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 이승오의 이상형 (19/45)


#19. 이승오의 이상형
2022.06.04.


지수는 모두 몸 둘 바를 모르는 가운데 혼자서 해맑은 인턴을 어이없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물론 이걸 파리까지 가서 사지는 않았다. 윤서하의 드레스룸에서 마음대로 꺼내 신었을 뿐이지.

하지만 이 구두는 확실히 파리 컬렉션이었다. 되는 대로 주워섬긴 게 아니라 윤서하가 구두 상자에 직접 그렇게 적어 놓았다. 2018년 파리 컬렉션이라고.

인턴 주제에 너무 건방져.

지수는 표정을 굳히고 차갑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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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조서하 인턴, 이게 밀라노 컬렉션이라고 했지? 바닥에 이탈리아어로 각인이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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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한 번 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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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인턴을 가르치는 것도 내 일이니까.”

지수는 한쪽 구두에서 발을 뺐다. 다른 직원이 얼른 슬리퍼를 가져와 구두 대신 신도록 바닥에 놓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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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밝게 인사한 조서하가 구두를 집어 밑창을 형광등에 비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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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당황해서 갸웃거리는 표정이 정말 볼 만했다. 당연한 일이다. 저 구두에 이탈리아어로 된 각인 같은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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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도 한번 봐. 각인이 있나.”

조서하가 우물쭈물하며 마지못해 구두를 옆으로 넘겼다. 서하와 마찬가지로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신입 디자이너 황주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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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이 있긴 한데……. 프랑스어 같아요. 이탈리아어는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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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지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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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발 좀 다시 신겨 줄래, 조서하 인턴? 다음부터는 본인의 얕은 지식을 너무 믿지 말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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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럴게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하는 쪼그리고 앉아 이지수의 발에 구두를 갖다 대었다. 피곤한 몸으로 파리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샀던 자신의 구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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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팀장님.”

손에 구두를 든 채 쪼그려 앉은 서하와 내려다보는 지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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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하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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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지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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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창에 적혀 있어요.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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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말 하는 거야? 조, 조서하 인턴. 프랑스어 읽을 줄이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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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서하는 신발을 뒤집어 바닥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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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파리. 장인 피에르 뒤부아가 만들다. 마담 서하 윤을 위해서.”

이건 내 거야. 넌 이제 이 구두를 시작으로 네가 훔쳐 갔던 내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게 될 거야. 그 마지막 날에는 너를 죽도록 사랑하던 이승오조차 곁에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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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피에르 뒤부아가 만들었다네요. 마담 윤서하를 위해서. 어, 나랑 이름이 같네?”

‘윤서하’라고 말할 때 몇몇이 움찔했다. 새로운 디자이너들도 그 이름을 아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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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발이랑 착각했어.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이지수가 날 선 어조로 쏘아붙이며 구두를 탁 빼앗았다. 서하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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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제가 잘못 안 거 맞네요.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모르는 게 많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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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개월 동안 뭘 얼마나 가르칠 수 있을지 궁금하네. 앉아서 자리 정리나 해, 조서하 인턴!”

‘인턴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너를 해고하겠다’라는 의지를 남기고, 이지수가 쌩하니 자기 자리로 갔다.

해 봐. 할 수 있으면.

서하는 본래 제 자리였던 그 책상을 보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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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오가 가는 식당은 몇 군데 정해져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반드시 단골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회사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한 다음 사무실로 돌아간다.

서하는 그 모든 식당과 동선을 알고 있었다. 몇 시에 나와 어디로 가는지, 몇 시쯤 커피를 마시고 몇 시쯤 산책을 하는지.

하지만 직접 찾아가진 않았다. 그건 거부감이 들 만큼 어색하고 작위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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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하가 선택한 장소는 길거리였다. 식당에서 카페로 가다 보면 반드시 지나게 되어 있는 떡볶이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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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1인분에 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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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오백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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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인분 먹고 갈게요. 국물 먹어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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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엄.”

아주머니가 비닐 씌운 그릇에 떡볶이를 담는 동안 서하는 따뜻한 국물을 홀짝홀짝 마셨다.

오 분쯤 있으면 오겠네.

이승오를 이용하면 회사에 성공적으로 알 박는 건 물론, 합법적으로 병실에 가볼 수도 있다. 엄마를 만나거나 윤서하의 원래 몸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그토록 끔찍이 열정적이던 너희의 사랑이 쓰레기가 되고 서로를 향해 경멸을 쏟아내며 파국을 맞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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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일 인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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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서하는 사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건 이승오였다. 좀 더 파고들자면, 이승오는 ‘노점에서 떡볶이 먹는 윤서하’를 좋아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이승오가 그렇게 노점이며 김밥헤븐에 서하를 데리고 다녔던 이유.

횡단보도 건너편에 이승오가 멈춰 섰다. 달갑지 않은 류경준도 함께였다. 저 스파이가 왜 저렇게 딱 붙어 있는 건지는 차차 알아봐야 할 일이었다.

서하는 볼이 미어지도록 떡볶이를 가득 물고 오물거렸다. 퉁퉁 불은 떡이 치아에 달라붙고 식도를 묵직하게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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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가씨. 천천히 먹어요. 체하겠네!”

친절한 아주머니가 얼른 어묵 국물을 한 컵 더 담아서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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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압니다!”(감사합니다!)

서하는 가슴을 탕탕 쳐가며 국물로 간신히 떡볶이를 넘겼다.

4차선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는 그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게 보였다. 서하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이승오가 아니라 경준이었지만.

윤서하와 전혀 다른데 어딘지 모르게 윤서하 같은 여자가 포장마차에서 혼자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도망치다가 사흘 굶은 노숙자처럼 우걱우걱 떡을 입에 밀어 넣는 꼴은 또 절대 윤서하가 아니었다.

그래. 이름이 같을 뿐이지. 저런 여자가 윤서하와 닮았을 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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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하…….”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이승오도 서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경준은 이승오가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노점 천막 밑으로 들어가려는 걸 급히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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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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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좀 모자라게 먹어서요.”

훤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경준은 이미 조서하에게 고정된 이승오의 눈길을 알아차리곤 눈썹 사이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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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실에 간식 가져오라고 지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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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묵 하나 먹고 가면 됩니다.”

티격태격하는 소리에 조서하가 뒤를 돌아보곤 황급히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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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인턴 조서하입니다!”

90도로 인사하는 조서하의 입가에 빨간 떡볶이 국물이 묻어 있었다. 승오는 픽 웃으며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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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혼자 맛있게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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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냥, 떡볶이…….”

서하는 손수건을 받지 않고 노점에 걸린 티슈 몇 장을 뽑아 입가를 대충 문질렀다. 떡볶이 국물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어설프게 바른 립스틱과 함께 옆으로 번져 더 엉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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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도 떡볶이 드시러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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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하나 먹을까 하고 왔습니다. 아, 류 비서님도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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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됐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한 경준이 천막 뒤로 약간 물러나 두 사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불편하고 신경 쓰였지만, 승오는 가득 꽂힌 어묵 꼬치 중 하나를 골라 들고 간장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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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했죠? 회사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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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요. 꿈만 같아요.”

립스틱과 떡볶이 국물이 입가에 번진 채 서하가 배시시 웃었다. 꼭 닦아 주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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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저 뽑아주신 은혜에 꼭 보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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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승오는 손수건에 생수를 약간 적셔 서하의 입가를 천천히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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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묻히고 하지는 맙시다. 바보 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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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서하가 황급히 손수건을 빼앗아 입가를 열심히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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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급하게 먹었나봐요. 아침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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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안 먹었어요? 그러면 제대로 밥을 사 먹어야지. 떡볶이로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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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게,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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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서하는 승오의 눈을 피해가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도리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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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저 원래 떡볶이 좋아해요.”

남색 월남치마 밑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서하의 운동화는 어떻게 봐도 시장에서 산 신발이었다. 그마저 곧 발가락이 튀어나오겠다 싶을 만큼 낡았다.

승오는 조서하의 신발에서 눈을 떼고 지갑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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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가씨, 얼마나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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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일 인분. 삼천오백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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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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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표님, 안 그러셔도 돼요!”

조서하가 펄쩍 뛰었다. 승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누런 오만 원짜리를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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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름돈은 저 주지 말고, 이 아가씨 오면 떡볶이 주세요. 튀김 주셔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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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사장님이 정이 많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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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안 그러셔도 돼요. 저 돈 있어요!”

허둥지둥 꺼내는 지갑조차 지난번 길에 떨어뜨렸던 그 문구점 지갑이었다. 심지어 안에는 달랑 오천 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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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사내 복지라고 생각하고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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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요?”

조서하가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순진하게 헤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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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대표님! 사내복지 최고예요! 저 월급 타면 떡볶이랑 순대 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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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죠. 천천히 마저 먹고 들어가세요.”

손을 흔들고 돌아서려던 승오의 옷자락을 서하가 덥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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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손수건 가져가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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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거 적셔서 입 닦지 않았어요? 사용은 본인이 해 놓고, 나더러 가져가서 빨아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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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요오…….”

아까까지 웃더니 또 금세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내젓는다. 삼 년 전의 지수보다도 더 순박하고 마음 쓰이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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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제가 깨끗하게 빨아서 갖다 드릴게요. 다림질도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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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갖다 주게요? 설마 대표실에 직접 올라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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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아니, 그것도 아니고요!”

그러잖아도 불쌍해 보이는 조서하는 정말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승오는 놀리는 것을 그만두고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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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 대표실로 갖다 줘요. 나 없으면 책상 위에 올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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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어떻게 감히 대표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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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 둘 테니까 괜찮아요. 그럼 이만.”

이쯤에서 승오는 멋지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완전히 퇴장했다. 경준도 서하를 흘끔 쳐다보곤 카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혼자 남은 서하의 얼굴에서 서서히 울음기가 사라졌다. 불쌍하게 처져 있던 눈꼬리가 제 위치를 찾고 입술의 떨림도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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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끔찍하네.”

저렇게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데. 자기보다 잘난 윤서하 옆에서 얼마나 열등감에 몸부림치면서 살아왔을까.

떡볶이가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서하는 남은 떡볶이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이승오의 손수건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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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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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요? 아직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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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좀 안 좋아서요. 잘 먹었습니다.”

속은 안 좋았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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