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꼴에 (16/45)


#16. 꼴에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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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서하는 조선시대 유적에서 발굴한 듯한 고대 노트북 앞에서 눈을 빛냈다.

[강윤컴퍼니 신입 디자이너 모집 공고]

일단 회사로 돌아가자. 내부에서 지켜보면서 내 진짜 몸과 엄마를 되찾을 방법을 찾는 거야.

그날부터 서하의 하루는 디자인으로 시작해서 디자인으로 끝났다. 트렌드를 흡수해 재창조하고 그 위에 강윤과 윤서하의 색깔을 입힌다.

문장으로 설명하면 쉬운 작업이지만 서하는 총 열 장의 디자인을 위해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리고 이력서 접수를 단 하루 앞둔 저녁. 서하는 엄청난 벽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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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최종학력, 고등학교 졸업.

이력서 작성을 위해 찾은 조서하의 최종학력이 고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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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하, 너 뭐 하고 살았길래 대학도 안 나왔어!”

이대로라면 면접까지 갈 것도 없이 문서 파쇄기에 들어갈 운명이었다. 서하는 그동안 그려낸 디자인들을 앞에 쌓아 놓고 망연자실했다.

윤서하로 살아온 삶이 그저 행복하고 순탄한 건 아니었다.

‘금수저라서’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해야 했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미친 사람처럼 수백 장씩 디자인북을 채워 나가던 나날은 셀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원초적인 장애물은 처음이었다. ‘학력’이 모자라서 이력서조차 낼 수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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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꺙! 꺙!”

한참을 고민하고 있노라니 밖에서 민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여섯 시 삼십 분.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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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

서하는 그리다 만 디자인을 덮어 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는 재욱이 차려 놓았을 서하의 저녁식사만이 덩그러니 신문지를 덮고 있었다.

재욱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과일 트럭을 끌고 다니며 장사하면서도 이 시간엔 꼭 들어와 서하에게 밥을 챙겨 먹였다. 못 들어올 것 같다 싶으면 식탁에 밥을 차려 놓고 나갔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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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서하는 혼자 인사하고 혼자 밥그릇을 비웠다. 다 먹은 후에는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도 했다. 윤서하는 생각도 못 해 본 그런 일들이 조서하에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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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꺙!”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닦자마자 민지가 목줄을 물고 와서 발치에 척 앉았다. 산책 가자는 뜻이었다. 제법 깜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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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가자고? 좀 늦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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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꺙! 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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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자.”

서하는 낡아빠진 운동화에 발을 끼워넣고 털레털레 집을 나섰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 약수터에 들러 물 한 모금 먹고 반대편 길로 내려오는 게 꼭 한 바퀴였다.

서하가 그렇게 한 바퀴 돌아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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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무심결에 돌아본 서하는 움찔 굳어 민지의 목줄을 더욱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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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쁘셔서요.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눌러 쓴 낯선 남자였다. 환한 대로변이라면 괜찮았을 텐데, 이렇게 어둑한 골목길에서 낯선 남자가 말을 거는 건 기분 나쁜 걸 떠나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서하는 죄송하다는 말로 거절을 표하고 다시 걸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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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번호만 알려 달라니까요. 너무 예뻐서 그래요.”

남자가 빠르게 따라와 앞길을 막았다. 서하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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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하!”

반가운 목소리가 골목길을 쩌렁쩌렁 울렸다. 재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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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와? 이 새낀 뭐야?”

서하 혼자 있을 때 그렇게 당당하던 남자는 재욱이 나타나자마자 민지보다 작아져서 우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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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예뻐서요. 남친 있으신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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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으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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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재욱은 그 자리에 서서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젠장, 하고 욕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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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랐냐? 저 새끼 어디부터 따라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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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앞에서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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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짓 없는 동네 양아치니까 신경 쓰지 마. 다친 데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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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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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할. 썩을 놈의 새끼.”

투덜투덜 대문을 넘은 재욱이 갑자기 서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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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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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생각 없이 입은 옷을 보니 가관이었다. 아까 저녁 먹다가 김칫국물이 튄 티셔츠에 다 늘어난 레깅스, 곧 발가락이 튀어나올 듯한 운동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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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그 꼴로 다니면 어떡해? 저런 새끼 들러붙기 딱 좋네. 아니, 그렇다고 네가 잘못했단 건 아냐. 저 새끼가 워낙 양아치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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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새끼랑 옷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재욱이 인상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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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새끼들이 얼마나 간사한데. 딱 보고 여자가 자기보다 잘나면 기죽어서 말도 못 걸어. 네가 실제로 잘났더라도 이 시간에 그러고 이 동네 다니면 제 수준인 줄 알고 찔러 본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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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이승오와 이지수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이렇게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난 이지수. 이지수에게 과하게 친절하던 이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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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너무 잘났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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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 건다니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그 새끼. 꼴에 누구한테 수작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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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다가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가 너무 잘났으면요. 금수저에 얼굴도 예쁘고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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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놈이면 감사합니다 하고 살겠지. 대가리 빠진 놈이면 속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어떻게든 깎아먹으려고 트집 잡을 거고.”

그래. 지금 강윤의 임시 대표로 회사를 착실하게 말아먹고 있는 이승오가 그 대가리 빠진 놈이었다.

한때는 그가 한없이 묵직하고 진중한 남자라 믿었다. 산들바람에도 휙 날아갈 정도로 가벼운 남자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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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한테 미안한 감정은 있어. 그런데 사과는 안 하려고.’

그 가벼운 남자는 불륜 상대의 손을 꼭 잡고 아내에게 당당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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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네가 좀 이해해 줘. 여기서 너한테 사과해 버리면, 지수를 사랑한 내 마음이 잘못이 되어 버리잖아.’

네가 왜 이지수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평생 네 옆에 있었던 윤서하가 아닌, 겨우 몇 달 전 만난 이지수를.

서하는 이승오와 이지수의 첫 만남에서 그 답을 찾았다. 너무나 연약했던 이지수를 윤서하에게서 지켜주었을 때. 그 순간이 이승오에겐 사랑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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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너는 가진 게 많잖아. 지수한테는 나 하나뿐이야. 이혼하든 안 하든, 나는 끝까지 지수를 사랑하고 지켜줄 거야.’

이승오가 사랑하고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 가진 게 없는, 이승오만이 세상의 전부인 여자.

이지수를 사랑한 게 아냐. 이지수를 구원하는 이승오를 사랑한 거지.

서하는 민지를 재욱에게 안겨 주고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놓인 플라스틱 거울이 서하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췄다.

마르고 푸석한 피부, 어딘지 모르게 허망한 눈동자, 얇은 입술.

서하는 이승오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잘나고 화려했던 윤서하가 아니라, 그때의 이지수보다도 초라한 조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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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오에겐 점심을 먹고 나서 회사 주변을 산책하는 버릇이 있었다. 보통 혼자, 아니면 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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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좋다. 날씨도 좋고, 오빠랑 밥 먹고 걷는 것도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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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승오는 다정하게 대답하면서도 이지수에게서 슬쩍 팔짱을 뺐다. 둘의 관계가 회사 내에 공공연히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팔짱 끼고 데이트하다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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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는 좀 어때? 많이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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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봤어요. 인사과에서 다 거르고 나서 내려오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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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 강혜림 디자이너 추천 있다고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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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별로였어요.”

이력서나 신규 디자이너에 대해 대화하기 싫은 눈치였다. 승오는 지수가 좋아할 만한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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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오래간만에 해외는 어때? 가까운 하와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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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좋아요! 지난번에 갔던 발리도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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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도 좋았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옆을 웬 여자 한 명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청바지 차림에 서류봉투를 든 여자는 무엇을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 바람에 주머니에서 지갑이 툭 떨어진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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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승오는 떨어진 지갑을 주워들었다. 처음 만났을 무렵, 지수가 들고 다니던 것처럼 낡고 해어진 싸구려 지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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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여자는 여전히 두리번거리느라 자신을 부르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승오는 지갑을 들고 뛰어가 여자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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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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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승오를 돌아보았다.

긴 생머리에 화장기도 거의 없는 수수한 외모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가가 촉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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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갑 떨어뜨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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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눈이 커진 여자가 지갑을 받고선 허리를 깊이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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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떨어뜨린 것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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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보니까 뭘 찾으시는 것 같던데. 길을 잃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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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게…….”

여자가 어물거리며 누런 서류봉투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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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컴퍼니를 찾는데……. 입구가 정문밖에 없어서요. 혹시 뒷문이 있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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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을? 왜요?”

이지수가 대화에 끼어 물었다. 여자는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지수를 보곤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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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력서를 내려고요. 신규 디자이너를 찾는다고 해서. 혹시 어디로 들어가면 강윤컴퍼니 인사과에 갈 수 있는지……. 모르시겠죠?”

승오는 당연히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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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과에 직접 이력서를 낸다고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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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씀드리기는 좀 그래요. 전 이만 갈게요. 지갑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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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만요!”

황급히 인사하고 자리를 뜨려던 여자를 승오가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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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윤컴퍼니 직원이거든요. 무슨 일인지 얘기하면 도와줄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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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여자가 순진해 보이는 눈을 더욱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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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봐요. 이력서는 보통 전자나 우편으로 접수하는데 어쩌다 직접 갖고 인사과에 갈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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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저기…….”

잠시 고민하던 여자가 조그맣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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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디자인을 정말 좋아하는데…….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을 못 나왔어요. 그런데 이력서 접수가 초대졸부터라서……. 혹시 저, 월급은 적게 주셔도 되니까, 아니, 월급 전에 면접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부탁드리려고…….”

더듬더듬 말을 마친 여자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승오는 왠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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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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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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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한번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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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여자는 완강하게 봉투를 끌어안고 도리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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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도 모르는 분한테 보여드릴 순 없어요. 이 안에 제 디자인도 들어 있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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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소리 내어 웃는 승오를 이지수가 살짝 노려보았다가 금세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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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고 보여줘요. 어차피 인사과에 가져가지도 못할뿐더러, 혹시 들어가도 내가 지시하면 다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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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승오는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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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사람이거든요.”

[강윤컴퍼니/대표 이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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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에에?”

여자가 엄청나게 놀란 소리를 냈다가 제풀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대통령이라도 만난 듯한 그 반응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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