않아?’라고 묻는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대공녀가 불쌍해. 결혼할 남자가 집 지하실에 여자를 가둬 두고 매일 범하는 변태라니.”
그레이스는 다시 그의 성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제발 신문은 관두고 지칠 때까지 박다가 나가 버려.
“변태?”
그가 가볍게 웃었다.
“뭐, 그렇긴 하지. 어쩌면 일 중독자일 수도 있고.”
드륵. 윈스턴이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은 일 중독자가 맞겠군.”
그레이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그는 신문을 준비했다. 서랍 속을 뒤지던 그가 종이 상자에서 기다란 물건을 꺼내 돌아왔다. 그게 붉은색의 양초인 걸 알게 된 그레이스는 숨을 죽였다.
‘저걸로 뭘 하려는 거야?’
온갖 끔찍한 상상을 하는 사이 윈스턴이 맞은편에 앉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미친놈….’
끔찍한 상상 중 하나는 정답이었다. 놈은 그레이스의 음부에 양초를 꽂았다. 매끄러운 밀랍 막대가 촘촘한 살을 가르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벌써 느끼지 마.”
몸을 비틀었더니 윈스턴이 아랫배를 눌렀다.
“걱정 마. 네 것만큼 가늘어서 아무것도 안 느껴져.”
그는 픽 웃을 뿐, 도발에 넘어오지 않았다.
그레이스의 앞 팔만큼 긴 양초를 1/3 정도 넣고서야 그는 손을 뗐다. 질 끝까지 닿진 않지만 속살을 조여 밀어낼 수는 없는 깊이였다.
“너만 보면 네 비좁은 국부에 내 권총을 쑤셔 넣어 휘젓고 싶었어.”
발각되었던 날 윈스턴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했던 소름 끼치는 말을 그레이스는 떠올렸다. 언젠간 여기에 권총을 쑤셔 넣으려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몸이 떨렸다.
‘권총보단 양초가 나아.’
하지만 이걸 넣고 휘저으리란 예상은 틀렸다. 윈스턴은 양초의 용도를 잊지 않았다. 라이터를 꺼내 심지에 불을 붙였으니.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지금은 불꽃이 의자 밖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초가 길지만 머지않아 음부를 지질 것이다.
“생각이 있어? 여길 불태우면 앞으론 어디에 박으려고 그래?”
“어…. 주제를 모르고 시끄럽게 떠드는 입?”
미친 새끼.
온 힘을 다해 아래를 조이며 양초를 밀어내려 했지만 질 벽은 손처럼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그레이스가 몸을 비틀며 애쓰는 걸 잠시 지켜보던 윈스턴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문으로 다가가더니 축음기 앞에 놓인 종이 상자를 여유롭기 짝이 없는 손놀림으로 열기 시작했다.
“네 손으로 완벽하게 관리해 둔 고문 기구들이 네 몸을 유린하는 기분이 어때?”
그레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촛농이 바닥이 아닌 의자 가장자리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길 거쳐 간 네 동지들은 네가 얼마나 가증스러웠겠어. 지금 내 손톱을 뽑는 니퍼가 우리의 공주님, 그레이스 리들 양이 손수 깨끗이 씻어 둔 물건이라니.”
위장 잠입 시 적을 위해 일하는 건 불가피했다. 그러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결국엔 그레이스가 잠입한 덕분에 그들은 탈출했으니.
“넌 특별하니까 다른 놈들에게 썼던 물건을 그대로 쓰고 싶진 않아. 그래서 전용 기구를 구했지.”
그는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윈스턴 부인이 쓰는 최신식 헤어드라이어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기계였다.
상자에 적힌 이름이 눈에 들어오자 그레이스는 혼란스러워졌다.
전동 안마기.
저 기계가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아 준다는 광고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여자들이 피부 미용과 치료에 쓰는 안마기로 저 남자는 뭘 하려는 걸까.
‘내가 생기를 찾긴커녕 시들어 죽길 바랄 남자일 텐데.’
레온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을 한 여자를 바라보다 웃어 버렸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여자가 성에 관해선 저토록 무지할 땐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귀엽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여자의 뒤에 자리한 콘센트에 코드를 꽂았다. 몸체에 달린 스위치를 올리자 시끄러운 모터음이 나더니 몸체의 뾰족한 끝에 매달린 단추처럼 동그랗고 볼록한 헤드가 드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관학교 동기 중 하나가 포르노 수집광이었거든. 그 녀석이 몇 달 전에 총각 파티를 연다며 동기들을 초대하더니 제 소장품을 경매에 부치더라고.”
그는 요란하게 돌아가는 안마기를 권총처럼 손에 쥔 채 그레이스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약혼녀에게 들킨 거지.”
그는 재밌다는 듯 나직이 웃더니 드디어 저 물건의 용도를 밝혔다.
“그 녀석이 보여 준 것 중에 이걸 여자의 국부를 안마하는 데 쓰는 게 있었지.”
그레이스의 눈이 커졌다.
“아, 오해하지 마. 난 안 샀어.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결정이지. 내게 포르노 따윈 필요 없으니까.”
“그다음 말, 내가 맞혀 봐?”
비난하듯 노려보는 여자에게 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겐, 헉!”
“맞아. 네가 있으니까.”
전력 질주하는 자동차의 바퀴만큼이나 빠르게 회전하는 헤드가 음핵에 닿았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사후 경직이라도 온 시체처럼 온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대로 있다가 정말 시체가 될지도 몰라.
저 물건이 몸에 닿은 찰나부터 단 한 번도 숨을 쉬지 못했다. 숨을 쉴 수가 없는데 그만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끅, 아, 아흑….”
작은 기계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태 저자의 손에 당하던 게 1이라면 이건 100이었다. 그리고 그레이스에겐 윈스턴의 손가락도 무섭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헉, 말도 안 돼.’
순식간에 압도적인 절정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개미가 집채만 한 해일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눈앞이 빠르게 점멸하더니 당장이라도 성기를 꺼내 들고 박을 것 같은 눈으로 저를 관찰하는 남자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흠, 확실히 빠르군.”
몸이 파스스 부서질 것 같은 절정의 문턱에서야 기계가 떨어져 나갔다.
“하아….”
벌써 지쳐 목을 등받이에 걸치고 숨을 고르는 사이 윈스턴이 오늘의 규칙을 설명했다.
“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면 이걸 써 줄 거야.”
그는 여전히 맹렬하게 돌아가는 안마기를 그레이스의 눈앞에 들어 올렸다.
“싫으면 대답 안 해도 돼. 거길 불로 지지면 꽤 아플 테지만.”
“…제대로 생각한 거 맞아? 내가 왜, 하아, 대답을 하고 자진해서 고문당하겠어?”
“아직도 이해 못 했군.”
그레이스가 저 흉물스러운 안마기로 범해지기만 바라야 하는 이유는 이랬다.
절정을 느낄 때 그레이스는 속살을 물 샐 틈도 없이 바짝 조였다. 그러면서 윈스턴의 성기를 부러트릴 듯 조이는 것도 모자라 밀어내기까지 했다. 그가 힘을 주지 않으면 그레이스는 오로지 제힘만으로 그 긴 물건을 뺄 수 있을 정도였다.
즉, 그런 식으로 저를 범해 달라 구걸해서 불붙은 양초를 스스로 빼란 소리였다.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다. 조금 전보다 초가 밀려 나와 있었으니까.
‘하… 제발 나 좀 누가 구해 줘.’
눈앞이 깜깜해졌다. 흉악한데 똑똑하기까지 한 적에게 붙잡히는 건 매일매일 새로운 지옥이 그녀를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자도 흥분하면 남자들처럼 물을 쏘아 대는 거 알아? 그렇게라도 불을 꺼 보지 그래? 묶인 상태로 혼자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놈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문득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신세라도 어떻게 저 남자 앞에서 그런 짓을….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었다.
잔악한 악마는 그레이스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가 밖으로 튀어나온 초가 중지만큼만 남고서야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이제 시작하면 되겠군.”
본거지의 위치를 캐내려는 유도 신문에 그레이스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윈스턴이 유일하게 욕구를 풀 수 있는 여자를 완전히 망가뜨릴 리 없다는 데 제 운을 걸어 보았다.
철제 의자에 붉은 촛농 자국이 하나둘 늘어나다 못해 그레이스의 음부를 향해 붉은 길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초는 검지보다도 짧아져 있었다.
질문이 멎었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서로가 먼저 포기하기를 강요하는 둘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봐.”
윈스턴이 자리에서 돌연 일어섰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