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교통사고 (10/45)


#10. 교통사고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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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하~! 꿈을 꾸는 서하~!”

경준은 소주병에 숟가락 꽂고 열심히 노래하는 윤서하를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술 좀 한다고 소맥 말 때는 언제고, 아직 맥주 세 병에 소주 두 병밖에 안 비웠는데 왜 저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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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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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끄러워.”

서하가 방금 두 번 부른 노래를 또 부르려고 포지션을 잡자 경준은 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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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다 먹었으니까 갑시다. 나가서 바람 좀 쐬고 대리 불러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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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정체불명의 CM송을 부르긴 했지만, 다행히 서하는 순순히 일어나서 비틀비틀 따라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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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다!”

말릴 틈도 없이 모래사장에 훌쩍 내려선 서하가 마구 뛰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뛰다가 모래사장에 풀썩 엎어지는 꼴이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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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좀 하지.”

경준은 한숨을 푹 쉬면서 서하를 일으켜 주려 팔을 잡았다. 서하의 얼굴에서 헤실거리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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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요.”

그러면서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고 손을 뿌리치기에 경준은 서하가 정신을 차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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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결혼한 여자예요. 나한테 접근하지 마. 우리 남편이 얼마나…….”

하긴. 그럴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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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한테 남편이 어디 있어?”

경준은 서하를 일으키는 걸 포기하고 그냥 옆에 주저앉으면서 핀잔했다. 이 꼴 저 꼴 다 봐놓고 술 마시러 온 주제에 남편 타령하는 윤서하가 한심하기도, 답답하기도, 불쌍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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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못 마시면 천천히라도 마시든가. 마셨으면 술주정이나 곱게 하든가. 조심성도 없고 배알도 없고, 있는 게 도대체 뭡니까?”

이러면 또 반말했다고 난리를 칠 거라 생각했는데. 윤서하는 뜻밖에도 그냥 제 다리를 접어 끌어안고선 무릎에 턱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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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나한테 뭐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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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표님 있잖아. 그쪽 어머니.”

경준은 코트를 벗어 윤서하의 어깨를 폭 감쌌다. 추울까 봐 그런 건 아니다. 그냥 회사에서 볼 때보다 훨씬 작아진 어깨가 무척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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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우리 엄마 있지.”

서하가 또 헤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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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비서님, 우리 엄마 잘 부탁해요. 나 이혼한다고 하면 엄청 속상해할 거야. 아빠도 없이 회사 키우고 나 키우느라 평생 쉬지도 못했는데. 회사 대표란 사람이 맘 편히 휴가 한 번을 못 가봤다니까.”

어두운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밤바다처럼 반짝 빛났다. 안쓰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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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럽다고?’

경준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놀랐다. 윤서하가 그를 안쓰럽게 보면 모를까. 그가 윤서하를 안쓰럽게 여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참에 일이나 하자.

경준은 해이해지려는 자신을 애써 채찍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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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팔면 될 것 같은데. 제법 좋은 조건에 인수 제안 들어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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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같은 소릴 해요!”

태연하게 물은 말에 윤서하가 펄쩍 뛰었다. 갑자기 술도 다 깬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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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이야 수십 개씩 들어왔죠. 우리 엄마, 그때마다 멋지게 거절했어. 아빠랑 손잡고 동대문부터 뛰어다니면서 만든 회사를 어떻게 팔아요?”

경준도 다 아는 스토리였다. 이쪽 업계에선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흔해빠진 창업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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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이유네요. 금수저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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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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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고민이 없다고. 돈이나 시간, 여유 같은 건 고려 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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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안 해.”

다분히 시비조인 경준의 말을 서하가 가볍게 받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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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금수저 맞지. 그런데 부잣집이라서 금수저 아녜요. 수백, 수천, 수조 원짜리 부자가 수두룩한데 돈 갖고 무슨 금수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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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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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거든. 난 우리 엄마 아빠의 자랑이고 보물이야. 남편 같은 거 없어도 돼. 다시 엄마랑 알콩달콩 살면서 우리 회사 키우고 전 세계에 내 브랜드를 보여줄 거야.”

반쯤 꼬인 발음으로 웅얼거리면서도, 서하의 눈동자는 밤바다보다 선명하게 반짝였다. 경준은 자신의 눈동자가 저렇게 반짝일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부러웠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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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시다. 날이 춥네.”

윤서하가 한 손을 내밀었다. 무심결에 마주 잡은 그 손은 조금 차갑고 보드라웠다.

두 사람은 어둠이 내린 해변을 천천히 걸어 차로 돌아왔다.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 경준은 그냥 근처 호텔 가서 잘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뒷좌석에 서하와 나란히 앉았다.

술 취한 여자를 혼자 보내기엔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고, 아무도 묻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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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좀 붙이든가. 피곤해 보이는데.”

경준은 시동을 걸어 놓고 온열 버튼을 눌렀다. 조금씩 온기가 올라오는 동안 차에는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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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비서님.”

술이 좀 깼나. 서하가 조그맣게 말을 걸었다. 답지 않게 힘 없는 목소리가 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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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비 내주기로 한 거니까 고맙다곤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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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고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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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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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가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경준은 제 어깨에 간신히 걸쳐진 윤서하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손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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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 죽겠네.”

경준은 서하를 툭 밀쳐내 창가 쪽에 걸쳐 놓곤 제 왼쪽 가슴을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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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취했나.”

손가락 아래에서 심장이 낯설게 쿵쾅거렸다. 얼굴이 좀 뜨거워진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 술을 안 마셨더니 주량이 상당히 줄어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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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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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서하는 달나라 토끼가 떡 대신 뇌를 쿵떡쿵떡 찧는 듯한 숙취 속에서 간신히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과 몸에 착 감기는 이불.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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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무…….”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정신이 습관적으로 승오를 찾았다. 서하는 자신이 벗어 던진 옷가지뿐인 침실을 허탈하게 쳐다보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 침대에 앉아 있노라니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회식 때나 겨우 몇 잔 마시는 술을 소맥까지 말아 가며 들이켰다. 조개구이가 맛있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최선을 다해 조개를 굽던 류경준의 손도 기억났다.

거기서 어떻게 나왔더라.

한참을 생각하던 서하는 밀려오는 기억의 홍수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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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주절주절 술주정을 잘도 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류경준의 경멸스러운 눈빛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차를 같이 타고 왔다. 집이 을왕리라고 했는데. 그러면 일부러 데려다주고 서울 집으로 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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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어요. 일어나.’

잠결에 툭툭 깨우는 사람이 승오인 줄 알았다. 정말로. 진짜로. 자신이 승오에게 이혼 서류를 던지고 술을 퍼먹은 것조차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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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오오. 나 어지러워요옹.’

술 취했을 때만 하는 망할 애교를 부려가며 경준의 품에 얼굴을 폭 파묻은 것 같다.

아니. 그런 것 같은 게 아니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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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서하는 애꿎은 베개를 마구 두들겨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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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가 당신 여보야? 이거 안 놔?’

같이 마셔 놓고 억울하게 멀쩡한 경준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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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왜 이렇게 허술해? 조심성도 없고.’

서하가 살면서 처음 접한 저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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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갑시다. 데려다줄 테니까.’

그대로 경준에게 기댄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들은 말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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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자, 류경준. 이제 모른 척 해.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x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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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하. 미쳤구나.”

서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슬프지도 않을 만큼 쪽팔렸다. 이대로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단 연락은 해야겠지. 사람이면.

한참 만에야 이불에서 기어나온 서하는 물을 한잔 마시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어제 들었던 가방이 보이지 않고 침대 옆에는 차 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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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놔뒀나?”

서하는 비척비척 걸어 나와 주차장에 내려갔다.

다행히 가방은 뒷좌석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낯선 핸드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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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건…….”

경준의 핸드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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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줘야겠네.”

서하가 그것을 챙겨 드는 순간, 갑자기 진동이 울렸다.

[류 회장님]

받을까, 말까. 망설이던 서하는 진동이 끊어지기 직전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인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해 줄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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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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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 하는 놈이냐?]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핸드폰에서 짜증 가득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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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들어왔다. 강윤컴퍼니 딸이랑 차 타고 갔다면서? 네가 지금 한가하게 여자나 만나고 다닐 때냐!]

이게 무슨 소리야? 서하는 통화 볼륨을 올리고 핸드폰을 귀에 더 가까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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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목적이 있어서 갔다고 쳐도 보고를 해야지. 강윤 분석해서 가져오기로 한 게 몇 달인데 진전은 없고, 보고도 없고! 뭐? 책임지고 강윤 인수하게 해 드려?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끼야! 제대로 된 보고 가져오기 전에는 집에 코빼기 비칠 생각도 하지 마라. 네 형들 발톱 때만도 못한 놈!]

일방적으로 할 말과 욕설만 내뱉고 난 ‘류 회장’이 전화를 끊었다.

서하는 조용해진 핸드폰을 손에 꽉 쥐었다. 방금 전화를 걸어온 ‘류 회장’이 누군지 안다. 흔하지 않은 ‘류씨 성에 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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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그룹…….”

새로 진출하는 분야에서 직접 개발 대신 가능성 있는 소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문어발 사업을 펼치는 곳. 기존의 임원들은 무슨 핑계로든 구조조정해 버리고 일가친척들에게 자리 하나씩 나눠주기로 악명이 자자한 곳.

엄마가 류 회장이 직접 제안한 인수 합병과 그에 따른 수백억대의 보상을 단칼에 거절한 그룹.

지끈거리는 머릿속에서 퍼즐이 한 조각씩 맞춰졌다.

처음 마주친 날, 경준은 왜 아무도 없는 대표실에서 혼자 나왔을까. 들어가서 기다리겠다는 서하를 왜 막아섰을까.

평생 강 대표를 보좌해 온 최 비서가 왜 갑자기 ’그냥 쉬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대고 퇴사하면서 후임자를 소개하고 갔을까.

서하는 핸드폰과 가방을 들고 급히 집으로 올라갔다. 노트북을 열고 류 회장의 가족관계를 샅샅이 뒤졌다. 각자 사업 하나씩을 맡고 있다는 아들 세 명 중에 류경준은 없었다. 얼굴도 닮지 않았고 나이도 훨씬 많았다.

잠깐. 나이가 훨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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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들 발톱 때만도 못한……. 이라고 했잖아.”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터를 바라보던 서하는 검색어를 바꾸어 입력했다.

[태양그룹 혼외자]

시답잖은 증권가 지라시 몇 개가 떴다. 클릭하면 광고로 도배되어 제대로 읽기도 힘든 싸구려 인터넷 기사 말이다.

[태양그룹 류명진 회장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소문이다. 류 회장의 애첩이라는 탤런트 A씨가 해외에서 몰래 출산해서 호적에 올렸다는 제법 구체적인 정황까지…….]

하지만 서하는 알고 있다. 유명인의 사생활에 관한 한, 그 증권가 지라시의 정확도는 대한민국 양궁 선수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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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였어. 류경준!”

기가 막힌 일이었다. 말짱한 얼굴을 하고서 대표실까지 침투해서는, 약점을 잡아 강윤을 태양그룹에 팔아치우려 한 게 틀림없었다.

서하는 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가는데 연결되지 않았다.

집에 가봐야겠어.

노트북을 덮고 뛰쳐나온 서하는 시동을 걸고 서둘러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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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앗!”

막 속도를 내려는 순간, 웬 여자가 차 앞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은 서하의 몸이 앞으로 홱 쏠리면서 머리가 핸들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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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고개를 든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멈추었다.

여자가 짙게 선팅된 앞유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에 든 벽돌을 고쳐 쥐는 게 아닌가.

그래. 그건 벽돌이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처럼 검붉은 색에 구멍 세 개가 뚫린, 뾰족한 벽돌.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창백한 얼굴을 덮었다. 고장 난 가로등처럼 빛이 꺼진 여자의 동공이 서하를 똑바로 쏘아보는 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저 벽돌이 유리를 깨고 날아올 것 같은 공포가 서하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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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 뭐야. 왜 저래?

차에서 내려선 안 된다. 서하는 제발 저 여자가 비켜 주거나 경비원이 달려오길 바라며 힘껏 경적을 울렸다.

그 순간.

-부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엔진음과 함께 옆 창문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콰앙!

피할 틈도 없었다. 엄청난 충격으로 들이받힌 차가 쿠킹포일처럼 구겨져 튕겨 나갔다.

윤서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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