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거기까지 생각이 든 유엘은 이를 꽉 깨물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말이었다.
그러나 유엘은 진실을 말해야 함을 알았다. 고백하고 조언을 구해야 했다.
이건 단순히 사춘기 소년의 고민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세리아를 원했다면 스스로 멈출 수 있을지도 몰랐으나.
“세리아를 해치려 했어요.”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음습한 충동은 혼자서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다행히 세리아는 눈치채지 못한 듯한,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몰랐으면 하는 그 무서운 충동에 대해 유엘은 힘겹게 고백했다.
“해치려 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고백에 후작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야 아들내미의 고민이라고는 세리아를 이성으로 좋아한다든가, 그로 인해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든가, 그도 아니라면 너무 아파서 세리아에게 상처를 줬다든가…….
단순히 그 정도의 고민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방에 들어오기 전, 후작도 나름대로 추측했었으나 해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한 말이었다.
“뭔가가…… 이상해요.”
“자세히 말해 보겠니?”
“충동이 올라와서 순간적으로 이성을 놨던 것 같아요. 그걸 자각하지 못한 건 아닌데, 알면서도 행동했어요. 통제가 안 되고, 낯설고…….”
“우선 진정하거라, 유엘.”
그때를 되새기며 이야기를 시작하자 유엘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지자, 후작은 서둘러 제 아들을 진정시켰다.
“……세리아를 보니까 자제할 수 없었어요.”
“육체적으로 끌렸단 게야?”
“그건……. 네, 맞아요. 그렇긴 한데, 사실 그보다 더 난폭한 충동이 밀려왔어요.”
세리아를 원했다.
육체적으로 끌렸단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유엘은 그 이상의 어떠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한 충동은 탐할수록 더 강해져서, 세리아의 체온이 느껴질수록 더한 갈증이 밀려왔다.
만약 세리아가 고양이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머리를 쥐어박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잠깐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더라면.
그게 뭐가 됐든 유엘은 끝을 볼 작정이었으니까.
“난폭이라…… 그건 좀 위험하구나.”
동감하는 목소리에 유엘은 말없이 등을 돌려 침대 헤드를 가리던 겉옷을 들춰냈다.
“……이건?”
“제가 부쉈어요. 어떻게든 멈추고 싶어서요.”
어딘가 불안정하지만, 흔들림 없이 담담한 목소리. 반성하는 태가 역력한 고백이었다.
그제야 짐짓 심각성을 고려한 후작은 턱을 괴고서 무언가를 골똘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학구파인 그는 일전에 잠시 흥미를 끌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그럴수록 점점 더 고뇌하기 시작했다.
이 말을 하는 게 옳은 판단인진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자신이 아는 걸 자식에게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유엘, 드래곤 중 간혹 그런 성향을 띠는 드래곤이 있다고 들었다.”
“……드래곤이요?”
“그래. 모든 드래곤이 그렇진 않지만, 블랙 드래곤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블랙 드래곤?”
“생소한 이름이지? 워낙에 희소해서 잘 알려진 바가 없는 드래곤이기도 하지. 동시에 여러모로 특출나기도 하다만.”
설명을 요구하는 유엘의 시선에 답하듯, 후작은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제껏 출연한 수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며, 그들의 성장 과정은 너무도 급작스럽고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짓도 꽤 저질러서, 자세히 기록된 정보가 남아 있단다. 놀라진 말아라, 유엘. 블랙 드래곤은 배우자를 다치게 한다더구나.”
“배, 배우자를 다치게 한다고요? 왜요? 어째서요!”
생각지 못한 충격적인 말에 유엘은 당황하며 말을 절었다.
그가 그럴수록 후작은 더욱 침착하게 사실을 전해 줬다.
“블랙 드래곤은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하단다. 하지만 그만큼 난폭하고 충동적이라,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난폭, 충동. 그 말에 유엘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정말이지…… 2차 성장 때의 자신 아닌가.
“하지만 들리는 만큼 그렇게 악질적인 존재는 아니란다. 감정이 동하는 걸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 거니까.”
“……감정이 동한다고요?”
“그래, 소위 ‘각인’된다고 하더구나. 어쩌면 운명적인 상대를 만났다고 볼 수도 있지. 그 상대에게 꽤나 강한 소유욕을 느끼는 듯해.”
처음 듣는 정보에 유엘은 혼란스러웠다.
‘운명이라니.’
난폭과도 같은 거친 표현 뒤에 따라붙기엔 너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스스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계기가 무슨 상관인 거죠? 결국에 그들은…….”
따지듯 말하던 유엘은 돌연 무언가에 부딪힌 듯 말을 끊었다.
그러다 침착하게, 한편으론 어떠한 죄를 인정하는 듯한 담담한 어조로 결론지었다.
“……괴물이로군요.”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자신과 비슷한 강한 배우자를 만나면 괜찮거든. 문제는 월등히 약한 배우자를 만났을 때지.”
“그렇게 된다면…….”
어깨를 으쓱인 아버지는 구태여 설명하진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거라 믿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네가 그럴 리는 없으니 안심하렴.”
넌 귀여운 고양이잖느냐. 게다가 우리 가문에선 드래곤은커녕 고양이를 벗어난 사람조차 거의 없었어.
토닥여 주는 듯한 뒷말에 유엘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정말 먼 친척이지만- 가문에 속하긴 하는 사람 중 딱 두 명만 호랑이로 변한 전적이 있다고 했다.
둘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모두 고양이에 그쳤고, 애초 리커드 가문은 힘보단 품위와 지성이 높은 가문이었다.
그러니 확률상 유엘이 드래곤이 될 가능성은, 그것도 블랙 드래곤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원래 사춘기 때는 성욕이 강해지는 법이란다.”
“아버지!”
순식간에 새빨개진 얼굴로 유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후작은 제 아들이 영 귀엽기만 하다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는 전적으로 아들을 신뢰했다.
어릴 때야 너무 순해서 걱정될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장점이 되었다.
균형 잡힌 성격은 아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으니까.
게다가 유엘은 평소 순수할 정도로 올바르니, 사실상 조금 욕구를 느낀 것에 불과한데 괜히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걸 수도 있었다.
유엘은 그게 아님을 잘 알기에 걱정하는 것이지만, 그걸 후작이 알 리 없었다.
“그래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하니, 당분간은 거리를 두는 게 좋겠구나.”
“……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괜찮아질 거란다. 그나저나…….”
넌지시 운을 뗀 후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유엘을 바라봤다.
“2차 성장 때 다른 동물로 변한 건 아니겠지?”
걱정과 염려가 담긴 시선이었지만, 와중에도 아들이 뭐로 성장했을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은 유엘은 아버지와 똑같이 입술을 한 번 달싹였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게…….”
“그래, 뭐가 됐더냐?”
아들이 조금 망설이자 아버지의 목소리는 전보다 미묘하게 더 고양됐다.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자식이 특별하길 바라는 건 대부분의 부모 마음일 터.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 유엘은 작게 탄식하며 말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순식간에 유엘의 몸에서 꼬리와 귀가 펑 하고 나타났고.
“…….”
아버지는 잠시 말 잃고 유엘을 바라보다가, 짐짓 실망한 기색을 숨기며 아들의 등을 토닥여 줬다.
그리고 애써 장하다는 표정을 짓고 엄지까지 치켜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래,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세리아가 그러했듯.
유엘도, 또 고양이었다.
* * *
다음 날 유엘은 세리아를 찾아갔다.
과연 지금 가는 게 세리아가 바라는 걸까, 그 점은 알 수 없었으나 둘에겐 시간이 없었다.
유엘의 몸이 괜찮아졌으니, 공작 일원이 당장 내일 아침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유엘은 수십 번도 더 연습했던 사과의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신기한 현상을 겪었다.
푹푹 한숨을 내쉰 그는 세리아가 고양이로 변하면서 두고 간 옷을 소중히 안고 갔다.
시종에게 전달을 부탁할 수도 있었으나, 유엘은 그러지 않았다.
나름대로 세리아를 찾아갈 수 있는 구실이 되어 줬기 때문이다.
“후우…….”
방문 앞에 도달한 유엘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획 들더니 용기 내 문을 두드렸다.
똑똑.
가볍게 노크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명랑한 목소리가 안에서부터 들려왔다.
“누구야?”
“세리아, 나야. 유엘.”
며칠 안 들었다고 그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 건지. 유엘은 울컥하는 감정을 누르고 애써 덤덤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들어가도 될까?”
“들어와.”
의외로 허락은 순순히 떨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연 유엘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 그때 옷…… 두고 가서.”
“테이블에 올려 둬.”
차갑게 말한 세리아는 팔짱을 낀 채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유엘은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감을 느꼈다.
“용건은 끝?”
쌀쌀맞은 목소리가 꼭 뺨을 때린 것만 같이 아리기만 했다.
“……세리아, 그날 일은-”
“끝났지? 그럼 이제 나가 봐.”
우물쭈물하던 유엘이 양손을 꽉 쥔 채 사과하려던 순간, 세리아는 말을 끊으며 톡 쏘듯 물었다.
“안 나가?”
여전히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지 않고 있었다.
이래서야 용서받기는커녕 사과조차 못 할지 몰랐다. 그리고 지금 못 하면 또 언제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이번 봄 축제 때도 겨우 만난 거니,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세리아, 지금 내가 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너를 위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초조해진 유엘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당장에 내쫓을 기세로 굴던 세리아는 너무도 진중한 유엘의 목소리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과할 수 있게 해 줄래?”
사과할게. 그러니 받아 줄래?
그런 말도 아니고, 저렇게 절절히 부탁하는 게 고작 사과할 기회를 달라는 거였다.
순간 세리아는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으나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유엘은 제게 있어 개자식이었으니까, 개에서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용서는 구하지 않을게.”
“!”
그러나 그 말을 끝으로 쿵 소리가 나자, 세리아는 도저히 마음을 다잡을 수 없게 됐다.
깜짝 놀란 세리아가 고개를 획 돌리자, 그곳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유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