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캔디 걸, 내 사탕이나 내놓으시죠.”
그레이스는 시가를 든 남자를 노려보았다.
윈스턴은 의자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한편, 그녀는 테이블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저 남자는 그레이스 홀로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제 비틀린 욕구를 채웠다.
“돈은 이미 냈으니. 아,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시가 끝이 검은 스타킹의 밴드를 가리켰다. 밴드와 허벅지의 사이에는 빳빳한 지폐 한 장이 꽂혀 있었다. 지폐에 적힌 금액은 사탕 한 알 값이라기엔 지나치게 컸다.
카바레에서 사탕을 파는 캔디 걸이었다면 횡재라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갇혀 사는 그레이스에게 거액의 돈은 필요 없을뿐더러 모욕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캔디 걸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자판기 취급이었다.
남자가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재촉했다. 그레이스는 그를 노려보며 다리 사이를 가린 손을 움직였다.
“흣….”
동그랗게 튀어나온 ‘자판기 버튼’을 손끝으로 누르자마자 몸이 튀어 올랐다.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살 속에 파묻힌 사탕들이 달그락 부딪치는 느낌이 생생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밖으로 나올 조짐은 없었다.
저 망할 개자식이 설명해 준 자판기의 작동 원리는 간단했다. 몸이 사탕을 뱉어 낼 때까지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탕의 개수만큼 절정을 느낄 때까지 앞에서 자위를 하란 뜻이었다.
그레이스는 마지못해 손가락을 놀리며 마주 앉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다리 사이만 응시하던 윈스턴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가를 다시 물며 씩 웃었다. 꽤나 즐거워 보였다.
‘그래, 원래 저런 놈이었지.’
조금 전엔 다정하게 굴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윈스턴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아 그녀를 구경했다. 자세만 보자면 싸구려 철제 의자가 아닌 고급스러운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은 분위기를 풍겼다.
검은 모직 바지만 입은 반라였으나 저질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넓게 벌어진 어깨부터 군살 하나 없는 아랫배까지 뚜렷하게 갈라진 근육이 도드라지며 오히려 웅장한 조각 같았다.
그래서 다리를 벌린 채 원초적인 쾌락에 신음하는 자신이 더욱 비천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며 그녀를 조롱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 흡….”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다리 사이를 쑤석이는데 남자가 돌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몸을 숙이며 입을 가린 손등에 입술을 부드럽게 짓눌렀다.
숙녀의 손등에 하는 키스처럼 정중했으나 숨결이 맞닿는 거리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존경 대신 조롱이 담겨 있었다.
“위대하신 총사령관의 여자이자 고귀하신 로열패밀리의 공주님께서 이 미천한 왕정의 돼지 새끼 앞에서 환락가의 퇴물 쇼걸처럼 자위 쇼를 하시는군요.”
윈스턴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안타깝다는 말을 저토록 비열하게 웃으며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퇴물은 제발 버려.”
“아직도 헛된 꿈을 꾸는군.”
남자는 픽 웃더니 그레이스의 다리 사이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이 짓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스는 이를 악물고 손을 놀렸다.
하지만 갈수록 집요해지는 눈빛이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다. 조롱기와 희열이 번뜩이는 눈을 마주하고 있자면 손끝에서 치솟는 쾌감이 찬물을 맞은 불씨처럼 사그라들었다.
부끄러움을 참다못해 다리를 오므리려 하자마자 윈스턴이 손을 뻗었다. 벌겋게 불이 붙은 시가 끝이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에 닿기 직전에야 그는 손을 멈췄다.
“사탕 자판기가 싫으면 재떨이가 될래?”
그레이스는 살벌한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리를 벌렸다. 놈이 다시 시가를 입에 물고, 검은 구두코로 테이블 끝에 매달린 종아리를 밀어 다리를 더욱 활짝 벌렸다.
“평소에 잘하잖아. 오늘은 왜 이래?”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배 속을 들쑤셔 대는 난폭한 쾌락에 제가 누군지도 잊었을 때와 지금이 같을 리 없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늘 그 찰나가 지나고 정신이 들면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익은 얼굴을 감싸 쥐고 후회했다.
“흣, 죽여 버릴 줄, 알아…. 단두대로, 아흣!”
레온은 피식 웃었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살벌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머리엔 그의 넥타이를 리본처럼 맨 꼴로.
무섭긴커녕 귀여웠다.
그가 앞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되는지 눈을 질끈 감고 음핵을 성급하게 굴리는 모습도 귀여웠다.
혼자인 척하는 작전이 나름 통하는 모양이었다. 질구에서 애액이 조금씩 흘러나와 음부를 적신다 싶더니 속살이 벌어졌다. 불그스름한 살 틈으로 새빨간 사탕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오네. 조금만 더 힘줘, 자기야.”
아이를 낳는 아내를 응원하는 듯이 굴자마자 사탕이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미친 새끼….”
여자가 욕설을 중얼거리고, 레온은 나직이 소리 내 웃었다.
“이런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못 하다니. 한심해.”
그는 시가를 재떨이에 던지고 술병을 집었다. 독주를 한 모금 삼키자 크게 불거진 목울대가 들썩였다.
남자는 술병을 놓자마자 그레이스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술에 축축하게 젖은 입술이 질구에 밀착하는 낯선 느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지금 뭐 하는, 하읏….”
말랑한 살덩이가 배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은 더욱더 낯설고 야릇했다. 혀끝이 질구의 여린 살을 한 바퀴 휘젓는 순간 그레이스는 자지러졌다.
“아흑, 그만!”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어붙이던 성기와는 달랐다. 혀끝이 민감한 감각점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간질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퍼지는 자리를 따라 실금이 쫙 가는 것만 같았다. 그 은근한 쾌감이 두려웠다.
질구를 감질나게 빨던 혀가 깊이, 더욱 깊이 박혔다. 미끄덩한 살덩이가 안으로 스르륵 파고들어 오더니 불시에 쑥 뽑혀 나갔다.
맛을 보듯이 천천히 들락날락하기만 하던 혀가 돌연 빨라졌다. 찔걱찔걱, 젖은 마찰음이 적나라하게 새어 나오도록 속살을 쑤석댔다.
“하아, 더러워 진짜….”
몸이 발작적으로 들썩였다. 내벽이 조여들기까지 하며 안에 든 사탕이 달그락거렸다.
다리 사이에 묻힌 머리를 밀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니, 실은 힘을 뺐다.
시야가 번쩍번쩍 점멸했다. 분명 아래를 휘젓는 혀는 부드럽기 그지없는데 숨이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졌다. 이딴 해괴한 짓으로 느끼는 것도 모자라 즐기다니. 자신이 역겨워지는데 멈추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살 틈을 유연하게 후벼 파던 혀가 결국 목표물을 찾아냈다. 혀끝이 안에서 둥글게 말리더니 사탕을 굴려 꺼냈다. 사탕은 질구 밖으로 나오자마자 남자의 입으로 굴러 들어갔다.
남자는 질구가 입술이라도 되는 양 키스를 하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레이스의 지친 얼굴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가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포개어졌다. 그레이스의 배 속을 핥아 먹던 혀가 입술과 볼 안쪽을 긁었다. 입 속으로 체리와 럼의 맛이 퍼지며 코끝이 찡해졌다.
남자는 애액만 빨아 먹은 사탕을 그녀에게 넘겨주곤 입술을 뗐다. 어느새 이마까지 흘러내린 넥타이를 밀어 올려 흐트러진 머리칼을 세심하게 정리해 주는 건 꼭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다정했다.
잔머리를 귀 뒤로 꼼꼼히 넘겨준 손이 그의 등 뒤로 향했다. 다시 나타난 손에는 지갑이 들려 있었다.
“하나 더.”
또다시 창녀 취급이다. 빳빳한 지폐 한 장이 또 스타킹 밴드에 꽂혔다.
정말이지 좋아하려야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남자는 허벅지 안쪽에 걸쳐져 있던 손을 친절하게 음부로 옮겨 주기까지 했다. 그레이스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연한 눈동자를 노려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는 사탕을 문 탓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목덜미의 살결을 따라 입술을 미끄러트렸다.
어깨를 덮고 있던 셔츠가 아래로 젖혀졌다. 밖으로 드러난 가슴을 입술이 지분거렸다. 뽀얀 살에 붉은 자국을 서명처럼 점점이 새기던 입술이 젖꼭지를 덥석 물었다.
“으응….”
분명 술에 취해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하지만 살점이 세차게 빨릴 때마다 술기운이 걷히며 감각이 날카롭게 깨어났다. 그럴 때면 음핵을 소심하게 굴리는 제 손놀림조차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셔츠의 아랫단부터 단추가 툭툭 풀려 나갔다. 옷자락을 젖히며 납작한 아랫배를 거슬러 올라오던 손이 오목한 홈에 닿는 순간 멈췄다.
손바닥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그레이스가 몸을 비스듬히 젖히자 쪽 소리가 나며 타액에 불은 젖꼭지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남자가 술병을 집어 들어 배꼽 위로 기울였다. 똑. 똑. 병 주둥이에서 한 방울씩 떨어진 캐러멜 빛 액체가 배꼽에 그득히 고이자 그는 병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변태….”
지능과 행동력, 그리고 비틀린 성욕을 함께 반죽해 빗은 괴물에 우아한 인간의 껍데기를 씌운다. 그게 레온 윈스턴이란 남자를 만드는 공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