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COMA 2022.05.07.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어딘가로 빠르게 쏘아졌다. 서하는 곧 자신이 환자용 침대에 누워 어딘가로 실려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요란하게 외쳐 대는 소리가 고막을 윙윙 울려댔다.
“서하야!”
그중, 익숙한 목소리가 오열하듯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정신 좀 차려봐. 제발 눈 떠!”
많고 많은 소음 가운데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가슴을 때렸다. 이승오. 내 남편, 내 첫사랑, 그리고…….
“여보, 여보! 서하야!”
잘도 짖네. 개새끼. 개새끼가 서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난리를 쳤다. 진심으로 벌떡 일어나서 주둥이를 때려 버리고 싶었다. 그때 카페에서 때리고 올걸,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서하야! 서하, 우리 딸!”
엄마다. 서하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다.
“서하야, 엄마 왔어. 응? 서하야. 눈 좀 떠 봐. 엄마 딸, 제발……. 제발 눈 좀 떠봐, 서하야!”
그렇게 울지 마, 엄마. 너무 많이 울면 머리 아파. 나 괜찮아요. 치료받고, 조금만 있으면 일어날 거예요.
“선생님, 우리 딸 좀 살려 주세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장기고 피고 필요한 대로 제 몸에서 빼다가, 우리 딸한테 좀 넣어 주세요. 선생님,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줘요……!”
해선이 울고불고 횡설수설하며 의사에게 싹싹 빌었다. 남편마저 먼저 보내고 혈혈단신으로 회사와 가정을 지켜낸 엄마가 이렇게 무너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차만 안 끌고 나갔어도.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슴이 찢어졌다.
“오후 7시 20분. 윤서하 님-.”
무거운 음성이 통곡을 뚫고 서하의 이름을 말했다.
“…… 사망하셨습니다.”
뭐라고?
“서하야아아아!”
이승오가 쩌렁쩌렁 오열을 터뜨렸다. 이어서 김옥순의 비명이 들렸다.
“사부인! 정신 차리세요! 사부인!”
“비키세요! 침대에 눕혀야 해요!”
“장모님, 장모님!”
기어이 엄마가 쓰러진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나 여기 살아 있는데. 승오가 통곡하는 소리, 의사가 유감이라고 말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의 진동과 감긴 눈꺼풀 위를 비추는 형광등 불빛까지 느껴지는데. 언젠가 보았던 뉴스가 기억났다. 기절한 사람이 잘못된 사망 선고로 관에 들어가 매장당하려던 순간 누군가 알아채고 겨우 살아났던 사건. 지금 서하의 상황은 그 뉴스 주인공보다 훨씬 나빴다. 매장도 아닌 화장. 지금 산 채로 불에 태워지게 생긴 것이다. 엄마, 나 살아 있어. 진짜 괜찮아. 일어나 봐. 나 화장하지 마요. 서하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안간힘을 썼다. 눈꺼풀에 힘을 주고 돌처럼 굳은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다. 움직여, 윤서하. 움직여야 해! 조금이라도, 아주 미세하게 움찔거리기라도 할 수 있으면 된다. 이대로 관에 들어가 산 채로 태워지는 건 너무 끔찍하잖아. 그 노력이 통했을까. 갑자기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선생님, 여기요! 조서하 환자 손가락 움직였어요!”
“생체 반응 확인! 바로 응급 수술 준비해!”
조서하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서하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그 사람이 너무나 부러웠다. 이승오가 여전히 가식적으로 울부짖었다. 엄마는 깨어나지 못한 듯했다. 뇌가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회피하듯 갑자기 엄청난 졸음이 쏟아졌다.
“어? 선생님, 윤서하 환자……!”
몽롱한 가운데 언뜻 제 이름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
“류경준. 류경준이라.”
이승오는 다 부서져 켜지는 것도 신기한 핸드폰을 앞에 놓고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경준이라는 이름은 흔해도 성은 흔하지 않다. 윤서하와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는 류경준이라면 딱 한 명.
“비서실 류경준.”
“헤에.”
이지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테이블에 과일 접시를 내려놨다.
“주, 주인님 비서 말이에요? 키 크고 얼굴 하얀 사람?”
“본 적 있어?”
“네에. 지, 집 앞에서 주인님한테 인사하는 거 몇 번 봤어요. 우웅, 그리고오…….”
“그리고?”
승오가 채근했다. 이지수는 못 이기는 척 뒷말을 조심스럽게 이었다.
“화, 확실하진 않고요……. 그날 있잖아요. 나 카페에서 이 사람 본 것 같아요. 그,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너, 너무 긴장했고, 또 곁눈질로 살짝 본 거라서, 확실하지는…….”
“뭐? 그걸 왜 지금 말해!”
생각지도 못한 말에 승오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미, 미안해요. 잘못 봤나 싶기도 하고, 정신도 없어가지구…….”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내리깐 눈이 얼마나 안쓰러운지. 승오는 소리를 지른 걸 금세 후회하고 지수를 다독였다.
“미안해. 너한테 화낸 거 아냐.”
“알아요. 화내도 괜찮고요.”
“화낸 거 아니라니까.”
승오는 핸드폰을 노려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이게 왜 윤서하 차에서 나왔을까. 지수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오래 전에 뽑아 버린 블랙박스 메모리가 못내 아쉬웠다.
“저, 저기. 오빠. 혹시요…….”
차마 선뜻 결론 내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승오의 손을 지수가 살며시 잡았다.
“이건 진짜, 진짜 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에요. 이게 진짜 류 비서님 핸드폰이면, 이게 아가씨 차에서 나왔으니까, 혹시, 둘이 좀……. 음, 깊은……. 그런 사이 아닐까요?”
뒤로 갈수록 자신을 잃고 작아지는 이지수의 목소리가 승오에겐 너무나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 그래. 그러면 말이 되지.”
이승오가 생각에 빠져 중얼거렸을 때, 이지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가 곧 평소처럼 순해졌다.
“그, 그럴 수 있다는 거고요. 의심은 하지 마요. 어쨌든 아가씨 지금 엄청 많이 아프잖아요.”
“아프지. 죽은 거나 마찬가진데, 죽지는 않았어. 그 새끼들은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네에?”
이번엔 이지수가 큰소리를 냈다.
“무슨 말이에요? 오, 오빠. 설마, 아가씨, 오빠가……!”
“쉿.”
승오는 손으로 지수의 입을 틀어막고 씩 웃었다.
“괜찮아. 내일이면 긴급 임원 회의 열릴 거고, 임시 대표로 앉을 사람은 나밖에 없거든.”
지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읍읍읍? 읍, 읍…….”
“너 디자인 하고 싶댔지? 오빠가 시켜줄게. 이지수 디자이너, 어때?”
이지수가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다. 승오는 막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오빠…….”
몇 초 후, 지수는 그의 품에 폴짝 뛰어들며 외쳤다.
“오빠, 고마워요! 드디어 내 꿈이 이뤄졌어. 오빠 덕분이야. 오빠가 최고야. 오빠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야!”
“말 하나도 안 더듬네?”
“이, 이제 안 더듬을 거예요! 디자이너 이지수니까!”
단순하다니까. 귀엽게. 승오는 크리스마스 퍼피를 만난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는 지수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병원에 누워 있는 윤서하와 강해선, 그리고 앞에 놓인 핸드폰 생각으로 바빴다. 강윤의 지분은 강해선과 윤서하가 각각 갖고 있다. 그 두 사람이 사망할 경우 지분 상속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하지만, 윤서하가 깨어난다면.’
이대로 죽어 준다면 베스트겠지만, 깨어나서 그 망할 이혼 서류를 들이밀 가능성도 고려해야만 했다. 이승오는 핸드폰을 두꺼운 서류봉투에 넣어 서랍 깊숙이 감췄다. 혹시 일어날지 모를 최악의 경우, 윤서하가 외도했다는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 뭉툭하게 깁스가 씌워진 팔다리, 피딱지가 따개비처럼 말라붙은 얼굴, 그마저 반쯤 가린 산소호흡기. 그리고 이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표. <윤서하> 바람난 남편한테 이혼 서류 던지고 온 마당에 바다를 보면서 웃고, 눈을 빛내며 꿈을 이야기하고, 술 취한 주제에 또각또각 예쁘게도 걷던 윤서하가 처참한 꼴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윤서하 씨.”
경준은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하릴없이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가 허공을 휘돌아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투둑. 굵은 이슬방울이 턱 끝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가슴이 아파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일지도.
“안 되는데. 곤란해.”
경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윤서하가 ‘죽을 뻔’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망선고 후에 생체 반응이 포착되었다가 그대로 코마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쓰러진 강해선 대표마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어제 일어났다. 다른 임원들은 곧장 달려왔다가 이미 떠났지만, 경준은 핸드폰을 잃어버린 탓에 하루 늦었다.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경준은 급히 눈가를 닦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육성으로 욕을 내뱉을 뻔했다.
“류 비서님?”
‘머저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알은체하는 게 아닌가.
“여긴 어쩐 일이시죠? 대표님 병실은 위층입니다.”
경준은 경멸의 눈빛을 감쪽같이 지우고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으로 까딱 인사했다.
“온 김에 내려왔습니다. 윤 팀장님과도 안면이 있으니까요.”
“그러시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핸드폰이 사고 차량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진작 들었다. 그런데 수상하게도 이승오는 그것에 대해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다른 말만 늘어놓았다.
“아시겠지만, 와이프 사고에다가 장모님까지 쓰러지셔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류 비서님이 대표실 일은 제일 잘 아시겠죠?”
“그렇겠죠.”
이승오가 윤서하의 침대 앞에 커튼을 확 치고선 소파에 걸터앉았다.
“만난 김에 미리 통보하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후임이 들어올 테니까 인수인계 준비하세요. 아무래도 비서란 자리가 싫든 좋든 대표와 제일 가깝다 보니 나도 나한테 맞는 사람을 구해야 해서요. 해고는 아니고, 보직 이동 정도로 해두면 되겠군요.”
벌써 대표실을 차지한 양 거들먹거리는 태도였다. 잠깐. 대표실? 경준의 미간에 엷은 주름이 잡혔다. 윤서하가 큰 사고를 당했다. 유일한 상속자인 남편에게 이혼 서류를 던진 바로 다음 날에. 그게 과연 불행한 우연일까?
“류 비서? 대답 안 합니까?”
이승오가 재촉했다. 그의 표정에서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슬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 결혼한 여자예요. 나한테 접근하지 마. 우리 남편이 얼마나…….’
술 취한 와중에도 결혼한 여자라며 손사래를 쳐대던 윤서하가 떠올랐다. 똑똑한 척 혼자 다 하면서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그 여자. 기분이 대단히 더러워졌다.
“이승오 씨.”
경준이 묘하게 무례한 어조로 이름을 부르자 이승오가 멈칫했다.
“할 얘기는 그게 답니까? 나한테 궁금한 건 없고?”
당황을 감춘 승오가 불쾌하게 되물었다.
“무슨 말이죠, 류 비서?”
“속으론 x나게 궁금할 텐데, 왜 안 물어보냐고.”
경준은 싱긋 웃으며 허리를 숙여 승오의 눈동자를 삐딱하게 들여다보았다.
“윤서하 씨 차에서 주웠잖아. 내 핸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