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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1화 (1/116)

1화

고양이에겐 장난감이 필요하다.

세리아는 고양이 수인이었기에 재밌는 장난감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유엘 리커드는 최고의 장난감이다.

물론 유엘은 저와 같은 고양이 수인이기에 장난감이라 하기엔 애매했지만, 여하튼 그는 놀리는 맛이 있다.

“유엘!”

“……힉!”

풀숲에서 확 튀어나온 세리아가 단숨에 유엘을 덮쳤다.

놀란 유엘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풀썩, 바닥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저를 덮친 세리아의 무게가 느껴졌다.

“세, 세리아!”

유엘의 새까만 머리카락 위로 고양이 귀가 쫑긋,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1차 성장밖에 하지 않은 수인은 깜짝 놀라면 꼬리나 귀 같은 말단 부위를 드러내곤 했다.

“안녕, 유엘. 어때? 놀랐지?”

세리아가 짓궂게 웃으며 유엘의 귀를 붙잡았다.

쓰담쓰담. 작은 손가락이 예민한 귀를 만지자 반사적으로 귀가 움찔움찔했다.

유엘은 눈물을 머금은 듯한 푸른색 눈동자를 잘게 떨며 얼굴을 붉혔다.

원체 하얀 피부라 그런지 반응이 눈에 띄었다.

“저, 저리 가!”

시뻘게진 얼굴로 앙칼지게 소리치자, 세리아는 킥킥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유엘이 이렇게 재밌게 반응해 주니 풀숲에 잠복한 보람이 느껴졌다.

“자, 일어나.”

작고 하얀 손을 내민 세리아는 눈을 휘며 웃었다. 금색 눈동자 속 동공이 세로로 긴 것이 영락없는 고양이였다.

그러나 분홍색 단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장난스러운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멍하니 세리아를 바라보던 유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획 돌렸다.

“됐어. 너 싫어.”

“나는 너 좋은데.”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들려온 대답에 유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날 생긴 제 고양이 친구는 이토록 명랑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럴 때면 도통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유엘은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굴곤 했다.

“그래도 난 너 싫어!”

꿋꿋하게 말한 유엘은 세리아의 도움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달리 그다지 화가 나 보이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싫다는 말은 잘도 하는데 별로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서 세리아는 성큼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치, 그래도 나는 너랑 놀려고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누가 기다리래?”

“하지만 유엘도 날 기다렸잖아.”

허점을 찌른 말에 유엘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됐다. 덕분에 긴 속눈썹이, 그 밑의 눈물점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예쁘다. 그런 원초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엘이 뒷걸음질 치며 대뜸 소리쳤다.

“내, 내가? 너를?!”

“그럼 너지 누구야. 계속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잖아. 네가 우리 집에서 찾을 만한 사람이 나밖에 더 있겠어?”

조목조목 하는 말이 유엘에게로 날아와 펑펑 터졌다.

발갛다 못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을 한 유엘은 별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술만 오물거렸다.

잘 익은 사과처럼 도톰한 유엘의 입술은 특히 예뻤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늘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성격은 좀 까칠하지만.’

그래도 세리아는 그런 유엘이 좋았다. 예뻐서 보는 맛이 있었고 놀리면 즉각적인 반응을 해 줬다.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성격은 유한 편이었고 간혹 과하게 놀린 날에도 유엘이 난폭하게 행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랬다면 오빠들이 가만있지도 않았겠지.’

난리를 칠 오빠들을 다섯이나 상상했더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푹 한숨을 내쉰 세리아는 어느덧 제게서 슬금슬금 멀어진 유엘을 발견했다.

‘언제 또 저기까지 도망쳤대.’

옅게 웃은 세리아가 팔을 번쩍 들고 붕붕 흔들며 말했다.

“내일 또 놀자!”

“이제 너랑 안 놀 거야!”

앙칼진 대답에 세리아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헤어질 때마다 저런 말을 해서일까. 이제는 인사말처럼 들렸다.

“응, 그래. 내일도 나오겠다고?”

“……아니야!”

희미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저렇게까지 필사적일 건 또 뭐래.’

이러니 세리아가 유엘을 쉽게 놓을 리 없다.

유엘은 좋은 장난감이자, 처음 사귄 ‘진정한’ 친구였으니까.

* * *

세리아가 열 살이 될 동안 친구 하나 없던 이유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유약하게 태어난 탓에 1차 성장 시기가 늦게 찾아왔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런 세리아를 과보호하는 오빠가 다섯이나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하려면 어쩌다 아들을 다섯이나 키우게 된 공작 부부의 노고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우선, 그들이 얼마나 딸을 바라 왔는지는 이름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다.

첫째 아들부터 다섯째 아들까지 그들은 모두 ‘리’ 자 돌림이며, 이름의 첫 글자는 자음의 순서를 따랐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가리, 나제리, 다노리, 라류리, 마롱리.

둘째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반쯤은 우스개로 지었을지 모르나, 그 후로 줄줄이 아들만 나오게 되니 아예 이름에 순서를 정했다.

덕분에 그들을 잘 모르는 이도 이름만 들으면 누가 몇 째 아들인지 단번에 알 수 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세리아는 특별했다.

만약 세리아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첫 글자가 ‘바’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리’로 끝나겠지만, 부부는 귀한 딸의 이름을 그저 예쁘게 지어 주는 데 만족했다.

그렇다 보니 온 집안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가뜩이나 귀한데 몸까지 약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그 지나친 관심이 세리아를 답답하게 만들곤 했다.

“유엘, 어디 있어?”

그러니 제게 관심을 주지 않는, 아니 아예 대놓고 도망 다니는 유엘은 세리아에게 아주 색다르고도 한편으론 편안한 존재였던 거다.

비록 유엘은 자신을 피해 다니기 바빴지만 말이다.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건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가까울 테다.

세리아는 누군가 자신을 싫어한다면, 상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아이 특유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감각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세리아는 그런 면에서 예민했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놀이였다.

뭐, 유엘이 너무 전력을 다해 숨어서 문제긴 하지만.

‘또 숨었네.’

어제 나랑 안 논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나.

세리아는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 내며 정원을 둘러봤다.

몸이 약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갑작스럽게 몸 상태가 악화된다는 점이다.

잘 놀다가 난데없이 쓰러지기 일쑤였으니, 조금만 무리해도 스스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픈 걸 얘기하면 유엘도 나랑 놀아 주려나.’

문득 든 생각에 세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렴,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흥미도 떨어질 게 뻔했다.

유엘이 오빠들처럼 저를 걱정하고 싸고돈다면, 놀아도 노는 기분이 들 리 없었으니까.

‘조금 힘든데…….’

세리아는 선 자리에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불안하던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열이 나려는지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냥 들어가서 쉴까.’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았지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았다.

리커드 후작은 수도에서 처리할 일이 있기에 겸사겸사 공작가에 머물고 있었으나, 일이 전부 해결됐는데도 몇 달씩 붙잡는 건 무리였다.

유엘을 보내지 말라고 생떼를 쓸 정도로 세리아가 철없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있는 동안에 많이 놀아야 하는데.’

평소엔 재밌기만 하던 숨바꼭질도 지금은 버겁기만 했다.

아쉽더라도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 그리 멀지 않은 근처에 숨어 있는 유엘을 발견했다.

“찾았다!”

그 우렁찬 소리에 유엘의 귀가 다시금 쫑긋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획 뒤돌아본 유엘은 뭔가 부루퉁하면서도 동시에 꼭 울 것만 같은 이상한 표정으로 세리아를 봤다.

“왜 자꾸 쫓아와?”

“쫓아온 게 아니라 찾은 거야.”

그거나 그거나.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유엘의 불만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그 반응이 또 새삼 마음에 들어서일까. 세리아는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것도 금세 잊은 채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 열 발자국. 딱 그 정도만 뛰고서, 세리아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세, 세리아?!”

괜히 툴툴대고 있던 유엘의 눈이 단숨에 확장됐다.

귀에 이어 꼬리까지 뿅 하고 나타난 유엘은 고양이답게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세리아에게로 달려갔다.

“왜 그래! 장난치지 마!”

장난이면 이젠 진짜로 안 놀 거야!

나름 귀여운 협박까지 했으나 쓰러진 세리아는 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정말로 어디가 안 좋은 걸까.

차라리 짓궂은 장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유엘은 세리아 곁으로 다가갔다.

푸른색 눈동자에서 그와 똑같은 색의 눈물이 금방이라도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을 때.

“구워어얽-! (세리아-!)”

어디선가 들려온 괴상한 울음소리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들어 보니…….

맙소사, 드래곤이다.

‘환영인가?’

꿈뻑꿈뻑. 눈만 두어 번 깜빡이기도 하고 손등으로 쓱쓱 눈가를 닦아 보기도 했지만, 환영은 통 사라지질 않았다.

게다가 점점 이쪽으로 오고 있질 않은가!

“세리아!”

세리아, 세리아…….

유엘이 멍청한 표정으로 세리아를 꼭 껴안고 있자, 사방에서 세리아의 이름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마치 메아리처럼.

그러나 메아리라 하기엔 목소리가 묘하게 다 달랐다.

“세리아가 또 쓰러졌어!”

“젠장, 내가 저 녀석이랑 놀지 말라 했는데.”

“가리 형! 얼른 인간화나 해.”

“막내 상태는 어떤데?”

“일단 저 꼬맹이부터 치워 봐.”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 다섯은 제각각 달랐으나 언뜻 봐도 서로 놀랍도록 닮았다.

키도, 성격도, 심지어는 동물형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세리아의 오빠였다.

총 다섯. 그러니까, 무려 다섯이었다.

그걸 확인한 유엘은 저도 모르게 히끅, 딸꾹질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동공은 눈에 띌 정도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자, 잘못했어요.”

그래서 유엘은 우선 사과부터 하고 봤다.

차라리 세리아 옆에 나란히 쓰러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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