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5/80)

74화

아마도 아들이 주문했다는 반지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전해주어야 할 물건이었다. 상자 속 투박한 옥반지 한 쌍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들 앞에서 괜히 진땀이 났다.

“나야 잘 모르겠지만 네 신붓감한테 주려고 하셨던 거겠지.”

“……네.”

“그러니까…… 잘하라고. 물론 지금도 알아서 다 잘하겠지만.”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강 회장이 드르륵 서랍을 소리 나게 닫았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야 할 아들이 아직도 제 앞에 서 있다는 것이 그를 초조하게 했다. 가슴이 뛰게 했고, 수도 없는 후회를 불러왔다.

그럼에도 나오는 말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럼 나가보거라.”

“…….”

아마 자신은 이렇게 살다 죽을 모양이라고, 저절로 조소가 흘렀다. 또 얼마나 이날을 생각하며 후회할지 알면서도 그 오랜 시간 감춰둔 마음은 낯설기만 했다.

“피곤하면 밑에 기사 대기시켜놨으니까 호텔로 바로 가서,”

“저 이번에 가면 오래 있을 생각입니다.”

“…….”

“한동안 저 보기 힘들어지실지도 모른다고요. 아버지.”

인하의 고요한 음성에 애써 눈을 내렸던 강 회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보기 힘들 거라는 말 때문인지, 회사에서 듣는 아버지 소리 때문인지,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래. 그거야 뭐.”

“그게 다인가요?”

“인하야.”

“정말로 아들한테 더 하고픈 말씀이 없으시냐고요.”

반지 케이스를 안주머니 깊이 넣어둔 인하가 그보다 더 깊은 시선으로 아버지를 응시했다. 한 번도 그래볼 거라 생각해본 적 없던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당혹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일렁이는 아버지의 목선이 어찌나 어설픈지, 이제 와 웃음이 나올 것도 같다.

“그, 그럼 저녁이나 먹고 가든가.”

“저녁이요?”

“그래도 저녁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럴 시간도 됐고, 그러니까 너도 뭘 먹긴 먹어야 할 테니…….”

주절거리는 음성이 빨라졌다. 이 난감한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으면서도 아들만은 떠나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인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겠네요. 며칠간 다시 죽도록 회사 일에 파묻혀야 할 텐데 당연히 그 정도는 사주셔야죠.”

“뭐?”

“…….”

강 회장이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을 그렇게 오래 쳐다본 것이 얼마 만인지도 몰라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봐 제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허둥지둥 필사적으로 서둘렀다. 

“그, 그래. 그래야지. 뭐가 먹고 싶은지 말을 하면,”

“참외요.”

기다린 듯 대답을 바로 내어놓는 건 인하도 마찬가지였다. 허둥지둥 서두르는 아버지를 모른 척 돌아서며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두었다.

“참외 사주세요. 이번엔 직접.”

◇ ◆ ◇

농민일보 특집 - 제1회 청연사랑 연합회 출범

지난 주말, 청연의 발전과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청연사랑 연합회가 결성되었다. 베스트셀러 ‘나의 아름다운 숲’의 작가 한울의 뜻을 따라 설립되었으며 책 속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청연을 보존하고 지키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초대 회장은 안온마을 출신의 한희림 씨(청연고 42회 회장, 안온 청년회 및 상가 번영회 회장)로 평소 누구보다 청연을 위해 힘써온 만큼 한울 작가로부터 위임받은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만장일치로 비밀리에 선발되었다.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녀는 막대한 가치의 저작권을 짊어진 자리이니만큼 자만하지 않고 더욱 신중하고 날카롭게 임무를 수행하겠다 포부를 단단히 했다.

한편 한 회장은 이번 주를 ‘청연 실태 조사 주간’으로 발표하고 공개적인 시찰에 나서고 있다. 이에 마을과 상가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환경 미화에 참여해주기를 당부하며 자세한 문의는 보석책방(사장 안정하, 청연사랑 연합회 총무 및 서기. 청연중 53회, 청연고 42회 졸업, 영업시간 월-금 10시~19시, 주말 22시까지. 주차 가능. 약도 별도 첨부. 청연페이 가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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