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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8화 (8/116)

8화

“취소해!”

“으악!”

“취소하라고!”

극한의 흥분에 유엘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터져 버린 분노를 잠재울 길이 없어 연약한 팔을 휘둘렀다.

작은 머리통 속에는 온통 세리아를 모욕한 말을 어떻게든 취소시킬 생각뿐이었다.

“왜, 왜 이러는 건데!”

“세리아가 뭘 잘못했는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누가 얘 좀 떼어 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유엘은 동갑내기 또래에게 달려들어 어설픈 싸움 실력을 선보였고 근처에 있던 두 명이 그런 유엘에게 엉겨 붙었다.

“아야!”

“이게 진짜!”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유엘은 손톱을 세워 상대의 얼굴을 할퀴고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어찌나 악착같은지, 아무리 주변에서 말리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도리어 말리려던 둘마저 유엘의 발에 걷어차이고 손에 머리를 뜯길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년들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이 나며 짜증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얌전히 맞아 줬더니 정신을 못 차려?”

얼핏 봐도 유엘은 작았다. 게다가 곱상한 얼굴 때문인지 몰라도 한 주먹거리도 안 될 정도로 약해 보였다.

고작 그런 애송이가 몇 번 봐줬더니 끝을 모르고 덤벼들었다. 그게 그들의 화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한 루이가 주먹을 휘두르자, 그걸 신호탄 삼아 나머지 두 소년도 몸을 날려 덤비기 시작했다.

어쨌든 먼저 시작한 건 유엘이었고 그에 맞선 건 셋 가운데 가장 신분이 높은 루이였다.

과연,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기에 괜찮다며 자기 합리화 할 수 있었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끼리끼리 논다더니.”

만일 소년들의 나이가 지금보다 서너 살 더 많았거나, 혹은 그들 중 누군가가 평민이었다면 이렇게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귀족 자제로 자란 아이 특유의 자신감과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 투쟁심이 너무도 강했다.

그런 그들에게 딱 봐도 나약하고 수적으로도 열세한 유엘에게 맞는다는 건 씻지 못할 치욕과도 같았다.

냉철한 이성이 자취를 감추자 소년 특유의 전투력이 들끓었고, 유엘은 속수무책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읏!”

그러나 유엘은 애써 신음을 삼켜 냈다. 고작 이런 발길질에 아파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겨 내야만 했다. 이겨 내서, 세리아를 모욕한 말을 없애야 했다. 사과를 받아 내야만 했다.

“아악!”

“취소하라고!”

그래서 유엘은 제 얼굴에 주먹이 날아오고 배에 발길질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상대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까진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아픔에 눈물을 터트릴 수도 없었다.

세리아의 친구라면, 세리아를 위한다면 그래선 안 됐다.

“……유엘?”

그러나 싸움이 길어졌다. 물론 세리아가 그새를 못 참고 유엘을 찾으러 나왔다는 거에 가깝겠지만.

하여튼 세리아는 금세 유엘을 찾아냈다. 얻어맞으면서도 어떻게든 맞서 싸우고 있는 유엘을 말이다.

‘유엘이 저런 모습도 있다고?’

뭐라 소리치며 악을 지르고 힘껏 덤비는 기세가 퍽 사납고 폭력적이었다.

하기야 누구나 싸우는 와중엔 그런 행동을 보이겠지만, 늘 온순하던 유엘이 그런다는 게 세리아에게 있어선 큰 충격이었다.

“야-!!!”

하지만 그런 감상은 뒷전의 일이다.

충격은 짧았고 곧이어 세리아는 전신에 휘몰아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세, 세리아?”

그리고 그 소리에 놀란 유엘이 고개를 돌리자.

“유엘한테서 떨어져, 이 개자식들아!!!”

상스러운 말을 거세게 내뱉은 세리아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어…….”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모두가 멍하니 멈춰 있을 때.

성난 황소처럼 돌진한 세리아는 그대로 날아 루이의 몸을 들이받았다.

“악!”

속수무책으로 세리아에게 밀려난 루이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땅에 철퍼덕 쓰러졌다.

세리아는 그런 루이를 뒤로한 채, 곧바로 획 몸을 틀어 다음 목표물을 노려봤다.

그 흉흉한 눈빛에 남은 두 소년이 움찔 몸을 떨자 세리아는 커다란 눈을 살벌하게 치켜뜨며 말했다.

“치사하게 셋이서 공격해? 그것도 키도 작고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연약한 유엘을!”

“세리아…….”

지금까지 맞은 것보다 방금 말이 더 아파…….

유엘은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삼키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흥분에 잊고 있던 통증이 밀려 왔고 입안에선 피 맛이 났다.

한바탕 싸움이 휘몰아친 뒤의 흔적이었다.

“왜 유엘을 괴롭혀! 왜!”

그러나 세리아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세리아가 포악한 표정으로 돌진하자 저도 모르게 등을 돌려 도망치려던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붙잡혔다.

매미처럼 소년의 뒤에 착 달라붙은 세리아는 주먹을 옹골차게 만 뒤 소년의 머리통을 야무지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악! 아악! 떨어져, 떨어지라고! 아, 하지 마! 악!”

“네가 뭔데 내 친구를 때리는데!”

“아, 이 미친! 악!”

꽤 처절한 목소리로 애원 아닌 애원을 했으나 들어줄 세리아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이용하여 콱 귀를 문 세리아는 그대로 소년의 귀를 물어뜯었다.

“아아악-!”

날것 그대로의 비명이 정원에 울려 퍼졌다.

으레 험담하는 장소가 그렇듯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정원 구석진 곳이었으나, 이리 소란이 벌어지니 시종들이 눈치채고 허겁지겁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 미친 게 진짜!”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원은 넓었고, 그들의 개싸움을 발견한 시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귀를 뜯기고 있던 소년은 세리아를 보자 순간적으로 붙잡았던 이성의 끈이 다시 풀려 버렸다.

순식간에 제정신이 아니게 된 그는 뒤로 손을 뻗어 세리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꺄악!”

그리고 그대로 잡아 뜯는 바람에 세리아는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세리아!”

“어딜 가려고!”

새된 목소리에 깜짝 놀란 유엘이 아픈 것도 잊고 벌떡 몸을 일으켜 소년에게 달려갔으나, 곁에 있던 다른 소년이 그를 다시 때려눕혔다.

“공녀라고 봐줬더니, 콱 씨! 진짜 정신병자 아니야?”

퍽.

그러는 사이 못된 남자애가 금세 이성을 잃고 세리아를 때렸다. 주먹질에 맞고 내동댕이쳐진 세리아는 통증과 충격에 할 말을 잃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곧 작은 몸에 다시 한번 주먹질이 가해졌다. 세리아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그만둬!”

그에 반항한 건 다름 아닌 유엘이었다. 이미 주먹질에 한 번 쓰러졌던 유엘은 용수철처럼 벌떡 몸을 일으킨 뒤 재빠르게 달렸다.

옆에 있던 소년이 다시금 그를 저지하려 했으나, 이번엔 유엘이 빨랐다.

“컥!”

추진력을 얻은 손바닥이 정확히 소년의 목을 강타하자, 짧게 신음을 터트린 소년은 맑은 침을 후드득 흘리며 털썩 무릎 꿇었다.

그사이에 유엘은 세리아를 때린 소년에게 달려가 다리를 붙잡아 넘어뜨렸다. 그리고.

“으…… 아, 아아악-!!!”

소년의 다리를 미친 듯이 깨물었다.

울분이 섞인 감정이 너무 괴로워서 유엘은 송곳니가 아프고 턱이 얼얼할 정도로 다리를 꽉 깨물었다.

소년이 뭐라 소리치며 제 머리에 발길질했지만, 유엘은 결코 문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세리아를 때렸으니까.

감히 세리아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내던진 것도 모자라 저 작은 얼굴에 주먹질했다.

세리아를 험담한 것도 모자라서…… 그걸로도 모자라서!

‘세리아가 뭘 잘못했는데!’

조금 까칠하고 사회성이 떨어진다 해서 이런 처사를 받아야 한다고?

유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 그만해-!”

그래서 유엘은 아무리 소년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빌어도 멈추지 않았다.

세리아가 받았을 고통에 분노가 치밀었고 그걸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가 또다시 들끓었다.

이렇게라도 해소하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차라리 자신의 송곳니가 으스러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엘 리커드, 그만해라.”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산하게 스치자, 유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년의 다리를 놓아줬다.

이제 저 소년들을 심판하는 건 자신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리아, 괜찮아?”

좀 전과는 달리 다정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유일하게 제 여동생을 대할 때만 유순해지는 첫째가 등장한 것이다.

유엘은 얼얼해진 턱을 어루만지며 가리 케스터를 바라봤다. 동시에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세리아도.

“……세리아!”

뺨이 발갛게 부은 세리아를 보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유엘은 거의 오열을 하며 세리아 곁으로 다가갔다.

유엘이 다가오는 걸 확인한 가리는 세리아를 바닥에 앉힌 뒤, 소년들에게로 다가갔다.

상황을 정리할 때가 온 것이다.

“……유엘.”

“세리아, 흑.”

어느덧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유엘은 세리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뭉개진 발음으로 중얼거리듯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사과했다.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세리아…….”

한참을 세리아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며 훌쩍이던 유엘은 고개를 들고 세리아의 볼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물었다.

“많이 아팠지?”

“……아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하려던 세리아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보단 마음이 아팠다.

“아파! 당연히 아프지. 아프다고! 바보 멍청이 유엘 리커드!”

저보다 훨씬 엉망이 된 유엘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제 몸은 신경도 안 쓰고 왜 이렇게까지…….

“네 꼴을 봐! 지금 내 걱정 할 때야?!”

울컥한 마음에 소리쳤지만, 그 감정엔 오직 속상함뿐이었다.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그래서 너무 서러웠다.

유엘이, 다정한 내 친구 유엘이 이렇게 다친 게 너무 서러웠고.

“하지만…… 네가 다쳤잖아.”

“멍청이 유엘! 넌 진짜 바보야!”

이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걱정해 주는 유엘이라서 더 서러웠다.

“흐어엉-!”

그래서 세리아는 목청껏 소리 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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