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헉!”
고양이를 발견한 제이든이 급히 숨을 삼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세리아 님? 대체 저 귀엽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검은 고양이는 뭐죠?”
“아아.”
충격적인 귀여움에 제이든이 마시던 차를 입가에 주르륵 흘리자, 세리아는 대답 대신 느른하게 웃어 보였다.
“먀먀먀-”
그때 테이블 쪽으로 도도도 달려온 검은 고양이가 세리아를 향해 기분 좋게 눈 맞춤을 했다.
“안녕.”
“먀-”
“고양이로 노니까 재밌어?”
“먀먕!”
턱을 괸 세리아가 상냥하게 묻자, 고양이는 상큼하게 답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 모든 과정을 신기하게 바라본 제이든은 얼굴을 붉히며 콧바람을 쉭쉭 내뿜었다.
“고양이와 대화라니! 직접 보니까 무척 신기합니다. 저도 수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부러움이 가득한 목소리에 설핏 웃음이 터졌다.
세리아는 수인이 아닌 고양이와 말하려면 발성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걸 말해 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재밌으니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마, 만져 봐도 될까요?”
“안 될걸.”
말하기 무섭게 검은 고양이가 날렵하게 날아 제이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앗! 하지만 때리는 것도 귀여워!”
그 말에 검은 고양이는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놀라운 속도로 연달아 주먹질했다.
퍽퍽퍽. 몇 번이고 맞으며 참교육을 당하면서도 제이든은 헤실헤실 웃었다. 말랑한 발바닥이 느껴지는 게 그저 좋은 듯했다.
그에 세리아도 하하 웃으며 “조랭이떡 반죽 잘하네.”라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제이든, 고양이 너무 귀여워하지 마. 그러면 더 화낼걸.”
“대, 대체 왜죠? 귀여운 걸 귀엽다고…… 아야!”
“그 친구는 나랑 비슷하거든.”
의미심장한 말에 제이든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리고 얘 그냥 고양이 아니야.”
“그냥 고양이가 아니란 말은…….”
허억. 숨을 삼킨 그가 놀란 눈으로 고양이를 응시했다. ‘설마’하는 물음표가 두 눈에 담긴 채였다.
그러기 무섭게 솜방망이에 한 대 더 얻어맞았다.
“고양아, 이름 말해도 될까?”
“먀먀-”
“그래. 얘, 조랭아. 이 고양이의 이름은 시엘 리커드야.”
“아아…… 과연. 아무리 고양이 모습을 하고 계신다 한들 나비라는 애칭을 쓰시진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특별한 이름일 줄은……?”
조잘조잘 말하던 제이든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고서 멍청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리커드…… 예?”
“응, 유엘 동생이야.”
주르륵. 그와 동시에 제이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똑 떨어졌다. 그답지 않게 침묵하더니, 반 박자 느리게 혼비백산이 됐다.
뭘 또 저렇게까지 놀라.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세리아의 입술은 호선을 그린 뒤였다.
할짝할짝. 선홍빛 혀로 제 손을 닦던 시엘은 찰나에 눈을 번뜩이며 제이든을 노려봤다.
히익, 그가 몸을 움츠리자 고양이는 콧방귀를 뀌고선 도도도 걸으며 왔던 길로 다시 퇴장했다.
“원래 고양이로 있…… 수인은 사람으로…….”
당황한 제이든이 말을 절며 급하게 호흡했다.
아마도 ‘원래 고양이로 있는 걸 좋아하는 거냐. 수인은 사람으로 있는 게 보통 아니냐.’ 따위의 말을 하고 싶은 듯했다.
세리아는 대강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이며 건성으로 답했다.
“음…… 그렇긴 한데, 어쩌다 보니 저러고 있었어.”
유엘과 후작이 떠나고 집이 한산해지자, 무료해진 시엘이 케스터가 공작저를 방문한 게 바로 오늘 아침의 일.
시엘은 세리아의 방에서 그녀의 드레스를 이것저것 입어 보며 놀던 참이었다.
그러다 입고 벗는 게 귀찮았는지 고양이로 변해 가며 쉽게 놀이를 즐겼는데, 그러다 보니 제이든이 방문하는 시간이 됐던 거다.
급히 나온 세리아가 제이든과 얘기를 나누던 중, 아마도 옷 갈아입기가 귀찮았던 시엘이 고양이 모습 그대로 온 걸 테고…….
‘덕분에 재밌었네.’
제이든이야 존경하는 유엘의 동생에게 실례를 범했다고 여겨 저리 창백해진 걸 테지만.
‘시엘은 뒤돌아서면 까먹고 말 텐데.’
이번 일은 기억할지 몰라도 적어도 제이든의 존재 자체를 잊을 게 분명했다. 시엘은 도도하고도 무신경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이든의 저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 더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까.
“어떡해, 제이든. 너 아무래도 첫인상은 안 좋아진 거 같아.”
세리아는 온 힘을 다해 안타깝다는 연기를 했고.
“유엘 님의 도, 동생 분…….”
장난은 제대로 먹힌 듯했다.
“……제 인생은 이제 끝이에요.”
“그렇게까지 비관적일 필요는 없고.”
아무래도 유엘이 유학 가 있는 동안, 심심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 * *
유엘은 타국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확실히 말해 두었다.
“블랙 드래곤에 관해 조사해 보고 싶어요.”
-라고 말이다.
당시만 해도 후작은 아들의 말을 정말로 단순 ‘조사’ 수준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자유 시간이 주어질 테니 그때 자료를 찾아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넸다.
그러나 유엘이 원한 건 직접 블랙 드래곤을 대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엘, 위험하지 않겠니?”
그는 유학을 떠난 후, 생전 처음 타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
이를 통해 서적에 그치지 않고 직접 부딪쳐야만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한 사실을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설명하여 기어이 아버지를 설득했다.
“괜찮을 거예요. 타인을 무고하게 해치는 자는 아니라고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나오니 후작은 호위를 몇 붙이는 걸 끝으로 타협해야만 했으나, 우려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엘이 만나고자 하는 사내는 괴담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검은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흉흉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그래도 유엘은 그를 만나야만 했다. 2차 성장 때의 우발적인 행동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심상치 않았으니까.
한 번의 성장통이 아닌, 어쩌면 앞날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몸을 짓눌렀다.
혹 예민한 수인의 감각이 경고를 했던 건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지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막상 그 무시무시한 존재를 직접 대면하면 고양이인 자신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낄지도 몰랐다.
그리하면 그런 존재가 될 리 없다는 어떠한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에 안심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 모순적이고도 얄팍한 기대감이 이곳까지 발을 이끈 것이다.
‘그 남자, 원래는 평판도 대우도 괜찮았더라지.’
산속 깊은 곳에 외롭게 있는 오두막집 하나. 유엘은 그곳을 찾아가며 정보를 되새겼다.
남자는 블랙 드래곤이 된 후, 한때 도적 떼를 처리하고 해적과 대항하기도 했으며, 마물 토벌에도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날 돌연 배우자를 죽이며 시작됐다.
“블랙 드래곤은 배우자를 다치게 한다더구나.”
문득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 탓일까. 유엘은 심란한 한숨을 토해 냈다.
‘아버지 말씀이 사실이었어. 블랙 드래곤은 배우자를 해치는 괴물이었던 거야.’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남자는 그 뒤 미쳐 버려 폭주했다고 한다.
비록 깊은 산속에서 자신을 자학하며 스스로를 억눌렀기에 피해가 크지는 않았으나, 이미 흉흉해진 소문마저 막을 순 없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만나 봐야 알겠지.’
일전에 유엘은 그에게 서신을 보내 방문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답장이 없어 직접 가는 중이었다.
이후 한참 동안 산을 오른 끝에야 집 한 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집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엘은 자신을 따라온 호위들을 대기시킨 후 홀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계십니까?”
쿵쿵. 문을 두드려 봤으나 어떠한 반응조차 없었다.
혹시나 싶어 끈질기게 두드리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젠장, 누구야.”
“안녕하세요. 유엘 리커드입니다. 무례한 방문을 용서…….”
반듯하게 인사를 건네던 유엘은 남자를 보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놀란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착잡해하는 것도 같은 모호한 눈빛이 저를 향하고 있었다.
“너…….”
당혹스러워 보이는 건 남자 측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장에라도 내쫓을 기세로 문을 열었으나 유엘을 보자 생각이 바뀐 듯했다.
“……우선 들어와라.”
그렇게 유엘이 의아함을 감추기 전, 남자는 문을 열어 줬다. 의외의 응대에 유엘은 잠시 머뭇거리다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내부는 삭막했다. 좋게 말하자면 깔끔했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편한 대로 앉아라. 내 이름은 아나?”
“게시펠 윙스턴 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지금은 가문을 나왔지만, 그 이름이긴 하지.”
유엘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주위를 경계하며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 역시 네가 어떤 가문의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을 거다. 불편하면 나가도 돼.”
“괜찮습니다.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가 따라 주는 차는 어울리지 않게 단 향이 났다.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전에 서신을 넣었는데 혹 보셨나요?”
“그래. 여전히 내게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빌어먹을 놈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지.”
남자는 지긋지긋하다는 어투로 말하다 유엘과 눈을 맞췄다.
“널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너도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날 찾아온 거겠지.”
그 말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유엘은 찻잔을 꽉 움켜쥔 채 시선을 떨궜다.
“혹 자기 통제가 안 됐나?”
불시에 말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헛숨을 들이켠 유엘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난폭해졌겠지. 충동처럼 치민 감정이 감당하기 벅찼을 테고.”
“…….”
“너 자신이 낯설 정도로 말이다.”
반박은커녕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유엘을 보며 게시펠은 싱겁게 코웃음을 쳤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태도에선 어딘지 불안한 여유마저 느껴졌다.
“이것도 맞혀 보지.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그 난폭한 충동이 단 한 사람에게만 인다는 것.”
기어코 그 말을 들었을 땐 어깨가 애처롭게 움찔했다.
어떠한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한 건지, 유엘은 잔뜩 풀이 죽은 채 죄인처럼 시선을 내렸다.
게시펠은 더 말하는 대신 잠시 차를 마셨다. 가늘게 뜬 눈이 예리하게 유엘의 반응을 살폈다.
이윽고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단 향도 자취를 감출 정도로 강력한 냄새가 맡아졌다.
자신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독특하고도 익숙한 향.
남자는 복잡한 눈빛을 했다. 그건 착잡함과 연민이 섞인 위로의 시선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목소리만큼은 냉정하고도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