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회
영웅은 만들어 진다.
루시퍼와 펼친 전투는 솔직히 말해서 정말 별 것 없었다.
합으로 따지자면 고작 300합 정도였으며 시간으로 따지자면 15분도 채 되지 않는 매우 짧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준혁의 U튜브에는 6시간 동안 미친듯한 전투를 펼친 영상이 올려져 있었다.
광전사와 같이 베이고 뚫리고 절단이 나도 포션과 자생 회복을 믿고 미친 듯이 전투를 펼치는 상남자 배틀이었다.
루시퍼의 엄청난 마법 폭격 세례에서도 탱킹을 하며 버티고 마법을 베어 나가며 공격을 해나가는 준혁의 모습은 아직도 매일 각 영상 마다 최소 60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전투로 묘사 되면서 말이다.
'황당했는데.'
시청자들이 좋아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갖고 그냥 타협을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아무튼 애매한 결말이었고 사기극을 준혁은 떠올렸다.
* * *
강력한 기운이 느껴진 루시퍼와 결투를 진행했을 때, 준혁은 그와 전투를 이어나가면 나갈 수록 몸이 입자로 나뉘어져 흩날려지는 것을 보았다.
루시퍼 역시 놀랍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준혁의 공격을 방어하면 방어를 하는대로 준혁의 기운에 입자화 되고 있었다.
되려 그 속도는 더 빨랐는데, 루시퍼는 이 기운이 본인 뿐 만이 아니라 적이라고 생각한 이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루시퍼는 놀랍게도 이 힘들이 '종말의 힘'을 갉아 먹고 있음을 파악했으며 폭주를 하려는 자신을 억누르는 억제제 역할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폭주를 억누르게 된다면 이성적인 활동은 가능하지만 그 힘은 대폭 떨어지게 되는데 자신이 진행해야 하는 일마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
"크흐-! 빌어먹을."
루시퍼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고 이를 듣던 준혁은 의아함을 보였다.
"이성이 있나? 곧 폭주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루시퍼의 움직임이 회피 쪽으로 기울어지고 뭔가 처음 120합 정도까지의 상황과는 다르게 이어가자 준혁은 루시퍼의 상태가 이상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루시퍼는 입을 열지 않았고 준혁은 그저 제 한 몸 불태우는 양초 마냥 루시퍼를 향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이상이 생겼다면 더 고마운 상태였고 녀석을 빨리 제거 한다면 어쩌면 부산물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실 없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정확히 300합이 되었던 그 순간 준혁은 루시퍼의 날개 절반을 잘라 내면서 등 쪽으로 꽤 강력한 상처를 입혔으며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자신이 펼친 공격은 '회복 불가'였고 루시퍼가 자신을 공격하면 '회복 가능'한 상태인 만큼 우위에 확실히 선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하도록 하지."
"기르메쉬……."
루시퍼를 제거하기 위해서 최대한 힘을 끌어 모으려 하고 있는 찰나에 나온 기르메쉬를 보면서 준혁은 당황했고 루시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준혁은 눈을 꿈벅였는데 기르메쉬는 말했다.
"인디고. 그대는 정말 불굴의 의지로 루시퍼를 죽이기 위해 몸을 불태우고 있구나."
"……."
"하지만 너로 인해서 마계의 운명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나의 제약이 풀려졌으니 말이야."
기르메쉬의 이야기에 준혁도 루시퍼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둘을 향해서 기르메쉬는 피식 웃으며 발을 한번 살짝 굴렀는데, 놀랍게도 삭막하기 그지 없던 땅에 잔디가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루시퍼는 이를 보면서 숨 막힐 정도의 에너지가 퍼지고 있음을 느꼈으며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이건!"
"루시퍼. 너는 수호자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수호자가 드래곤의 업을 모두 이은 덕에 나는 이 힘을 다시 끌어 쑬 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세계의 결정이 내 손에 달린 것이지.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창조주의 힘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게 황제의 특권인가."
"업의 무게가 사라지면 가능한 일이지. 나 말고도 지금 마계를 열심히 부수고 있는 단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녀석은 이 힘을 다루려 하지 않아. 최대한 중간계의 힘으로 정화를 하려 하지. 뭐, 나는 결과를 중요시 하기에 딱히 그런 생각이 없는 편이고."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준혁은 해당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루시퍼만 이해를 한 듯 보였다.
그러다 이내 준혁은 진짜 기르메쉬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는데, 마계의 존재이고 변장을 할 수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생각도 곧 바뀌게 되었는데, 자신을 비롯해 루시퍼까지도 그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짓눌려 자세를 바로 하기 힘들었다.
'미친. 이렇게 강해졌는데!?'
루시퍼를 몰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자신의 레벨이 종말의 용인 다크 스타의 레벨인 Lv.6666을 넘어서 Lv.7500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상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치였고 능력치도 천만 단위의 수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이 수치들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줄고 있기는 하지만 루시퍼도 그 만큼 약해지고 있었기에 승산이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그런 것을 다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가 있다면 아마 기르메쉬라고 생각을 했는데 현재의 상태를 보니 진짜이긴 한 듯 했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 준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간계는 위기가 아닙니까."
"뜯어 고쳐줄 것이다. 벨페고르 역시 나름 온건한 녀석들을 잘 고른 것 같으니… 녀석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심어줄 생각이지."
"잠깐! 그렇다면… 내 명령을 듣고 참전한 마족들은 어떻게!?"
루시퍼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기르메쉬가 온전한 힘을 쓴다는 것으로 인해서 패배를 했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그는 절박함이 더 올라갔다.
"살기 위해 마계로 다시 퇴각을 한다면… 살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살육에 맛을 들린 녀석이라면 죽을 것이다."
강경파 마족이 60% 이상인 상태였기에 루시퍼의 얼굴은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절반 이상의 마족이 죽게 됩니다!"
"다 죽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고 자비를…!!"
준혁은 루시퍼의 행동을 보면서 '생존'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죽이고 터전을 빼앗으려 했다. 단순히 유희가 아닌 정말로 살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극히 적었지만 이 전쟁을 일으킨 수뇌부들의 뜻은 생존이었다.
생존이 아니었다면 그저 중간계에 종종 나와서 심술을 부리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나는 나의 백성 외에는 자비를 베푸는 법이 없다."
"… 마계도 당신의 영역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했지. 하지만 포기한 것은 너희 마족이다. 난 자유를 주었고 그 결과는 파멸이었지. 그렇지 않느냐? 무엇보다 그 뜻을 존중하여 벨페고르와 같은 이들을 귀찮은 꼬맹이와 합의하여 넣어주었다. 충분한 자비였을 것인데."
루시퍼는 그제야 벨페고르의 역할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마계를 유지하는 동력과 같은 존재였으며 마계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조의 신과 황제의 결정 사이에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벨페고르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틀어 박혀 있었던 것인가. 무의미함을 알기에.'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긴 루시퍼를 향해서 기르메쉬는 시선을 거두었고 준혁에게 이야기를 해왔다.
"인디고. 어찌 하겠느냐? 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계를… 치우면 또 다른 마계가 오는 겁니까?"
"일단 그렇다. 마계는 하나의 외보호제 역할과 같다. 지금은 수명이 다 되어서 갈아끼워야 하는 상황이었지."
"외보호제?"
"마계는 찌꺼기 세계다. 하지만 그 찌꺼기 세계는 타 세계의 추가적인 연결을 막는 보호막과 같다. 그리고 이 찌꺼기가 사라지면 새로운 찌꺼기들이 끼어 들어오겠지. 그게 더 강력한 존재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고민을 했다. 마계의 이번 전이는 루시퍼의 희생을 통한 합리적인 결과물이었기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지. 그런데… 네가 드래곤의 업을 모두 이어가는 탓에 내가 받아야 하는 업의 양이 사라져버렸고 양질의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 왔지. 창조주 역시 이 부분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군."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기르메쉬는 한 방을 제대로 먹였다는 듯 아주 속 시원하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준혁은 더 강력한 마계를 불러 올 바에는 지금의 마계가 유지되는 것이 낫다는 결과로 빠르게 도출 되었다.
"유지하시죠. 그래도 미운 정이라도 쌓인 곳이 낫지 않을까요?"
"푸핫. 그런가? 그렇다면 마계의 존재들은 어찌할 것인가."
"혹, 그들이 많아야 좀 존속이 되는 겁니까?"
"적당수는 있어야겠지."
"… 적어도 중간계에 꼬장 피웠던 놈들만 좀 처리가 되고 그냥 전투에 눈 돌아간 바보나 강제로 못 이겨 나온 녀석들은 마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꽤 자비로운데."
"대신에 루시퍼 역시 적어도 100년은 이런 대규모 침공이 발생되지 않게 확고한 무엇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100년의 시간이라는 말에 기르메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지간한 인간들은 다 죽고 없겠군. 모험가인 그대들도."
"노년까지 잘 즐기면서 하고 싶어서요."
"100년은 너무 길어. 10년 정도면 창주조 역시 별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계의 존재에 빌붙어 나오는 녀석들은 어쩔 수 없고. 이건 창조주가 내린 법칙과 같다. 나 역시 이걸 수정하는데 굳이 큰 힘을 쓸 이유도 없고."
"10년…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좋아. 루시퍼 동의하나? 적어도 더 많은 마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제안이다. 그리고 마계의 구동 에너지도 많이 들어 날 것이다."
"더 늘릴 수 있습니까? 제 모든 걸 받치겠습니다. 마계의 끝을 좀 더 늘려주십시오."
"기껏해야 지금 상태로는 500년 정도 더 늘어날 정도의 힘이다. 저기 인디고 정도는 되어야 5000년 정도는 늘어나지."
자신의 힘과 루시퍼의 힘이 10배나 차이가 나는 값어치가 있냐는 듯 쳐다 보니 기르메쉬는 바로 알아 차리고 답을 해주었다.
"혼돈은 나조차 다루기 껄끄러운 녀석이다. 반항하는 맛이 제법 강하거든. 근데 너는 지금 혼돈의 덩어리 그 자체 아니더냐?"
"…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이제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살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죽을 것이다."
"얼마나 더 살가요?"
"기껏해야 3개월 정도 더 살겠구나."
준혁은 그 3개월이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도박수를 던졌다.
"저… 그러면 이 힘을 마계 구동에 다 넘기면 저는 바로 죽는 것이지요?"
"다 넘길 생각이냐? 그것도 마계에?"
"뭐… 3개월 더 사는 것보다 저 녀석들이 더 침범을 하지 못하게 길게 차원의 수명 연장을 해 놓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으하하하. 우습지만 실로 맞는 말이기도 하구나. 중간계의 수호자가 마계의 수호자가 된 것인가. 후후후. 좋다 그렇게 해주지."
루시퍼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내 준혁의 결정을 듣고 놀라 바로 90도로 인사를 하며 고마움을 표해왔다. 연신 고맙다고 해와서 대화가 끊길 정도였고 기르메쉬가 멈추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감사 인사를 할 수준이었다.
"그럼 마무리를 대충 짓는 걸로 해야 하는데…인디고 자네에게는 너무 밋밋하긴 하지?"
"네? 아… 네. 그 최후의 마무리를 제가 좀 보여줘야 사람들이 믿고 그러는데. 뭐, 이게 좀 너무 짧고 그래서. 곤란하네요."
이에 루시퍼는 준혁의 말에 손을 번쩍 들더니 소리쳤다.
"그걸!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호자시여!"
갑자기 존칭까지 하며 이야기를 하는 루시퍼가 여간 부담스러웠지만 준혁은 무슨 해결 방안이 있냐는 듯 쳐다 보았다.
"이… 모의 전투를 통해서 진행하면 됩니다."
"모의 전투?"
"그러니까… 수호자께서 베히모스 때 보인 힘을 기준으로 제가 나름… 가상의 공간에서 저의 전력과 수호자의 전력을 대략적으로 예상하여 만든 모의 전투판이 있는데… 이것을 실행 시키면 될 겁니다."
루시퍼는 아공간 마법을 통해서 꽤 커다란 판을 꺼내더니 버튼을 하나 눌렀고 거기에는 루시퍼와 자신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영상이 나왔다.
"엉?"
"이게… 단점이 감각이 없어서 급소 타격이 있어도 그냥 계속 광전사처럼 싸운다는 것이 단점이긴 한데… 이런 거면 차라리 낫지 않겠습니까?"
기르메쉬는 이러한 루시퍼의 기물을 보고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준혁 역시 동의를 했다.
"확실히… 뭔가 눈을 사로잡는데. 잠시만… 영상 좀 담아 봅시다."
각도를 잘 조절해서 영상 녹화를 소리도 잘 들리고 이래저래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전투가 연이어 펼쳐졌고 준혁은 U튜브 영상도 이게 훨씬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 이거 녹화 좀 할까요? 근데 이거 이래도 되는 거겠죠?"
"…후후후. 모든 것은 그대의 선택이었다. 인디고. 나쁘지 않지 않느냐? 루시퍼의 호의도 얻었을 것이니… 네가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들어냈을 때, 최소한 마족들이 네가 소중해 하는 것을 건드리진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퍼를 보며 준혁은 결론을 내렸다.
"사기 공모 같은 느낌이지만… 그럼 이렇게 하시죠."
그렇게 루시퍼, 준혁 주연에 기르메쉬가 감독하는 한 편의 사기가 탄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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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