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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고양인 줄 알았는데!-116화 (완결) (116/116)

116화

박수갈채 사이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자 세리아의 아버지는 벌써 코를 훌쩍이고 계셨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요.”

두 사람이 가까이에 다가가자 연설대에 선 레키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처음 주례를 제안받았을 땐 사실 망설이기도 했었답니다. 아시다시피 한때 저희는 치열한 삼각관계였으니까요. 그래도 이 영광을 포기할 수 없어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처럼 운명적인 두 사람의 앞을 그 누가 막아설 수나 있을까요. 지엄하신 황제 폐하께서도 이젠 두 사람을 축복하니,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별세하신 선황제 폐하뿐이겠죠.”

다들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재채기처럼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야말로 레키네였기에, 또 레키네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일 것이다.

“두 사람의 용기와 사랑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또한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함께 의지하며 현명하게 해결하는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끄럽게 말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강물에 뛰어들던 그 용기로 말이죠.”

짓궂은 눈빛으로 우아하게 놀리자 두 사람은 서로 머쓱한 눈짓을 했다.

이윽고 레키네의 두 손이 한데로 모였다. 그 신호에 세리아와 유엘이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애써 쟁취해 낸 사랑을 끝까지 지켜 낼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이 동시에 답했다. 레키네는 시선을 내리며 미소 지었다.

“다음 서약은 교황 성하께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교황이 서약서를 들고 와 중앙으로 왔다.

이어 좀 전과는 달리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서약서를 읊었다.

그리고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이 오늘 서약의 증인이 돼 줄 겁니다.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알립니다.”

비로소 부부가 될 수 있었다.

숨죽였던 이들이 힘차게 박수를 보내더니 환호성을 내질렀다.

보고 있던 제이든은 감격하여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문득 10여 년 전 그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정원에서 꽃반지를 나눠 끼고 오직 둘이서만 결혼했으면 좋겠어. 아, 물론 증인은 있어야겠지.”

현실적으로 그런 결혼은 쉽지 않았지만, 그 낭만은 여전히 지켜졌다. 그건 이 결혼식이 끝나면 단둘이 꽃반지를 나눠 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나중에 두 분께서 결혼하시면 저도 불러 주실 건가요?”

“당연하지. 넌 내 ‘거의 진정한 친구’가 될 예정인 친구니까.”

당시의 천진했던 모습이 떠올라 또다시 찡해졌다.

옆에 있던 시엘이 멀뚱히 제이든을 올려다보더니 킥킥 웃으며 중얼거렸다. 울보.

“부케 던질게요!”

잠시 후 세리아가 팔을 휘저으며 준비를 하더니 그대로 부케를 뒤로 던졌다.

그렇게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부케는 정확히 한 사람에게로 떨어진 탓에, 막상 부케를 받게 된 사람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게 됐다.

누가 받았을까. 셀렌 마음으로 뒤를 돈 세리아는 곧 창백해진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악!”

하필이면.

“칸나, 그거 당장 버려!”

이 좋은 날에 시원하게 호통 아닌 호통을 쳐서일까. 당황한 칸나는 “어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며 대강 옆에 있는 사람에게 떠넘겨 버렸다.

“……으응?”

그리고 그 옆 사람은 또 하필이면 마롱이었다.

“윽.”

목 뒤를 잡은 세리아는 유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영문도 모른 채 위로해 주는 유엘 덕에 정신을 추스른 세리아는 그제야 제이든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아직도 열성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내는 조랭이떡을 말이다.

“조랭이!”

세리아가 단숨에 다가가 기쁘게 부르자 제이든은 그보다 더 기뻐하며 기다렸다는 듯 조잘거렸다.

“세리아 님! 축하드립니다. 정말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어요. 그 예전 제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런 결혼식처럼 말이죠.”

어릴 때처럼 흥분한 모습이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세리아는 주먹으로 제이든의 어깨를 톡 치며 조금 쑥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넌 내 거의 진정한 친구야, 알지?”

“세리아 님…….”

한 번 더 감동한 제이든이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가 싶더니, 곧 안경을 고쳐 쓰며 특유의 어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거의’ 진정한 친구인 거죠?”

“그건 시엘한테 하는 거 봐서 정하려고.”

그 말에 시엘과 제이든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시엘은 제이든에게 냉큼 팔짱을 끼며 장난스레 응원했다.

“힘내, 오빠. 머지않았네.”

그러는가 싶더니, 허공에 주먹질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언니가 드디어 새언니가 됐어!”

* * *

피로연은 밤새 이어졌다.

분위기가 워낙 훈훈하고 즐거웠던 터라 모두가 밤을 꼴딱 새우면서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건 당사자인 세리아와 유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느지막한 새벽이 지나서야 피곤한 낯으로 피로연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벌써 아침이네.”

세리아는 저 멀리 지평선이 밝아 오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해가 중천에 뜨면 자자.”

“바라던 바야.”

신혼 첫날부터 망가진 꼴로 농을 나눈 두 사람은 꽃이 만개한 정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그때 거기네.”

“그러게. 저기 큰 나무 앞에서 약혼했었는데.”

“와, 기억하네? 기억 못 했으면 교황 성하 다시 부르려 했는데.”

“그런 살벌한 말을.”

픽 웃은 유엘은 몸을 일으켜 주변에서 토끼풀을 뜯어 왔다.

그러곤 다시 앉아 말없이 풀꽃반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세리아는 한쪽 턱을 괴며 약간은 몽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엘, 만약 내가 룰러가 아니었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유엘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민 끝에 되물었다.

“글쎄. 그건 내가 블랙 드래곤이 아니었으면 어땠을지처럼 의미 없는 질문 아닐까?”

“하긴, 블랙 드래곤이어서 이 모든 문제가 벌어졌고, 동시에 네가 블랙 드래곤이어서 해결될 수 있었으니까.”

우연은 때론 필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과에 이르기까진 너무 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엮여 이유를 찾기 힘들기도 하다.

그 모든 고난을 겪어 낸 지금에 와 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질문에 답하자면…… 분명 쉽지 않았겠지. 그래도 여전히 널 사랑했을 거야. 다만 우리가 함께할 날은 적었겠지.”

신중하게 답한 유엘은 세리아의 한 손을 에스코트하듯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이렇게 너와 손을 잡고 아침 해를 보지도 못했을 테고.”

“……이상해. 지금의 일상이, 당연한 평화가 기적처럼 느껴져.”

눈앞에 미소 짓는 남자가 남편이라는 게 믿기질 않았다. 친구로 시작된 인연이 결국 오늘까지 이어졌다는 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도 신기했다.

“우리의 만남이 순탄했다면 이처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이따금 잊고 살았겠지?”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기왕이면 순탄하길 바랐지만 말이야.”

진심 어린 말에 세리아가 옅게 웃었다.

“다들 낭만적이라며 우리 이야기를 하더라.”

“고난을 극복한 사랑은 특별해 보이잖아.”

덤덤하게 말한 유엘이 세리아의 왼손 약지에 풀꽃 반지를 끼웠다.

“하지만 내겐 그 같은 사랑이 특별한 게 아니라, 단지 네가 특별했을 뿐이었어.”

세리아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여다보며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오직 너였기에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꼭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돼. 이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난 여전히 네 옆에 있을 테니까.”

진실한 고백은 담백한 만큼이나 달콤했다. 세리아는 발가락을 몰래 꼼지락거리다가 유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손가락에도 똑같이 반지를 끼워 줬다.

“겪고 나니 알겠어. 사랑은 내 존재의 이유이자 진정한 자아의 발현이었다는 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를 내 일부로, 나를 네 일부로 수용하는 거야.”

세리아는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말했다.

“비로소 하나가 됐기에 온전해질 수 있다니, 확실히 낭만적이네.”

“그래서 다들 우리 얘기를 하나 봐.”

진중함에는 무겁게, 농담에는 가볍게 돌아오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말의 무게가 맞는다는 건 우정의 기본 조건이겠지. 세리아는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이제껏 그래 왔듯 앞으로의 대화가 기대됐다.

“세리아.”

무게가 다시 무거워졌다. 진지하고도 다정한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그가 결혼반지를 낀 왼손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있었다.

“너는 내게 사랑이야.”

세리아는 그 손가락에 약속하듯 자신의 손가락을 끼었다.

“나에게 너는…….”

천천히 이어지던 말이 잠시 멈춰 섰다. 세리아는 고개를 돌려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봤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머리를 내미는가 싶더니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번지며 하늘을 물들였다.

“저 아침 해와 같아.”

그 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끊겼던 문장을 완성했다.

“매일 떠오르는 해처럼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란 걸 알거든.”

눈부시게 따뜻했다. 너라는 존재가 나의 일상에 들어왔다는 게, 매일같이 뜨는 태양이 새삼 찬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네 사랑이 저 해와 같아서, 달아날 수조차 없어.”

그러니 너는 내게 눈부시게 따뜻한 존재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온몸으로 따스함을 느낄 뿐.

“달아날 수 있다면, 달아날 거야?”

어느덧 커다란 손이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세리아는 그 손을 꽉 움켜쥐었다.

“글쎄.”

맞잡은 손은 정말로 따스해서. 결코 놓고 싶지도, 놓쳐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 온기는 분명 사랑일 테다.

“이젠 타 버려도 좋아.”

나의 아침 해야.

너는 나의 일상이자 끝없는 새로움, 다시는 없을 하루이니.

우리의 만남은 가장 평범하고도 유일한 기적일 것이다.

-본편 (完)-

By.[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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