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이혼 통보 (7/45)


#7. 이혼 통보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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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서하야.’

그날은 서하가 진짜 성인이 되는 스무 번째 생일이었다.

몇 달째 바쁘다며 집에 늦게 들어오던 승오는 서하의 생일날조차 밤 열 시가 넘어 나타났더랬다. 얼굴에 연탄 얼룩을 묻히고, 손에는 화상 연고와 붕대를 덕지덕지 감고서.

서하는 승오가 내민 커다란 쇼핑백을 열어 보지도 않고 어쩔 줄 몰라 그 손부터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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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왜 이래?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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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야.’

승오가 어색하게 손을 뒤로 감추곤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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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나 열어 봐.’

그제야 열어 본 쇼핑백 속에 선물이 있었다. 승오에게 너무나 비쌌을 핸드백, 그리고 앙증맞은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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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야? 이렇게 비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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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했어. 네 특별한 생일이잖아.’

연탄을 갈고 뜨거운 불판을 닦아 가며 밤새도록 일해도 몇만 원. 그 아르바이트비를 꼬박꼬박 모아 조그만 가방 한 개를 겨우 사고도 뿌듯하게 웃던 너는, 그때의 나를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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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내 공주님.’

나는 그렇게 말하는 너를 사랑했다. 서늘한 밤공기 사이에서 간질간질 섞이던 숨결을 사랑했다. 어린 날의 우리와 우리의 사랑을 사랑했었다.

서하는 우아한 장미 문양 찻잔 뒤에 모든 감정을 감추곤 맞은편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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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깔 좋아졌네, 이지수 씨.”

잊지 못할 스무 살 생일.

선물을 받은 기쁨보다 붕대 감은 승오의 손이 더 속상했던 날, 서하가 혼자 방에 돌아와 끌어안고 훌쩍거렸던 그 가방이 이지수의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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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알뜰한 콘셉트로 어필하더니. 그래도 명품백은 갖고 싶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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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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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이승오가 준 거.”

둘 곳을 모르고 안절부절 굴러다니던 이지수의 동공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거겠지.

궁금했다. 흔한 불륜녀 클리셰처럼 적반하장으로 나올까? 아니면 울고불고 잘못했다고 빌까? 그것도 아니면 씨알도 안 먹힐 묵비권을 행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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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사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이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울고불고 잘못했다고 빌기로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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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알아. 유행 다 지나서 아웃렛 편집숍에서나 겨우 재고떨이할 구형 시즌백을 굳이 사 달라고 할 멍청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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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세세한 것까진 몰랐나 보다. 기분 좋자고 나온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지수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조금, 정말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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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사달라고 하지 그랬어. 공부 조금만 했으면 훨씬 값어치 있는 걸 받아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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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거 관심 없어요!”

이지수가 고개를 번쩍 쳐들곤 제법 의연한 태도로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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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처럼 시즌백이다 뭐다 줄줄 꿰면서 명품 떡칠하고 다니는 여자들은 이해 못 하겠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내면이에요. 가방이 명품이면 뭐 해요?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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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훗!”

하마터면 마시던 홍차가 도로 튀어나올 뻔했다. 서하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방금 들은 말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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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명품, 이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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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스스로 자신이 없으니까 비싼 옷에 보석 둘둘 감고 콧대 세우면서 다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거 없이도 혼자 빛나는 사람이 진짜 명품이에요.”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 가운데 정작 명품 인간은 한 명도 없다던 엄마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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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너무나 어이가 없는 나머지 실소가 터졌다. 한 번 웃음이 터지니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냅킨으로 입을 가린 채 킥킥대는 서하가 못마땅한 듯, 이지수의 눈썹이 가운데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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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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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무 웃기잖아. 푸훗!”

서하는 또 키득키득 웃고 나서 간신히 홍차 한 모금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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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씨 같으면 안 웃겠어? 그러니까, 만약 이지수 씨가 내 입장이라면 말이야.”

이렇게 말해도 이해 못 하는 것 같은 눈치라 설명을 덧붙여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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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윤서하야. 그런데 할 줄 아는 거라곤 빈대떡 부치는 것밖에 없는 여자가 내 앞에 앉아서 ‘사람이 명품이어야죠’ 같은 말을 해. 웃기겠어? 안 웃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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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가 틀려먹었다는 거예요!”

발끈한 이지수가 날카롭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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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 볼까?”

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서하의 입에서 칼 같은 독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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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씨. 그쪽은 남의 남편과 불륜하다 딱 걸린 상간녀야. 상간녀 뜻 알지?”

서하는 파르르 떨리는 이지수의 눈동자를 향해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하게 씹어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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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간, 쓰, 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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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꼴에 쓰레기란 말은 듣기 싫었는지, 이지수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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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람들은 진실을 들으면 화를 낼까? 설명해 봐, 상간녀 씨.”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호텔 카페에서 ‘상간녀’라는 단어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그만큼 남의 이목을 끌기 쉽다는 얘기다.

근처에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이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와중에 이지수는 목에 더욱 빳빳하게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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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못한 건 아가씨 놔두고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린 이승오 씨 먼저 아닌가요? 남편 잡을 용기는 없고 화풀이는 해야겠으니 만만한 나 불러놓고 이러는 것 같은데, 정신 차리세요. 남 탓할 시간에 남편이 바람 날 정도로 매력 없는 본인을 탓하시라고요.”

흔한 불륜녀 클리셰처럼 적반하장으로 나오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저 멘트, ‘사랑과 전장’이나 ‘부부클럽’에서 몇 번 들은 것 같은데. 어디서 불륜녀 강의라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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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네 가방에 대해서 줄줄 꿰고 있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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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에 환장했으니까요. 머리 텅텅 빈 부잣집 아가씨답게.”

이지수는 말도 더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잘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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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가 보네. 명품 상간녀씨.”

이지수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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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내 거야. 이승오가 내 생일선물로 줬어.”

스무 살 생일에, 윤서하와 함께 스무 살이 된 정원의 소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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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촌스러운 걸 골라왔어야지. 받긴 받았는데 내가 들기엔 너무 싼 티 나서 예의상 한 번 멨던가? 몇 년이나 옷장에 처박혀서 곰팡이 피려던 걸 이승오가 훔쳐다 너한테 준 거야.”

내 보물 1호. 네가 밤새도록 일해서 사준 내 스무 살 생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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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열 받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것 같지? 그 가방, 안쪽 주머니 구석에 립스틱 얼룩 있어. 보증서랑 영수증은 없었을 거고. 그건 벌써 예전에 버렸거든.”

보증서와 영수증은 말라비틀어진 꽃잎과 함께 다른 상자에 곱게 보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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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자랑하고 다녀. 나한테 있어봤자 먼지 쌓이고 곰팡이 피면서 자리만 차지하던 쓰레기가 주인 잘 찾아간 것 같네.”

아까워서 들고 나갈 수가 있어야지. 닳을까 부서질까 종종 꺼내 쓰다듬기만 해도 좋았던, 그렇게 소중한 물건에 바보같이 화장품 얼룩을 묻힌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말짱하던 이지수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다. 너무 익어 믹서기에서 주스로 만들어지기 직전의 토마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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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어쨌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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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랑스러운 네 매력이 겨우 그거라는 말이야. 먹이는 줘야겠는데 내 돈 쓰긴 싫으니, 아내가 먹다 버린 찬밥이나 던져 주면 딱 알맞은 애완견이라고.”

이지수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서하는 그것을 무시하고 입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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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기!”

아무것도 모르는 이승오가 서하를 발견하고 걸어왔다. 꽤 멀끔하게 생긴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기까지는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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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씨?”

승오는 입에 맞지 않는 존칭을 붙이면서 어색하게 두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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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왜 같이 있어? 우연히 만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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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란 거 알잖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놈이다. 이 한마디면 지금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으리라.

서하의 예상대로, 이승오의 얼굴에서 어색한 미소마저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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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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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야말로.”

서하는 싸늘하게 이승오를 응시했다. 첫사랑이자 첫 남자, 영원한 연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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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짓이야? 이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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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오가 창백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혼식 날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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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 일단 조용한 데 가서, 대화로 해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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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은 이걸로 하자.”

서하는 핸드백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탁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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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서류야. 내 도장은 벌써 찍어 놨으니까, 당신 것만 찍어서 식탁에 올려놔.”

너무나 침착한 말투가, 표정이, 도장 찍힌 이혼 서류가 꽤 충격이었나 보다. 이승오가 커다래진 눈을 빠르게 껌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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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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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하자고.”

서하는 ‘이혼’이라는 단어에 일부러 힘을 주었다.

이제 이승오가 울면서 용서를 구할 것이다. 내가 미쳤나 보다고, 이 여자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잠깐 스치는 유혹에 흔들렸다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는 윤서하 한 명뿐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그러고 나면 그를 용서할 생각이었다.

어리석고 답답한 선택임을 잘 안다. 하지만 마음이란 게 그렇다. 썩은 무 자르듯 단칼에 도려내기엔 윤서하가 이승오라는 남자를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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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승오가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서류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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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은 각자 명의대로 가져간다. 이승오는 윤서하에게 위자료 일억 원을 지급한다. 양측은 위 내용에 협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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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서 도장 찍고, 네 짐 챙겨 나가면서 식탁에 올려놔.”

서하는 협의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 이승오는 이 자리에서 이지수에게 결별을 통보하고, 남은 평생을 서하에게 속죄하며 살아갈 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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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런데 지금 이승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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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는 좀 기다려 주면 마련해 올게. 양가 어른들께는 서류 절차 끝나고 말씀드리자. 어차피 다 끝난 일에 이래라저래라 듣는 건 너도 싫을 거 아냐.”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는 지금 용서가 아니라 이혼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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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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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탤 사항 있어? 나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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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그게 다냐고. 미안하다거나 용서해 달라거나, 뭐 그런 말 안 해?”

이혼 서류를 작성해서 도장까지 찍어 온 건, 이승오가 절대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었다. 그 믿음마저 와르르 무너지자 서하는 아까까지의 태연함을 잃고 목소리마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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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한테 미안한 감정은 있어. 그런데 사과는 안 하려고.”

서하가 보는 앞에서 이승오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지수의 손을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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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네가 좀 이해해 줘. 여기서 너한테 사과해 버리면, 지수를 사랑한 내 마음이 잘못이 되어 버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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