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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정말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기회를 준 존재가 나름의 살 길을 마련해 준 것 같았다.
술과 담배 등으로 찌든 30대 후반의 아저씨의 뇌가 아니라 깨끗하기 그지 없는 청순 그 자체의 뇌를 선사해서 그런지 몰라도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이것저것 살피다 보니 중학교 수준의 문제들은 금방 깨우쳐 나갔다.
생각을 해보니 자신의 성적이 그래도 별 다른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상위권은 유지했던 것을 떠올렸고 나쁜 두뇌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준혁은 공부라는 복병을 해결 하기 위해 계획했던 것을 전면 취소하고… 방학 동안 최소한 학교에서 기말 고사때까지 배운 것을 머리에 집어 넣기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돌아온 뒤 공부에 집중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인터넷 방송의 시작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계속 공부만 할 수는 없어서 인터넷 방송 중에서 라디오 진행의 스트리머 방송들을 키면서 이런저런 시청자들이 느끼는 직접적인 고민들도 집어내고 나름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잔잔한 것들이 많아서 자신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공부와 스트레스 해소를 적당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나쁘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통했을까?
강준혁은 새삼스럽게 자신의 두뇌에 깜짝 놀라면서 자신이 포기한 수리 영역까지 꽤 탄탄하게 기초를 다졌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나… 나 머리 좀 많이 똑똑했었나? 이런 머리를 갖고 등에 칼 꼽혔구나."
무조건 믿어줬다는 부분도 크기는 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 투성인데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봐도 되었다.
"하~ 정말. 와… 공부 열심히 했으면 명문대 진학도 가능했던 거 아닐까?"
대학교를 포기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다고 평을 받는 인서울 대학교에 진학이 가능한 수치이기는 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대학 진학을 더 권장하기는 했지만… 이미 정해 놓은 노선 때문에 깔끔히 포기를 했었다.
"나쁘지 않네…. 아니면 과거로 돌아와서 그런 건가?"
어떤 이유든 결론은 방학 때 자신은 기초 학습을 다시 탄탄하게 복습한 꼴이 되었고 의외의 소득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꾸준히 계속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이니 용돈을 꽤 많이 주시고 가셨는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학 기간 동안에만 벌써 35만 만원의 용돈을 모을 수 있었다.
옛날이라면 이걸 게임 현금 거래나 혹은 먹을 것을 사 먹는 것으로 소모했겠지만 지금은 좋은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차곡차곡 통장에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덕분에 통장에 쌓인 총 금액은 140만 원이 되었고 조금만 더 모으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장비들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공부에 집중을 하면서… 용돈으로 하는게 나으려나. 확실히… 일을 하기는 좀 너무 힘든 환경이야. 괜히 성적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하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떻게 노선을 정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준혁은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방문 열으셔도 돼요. 교복 다 입고 이제 나갈 준비 완료 입니다."
자신의 말과 함께 방문이 열렸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준혁은 따라 씨익 웃으며 말했다.
"차 태워주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요즘 우리 아들이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기특해서 그렇지."
"적당히 성적은 유지하려고요. 애들이 좀 공부를 열심히 하네요."
"그래? 그러면 학원을 가지. 아빠 친구들 자식들은 다 학원 가는데… 너만 안 가니까 좀 그래."
"에이~ 학원 안 가도 성적은 나오잖아요. 부모님을 잘 둔 덕분에 머리 하나는 타고나서."
"껄껄껄… 그래. 맞다. 우리 머리 닮았으면 그렇긴 하지. 근데 단순히 그 이유야?"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버지는 좀 더 근본적인 것을 물어 보셨고 준혁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 제가 좀 하고 싶은게 있어서요."
"뭐?"
"인터넷으로 방송을 좀 해볼 생각이에요. 음, 그냥 취미 삼아서 제가 하는 것들을 공유도 좀 하고 도움도 받으면서 해볼 요량인데… 그걸 한다고 성적은 떨어지면 안되니까 기초를 좀 잡아 두자고 생각했어요."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 아버지도 알고 계시기에 부정적인 말 보다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좋은 자세네. 취미로 기본이 흔들릴까봐 단단히 해 놓는다. 이거… 우리 아들이 좀 고등학교 올라가더니 성장을 했나 보네. 아빠가 괜히 걱정했어."
"뭐,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방송 같은거 하려면 컴퓨터나 이런 것도 있고 추가적으로 더 필요하지 않아?"
"아~ 그래서 용돈이나 이런 거 좀 모아두고 있었어요."
"그래? 그건 더 기특하네. 참나~ 좋다. 그럼 이번 2학기 중간 고사때… 성적 10등 안에 들어오면 아빠가 방송 컴퓨터… 최고로 좋은 걸로 사주마."
"네?"
"그 정도는 아빠가 해줄 수 있어. 어떠냐? 최고로 좋은 걸로 하면 한 200만 원 정도 하려나? 더 나가냐?"
"예에!? 그, 정말이세요?"
"엄마 몰래 보너스를 비상금으로 빼놓은 거 있다. 자신 있어?"
"10등요? 그거… 충분히 가능합니다. 진짜 열심히 할게요."
준혁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강한 의욕을 보였고 준혁의 아버지인 명현은 그런 아들의 모습에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좋다. 만약에 성적이 반에서 5등 안에 들면… 300만원을 너에게 그냥 주마. 방송 장비랑 컴퓨터랑 다 살 수 있게 말이야."
"… 무르기 없습니다. 아버지."
"오냐. 한번 해 봐."
명현은 준혁이 10등 정도를 간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1학기 중간 고사와 기말 고사의 성적이 14등, 15등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준혁의 반에 공부를 잘하는 놈들이 있어서 10등 안에 진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이 부분은 아내가 슬쩍 이야기를 해준 부분이 있어서 성적이 어느 정도만 되면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었다.
"예. 오늘부터 더욱 열공(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다."
준혁은 강한 의지를 다지며 회귀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공부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한 방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5등… 반드시 한다.'
* * *
"와, 진짜… 고등학교를 다시 가네. 하~ 감회가 정말 새롭다."
정말 오랜 만에 모교를 봤고 이런저런 추억들이 스쳐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친구들에 대한 것도 당연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던 녀석들도 있었고 떠나는 녀석들도 있었다.
애초에 민감한 법정 다툼이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여기기는 했지만 떨어져 나간 녀석들에게는 제법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믿어준 놈이……."
퍼억-
멍하니 정문에서 서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등 쪽을 강하게 부딪혀 숨이 살짝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고 준혁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자신의 오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윤준상… 돌았냐?"
"오우~ 준혁이~ 멍하니 왜 서있냐? 나의 숄더 태클을 맞으려고 서 있었던 거 아니야? 아침이라서 가볍게 톡 해줬다. 낄낄낄."
끝까지 자신을 믿어줬던 녀석이고 자신에게 금전적인 도움도 주려고 했던 녀석이다. 물론 여유가 있어서 괜찮다고 했지만 사회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500만 원을 슬쩍 집에 두고 갔었다.
덕분에 더 정신을 빠르게 수습한 부분도 있었고…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어휴. 내가 너라서 봐줬다."
"이욜~ 감사요. 크으. 근데 너 뭐했냐? 방학동안. 겜 접속 하나도 안 하더라?"
"바빴어. 이것저것 좀 한다고."
"이것저것? 뭐?"
"있어. 쨔샤. 나중에 알려 줄게. 중간 고사 끝나면."
"중간고사? 님 미치셨어요? 갑자기 웬 중간고사 타령이세요. 소름 돋게. 슈밤?"
벌써부터 시험 생각을 하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준상에게 준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아버지랑 내기를 좀 해서. 못해도 반에서 10등. 어떻게든 반에서 5등 한번 찍고 만다."
"오… 뭔데? 무슨 내기인데? 10등은 뭐… 네 성적 보면 가능하겠지만… 5등은 좀 힘들지 않냐? 우리 반 성적으로 보면… 반 5등이면 전교 40위 권인데."
"… 그러니까 중간고사 때까지 영혼을 갈아서 공부해본다. 딱 5등 찍어보자."
"그, 그 정도 각오면 뭐…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준혁의 모습에 준상은 뭔가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준혁을 툭 치면서 말했다.
"그것보다 들어가자. 매점에서 컵라면 한사바리 해야지."
"음, 그것도 좋지. 그러고 보니까 나 아침도 안 먹었잖아? 한국인은 밥심인데."
"헐… 님아 무슨 아저씨 같은 소리를요?"
뭔가 뼈 맞는 듯한 준상의 발언에 준혁은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침을 먹어야 두뇌 회전이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뭐, 그런거지."
"헐. 님 좀 이상하심. 방학 때 게임 접속도 안하고 공부만 하시더니 머리 맛 가셨음? 아니면 모닝 숄더 태클이 강력크 해버린 건가?"
진지하게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 보는 준상을 보면서 말을 더 섞으면 육체와 어울리지 않는 아저씨의 사상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얼른 매점이나 가자. 컵 라면 이야기 하니까 출출하네."
"음… 굉장히 맛탱이가 간 것 같기는 하지만… 컵 라면을 챙기려는 식욕을 보아하니 정상은 맞는 것 같군. 공부를 적당히 하도록!"
"똥 싸는 소리하고 있네."
"오호! 단어 선택은 내가 알고 있던 강준혁이 맞는 것 같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크흐흐."
쉰소리를 내뱉으며 낄낄 거리는 준상을 보면서 준혁 역시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준상과 함께 반으로 이동했다.
자신에게 인사를 해오는 고등학생 때의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많은 감정을 담아 인사를 하니 뭔가 괜시리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졌지만 자신에게 매점을 가자고 조르는 준상의 말에 감정들을 잘 수습할 수 있었다.
정말 그리운 나날이었다.
========== 작품 후기 ==========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