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회
준비
꽤 자주 황궁을 방문했고 호치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검사를 철저히 하는 황궁의 기사들을 슬쩍 쳐다 보며 호치에게 물었다.
"호치님."
"응?"
"제가 느끼기로는 이런 자잘한 검사는 하지 않아도 황제 폐하께 해코지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는 없을 것 같은데요."
"푸핫. 그렇긴 하지. 황도에 들어선 그 순간 사실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충성을 표시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저들에겐 폐하의 근처에서 함께 한다는 것 만으로도 벅찬 이들이니까."
"엄청난 매력이네요."
"매력? 으하하. 그래.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지. 폐하께 홀리면 답이 없지. 나도 적잖게 흔들렸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자네는 딱히 그런 것이 없어 보이는데?"
"저는 긴장되기만 해서. 그런데 저런 검사를 받게 되면 그게 몇 배로 증가를 해버려서요. 후웁! 후우~ 실 없는 이야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좀 긴장이 풀렸어요."
"오호. 이제는 제법 성장한 티를 낸 건가?"
호치의 이야기에 성장보다는 많은 것을 내려 놓고 가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긍정적인 기분으로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놓아야 할 것들을 놓고 준비할 것들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황제가 위치한 알현실에서 준혁은 호치와 함께 익숙하게 기르메쉬에게 예를 표했는데 기르메쉬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요식적인 행위가 꽤 번거롭긴 하지. 종종 다른 녀석들도 그리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야. 후후."
"아앗! 아! 죄송합니다. 그, 그냥 긴장을 좀 풀려고 이야기를 한 것일뿐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나 역시 동일하다. 그냥 요식적인 행위가 번잡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인디고 그대가 겪은 귀찮음에 대해 수고를 표한 것 뿐이다."
짓궂은 표정을 짓는 기르메쉬와 실실 웃고 있는 호치를 보고 있노라면 이미 둘은 한통속 임을 알 수 있었다.
"… 황공 하옵니다. 폐하."
"되었다. 그런 느끼한 표현 따위는 다른 녀석들이 충분히 하니… 기존처럼 편히 해도 좋다. 어차피 달리고 있지 않는가? 인디고."
갑자기 훅 들어오는 기르메쉬의 발언에 준혁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알현을 청했습니다."
"그래 좋아. 자, 그러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호치 자네 역시 간달푸가 전달할 것이 있을 거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게."
호치는 바로 인사를 한 뒤에 물러났고 기르메쉬는 준혁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평소라면 보통 간달푸가 옆에 있고 혹은 다른 누군가 종종 있기라도 할텐데 독대는 처음이기에 준혁은 이러한 구도에 적잖게 당황했다.
이렇게 독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따로 주문한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말이다.
"전할 말이 있다면 이야기를 하도록."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기르메쉬의 발언을 듣고 준혁은 최대한 말이 꼬이지 않게 반드시 전해야 할 부분들을 이야기 했다.
어차피 기르메쉬에게는 속여 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폐하께서 예상을 하시는 것들일 뿐입니다."
"후후. 내가 예상하는 것들이라. 작위와 영지 길드에 대한 것들이겠구나."
"그렇습니다."
"작위와 영지는 인디고 그대의 부인에게 넘겨주면 되는 것인가?"
지은을 거론하기에 준혁은 바로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이쪽이 가장 납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렇게 해주도록 하지. 여차피 승계가 가능한 부분이니까. 그대가 부여한 귀족 작위들 역시 승계가 되어도 구태여 다시 등록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마."
"감사합니다."
"영지와 작위는 그렇다치고… 길드는?"
길드에 대해서 준혁은 아직 이야기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지은에게는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이긴 했는데, 이건 그냥 일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북어형과 아처가 같이 운영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현재의 부길드 마스터들이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사라진다고 해도 이곳에서만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그렇긴 하지. 모험가라는 존재가 그게 참 부럽군. 이곳에서의 죽음을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이 말이야."
가볍게 넘긴다는 말에 준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부정을 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모험가들 역시 죽기는 싫어합니다. 하물며 수 많은 이곳의 존재들과 인연을 맺고 저희가 사는 이들과 함께 처음부터 성장한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음. 그런가? 이건 내가 실수를 했군. 사과를 하지."
기르메쉬의 말에 준혁은 자신이 순간 너무 나갔다 싶어 고개를 숙이며 죄를 표해야 했다.
"아닙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아니야. 그래. 자네가 사라지면 그 많은 것들이 끊어지게 되겠지. 다시 성장을 한다고 해도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
"그나저나 희생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들었고 덕분에 제가 살아가는 곳에서도 좋게 일이 풀렸습니다. 받은 것이 있다면 돌려주는 것이 맞고 이에 대한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생각을 하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흠. 글쎄. 너무 과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누군가의 실수로 자네가 곤란한 대역이 되어버린 것 밖에 안된다고 나는 생각을 해. 솔직히 모험가가 이 시기에 진입을 한 것도 조금 놀라울 따름이고 말이야. 아직 모험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정립이 되지 않은 시기이니까."
준혁은 모험가의 진입 시기에 대해서 기르메쉬가 이야기를 하자, 역시 히어로 크로니클이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플레이를 한 시기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회귀를 하면서 행동했던 많은 것들로 인해서 이렇게 역사가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세계 전체를 보았을 때, 큰 부분이라고 표현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게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자신이 많은 것을 틀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더 책임감이 몰려왔다. 이건 본래 존재하지 않은 역사였으니 말이다.
'똥을 쌌으면 똥을 치워야지. 내가 히어로 크로니클에서 트롤링을 한건데.'
덤덤한 표정으로 기르메쉬의 이야기를 들은 준혁은 방금 했던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모험가들의 세상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조금 직설적이긴 한데… 자신이 싼 똥은 자신이 치워야 한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어찌 되었든 간에 수호자의 직업으로 인한 효과가 이렇게 굴러 온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걸 치우는데 당연히 제가 해야 하겠죠. 제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얻었습니다. 그걸 지키는데 마지막을 쓸 뿐입니다. 그리고 이 퇴장 역시 꽤 괜찮다고 여겨집니다. 뭐, 이번 세계의 역사서에 한 편에 글귀 하나 남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준혁의 대답에 기르메쉬는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마음에 드는 말이었고 준혁의 태도에서 이미 완벽하게 결정을 내려진 모습을 보아 흡족했다.
"실로 영웅의 자세로다. 모험가에게 이런 모습을 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건만."
기르메쉬는 모험가에 대해서 이미 진즉에 파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냥 알 수가 있다. 그들이 사는 형태와 모습 등까지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디고의 진짜 모습을 알고자 한다면 귀찮은 투닥거림이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결국 알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렇기에 준혁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어떤 존재보다 노력을 했고 쉼 없이 진실로 이곳의 사람들을 대하며 자리매김을 한 인디고라는 존재가 참 마음에 들었다.
"……."
"곧 마계에서 과거에 사라졌어야 할 종말이 등장할 것이다."
"예에?!"
"아마 그 힘은 선지자들도 어찌 하지 못할 수준이겠지. 하지만 몇몇 녀석들이 부지런히 노력을 한 덕에 힘을 꽤 소모한 채로 강림을 하게 될테니 자네라면 결국 승리를 할 것이네."
"결국 승리를 한다는 말씀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영웅이란 그런 것이지. 운명을 결국 자신의 목적대로 이끌어나가는 존재지. 자네는 마계의 강림을 끝내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으니 이번의 것은 그저 자네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
자신에게 계속 영웅이라는 말을 해서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르메쉬의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승산이 있다는 듯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험가들로 충분하다는 이야기겠지?'
뭐, 못해도 이를 도울 몇몇 인원들이 올 것이고 그들을 비호하면서 전투를 진행한다면 승산이 나오는 듯 싶었다.
'다행이네. 처음부터 종말 이야기 나와서 지금 깜짝 놀랐는데.'
기르메쉬가 준혁의 생각을 들었다면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말을 했겠지만 준혁은 행복회로를 풀로 가동시켰다.
처음부터 쉽게 풀린 탓에 전에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한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하지 말아야 할 발언들의 스노우 볼이 힘차게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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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