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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7화 (7/116)

7화

“응? 꿈에서?”

뜬금없는 고발에 세리아가 멀뚱히 눈만 깜빡일 때였다. 그에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씨익 입꼬리를 늘어뜨리려 하자.

“시, 시엘! 인사부터 해야지!”

유엘이 말을 더듬거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은 말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애쓰는 오빠가 가여워서인지는 몰라도.

시엘은 진실을 자세히 밝히지 않는 대신 제 이름을 말해 줬다.

“내 이름은 시엘 리커드야.”

“시엘이라고 부르면 될까?”

“응.”

“나이는?”

“여섯 살!”

손가락을 쭉 펴며 밝게 답하는 시엘을 보고 있자니 경계심 많은 세리아도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유엘. 나 네 여동생 마음에 들어.”

“그래?”

“응. 유엘이 둘이 된 거 같잖아.”

“그건 아니야.”

깨알같이 자신과 여동생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유엘을 뒤로한 채, 세리아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도리어 그에 아쉬움을 느낀 건 유엘 쪽이었으나 그걸 티 낼 린 없었다.

“가자. 집 구경시켜 줘.”

그렇게 말한 세리아는 유엘보다 더 먼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누가 집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알기 어려운 광경이었으나, 어쨌든 유엘은 후다닥 세리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근데 유엘.”

“응?”

“꿈에선 왜 날 찾았어?”

대뜸 물어 온 세리아의 목소리가 하도 평온한 탓일까. 유엘은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어…… 어어?”

다시금 제 치부가 갑작스레 드러나자 유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왜 그랬냐고, 응?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언제나처럼 짓궂은 표정을 짓는 세리아를 보고 있자니, 유엘은 새삼 예전으로 -그래 봤자 한 달 정도지만-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나, 나는 그런 적 없어!”

입술을 씩 늘어뜨리는 표정은 정말이지 세리아 특유의 그 무언가였다.

유엘은 새빨개진 볼을 숨기지도 못한 채 씩씩거리며 반박했지만, 오늘따라 여동생이 자꾸 그를 힘들게 했다.

“아니야! 분명 그랬어!”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보일까 걱정돼서일까. 시엘 역시 질세라 빽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알아!”

“직접 봤으니까! 막 비 오고 무서워서 오빠 방 갔는데, 오빠가 언니 불렀어!”

남매가 아웅다웅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세리아는 눈을 번뜩였다.

여섯 살이지만 똑 부러지게 말하는 시엘을 보고 있자니, 괜찮은 한 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이서 같이 유엘 놀리면 재밌겠다.’

양쪽에서 유엘을 괴롭힐 생각을 하니 귀가 쫑긋하고 나올 정도로 짜릿했다.

그렇게 세리아가 음흉하게 웃고 있을 때, 다행히 유엘은 시엘에게 정신이 팔려 그 살벌한 미소를 보지 못했다.

“너……. 너 자꾸 그러면 간식 안 챙겨 줄 거야.”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엄포를 놓았지만, 순식간에 제 여동생이 울먹이자 유엘은 황급히 뒷말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만.”

그 말에 시엘이 언제 울먹였다는 듯 방긋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목격한 세리아 역시 활짝 웃었다.

역시, 근사한 한 팀이 될 것 같았다.

* * *

우선 유엘은 세리아에게 저택과 정원을 소개했다.

물론 그 외에도 연무장이나 파티장 등 갈 곳도 보여 줄 만한 곳도 무수히 많았으나, 세리아가 그런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건 그도 잘 아는 부분이었다.

둘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던 시엘은 아이답게 금세 흥미가 떨어져 중간에 다른 길로 샜고, 동시에 세리아의 흥미도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술래잡기할까?”

“술래잡기? 좋아, 그럼 너부터 술래!”

“뭐, 뭐?”

그래서 유엘은 짧게 구경시켜 준 뒤, 전처럼 세리아와 쫓고 쫓기는 놀이를 시작했다.

헤어졌다가 만나서 애틋함이란 감정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엘은 전처럼 울먹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조금만 툭 쳐도 화들짝 놀라곤 해서 세리아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그런저런 이유를 다 제외해도.

“역시 네가 좋아.”

그냥, 유엘이 좋았다.

“근데 왜 답장 안 했어?”

유엘은 ‘난 너 싫어!’ 따위의 말 대신 조금 참신한 반문을 했다.

아닌 척하고 신나게 놀았지만, 사실 내내 마음이 찜찜한 탓이었다.

덕분에 당황한 건 세리아 쪽이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편지 쓰는 거 안 좋아해.”

대강 얼버무린 세리아는 안심한 유엘이 무어라 더 묻기 전, 재빨리 선수 쳤다.

“그래도 너랑 노는 건 좋아. 다른 애들은 시시하기만 하거든.”

“정말?”

유엘은 저도 모르게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말이 주는 묘한 뿌듯함이 자꾸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난 세리아한테 특별한 사람인 거야.’

그 믿음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한껏 고양된 기분에 취한 유엘은 특별한 친구에 맞는 행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유엘은 다른 가문의 자제들이 저택을 방문한다고 할 때도, 의연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

* * *

‘세리아랑 둘이서만 놀고 싶은데.’

‘유엘이랑만 놀고 싶은데.’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다.

둘 다 그리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본심을 내뱉지 못했다.

시작은 이러했다.

세리아가 후작저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벌써 일파만파로 퍼진 건지, 순식간에 많은 서신이 리커드 가문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도 온다고요?”

“너희가 원한다면 말이다. 너는 처음 보는 친구들일 거다. 그래도 세리아하고는 구면이라던데.”

아버지의 말에 유엘은 무어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발끝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언젠가부터 세리아를 독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으나, 그걸 드러내서 세리아에게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그녀의 ‘특별한 친구’이지 않은가.

“어떻게 하고 싶니?”

그래서 유엘은 후작의 부드러운 물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할래요. 분명 세리아도 좋아할 거예요.”

특별한 친구라면 사사로운 질투심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세리아와의 놀이 시간을 나눠 가진다고 못마땅해해선 안 됐다.

적어도 유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세리아는 자유로운 아이니까 한 사람에게만 구속당하는 걸 싫어할 거라고.

자신과 노는 걸 가장 좋아한다지만 그렇다 해서 다른 친구와 놀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건 원치 않을 거라고…….

‘내 멋대로 굴면 세리아가 싫어할 거야.’

결국엔 ‘특별한 친구’라는 것도 세리아가 인정할 때만 유지되는 거다.

마치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불안감 속에서 유엘은 최대한 성숙해 보이는 판단을 했고.

“싫어! 유엘이랑만 놀 거야!”

안타깝게도 그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으면 왜 물어봤대?”

새초롬한 세리아의 대답에 가리는 미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유엘은 좋다고 했으니까.”

“……유엘이?”

정말? 믿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으나, 제 첫째 오빠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때 세리아가 느낀 감정은 참 복잡했다.

짜증, 분노, 섭섭함, 충동.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순간적으로 느낀 열 살의 소녀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수락했다.

“흥, 그럼 다 불러! 상관없으니까.”

나는 너만 있으면 되는데, 넌 아니었나 보지?

미묘하게 엇나가게 된 둘은 결국 누구도 원치 않았던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리아는 ‘예전에 봤던’이라든가 ‘로브 백작 가문’, ‘헬링턴 남작의 장남’ 따위의 단서들을 듣고서도 손님의 정체를 유추할 수 없었다.

그야 그간 공작저를 방문한 손님이 너무도 많았고, 그들은 케스터 가문과 어떻게든 엮이기 위해 세리아에게 자신들의 자녀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안녕? 혹시 나 기억해? 저번에 만났었는데.”

그러나 직접 마주한 순간, 정확히는 그 뺀질거리는 모습을 보자 세리아는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고작 저보다 한 살 더 많은 주제에 온갖 어른인 척은 다 하던 소년.

험담을 들은 뒤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지도 몰랐으나, 뭔가 탐탁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래서 세리아는 눈을 번뜩 뜨며 그를 노려봤다.

후작저를 찾은 이는 세리아가 만났던 열한 살 루이 로브와 열 살 동갑내기 둘로, 총 세 명이었다.

당연하게도 세리아에게 그들은 불청객이었고 -비록 세리아가 승낙한 거지만- 별로 좋은 인상도 아니었기에 경계심부터 들게 됐다.

“근데 왜 반말이야. 저번엔 나한테 존대했으면서.”

“그야 네가 반말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

“마음 바뀌었어. 다시 존대해.”

꽤 사나운 기세로 대했으나 루이는 알겠다면서 능글맞게 웃어 넘겼다.

덕분에 불안한 눈빛으로 세리아와 소년들을 번갈아 보던 유엘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그, 그럼 정원으로 갈까?”

그렇게 그들은 집주인인 유엘의 주도하에, 어찌어찌 서로 얘기도 나누고 나름대로 놀게 됐다.

그러나 세리아가 유엘에게만 살갑게 대하는 탓에 그는 괜히 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더 큰 걱정은, 이대로 가다간 세리아에 대한 오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는 수 없이 유엘이 잠시 그녀를 따돌리고 소년들에게로 다가가던 때.

“하여튼 성격 이상하다니까.”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노골적인 험담에 유엘의 귀가 불쑥 튀어나왔다.

“사회화가 덜됐다니까.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예의도 없고 건방져?”

“공녀면 다야? 아까 형한테 했던 말 진짜 짜증 났어.”

“근데 왜 밴매리야~”

“맘이 바껴써, 대시 젼대해.”

그 나이대 남자애들답게 유치하고도 직설적으로 저들의 화를 풀었다.

말투를 이상하게 하며 세리아를 비꼬는 것도 모자라 내뱉는 숨결엔 명백한 적의가 묻어났다.

유엘은 너무 흥분해서, 자신이 흥분했는지도 몰랐다.

한순간에 전신이 떨리고 머리에 피가 쏠렸다. 동시에 눈앞이 핑 돌 정도로 호흡이 가빠졌다.

세리아에게 놀림 받을 때마다 늘 겪던 증상이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적은 없었다.

아니, 그때의 느낌과 지금의 이 기분은 완전히 달랐다.

이건, 이건 도저히…….

“아프다더니, 머리가 아픈 거 아니냐?”

“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뭐라 그랬어?”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방금 한 말 취소해!”

다짜고짜 달려가면서 소리친 유엘은 그들이 뭐라 할 새도 없이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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