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회
영웅
칼스 레이너 백작은 일단 준혁에게 사과를 했다.
단순 토벌이라고 알고 있었던 자신도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의뢰라는 것을 파악했으며 이를 보상하고자 했다.
준혁은 이 부분에 있어서 개인적인 보상보다는 길드 전체의 보상으로 가닥을 잡아서 차후 트리톤 의뢰 보수에 있어서 6개월 동안 20% 증가 보상 금액과 1년 동안 길드 세금 면제를 주기로 했다.
준혁은 3개월 10% 보상 금액 증가, 6개월 세금 면제 정도면 된다고 했으나 잘못된 의뢰를 공시한 곳에서 따로 받을 수 있으니 넉넉히 배정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넉넉히 챙길 수 있었다.
이에 라온 길드는 1년 동안 바짝 길드가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발판이 생성된 것이고 길드원들은 6개월 가량 돈을 벌기 위해서 의뢰를 받고 트리톤을 벗어나 모험의 시작을 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칼스 레이너 백작이 이런 부분도 아마 염두를 하고 보상 기간과 금액을 늘렸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준혁은 조심스레 궁금했던 것을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저, 그런데 백작님……."
"흐음. 말 끝을 흐리면 곤란한 질문이 올 것 같은데?"
"아하하… 네. 그 조금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뭐, 괜찮네.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해. 아마 황제폐하에 대한 질문일 테지?"
먼저 선수를 치며 칼스 레이너 백작이 이야기를 하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질문을 했다.
"길쉬… 라고 알고 지낸 인물이 트리톤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우르크 제국의 황제라는 신분으로 간달푸님과 나왔죠."
"음… 솔직히 이야기를 하면 말일세."
"네?"
"우리 귀족들은 딱히 황제 폐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없네. 정확히 말하자면 황실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을 알지 못해. 그저 차기 황태자가 내정되면 저분이 차기 지존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네. 황후마마의 얼굴도 몰라."
"예에? 그게 가능한 겁니까?"
칼스 레이너 백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르크 제국의 황실은 적어도 후작 가문은 되어야지 어렴풋이 파악을 하고 있을 걸세. 백작인 나는 그저 황실에 충성하고 제국에 충성하면 되는 것 뿐이야."
"아니… 그래도 백작님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상업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지. 그리고 일신의 무력도 제법 쓸만 해. 하지만 말이야. 우르크 제국은 정확하게 귀족이 나뉘어져 있어."
"귀족이 나뉘어져 있다면… 중앙 귀족과 지방 귀족 이런 개념인가요?"
일반적으로 중앙 귀족은 영토가 작지만 막대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이들이고 지방 귀족들은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서 계급이 높더라도 살짝 끗발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네. 그건 일반적인 제국이나 왕국의 이야기지."
"그렇다면……?"
"제국을 세운 공신 가문과 일반 귀족 가문. 위대한 황제를 직접 모셨던 공신 가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네. 그게 제국의 공작과 후작들이지. 나 같은 이는 평생을 가도 백작이네."
"… 좀 충격적이네요. 후작님들은 대부분 나라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사병을 보유하는 뭐… 그런 계급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근데 후작 이상의 가문의 장자 혹은 장녀는 제국 황실의 기사단 교육을 받는다네. 공신의 가문의 특권이지. 종종 차남, 차녀가 가기도 하는데… 아무튼 제국의 긴 역사 중에 일반 귀족에서 후작 직위까지 오른 이는 단 2명 밖에 존재하지 않네."
"아… 그렇군요."
"그러니 나도 모를 수 밖에. 더군다나 선대 황제께서 승하 하시고 현 황제께서는 딱히 황태자 임명을 하시지 않았어. 나 역시 딱히 황실로 가서 깊게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말이야."
결론은 칼스 레이너도 겉 핥기 정도 밖에 모른다는 것이었다.
"저런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르셨겠군요?"
"음, 얼핏 들은 것은 있어서 단순히 마스터 이상의 경지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네. 내가 왜 황제폐하를 껄끄러워 하는 줄 아는가? 아니 나를 비롯해서 모든 <일반 귀족>들이 그렇겠지만……."
"절대 권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야."
"그럼……?"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네. 의중을 읽지 못하는 신하의 두려움이 무엇인 줄 아는가? 차라리 지시라도 내리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네. 그저 방치를 하시지. 그리고 방치된 신하는 불안함을 갖고 영지를 다스리네. 그리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지."
반란이라는 말에 준혁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칼스 레이너의 성향상 반란을 꿈꾸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입에 쉽게 담을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 단순히 불안하다고 그렇게까지 되는 겁니까?"
"우리도 일반 백성보다 신분이 높을 뿐… 결론은 폐하를 모시는 백성이네. 그런데 말이야… 우리를 이끌어줘야 할 높은 분이 아무런 것도 말 하지 않고 그저 무얼 하든 상관 없다는 듯 방치를 하면 말일세… 어떠한 것이든 보여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정신이 나가버린다네."
"…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것은 좋지. 하지만… 적당히 노선이라도 좀 잡아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조차도 하시지 않아. 단지 선을 넘는 이들은 그저 사라지고 새로운 이들이 기회를 잡아 다시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렇게 제국은 유지되고 흘러가. 그리고 이걸 지켜보는 우리는 피가 말라."
어떻게 보면 좋은 상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적정선만 지킨다면 별다른 터치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준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결국엔 발전 없는 자신의 영지를 계속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발전 없는 영지에는 다른 세력의 단체들이 굳이 자리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니 그렇게 잊혀져 가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걸 깨닫고 부지런히 발전을 시키고 노력을 하는 이들은 점점 더 풍성한 영지를 만들어 나가지만 결국엔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의미를 잃어 버린다.
발전을 하고 영지가 부유해지는 것은 좋은데 <공신 귀족>과 <일반 귀족>의 차이가 명확하게 있어서 결국엔 발전에 대한 제한이 생길 것이고 이걸 뚫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을 하지만 황제는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혹 자신이 잘못한 것인지 두려움이 밀려온 귀족은 어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취한 듯 걷다가 무너져 내린다.
"건방진 질문이지만… 백작님도 그러셨습니까?"
"하하, 그것 참 건방진 질문이기는 하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말이네. 그래. 나 역시 그러했어. 발전을 해도 성장을 해도 중앙에 많은 세금을 보내도 대답 없는 메아리지. 내가 잘못한 것인가? 혹은 더 많은 것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달렸지만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네. 그런데 황제 폐하의 눈과 귀와 입이라는 고약한 황실 마법사인 간달푸 영감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듯한 발언을 하니 환장하겠더군."
그렇다고 반란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고 혹여라도 트집이 잡혀 영주민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칼스 레이너는 바다로 향했다.
바다로 향해서 수 많은 종족들과 어울리며 복잡한 심정도 털어내고 여태까지 버틴 것이다.
"지금은 홀가분해 보이십니다."
"맞네. 브라운 공국의 사태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어서 그렇지만."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폐하는 자비롭다는 것이네."
"자비…요?"
"그렇네. 트리톤에 있었던 알 수 없는 마법사에 대한 것을 떠올리면 금방 답이 나올 걸세."
준혁은 크로노스의 이야기에 잠시 멈칫했다. 생각을 해보니 길쉬라는 이름으로 기르메쉬가 트리톤에 온 뒤로는 크로노스가 보이질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아?"
"이래저래 트리톤을 한번 살펴 주신 거겠지. 그리고 자네 말을 빌려 보자면 꽤 오랜 시간 머물다가 가신 걸로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지?"
"맞습니다."
"그래. 그런데 생각해보게. 9클래스 흑마법, 백마법을 익힌 존재보다 폐하의 무력이 낮을 것 같나?"
"… 솔직히 더 강할 거라고 봅니다."
크로노스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짐작을 했을 때, 브라운 공국 본대에 있었던 인물들이면 충분히 겨룰 만한 이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초대 공왕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 밀리기 시작했고 그 모든 것을 끝낸 것이 기르메쉬였다.
"그렇지? 내심 신경을 써주고 계셨던 걸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리저리 아마도 그렇게 제국을 둘러 보셨을 거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마 작은 칭찬에 우리와 같은 이들이 크게 기뻐하고 작은 꾸지람에 우리와 같은 이들이 크게 실망하니… 그저 황궁에 계시다가 아마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드실 때만 오시는 걸로 생각이 드네. 그리고 간달푸 영감은 파수꾼과 같은 위치일 것이고."
칼스 레이너 백작이 착각을 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준혁도 칼스 레이너 백작 본인도 몰랐다.
오직 브라운 공국을 멸(滅)하러 왔다가 준혁의 행보 때문에 마음을 바꿔 정화를 시킨 기르메쉬의 변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이래저래 마음이 혼란했던 칼스 레이너 백작에게 좋은 작용을 하게 되었고 서운했던 마음은 떨쳐 버리고 더욱 더 황실에 충성을 하고자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군요."
"먹이를 잡아주는 것보다, 먹이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폐하의 성향인 듯 싶네. 이제야 이걸 깨달았어. 섭섭함이 참 많았는데… 내가 옹졸했던 것이겠지. 아무튼, 이번 일로 인해서 자네에게 고마운 것이 참 많고 미안한 것은 더 많고 그러네. 그러니 자네도 이 트리톤에서 확실히 먹이를 잡아보게. 내가 먹이가 되어 줄테니 야무지게 뜯어가. 허허허."
저 말은 칼스 레이너 백작이 라온 길드의 후원자 위치에 있겠다는 뜻과 같아서 준혁은 그 어떤 보상보다 저 말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트리톤을 대표하는 모험가 길드보다는 칼스 레이너 백작이 직접 후원해주고 있는 모험가 길드라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니 말이다.
'신육을 먹고 나왔을 뿐인데… 밖의 상황은 정말 술술 풀리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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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오타는 수정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ㅎ_ㅎ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