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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25화 (25/116)

25화

“어머니, 아버지. 세리아는요?”

가리는 출가 후 리커드 저택 근처의 백작저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급보를 듣고 빠르게 와 줄 수 있었다.

“세리아, 많이 아프니?”

“아, 아파…….”

“그래, 많이 아프지? 괜찮아. 괜찮을 거야, 세리아…….”

과거에 성장통을 크게 겪어 본 가리는 세리아가 겪는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제 여동생을 꼭 안고서 밥도 거른 채 몇 시간이고 내내 곁에 붙어 있었다.

다행히 드래곤의 기운이 세리아의 통증을 누그러트리는 데 도움이 됐고, 며칠간 가리가 세리아를 보살피자 그녀도 점점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제 세리아는 저 없이도 괜찮을 거예요.”

“급히 와 줘서 고맙구나, 가리.”

“당연한 일인걸요. 세리아가 기운 차릴 때까지 잘 돌봐 주시고요. 괜찮아지면 꼭 전서 보내 주세요.”

“그래, 더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렴.”

급하게 왔던 터라 가리는 오래도록 머물 수가 없었다.

그로선 이미 충분히 무리했으나, 세리아가 완쾌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게 영 찝찝한 듯했다.

그런 아들의 등을 밀어 주는 건 부모의 몫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백작저로 돌아간 가리를 뒤로한 채,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세리아를 돌봤다.

이때부턴 유엘이 의원 못지않게 세리아를 보살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방을 찾아 세리아의 곁을 지키고 불편한 곳은 없냐고 수도 없이 물어보니, 되레 세리아가 그만 좀 하라고 유엘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정도였다.

그렇게 꼬박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세리아는 다시금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성장이 끝나고 완쾌한 세리아는.

“냥! 냐아-! (또! 또 고양이야!)”

여전히 고양이었다.

쫑긋한 귀, 살랑이는 꼬리, 분홍색의 탐스러운 털과 선명한 금안. 발라당 누워서 봐도 명백한 고양이였다.

“냐-! (왜 또!)”

불만 섞인 목소리로 앙칼지게 소리친 세리아는 한동안 고양이의 모습으로 난리를 치다가, 제풀에 지쳐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기대도 안 했지만.”

세리아는 시종이 옷을 다시 입혀 주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너무 억울해!”

정말이지, 이럴 순 없다. 아니, 이래선 안 된다!

세리아는 제 머리카락을 붙잡은 채 시시덕거릴 다섯 오빠를 떠올렸다.

첫째 오빠는 드래곤, 둘째 오빠는 호랑이, 셋째 오빠는 치타, 넷째와 다섯째 오빠는 쌍둥이답게 사이좋게 표범!

게다가 아직 3차 성장이 일어나지 않은 넷째와 다섯째 오빠는 드래곤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근데 나는 왜 고양이냐고!”

억울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세리아는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뜩이나 몸도 약해서 서글픈데, 기왕에 멋진 호랑이 같은 거로 변신했으면 얼마나 좋냔 말이다.

곧 이 소식이 오빠들에게 퍼진다면, 그 특유의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이죽거릴 게 뻔했다.

“역시 우리 막내는 고양이지. 너무 귀여운 우리 리리, 언제까지나 고양이로 남아 줘…….”

세리아는 제 오빠들이 할 법할 말을 중얼거렸다.

온종일 고양이 얘기를 꺼내며 놀리는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하니, 생각하면 할수록 더 열받는 거였다.

“에휴, 같은 고양이한테 위로라도 받아야지.”

그리 생각한 세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유엘을 찾았다.

세리아는 그를 붙잡고서 다짜고짜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엘은 중간중간 “그래도 나아서 다행이야.”라는 진심을 꺼냈다가 핀잔을 받고 얌전히 맞장구를 쳐 줬다.

“난 이제 너밖에 없어, 유엘.”

이 말엔 감동해야 하는 건지, 주책맞게 설레야 하는 건지 몰라 유엘은 그저 두 눈을 확장했다.

“고양이 동지여, 영원하라!”

곧장 들려온 근엄한 말에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려야 했지만 말이다.

주먹까지 불끈 쥐며 결연하게 말하던 세리아는 이내 차분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서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유엘.”

“응?”

“날 구해 줘서.”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진심이 가득했다.

고맙다는 말을 이런 상냥한 어조로 말해서일까. 유엘은 꼭 고백이라도 받은 것 같은 묘한 수줍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괜스레 목 뒤를 훑으며 자책했다.

“아니야. 내가 좀 더 재빨랐으면 네가 연못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거기 있는 연못이 잘못한 건데 왜 네가 자책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뜬 눈이 인상적이었다. 유엘은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아 큽, 하고 참아 냈다.

사고가 이토록 극명히 다르다는 건, 확실히 재밌는 일이었다.

“아무튼 고마워, 유엘.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로 변해 줄래?”

“응…… 뭐?”

“고. 양. 이.”

씨익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하는 말이 황당하기만 했다.

보통 저런 말은 도움을 주고서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 고양이로는 갑자기 왜?”

“난 네가 고양이로 변한 건 한 번도 못 봤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대체 왜?

다분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세리아는 완강했다.

하지만 유엘도 평소처럼 곧장 부탁을 들어주기엔 무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유 없이 고양이로 변하긴 민망했기 때문이다.

수인이라지만 사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고양이의 모습은 조금 어색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고양이라지만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모습이지 않은가!

물론 세리아처럼 전혀 꺼리지 않는 수인도 있지만, 반면 유엘처럼 부끄럼을 타는 수인도 있는 법이었다.

“나…… 성장통 겪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그러나 세리아가 풀 죽은 목소리로 웅얼거리자, 유엘의 몸이 보란 듯 움찔했다.

“아직도 막 아픈 것 같은데…… 의원이 안정을 취하라는데…….”

저건 덫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미끼를 던지고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덫이다.

“고양이 털을 좀 만지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뻔한 장난이란 걸 알면서도 유엘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건 반칙이잖아.’

세리아가 무릎을 꼭 껴안은 채 애달픈 눈으로 쳐다봤다. 저런 모습을 하고 부탁하는데, 유엘이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은 세리아도 잘 알 터.

“너 진짜…….”

윽, 미약하게 소리 낸 그가 못내 부끄러운 듯 마른세수를 벅벅 했다.

그러다 결심한 듯, 벌게진 얼굴로 어릴 적 그 여느 날처럼 조금은 새침하게 소리 높였다.

“이번 한 번만이야.”

“그래그래.”

그러니 얼른 보여 줘.

느슨한 미소를 보자 역시 당했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잠시 두 손에 얼굴을 파묻던 유엘은-펑!

단번에 고양이로 변했다.

“세상에, 유엘!”

윤이 나는 새까만 털과 여전히 보석같이 푸른 눈. 매끄러운 몸태와 유연한 관절, 살랑이는 꼬리와 뾰족하게 솟아오른 귀!

“어떡해! 너무 귀엽다!”

세리아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꺅꺅 지르며 고양이를 두 손으로 번쩍 안아 들었다.

겨드랑이 밑을 잡아 올리자 주르륵, 하체가 액체라도 되는 것처럼 흘러내렸다.

그에 세리아는 푸흐흐 웃으며 유엘의 코에 뺨을 비볐다.

덕분에 좀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 취급이 좋지 않았던 유엘은 단숨에 이런 취급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아, 세상에. 이런 기분이구나. 그냥 고양이를 볼 때랑은 다르네. 아, 정말.”

높아진 목소리로 주절주절 감탄을 연발하던 세리아는 검은 고양이를 내려놓으며 속사포로 말했다.

“난 정말 오빠들이 귀찮게 굴어서 짜증 났었거든? 그런데 이제는 왜 그런지 좀 알 것 같아.”

늘 고양이로 귀여움을 받다가, 처음으로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입장이 되어서일까.

세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고도 기쁜 얼굴을 했다. 눈빛은 반짝반짝하다 못해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가끔은 변해도…….’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은 아쉽게도 이어지지 않았다. 세리아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으니까.

“야아옹! (세리아!)”

이건 너무 고양이 취급이잖아!

꼭 그렇게 뒷말을 외치는 것 같은 울음이었다.

그러나 세리아는 흐물흐물해진, 그야말로 진귀한 표정을 한 채 중얼거릴 뿐이었다.

“유엘, 평생 고양이로 남아 줘.”

그렇게 유엘은 악담도 덕담도 아닌 말을 들어야만 했다.

여하튼 그렇게 세리아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고 봄 축제 역시 그녀가 누워 있는 동안 성황리에 끝이 났으니, 슬슬 작별할 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차후를 기약하며 떠날 준비가 막 시작될 무렵.

세리아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유엘, 다음에 만날 때도 고양이로 변해 줄 거야?”

“……그러는 너는 고양이 귀 만질 수 있게 해 줄 거야?”

“으음, 그건 무리인데.”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던 그녀는 이내 선심 쓴다는 듯 손가락 하나를 보이며 말했다.

“엉덩이 팡팡 칠 수 있게 해 주면 고려해 볼게.”

“……뭐, 뭐?”

“아 물론 고양이 모습일 때야.”

“그건 당연하잖…… 하여튼 절대 안 돼!”

극구 사양하는 모습에 세리아는 다시금 소리 내 웃었다.

유엘은 그 웃음이 듣기 좋아서 저도 모르게 부드럽게 표정을 풀었다. 아무리 그래도 엉덩이 팡팡은 안 되지만.

‘어째 날 놀리는 데 재미 들린 거 같은데.’

그래도 저런 장난스러운 면모는 어릴 적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서, 그게 또 속없이 좋았다.

‘어쩔 수가 없네.’

그래, 그런 거겠지.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유엘은 대뜸 세리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윽, 야 리커드!”

“이 맛에 놀리는 건가.”

“키 컸다고…… 치사하게.”

부스스해진 머리로 그를 한껏 노려보던 세리아는 어느 순간 유엘과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 헤어지기 싫다.”

“응, 정말.”

간질간질 몽글몽글. 온갖 설레고 귀여운 단어는 다 갖다 붙여야 할 것 같은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둘은 곧 다시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아쉽기만 했다.

이틀 뒤, 유엘의 2차 성장이 갑작스럽게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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