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스친 콧날이 미끄러지듯 코끝까지 내려왔다. 이제 인하도 그리 여유롭지가 못했다. 움찔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는 다시 한번 속삭였다.
“아니면, 이 정도?”
“읏…….”
“제대로 말해.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거든.”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는 인하의 목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졌다. 그런 그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줘야 할지는 몰라도 이미 밀어내기엔 늦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옷깃을 잡은 희림의 손끝이 주먹을 쥐듯 말려들었다.
“너, 넌 뭘 그런 걸.”
“알아서 하라고?”
“으응.”
대답인지 아닌지 모를 비음이 드디어 그의 입술로 흘러들었다. 희림의 목뒤를 꼭 감싼 인하의 키스는 처음과는 달리 거칠었다. 아무도 없는 위험한 산속, 그녀가 미리 깔아두었던 음산한 배경이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흣…….”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에 손끝이 저릿했다. 그녀의 입술이 꽃처럼 벌어지자 인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깊이 혀를 밀어넣었다. 있는 힘껏 빨아들이는 그의 움직임에 희림이 몸을 뒤척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짜릿함이 온몸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하아.”
결국 뜨거운 숨을 터트려낸 그녀가 이번에는 그의 입술을 맛보았다. 소심하게 시작된 서투른 행동 하나에도 인하의 눈동자는 밤처럼 들끓었다.
“……한희림, 너 진짜.”
그의 남은 한 손이 희림의 셔츠 자락을 아래에서부터 파고들었다. 매끄러운 등의 감촉에 인하의 잇새로 욕설 같은 탄식이 넘어갔다. 이제는 같잖은 여유조차 남지 않아 그녀를 더욱 밀어붙였다. 꽃더미 위로 희림의 몸을 눕히기 전에 제 옷을 먼저 깔아놓은 것이 그의 마지막 한계였다.
“흐으읏.”
다시 두 입술이 닿자 그녀의 신음이 더욱 달콤해졌다. 미약하게 떨리던 몸도 어느 순간 그를 향해 열렬해졌다. 오른쪽 왼쪽,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짙은 꽃향기로 가득해 꼭 거대한 술잔 안에 빠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강인하와 맨몸으로 뒤엉켜서.
“……음.”
노을의 끝자락에 들어선 하늘이 그녀의 뺨처럼 붉었다. 아직 그를 완전히 마주할 자신이 없는 희림이 눈을 내리자 인하의 손이 그녀의 턱을 받쳐 들었다. 날 보라고, 소리 없는 경고와 본능적인 갈망이 희림을 묶어나갔다. 모르긴 몰라도 청연을 전부 뒤집어 흔들어도 이 남자만큼 주의를 요하는 존재는 찾기 힘들 것이다.
“한희림, 나 지금…….”
투둑,
그 무엇에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인하의 등에 차디찬 빗방울이 튕겨나갔다. 그대로 굳어 있던 그가 제 아래에서 무슨 일인지 올려다보는 희림의 흐릿한 눈에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조금 더 굵은 빗방울이 연이어 튕겼지만 끝까지 모른 척했다.
그 비가 희림의 머리끝을 적시기 전까지.
“하…….”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욕설을 집어삼킨 그가 이마를 짚었다. 희림 역시 뒤늦게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고 어쩔 줄 몰라 하자 인하가 그녀를 일으켜 안았다. 옷깃을 되돌리며 단추를 어루만지는 손에서 뜨거운 미련이 쏟아졌지만 희림이 젖지 않는 것이 먼저였다.
“한희림.”
비를 가리듯 그녀에게로 고개를 숙이자 흐릿한 입김이 맺혔다. 괜찮다고, 그 말을 해주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제 몸이 괜찮지가 못했다. 습한 공기 속 그녀의 향기가 짙어질수록 그의 몸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짓눌렀다.
“…….”
이런 상황에선 그 무슨 말도 소용이 없다. 천하의 강인하조차 입을 다물게 하는 자연의 섭리 속에 주먹을 꼭 쥔 희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답을 쏟아냈다.
“……그, 그거 보라구! 내가 여기 위험하다고 했잖아!”
◇ ◆ ◇
한울산으로 들어서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안온마을을 끼고 있는 세 번째 입구는 여러모로 위험했다. 누군가는 빽빽한 나무 속 특히나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비가 오면 금세 질척이는 길을 손꼽았다.
하지만 내게 그 길이 가장 위험하던 순간은 어둠도 비도 아닌 한 무더기의 미나리냉이였다. 작고 하얗게 핀 꽃들 사이로 그녀가 돌아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한발 늦은 경보가 울렸다.
이로써 나는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험한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여름’ 마지막 장, 위험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