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 옥탑방 집주인 (14/45)


#14. 옥탑방 집주인
2022.05.18.


쿵. 쿵. 쿵. 쿵.

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쿵쿵거렸다.

삼 년 만에 다시 만난 류경준은 그녀가 알던 사람과 너무나 달랐다. 좀 찢어졌다고만 생각했던 눈매는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툭툭 내뱉긴 해도 인간적이던 말투에선 한 가닥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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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잖아. 왜 왔냐고.”

경준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문을 탁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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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있었던 일로 돈이라도 뜯고 싶은 건가? 아니면 누가 동태를 보고 오라고 시켰어?”

이 사람이 엄마 옆에 붙어 있다는 건, 아직 강윤컴퍼니가 태양 그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서하는 겁먹은 표정으로 입에서 손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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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와서 죄송합니다. 아주머니가 눈에 밟혀서요.”

무슨 말이냐는 듯, 경준이 눈썹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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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도 아프시거든요. 아주머니도 비슷한 연세에, 또 비슷하게 아프신 것 같아서……. 갑자기 딸이라고 하니까 마음이 쓰여서 올라와 봤어요.”

경준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서하를 쳐다보았다. 서하도 물러서지 않고 턱을 들어 그의 눈동자를 마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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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습니다. 그렇다 치고.”

이윽고 경준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한 발짝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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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희 대표님은 매우 건강하시니 쓸데없는 참견이나 접근은 삼가 바랍니다. 쾌차하십시오.”

정중한 어조와 다르게 그의 손가락은 계단 아래쪽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빨리 꺼지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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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게 더 힘든데.’

서하는 할 수 없이 불안정한 걸음으로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환자를 좀 부축해줄 법도 한데, 경준은 진짜 내려가나 안 내려가나 끝까지 팔짱 끼고 노려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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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발치에서라도 해선을 만나려는 서하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뿐인가. 틈만 나면 알짱거리다가 경준에게 눈도장까지 찍혀 접근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 와중 서하는 진짜 자신의 몸이 VIP 병실에 얌전히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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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지. 정말.’

윤서하가 조서하로 깨어났듯, 조서하가 윤서하로 깨어났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며칠이 더 흐르는 사이 재활마저 끝나고 퇴원 날짜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연락할 곳은 없었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 하나. 현금 이만 원.

서하는 그걸 들고 물어물어 ‘집’에 찾아갔다. 높고 좁은 시멘트 길과 계단이 꼬불꼬불 이어지고 어설픈 벽화가 비바람에 헐어 더욱 을씨년스러운 동네.

‘집’은 그 달동네 중턱에 겨우 들어앉은 낡은 주택이었다.

[개조심]

녹슨 대문엔 빨간 페인트로 무시무시한 글자가 휘갈겨져 있었다. 서하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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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꺙! 꺙꺙!”

동시에 개조심의 주인공인 듯한 개가 맹렬히 짖으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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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는 조심하기엔 너무나 하찮은 치와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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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야? 개껌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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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꺙?”

개껌에 반응한 건지, 치와와는 더 다가오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크로롱거렸다.

그때, 안쪽에서 커다란 남자가 현관문을 홱 열고 털레털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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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왜 이렇게 시끄러…….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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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나 되었을까. 그는 김칫국물 튄 티셔츠와 무릎 나온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꿰어 신은 삼선 슬리퍼조차 한쪽이 좀 벌어져 있었다.

예컨대, 서하가 살면서 말 한마디 섞어 본 적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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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하!”

남자가 거칠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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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하, 너 도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 와! 핸드폰이고 뭐고 다 놔두고! 젠장, 계집애가 세상 무서운 줄 몰라! 야, 너 내가 얼마나 찾았, 야이씨! 삼 년! 일이 년도 아니고, 삼 년이나! 죽었으면 연락이라도 하든가!”

그는 조서하를 아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굉장히 화를 내고 있었다. 서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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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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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는 무슨 저기요야!”

쿵쾅쿵쾅 걸어온 남자가 다짜고짜 서하의 팔을 잡으려다가 젠장, 하면서 제 머리카락만 헝클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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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서하가 고개를 젓자 그는 더욱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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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밥도 못 얻어먹고 돌아다닐 거면 왜 집을 나가? 월세는 천천히 달라고 했잖아! 에이 씨, 지금 라면밖에 없는데. 짜증 나게 진짜!”

남자는 홱 돌아서서 현관문을 활짝 열더니 또 서하를 돌아보며 버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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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들어와? 평생 거기 그러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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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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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 들어오면 라면도 없어! 김민지, 너도 이리 안 와? 조서하도 못 알아보면서 집은 어떻게 지킬 거야!”

개조심 치와와가 하찮은 꼬리를 짤랑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서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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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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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집어치우고 앉기나 해.”

남자가 툴툴거리면서 식탁 의자를 거칠게 잡아 빼 서하가 앉을 자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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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씨. 라면도 푸라면이네. 젠장맞을.”

조그만 주방은 곧 달각거리는 소리와 보글보글 라면 끓는 냄새로 가득 찼다.

그 냄새를 맡자마자 갑자기 배가 꼬르륵거리고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잠시 후, 식탁에 놓인 라면 냄비를 보고는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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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먹을게요.”

한강도 이런 한강이 없었다. 물을 어찌나 많이 넣었는지 면은 보이지도 않고 둥둥 뜬 계란 두 개는 한강의 오리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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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남자가 연두색 게르마늄 접시에 라면을 푹 퍼서 덜어주곤 자신은 누런 양은냄비 뚜껑을 받쳐 후루룩 한 젓가락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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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맛없네.”

자기가 이렇게 끓였으면서 잘도 툴툴거린다. 그는 반찬통째로 내놓은 김치를 한꺼번에 두 개 집어 우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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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어?”

서하는 예의상 라면을 한 입 먹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그게 티 났는지, 남자가 또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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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워도 그냥 먹어. 푸라면밖에 없는데 어떡해? 매운 거 못 먹는 네가 잘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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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매운 걸 못 먹나요?”

서하의 물음에 남자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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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뒈져서 김밥헤븐 가는 소리야? 머리라도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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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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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남자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서하는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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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씨, 어디 다쳤는데? 얼마나 다쳤어? 그러면 전화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병원은? 또 안 갔지? 에라이, 그러다 너 죽으면 밀린 월세는 누구한테 받으라고 그 지랄이야! 어디 봐!”

금방이라도 서하의 머리카락을 헤집을 기세였다. 서하는 당황한 와중에 침착하게 그를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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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에요. 진정하시고, 앉아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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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하자고. 내가 너 잡아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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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치료 다 받고 나왔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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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내가 널 왜 걱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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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안 했으면 앉으세요.”

서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는 멈칫하더니 도로 앉아 팔짱을 꼈다. 한강 오리배 라면은 둘 다 손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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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인지 말방군지, 어디 해 봐.”

서하는 식탁에 굴러다니는 두루마리 휴지를 한 칸 뜯어 입가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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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서하예요.”

사실은 윤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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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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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 대해 아는 건 이게 전부예요. 나머지는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직업은 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몇 살인지조차도.”

남자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멍한 표정으로 서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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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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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이요.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하네요. 여기는 주민등록상 주소를 찾아온 거고, 지금 그쪽 분이 누구신지도 물론 몰라요.”

서하는 그가 잘 알아듣도록 최대한 또렷하게 천천히 설명했다. 별 보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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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고를 당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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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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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새끼야? 누가 내 세입자를 차로 박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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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조사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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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X.”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곤 뒤통수를 흐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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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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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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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도. 저기 그, 젠장. 가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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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서하는 그가 하나하나 묻는 말에 인내심 있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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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아픈 데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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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다 나았어요. 꽤 큰 사고였는데 다행히 급소는 피해서 다쳤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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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은, 지랄.”

이상하게 아까보단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남자가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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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거나 먹어. 푸우동 되겠다.”

정말 맛은 없었지만, 서하는 그가 덜어주는 라면과 계란을 다 먹고 신김치도 군말 없이 씹어 삼켰다. 남자는 그게 꽤 만족스러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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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이 어딘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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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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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

남자가 슬리퍼를 꿰어 신고 휘적휘적 앞서 나갔다. 그를 따라 사람 두 명은 나란히 못 걸어갈 만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과 평상, 구질구질한 옥탑 구조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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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야. 너 살던 집.”

이렇게 후지다고?

서하는 후져도 너무 후진 조서하의 주거지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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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살았어요? 세입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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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달동네 계단을 올라올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 떨어져가는 낡은 주택도 모자라 그 주택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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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체 얼마나 가난했던 거예요?”

남자의 표정이 거칠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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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좀 수입이 적고 지출이 많은 거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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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가난이죠. 나 가난했네. 찢어지게 가난했어.”

하필이면 몸이 바뀌어도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과 바뀌다니. 복수는커녕, 회사를 되찾을 길조차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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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면 어때! 사람이 좀 가난할 수도 있지!”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민지가 놀랐는지 또 왕왕거리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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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리를 질러요? 그쪽도 방금 가난하다고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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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아무튼, 그 가난 소리 좀 집어 치우고.”

남자는 큼큼대며 헛기침을 하고 열쇠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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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오른쪽 방이 네 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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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방은 주인이 있어요?”

그 물음을 못 들은 듯, 남자가 대답 없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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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는 한 달에 삼십……. 아니, 삼만 원이야. 못 낼 것 같으면 월말에 얘기해. 보증금 이천만 원 걸려 있으니까 거기서 까면 되거든. 너 백조야. 당분간 집에 처박혀서 요양이나 해. 밥때 되면 내려와서 밥 먹고, 심심하면 민지 산책이나 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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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임차인 분한테 밥까지 얻어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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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만 얻어먹으면 다행이게? 뭐 먹고 싶으면 득달같이 뛰어 내려와서 치킨 먹고 싶다, 딸기 먹고 싶다 난리를 쳐댔지. 뭐 어디 손톱만큼이라도 아프면 한밤중에도 사람 깨워서 병원 데려다 달라 하지를 않나, 뭐 고장 나면 집주인이 해 줘야 한다면서 전구 하나까지 갈아 달라 하고. 그, 저기, 감기 한 번 걸렸다고 골골거리면서 나한테 청소랑 빨래까지 해 달라고 했다니까? 참나, 기가 막혀서. 세입자 한 번 잘못 들였다가 이게 무슨 고생이야?”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치는 모양이었다. 그는 붉어진 귓가를 벅벅 긁으며 돌아서려다가 현관에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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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까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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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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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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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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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딸기씨 발라먹는 소리야? 그, 저기, 오빠라고 불렀어. 재욱 오빠.”

저게 무슨 피카츄 쥐포 만드는 소리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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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과 임차인 관계에선 적절하지 못한 호칭이네요. 그냥 김재욱 씨라고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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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욱이 입을 약간 벌리고 서하를 쳐다보았다. 누가 주먹으로 한 대 치기라도 한 듯한 표정에 서하는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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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님이라고 부를까요? 편하신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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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건 때려치워.”

재욱은 이상하게 더듬거리더니 흠흠, 헛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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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려간다. 오늘 장사 쉬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내려오든가 말든가. 가자,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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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재욱이 민지를 데리고 털레털레 계단을 내려갔다. 말투만 좀 거칠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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