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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66화 (66/116)

66화

황녀와의 만남 이후 세리아는 애프터눈 티 파티에 자주 참석하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아 보인다는 시엘의 말에 과장이 한 톨도 없었던 건지, 전보다 초대장은 자주 날아왔다.

게다가 연고도 없던 가문에서도 만남을 요청하기 시작해서 난감한 면도 없잖았으나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집에 있으면 오빠들하고 마주칠 테니까.’

화가 난 건 많이 누그러졌지만, 껄끄러운 건 여전했다.

그들이 숨기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전처럼 지내고 싶지도 않았고.

때문에 세리아는 근처에서 열리는 사교 모임에 자주 참석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러했는데, 다만 평소보다 독특한 점이 있긴 했다.

티 파티의 주최자는 레이디 레스먼이었다.

레스먼 가문은 본디 작위가 없는 집안이었다. 방계 친척 중 하나가 자작이긴 했으나 레스먼 가문과는 연고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 가문이 몇 해 전 남작위를 부여받은 것이다. 제국을 위해 공을 세웠다는 이유에서인데, 막상 귀족들의 평은 좋지 않았다.

거대 상단주 집안인 만큼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은 줬을지언정 태생은 한낱 상인에 불과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리하여 현재.

“차 맛이 나쁘지 않네요. 쟈민 거리의 최고급 살롱에서 대접할 만한 품질이에요.”

레이디 한 명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하자, 주변에선 노골적인 비웃음이 터졌다.

쟈민 거리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작은 마을이었다.

조롱하고자 한 말이었건만 정작 당사자인 호저 레스먼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가운데 낀 세리아만이 “허어…….” 하고 헛숨을 내쉴 뿐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조금 난감할 수밖에.

레스먼 가문은 최근 수도 근처로 이사를 온 후 여러 번 파티를 주관했었다. 그러나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들이 발도 뻗지 않았다는 건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러니 파티장은 늘 썰렁할 수밖에.

이번에 세리아가 호저의 초대에 응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등장이 예고되기 무섭게 다른 가문의 레이디들도 오늘 모임에 참석했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주최자인 호저는 비웃기 바빴고 손님으로 온 세리아에게만 관심을 쏟으니 그녀로선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호저가 별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꺄악-!”

그때, 영애 한 명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당혹스러움에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 비명을 지르게 한 장본인이 세리아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저, 저, 저게 대체 뭐죠?!”

당근색 머리카락의 영애가 파리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세리아도 조금 놀란 눈으로 처음 보는 생명체를 멀거니 보고 있는데, 그 시선을 의식한 건지 미동도 없이 있던 그것이 성큼 발목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콩 하며 살포시 세리아의 복사뼈에 얼굴 박치기를 했다.

‘응?’

실수로 치기라도 한 걸까. 당혹스러움에 슬쩍 발을 빼자 타다닷 달려와 구두코 위에 발바닥을 올렸다.

‘……뭐지.’

나름의 친밀함을 표하는 행동 같기도 했으나 알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실수는 아닌 듯하여 어색하게나마 발을 목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세상에, 테이! 어딜 갔나 했더니.”

급히 다가온 호저가 그것을 획 낚아채며 미안한 눈치로 말했다.

“제가 키우는 카멜레온이에요. 아버지께서 타국에서 사 온 파충류인데, 제게 선물해 주셨죠.”

“그,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아요! 어째서 이런 곳에 풀어 두신 건데요?”

“아무래도 철창을 탈출한 거 같아요. 그래도 위험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원래는 낯을 가려서 먼저 다가오질 않는데…….”

레이디가 질색을 하며 비난하자 호저는 머쓱한 낯으로 세리아를 향해 중얼거렸다.

“세리아 님을 좋아하나 보네요.”

“그런가요? 신기하네요.”

이런 생명체는 살면서 처음 본 세리아는 호의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몸을 뒤덮고 있는 거칠한 피부가 꼭 드래곤과 닮은 것 같았다. 물론 드래곤보다는 좀 더 귀엽게 생겼지만.

호저에게 안긴 와중에도 파충류인 그것은 세리아와 지긋이 눈을 맞췄다.

세리아 역시 동글동글한 눈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교감인가……?’

한편, 평소 자신이 키우는 카멜레온이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걸 본 적이 없던 호저는 그들을 좀 더 관찰하고 싶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호저는 급히 카멜레온을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카멜레온은 다시 데려다 놓을 테니 안심하세요. 참, 그리고 가는 김에 물건을 챙겨 올게요.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그럼 말씀들 나누고 계세요.”

그녀가 태평하게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 불편한 말들이 이어졌다.

“기막혀……. 아직도 놀란 게 가시질 않네요. 살면서 저렇게 괴상하게 생긴 건 처음 봤어요.”

“호저 양의 취향은 도통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네요. 옛말에 사람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키우는 동물을 보라던데 말이죠.”

세리아는 호저의 빈자리를 보며 다른 레이디들의 말을 반쯤 흘려들었다. 기분이 유쾌할 리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세리아가 한 마디 하려던 때.

“그나저나 그 소식 들으셨어요? 칼시스 경의 최종 성장형이 드래곤이라면서요?”

기가 막히게 대화 주제가 빗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세리아에겐 다분히 흥미로운 내용으로.

“어머나, 드래곤이 되셨다고요?”

세리아가 무어라 묻기도 전, 옆에 있던 백작 영애가 치고 들어왔다.

“이것 보세요. 광장의 신문 파는 소년에게서 산 소식지랍니다. 오는 길에 구했어요.”

그 말은 곧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소식이란 뜻이다.

장밋빛 머리카락을 구불구불하게 늘어뜨린 레이디 베니가 소식지를 테이블에 올리자 너나 할 것 없이 돌려보기 시작했다.

세리아 역시 꽤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세상에, 마담 홉스는 요한 경이 결혼 시장에서 신랑감 1위 후보가 될 거라 예측했어요!”

바로 옆에 있던 세리아는 베니가 손가락으로 짚은 구절을 빠르게 읽어 봤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늘 책잡히던 요한 칼시스의 불같은 성정은 그가 드래곤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힘과 어울리는 야성적인 매력으로 치켜세워질 것이다.

덕분에 3차 성장이 끝난 요한은 잘생긴 외모와 호탕한 성격, 비록 출처를 알 수 없는 난잡한 소문이 돌긴 하지만 그만큼 여성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점, 병력이 뛰어난 칼시스 가문의 차남인 데다 강력한 드래곤으로 변했단 사실이 한 번에 묶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럴싸한 가정에 세리아가 무미건조하게 호오, 콧소리를 낼 때였다.

“그러면 유엘 리커드 님을 제치는 걸까요?”

난데없는 말에 쿨럭, 기침이 터지더니 사레가 들렸다. 그나마 차를 마시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뿜을 뻔했다…….

“세리아 님, 괜찮으세요?”

서둘러 손사래를 친 그녀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보조개가 움푹 파이는 부분이 파르르 떨려 왔다.

“그, 그래도 유엘 님이 부동의 1위 아니시겠어요? 저런 추측이 생긴 건, 유엘 님은 이미 짝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 걸 거예요.”

위로랍시고 하는 말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물론 유엘은 사교계에 얼굴을 안 비친 지 오래되었고, 그간 케스터 가문에서 지냈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퍼졌을 테니, 1위 자리를 내어 줄 만도…….

‘……아니, 이게 아니지.’

애초 유엘이 신랑감 후보 1위였다는 건 알지도 못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소식이었다.

세리아는 놀랐다가 민망해졌다가, 끝내는 사라진 그를 생각하자 기분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짧은 새에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은 세리아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다가 돌연 든 생각에 주먹을 옹골차게 말아 쥐며 테이블을 내리칠 뻔…… 하였으나, 가까스로 참아 냈다.

“요한 칼시스가 드래곤……!”

대신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이렇게 소리쳤는데, 그 목소리가 꽤 커서 그런지 단숨에 이목이 쏠렸다.

뒤늦게 움찔한 세리아는 흠흠,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좀 전과 달리 고상하게 말을 이었다.

“……드래곤이면, 주변에선 걱정될 만도 하겠네요. 강한 성장형일수록 성장 직후 난폭해지잖아요?”

그제야 아, 하며 이해한다는 듯한 탄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글쎄요? 난폭하게 굴었다면 소식지 가장 첫 줄에 실리지 않았을까요?”

“그렇네요. 그분은 별명이 망나니잖아요. 아무래도 다들 그런 쪽으로 먼저 관심을 가졌을 거예요.”

한 레이디가 덧붙인 말에 모두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리아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은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아무래도 유엘이 드래곤의 폭주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일단 요한은 아닌가 보네.’

……그럼 누구지?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이어 갈 때였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호저가 다시 등장했다. 웬 커다란 가죽 가방과 함께.

오순도순하게 대화하던 레이디들은 한순간에 입을 다물었는데, 그 분위기가 어찌나 싸늘하던지.

“아뇨!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요.”

오죽했으면 차를 마시던 세리아가 어울리지 않게 경쾌하게 대답을 할 정도였다.

“실은 여러분께 제 사업 물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물론 가능성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싶고요.”

그렇게 말한 호저는 가방 안에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그 모습을 본 옆자리 레이디들은 역시 상단주 딸 아니랄까 봐 잡상인 같다는 둥, 작은 말로 비웃었으나 세리아만은 물건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약물이네.’

작은 유리 공병에 담긴 정체불명의 액체는 색상이 전부 제각각이었는데 낯설지만은 않았다.

잠자코 바라보던 세리아는 원액이 무엇인지 홀로 유추하기 시작했다.

‘왼쪽의 초록색은 타라칼루 나뭇잎 진액인가? 묘하게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으나 원형 테이블의 맞은편에 있던 터라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조금 쑥스러웠다.

조금 이따가 설명이 끝나면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때마침 호저가 격양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서 대륙의 오르젠 왕국 아시나요? 바로 그곳으로부터 어렵게 구해 온 견본이이에요. 이게 그 나라에선 신비의 명약으로 불리나 봐요.”

신이 나 설명하는 모습이 꼭 제이든 같아서일까. 세리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제국으로 들여오면 분명 엄청난 열풍이 들이닥칠 거예요.”

상기된 볼과 총명한 눈동자가 호저의 열정을 증명했다. 그에 흥미가 생긴 세리아는 넌지시 물었다.

“호저 양께서 직접 사업하시는 건가요?”

“첫 사업이 될 예정이에요. 이것만 성공시키면,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을 수 있겠죠.”

결국엔 부모의 허락이나 인정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뜻이었다.

“멋지네요.”

하지만 그 무모한 도전과 실행력이 진취적이라 느껴졌다.

세리아가 순수한 감탄을 하자 곁에 있던 여성들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반응이 뜻밖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자세히 봐도 될까요?”

살며시 손을 뻗으며 묻자 호저는 고양된 움직임으로 재빨리 공병을 이것저것 건네주었다.

“이건 어떤 약물이죠?”

“아, 제가 적어 왔어요. 한번 보시겠어요?”

메모장까지 건네받은 세리아는 본격적인 비교에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희소병을 앓아서일까. 취미처럼 독학했던 약초학이 이럴 때 쓰일 줄이야.

유엘에 대해 생각을 하느라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은 들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응?’

즐거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세리아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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