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회
방향성
[타락한]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진 물의 정령들이 자신을 보며 공격을 하지 않고 그저 둥둥 떠 있는 상태였는데 떠나면서 자신을 향해서 소리쳤던 리네의 말이 떠올랐다.
'집단 폭행 시작하겠다는 건가.'
도와줬지만 도와줬다는 것을 아마도 모를 것이고 영역 침범이라고 여겨 자신을 공격할 것이니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전투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할 즈음에 갑자기 녀석들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파고들더니 3m 정도의 넓이가 되는 거대한 게이트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투명한 푸른 빛의 형체를 보이는 여성의 형상을 띤 존재가 나왔는데, 준혁은 물의 정령들의 수장임을 깨달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단순히 이름도 없이 [물의 정령]이라는 공통된 타이틀만 갖고 있는 녀석들과는 달리 저 여성체는 확실하게 이름을 갖고 있었다.
[ 비비안 ]
비비안이 등장하자마자 그녀가 발을 내딛는 곳에는 작은 웅덩이와 함께 화려한 꽃들이 피어났고 그녀는 눈을 꿈벅이더니 이내 말을 내뱉었다.
"그대는… 모험가로군요. 하지만, 새로운 존재."
"음!"
자신의 종족을 알아 차렸다는 듯한 모습에 준혁은 제법 당황스러웠다. 종족에 대한 부분은 정말 철두철미하게 비밀로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마족에게도 [인간]이라고 불렸는데 비비안에게는 [새로운 존재]라고 불렸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곳은 약속의 땅입니다. 버려진 자들이 오염을 시켰으나… 그대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었으니 고마움을 표합니다."
"음, 뭐… 마족이니까 당연한 거긴 한데……."
준혁은 일단 마족은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답변을 해주었는데 비비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준혁을 쳐다 보더니 말을 이었다.
"현무님의 축복을 받은 새로운 존재여."
"흠?"
"우리와 같은 남겨진 자들 역시… 버려진 저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길 희망합니다. 그저 이곳이 지켜져야 할 곳이기에 대립을 했을 뿐."
[남겨진 자], [버려진 자]
준혁은 이 단어들을 내뱉는 비비안을 보면서 버려진 자들은 아마 세계의 소멸로 버려진 생존자들인 마족을 뜻하는 것이라고 파악을 했다.
그리고 저 존재는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남겨진 자]들이라는 것인데, 정령체로 추정을 할 수 있는 그녀가 [남겨진 자]라고 내뱉는 것이 뭔가 미묘했다.
그렇기에 대화를 좀 더 이끌기 위해서 이야기를 했다.
"세계의 멸망과 생존자에 대한 것을 말하는 거라면 알고 있어. 단지 나는 나를 위협했으니 제거를 하려고 했을 뿐이야."
자신의 답변에 비비안이 무표정한 얼굴에서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잠깐 지으며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물의 정령 한 개체가 그녀의 주변으로 날라오더니 비비안의 손으로 쏘옥 파고들었고 3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손에서 빠져 나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군요. 당신을 향해 살의를 드러내었으니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잘 풀어나간 탓에 아이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음, 뭐… 그건 우연이라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저 아이와 싸웠을 때 적절히 봐준 것이 있더군요. 그랜드 마스터로 싸우지 않고 마스터 수준으로 어울려 주었습니다. 아마, 초기부터 전력을 다했더라면 저 아이는 소멸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뭐…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고마워 하지는 않아도 괜찮은데."
준혁은 저 녀석이 자신과 싸웠던 녀석인가 싶어 슬쩍 쳐다 보았더니 다른 녀석들과 달리 날개를 팔랑 거리며 까불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저 아이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군요."
"음?"
"데리고 가겠습니까?"
"갑자기? 그… 딱히 흐음?"
"어차피 당신이 본래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이곳 휴식터에 돌아올 것이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겨진 제가 있는 이상……."
"정령은… 정령계에서 따로 계약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정령원석을 이용해서… 소환을 하는 것이거나."
이러한 준혁의 질문에 비비안은 대답을 해주었다.
"남겨진 자들 역시… 버려진 것과 다름이 없지요."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긴 준혁은 이내 자신이 정말 한번 과한 추측을 해보았다.
"혹시… 다른 세계의 정령인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없이 기다리고 있기에… 나름의 배려를 받아 저를 비롯해 일부의 정령들이 남겨졌습니다."
준혁은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음, 혹시 이 블루디카 지역 전체가 당신의 세계가 남겨진 뭐, 유산 같은 건가?"
"그렇지는 않지요. 그저 이 구역만 그럴 뿐. 다만, 남겨진 자들로써 새로운 세상을 존중하기에 침범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의 역할만 하면 충분하니까요."
"놀이터… 그렇군. 혹시 이런 중립 지역들은 다 그런 건가?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있는 그러한… 것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군요. 다만,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법… 그것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비비안과의 대화를 통해서 준혁은 비비안이 의외로 마족에 대해서 별로 불쾌함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본인이 관리하는 아이들이 타락을 했는데도 말이다.
"음, 마족에 대해서 화가 나지 않았나? 아끼는 아이들이 타락을 했는데."
"그것 역시 중간계의 순리겠지요. 남겨진 자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일 뿐. 하지만 당신으로 인하여 다시 본래의 모습에 돌아왔음은 큰 기쁨입니다."
"… 모르겠군."
"그저 중립적 시각으로 바라 봐 주었으면 할 뿐입니다. 모험가는 충분히 그런 입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 3자의 입장에서 봐 달라고 한다면… 모험가의 입장에서는 솔직하게 제일 창조주가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힘만 주고 방관하다가 말 안 듣자 싹 다 죽이고 새롭게 세계를 창조한다.
그 과정에서 꾸역꾸역 버틴 놈들이 마계라는 자신들만의 피난처를 만들고 살아가다가 동일한 피해자들을 규합하여 자신들만의 세계를 살아간다.
물론 마계가 그렇다고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그것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그저 만들어진 피조물일 뿐이었다.
먼저 마계를 공격하는 일도 없었고 본인들이 마계의 내부적 상황으로 인해 중간계를 침공하여 중간계의 원한을 쌓은 것이다.
초반부터 그냥 솔직하게 오픈을 하고 일을 진행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계의 침공 이후 피해를 입은 많아지니 모험가 입장에서도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자신들이 유희를 즐기러 온 세상을 깽판치려고 하는 녀석들이 마족들인데 고운 시선으로 봐 달라는 것은 무리다.
"중립적으로 봐도 마계가 잘한 것 같지는 않아서. 설명이라도 하고 중간계에 오던가 그런 것도 없잖아? 그리고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를 했다면 또 몰라도 피해를 입고 죽은 이들이 많으니… 약탈과 다름 없다고 느껴져."
"… 그것도 그렇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의 등장은 적계심만 가질 뿐."
"생각보다 마족에 대한 적대감이 적었네.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동질감 같은 건가?"
"그럴 지도 모르겠군요."
동질감이라는 단어에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는지 눈을 감고 잠깐 생각에 잠겼던 비비안은 이내 이 대화 내용이 불편했는지 다른 것을 이야기 했다.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부탁이라면?"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너무 침입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된다면 공격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전부니까요."
"… 음, 여기가 안 쪽으로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서… 흠. 내부 길목 정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좋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들이 있다면 이게 전투를 진행해야 하고 그러니까… 이 부분을 좀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은데."
"해당 길목 부근에서 전투가 나는 것은 이해 하겠습니다."
비비안을 보면서 준혁은 이 정도의 배려라면 충분히 괜찮다고 여겼다.
"배려를 받았으면 나 역시 응당 배려를 해야지. 음, 물의 정령들은 몬스터가 아니라 이곳의 터주라고 소개를 하도록 하지. 그 나와 싸웠던 아이를 잠깐 소개 시켜 주면 될 것 같은데. 얘들도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아닙니다. 하지만 간단한 의사 소통을 몸 짓으로 충분히 할 수 있죠."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해. 그곳은 정령들의 놀이터와 같은 곳이고… 우리는 이들의 배려로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목을 확보하게 되었다. 뭐, 이렇게 소개를 하면서 이웃으로 소개를 할게. 뭐, 혹시 필요한 거나 그런 거 있으면 말하고. 불편한 점 있으면… 서로 뭔가 의사 전달을 해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하니까……."
믿을 사람이 누가 있는지 고민을 해보니 당장에 떠오르는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뀽이었다.
'뀽이면… 서번트고… 이쪽에 대한 비밀도 알고 있으니까. 음! 실력도 충분하고.'
계속 블루디카에 머무르기로 했으니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뀽이라고 좋은 친구 있는데 그 친구가 여기에 당분간 계속 있을 것 같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걸로 하자. 나도 전해 들으면 바로 확인할 거고."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음… 그리고 마족이 나온 건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아. 중급 마족을 넘어서 그 이상의 존재가 드러났는데. 좀 그렇거든. 대신 정령들이 대신 같이 싸워서 마계화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끝이 났다고 하지. 아마도 제국 측 인사가 올 것 같은데 양해 좀 해줘. 수사도 조금 진행될 것 같아."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해야 합니까?"
"절차라는 것이 있으니까. 나도 그쪽 소속이고. 대신에 정령들에게 그 어떤 불이익을 줘서 안된다고 강하게 이야기를 할 거야. 확실히 이야기를 하겠어. 다만… 내가 끗발이 안좋아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 숨거나 이러면 좋고."
비비안은 이내 납득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정령계로 돌아가면 됩니다. 아이들 역시 이곳을 놀이터로 여기여 노는 것이지 그 정도의 기간은 들어가도 되니까요."
"고마워. 그러면 대략적으로 큰 틀은 이렇게 해서 세세하게 나머지들을 조율해서 최대한 피해가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하지."
"대화로 잘 끝나서 다행이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는 이 쪽이 해야 할 처지였다. 준혁은 아주 잘 알고 있다.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이가 제대로 쓰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아마도 비비안은 못해도 정령왕 수준의 존재라고 봐야 하는데… 놀이터라 불리는 이곳이 만약에 정령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정령력이 활성화 된 곳이라면 비비안은 적어도 이 지역에서 신과 같을 것이다.
'지역 환경이 바뀔 정도였으니까. 일반적인 곳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거고.'
그러니 비비안이 최대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것임을 알기에 준혁은 최선을 다해 모두가 좋은 결과로 이끌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저 정령을 데리고 간다고 하면 정령사가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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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