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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27화 (27/116)

27화

“……흡!”

낯선 감촉이 입술에 닿자 세리아는 눈앞이 핑 하고 도는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유엘의 향 때문에 어지러웠는데, 그 향이 더 강하게 폐부로 들어왔다.

그럴수록 숨이 차고 체온이 올라서, 서서히 열기에 잠식되는 것만 같았다.

‘이게 대체…….’

세리아는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유엘을 응시했다.

사실 그 어느 땐가, 그녀는 유엘과 입 맞추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야 편히 손을 잡고 볼에 뽀뽀도 한 사이니, 언젠가는 입술도 맞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던 거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막연한 생각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건……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리 생각한 세리아는 유엘을 정신 차리게 하려는 듯 힘껏 발버둥 쳤다. 물론 유엘은 요만큼의 타격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그런 주제에 표정은 퍽 괴로워 보여서, 세리아는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유엘은 대체 뭐가 그렇게 괴롭고 힘든 걸까.

성장통은 개인마다 다르다지만, 그가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지 도통 추측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와 비슷하게 아팠더라면 유엘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물론 유엘만은 그런 끔찍한 고통 겪지 않았으면 했지만, 만일 그랬더라면 적어도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

그때, 무언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엘이 가쁘게 숨을 두어 번 내쉬며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려는 순간, 붙잡고 있던 침대 헤드가 부서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세리아가 원인을 알아차리기도 전.

‘……힉!’

돌연 입술에서 낯선 촉감이 느껴졌다.

세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녀는 평소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는- 유엘에게 그루밍을 했으면 했지, 절대 유엘이 제게 그루밍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유엘은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 얌전히 제 말을 따르고 늘 착했던 유엘이!

심지어 이건 평범한 그루밍도 아니잖은가!

일순 세리아는 목 뒤가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감정이 확 치솟으며 고양이로 펑 변신한 세리아는 날쌔게 유엘의 품에서 벗어났다.

“냐앙-! (야-!)”

그리고 고양이 울음을 내며 목청껏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냥! 냥! (미쳤어, 미쳤어!)”

씩씩거리던 세리아는 풀쩍 유엘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거침없이 솜방망이 주먹을 갈기기 시작했다.

새까만 머리통을 퍽퍽 내리치자 유엘은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온 모양이었다.

“냐냐냥-!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괘씸하고도 미웠다. 어떻게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할 수가 있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으면서 동시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서러웠다.

“냐냐냐! 냥!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살면서 처음으로 유엘이 무서웠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서, 자신이 알던 유엘이 사라진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착하고 순진한 유엘. 세리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다정한 유엘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세리아는 유엘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뺨, 코, 눈…… 골고루 때려 주며 소리쳤다.

“냐아아! 냐냐냐냐냥! (망할 유엘 리커드, 넌 완전 개자식이야!)”

속사포로 말을 쏟아 낸 세리아는 그대로 훌쩍 뛰어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유엘을 노려본 다음에 방을 나섰다.

허겁지겁 방을 빠져나간 세리아는 재빨리 네발을 움직여 손님방으로 돌아갔다.

무사히 방에 들어간 후에야 사람으로 변한 그녀는 후다닥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잠옷을 대강 꺼내 입었다.

“유엘, 이 미친…….”

그제야 조금 진정되기 시작한 세리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꽤나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허공에 욕설을 날렸다.

“너무 아파서 돌았나…….”

홀로 중얼거리며 방 안을 서성이던 세리아는 후우, 깊게 숨을 내쉰 뒤 침대 위로 기어갔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모아 그 안에 자신을 가둔 채 몸을 잔뜩 웅크렸다.

너무 놀란 바람에 심장이 머리를 울릴 정도로 세차게 뛰었다.

그럴수록 좀 전의 일이 자꾸만 자각돼서, 세리아는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개자식은 좀 심했나?’

그러는 와중에도 홧김에 내뱉은 말이 영 마음에 걸렸다.

수인들은 고양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유엘이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도 그 말은 똑똑히 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유엘이 충격을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세리아 역시 충격적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엘에게 그런 심한 욕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니, 이건 유엘이 잘못한 일이니까.’

그 정도 욕은 할 수도 있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리 생각한 세리아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정말로, 그 순간 세리아는 뼛속 깊이 느꼈다. 유엘과 단둘이 있을 때마다 둘 사이의 기류가 달라졌음을 눈치챘으나 혼란스러운 마음에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유엘은 변했다. 특히 유엘은 너무도 변해 버렸다.

대체 순하고 다정한 유엘이 어쩌다 그리 변한 걸까.

성장통은 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엄마의 말처럼, 그게 문제가 됐던 걸까.

‘……몰라, 이해하기 싫어.’

질끈 눈을 감은 세리아는 저도 모르게 발가락을 말았다.

아까 일만 생각하면 자꾸 기분이 이상해지는 게, 아무래도 페로몬 향을 너무 많이 맡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를 멀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세리아는 그 후 유엘의 2차 성장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 * *

유엘의 2차 성장이 끝난 건 그 일이 벌어진 후로부터 닷새가 더 지난 어느 날 점심이었다.

모든 고통이 끝나고 평상시의 본인으로 돌아온 유엘은 가장 먼저…….

“……흐윽.”

울었다.

유엘은 생각보다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하필이면 눈이 파랗고 커다래서 늘 우는 것만 같은 인상을 주곤 했으나, 실제론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곤 우는 횟수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유엘이 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참을성이 좋아서 속으로 잘 삭이는 성격 덕이었다.

그러나 유엘은 지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믿기 힘든 현실이 허망하기도 하고 잊고 싶을 만큼 잔혹하기만 했으니까.

‘차라리 기억을 못 했으면…….’

불현듯 그리 생각한 유엘은 이내 소매로 눈을 벅벅 닦으며 좀 전의 생각을 떨쳐 냈다.

그 모든 일을 잊었다면 마음이야 편했겠지만, 세리아에겐 사과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생생하게 떠올라서 매 순간 지옥을 경험하는 게 더 나을 것만 같았다.

‘내가 정말 싫어졌겠지?’

훌쩍. 유엘은 가련하게 울면서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고 혐오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해 버렸는지 스스로 이해되질 않았다.

마치 또 다른 자아에 집어 삼켜진 것처럼 자신이 낯설기까지 했다.

그때 행동한 건 분명 유엘 그 자신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아니었다.

보통의 그였다면 절대 그렇게 굴지 않았을 테니까.

‘대체 왜 그랬을까.’

이상하리만큼 갈증이 났다. 그리고 왜인지, 세리아라면 그걸 해소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본능적인 판단이 모든 일을 자초해 버렸다.

정말이지, 곱씹어 볼수록 제가 한 짓이 암담하기만 했다. 세리아에게 눈두덩이를 발로 걷어차인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이건 대체…… .’

더욱 마음을 참담하게 하는 건 망가진 침대 헤드였다.

유엘은 부서진 헤드를 보곤 속에서부터 올라온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겉옷으로 대강 그것을 가렸다.

계속 보고 있자니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자신이 저질렀던 과실이 부러진 헤드만큼이나 처참하고 적나라했으니까.

‘저게 만약 세리아의 허리였다면…….’

생각은 완성될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세리아의 허리를 휘감으려 했었다. 만일 그 충동을 순간적으로 참아 내지 않았더라면-망가진 건 침대가 아니라 세리아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 유엘.”

그렇게 한참을 절망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의 방 안에 들어섰다.

머리가 복잡한 바람에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많이 아프니? 왜 울고 있는 게야.”

“아버지…….”

유엘은 눈 밑이 벌게질 정도로 울었으나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다시금 왈칵 감정이 북받침을 느꼈다.

어느덧 침대 맡에 앉은 아버지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 주자, 유엘은 작게 흐느끼며 마치 고해성사하듯 토로했다.

“제 자신이 너무 끔찍해요.”

“그게 무슨 소리니?”

“제가 괴물로 변한 걸까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말에 후작은 짧은 시간 내 방 안을 훑어봤다.

곧 책상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세리아의 옷을 발견하자, 한순간에 유엘을 찾지 않던 세리아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일이 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세리아와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은데, 관련이 있는 거니?”

그 말에 유엘은 힘없이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에 후작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물어봤다.

“둘이 다툰 거니?”

“제가 세리아에게 잘못했어요. 이제 저를 다시는 보지 않으려 할지도 몰라요.”

“얘야,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단다. 네가 정말 잘못한 거라면 용서를 구해야지.”

“물론 그러긴 할 거예요. 하지만 용서받을 수 있을지는…….”

“유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큰 일일 수도 있었다. 후작은 초조해진 기색을 애써 숨기며 고해를 독려했다.

“응? 괜찮으니 말해 보려무나.”

“실은 제가 세리아를…….”

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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