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회
또라이 보존 법칙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은 기르메쉬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롤랑과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는 준혁을 보면서 말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녀석이 마족과 내통을 했다. 정확하게는 중간계에 마계화를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어."
"… 예?"
"서대륙에 위치한 전 세계의 잔존 지역에 활성화를 시켰으니… 마계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아마 마계가 곧 튀어나오겠군."
마계가 튀어나온다는 말에 준혁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굉장히 무감각한 느낌으로.
"그, 그게 무슨?"
"서대륙을 기반으로 북대륙에도 많이 심었더군. 거긴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한 상태야. 곧 마물들이 쏟아지고 그러겠지. 뭐, 그쪽의 일은 저 녀석이 아니라 그 쪽에 있는 간자들을 이용하여 진행된 거니 상관은 없지만. 우리 쪽에서 시선을 많이 끌어 준 탓에 북대륙이 위험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
그렇다.
롤랑은 서대륙에서 전방위적인 소란을 피우게 만든 이후에 북대륙에 위치한 마계의 다른 간자들이 활동하기 쉽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고 마계화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모험가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이목이 서대륙에 쏠렸을 시점에 일이 진행된 것이다.
"수 많은 이들이 죽을 짓을!"
"차라리 모험가들만 있는 세상이 나을 정도로 썩은 이들만 모여진 곳인데 무슨 상관이지?"
"뭐라고요?"
"썩었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황실 기사단원으로써 세상을 살폈을 때, 이토록 썩은 세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썩었다. 그러던 중 너희를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지. 유희를 위해 온 너희보다 못한 작자들이 즐비한 이 세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을 짓을 벌인다고? 당신 미쳤어?"
"파괴 뒤에 반드시 창조는 온다. 모든 것이 끝이나고 나면 더 나은 세상이 오겠지."
기겁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롤랑의 모습에 준혁은 어이가 없어 말도 쉽게 내뱉지 못했고 간달푸는 냉랭한 시선으로 롤랑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기르메쉬는 여전히 무감각한 표정으로 롤랑을 보며 말했다.
"종종 있었지. 충견으로써 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애정이 넘쳐 삐뚤어진 녀석들이 말이야. 그럴 때마다 마계의 녀석들이 중간계에 잔뜩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폐하! 어째서 그 강대한 힘으로 세상을 정벌하지 않고 작은 제국만 비호하시는 겁니까. 세상의 그 어디든 폐하의 영토가 아니십니까!"
롤랑은 기르메쉬가 자신을 조롱을 하는 것인지 비하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뉘앙스의 말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저 뜨거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 보며 소리쳤다.
"흐음?"
"오리악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팔천 세계의 모든 것이 폐하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리악스라. 그런가? 역시 녀석은 충견을 불량품으로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구나. 간달푸."
롤랑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간달푸의 이름을 부르며 기르메쉬가 고개를 돌리니 간달푸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실 기사단원으로 입단하기 전에 예비 단원에게는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권위와 직책을 높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파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황실 기사단원이 되고 난 뒤에는 오리악스와 내통한 이는 처음입니다."
"그게 무슨!"
롤랑은 간달푸의 이야기에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간달푸는 무심한 눈빛으로 롤랑을 보며 말했다.
"광적인 숭배는 브라운 공작으로 족하다. 황실 기사단원의 의미도 모르는 머저리는 죽음으로 사죄하는 것도 아깝다고 생각 합니다."
"폐하에 대한 숭배는 당연한 것일터! 어찌 그런 망발을 짓거리는가!"
기르메쉬는 이를 보면서 한심한 눈빛으로 롤랑을 쳐다 보았다.
"이래서 거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존경은 하되 동경을 하지 말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냐?"
"폐하?"
"어리석다 말하지만 가장 어리석은 것은 본인인 줄 모르니. 고작 반푼이도 안되는 힘을 가지고 이런 짓을 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간달푸. 너는 이들의 수장으로써 감시를 느슨하게 했으니 확실한 책임을 저야 할 것이다."
황실 기사단의 수장이 간달푸였다는 소리에 준혁은 깜짝 놀랐다. 그는 그냥 대외적으로 황실 마법사가 아니던가?
"송구합니다. 폐하."
"수, 수장? 폐하. 기사단의 수장은 호, 호치 단장이?"
호치가 급작스레 거론되니 준혁도 놀라 롤랑을 쳐다 보았고 롤랑은 뭔가 혼란스럽다는 듯 머리를 쥐어잡으며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솔솔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는데, 기르메쉬는 귀찮은 듯한 눈빛으로 간달푸에게 말했다.
"선을 넘었구나."
"오리악스의 기운은 아닙니다."
"그래. 저 기운이 오리악스의 것일 리가 없지. 아스모데우스의 힘을 직접 받았군."
"모험가들의 죽음으로 인한 대가로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흐음. 모험가들의 죽음을 이용해서 힘을 받았다? 이것 참 모험가들의 이용 범위가 상당히 늘어나는 구나. 마족들이 눈이 뒤집히겠어."
롤랑은 자신을 보면서 마치 하나의 물건을 품평하듯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기이함을 느꼈다.
"폐하. 저는 신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더럽고 타락한 세상의 끝을 제가 이룩할 것입니다."
"그러기엔 그 힘이 너무 미약하구나. 겨우 아스모데우스의 작은 파편 정도를 받고 그 정도인데 말이야. 적어도 네 그릇이 6명의 마족은 몸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커야 할만할 것이다."
"……?"
"과거에는 너보다 더 엇나간 녀석들도 있었다. 작위가 있는 마족을 포함해서 952 마리의 마족을 삼켰지. 그럼에도 결말은 파멸이었다. 그게 불과 3800년 전의 일인데 기록에는 없나?"
간달푸에게 되묻자 간달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사로 기록된 것이라 황실 기사단원은 보지 못합니다."
"흐음. 그런가. 비사까지라고 표현할 것도 없지만. 무튼, 결론은 동대륙의 인사 몇 명이 나와서 판을 쳐도 정리될 수준이라는 것이지."
"북대륙에 단군을 비롯한 그들의 세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뭐, 정리가 알아서 되겠어. 계획은 루시퍼가 짰겠지?"
"예. 그렇습니다."
준혁은 너무 태연한 저들의 반응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롤랑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화, 황실 기사단을 제외한 다른 것이 있습니까?"
롤랑의 물음에 기르메쉬는 귀찮은 기색을 보였고 간달푸가 황당하다는 듯 되려 롤랑에게 물었다.
"황실의 힘을 고작 기사단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인가?"
"저희가 최강의 검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최강의 검이지. 세상에 풀어 칼 춤을 추게해도 딱 적당한. 그리고 그 중에 옥석을 골라 숨겨진 칼이 되는 것이지."
"이건 배신입니다!!! 저희의 충심을!!!"
롤랑은 배신이라 부르짖었고 기르메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롤랑을 보며 말했다.
"내가 충성을 받치라 말했느냐?"
"……."
아니다. 기르메쉬는 충성을 받치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황실 기사단에서 당연하게 여겨질 뿐이었고 늘 그렇게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애초에 황실 기사단이 왜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경이로운 무력을 지닌 황제였기에 그저 동경으로 뭉쳤을 뿐이다.
황실 기사단원의 기원 자체가 자발적으로 뭉친 존재들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을 배신했던가? 균형을 지키라고 말했던 내가? 아니면 그걸 어기고 한 네가? 애초에 내가 무엇을 너에게 말을 했기에 배신이라고 하는 거지?"
"……."
롤랑은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무것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더 충격이었다.
그랬다.
황제는 딱히 자신들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없었다. 그냥 수행해라. 지금처럼 하면 그냥 황실 기사단원으로써 잘 하고 있다의 응원 섞인 말 정도만 해줄 뿐이었다.
그것 외에는 대부분 많은 것들을 간달푸가 알아서 진행했고 단장으로 알았던 호치가 주도했다.
보고를 들었을 때는 알았다 혹은 수고했다 정도의 말 뿐, 무엇을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왜 너는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냐?"
"저는… 그저, 저는!"
"너 역시 저 옆에 있는 모험가보다 못한 녀석이다. 나를 제대로 보았다면 황실 기사단을 나가던가 혹은 진즉에 이와 같은 것을 말했겠지. 그저 너는 네 안에 있는 환상으로 나를 보지 않았느냐?"
"단지… 그저."
"네가 말살하려는 것과 너는 무엇이 다르지? 내 앞에서는 그저 똑같이 어리석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있기 때문에 살펴 주었다. 그런데 결론은 이것이니. 쯧쯧. 어째 늘 같을까."
몸이 떨렸다.
뭐라고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화가 솟구쳐 올랐고 검붉은 기류가 온 몸을 휘감았다.
점점 더 이성의 통제가 사라지는 그 시점에서 마지막 이성이 잠식되는 그 순간 내면에 무엇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롤랑은…
"마족화가 된 것인가. 확실히… 중간계에서 마족화가 되었다면 그 힘을 그대로 쓸 수 있겠군."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폐하. 저 정도면 능히 귀족 정도는 몸을 빌려 나올 수 있습니다."
"익스퍼트 정도가 되면 중급~상급 정도로 파악이 되겠군."
"예. 그대로 군단이 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나저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이런 재미있는 짓을 하고 말이야. 중립을 취해준 다는 것은 그저 나의 관용에 의거한 것인데… 이렇게까지 건방을 떤다면……."
기르메쉬가 손을 튕기니 허공에서 쇠사슬이 쏟아져 롤랑의 몸을 휘감았고 이내 롤랑은 몬스터가 울부 짖는 괴성을 소리치면서 난동을 피우려 했다.
하지만 결론은 쇠사슬에 묶여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 채, 검붉은 기운을 다 쏟아 내었고 새하얗게 쉰 머리카락과 공허한 눈동자로 기르메쉬를 볼 뿐이었다.
"데리고 가서 간달푸 네가 파악을 하도록."
"예. 폐하."
"그리고… 인디고. 상황은 이러했고 자네들에게 보상을 해주도록 하겠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제안이니까."
"아… 네."
"지급되기로 했던 보상의 5배로 대신하도록 하지. 죽음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될 걸세."
5배면 확실히 되고도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었기에 참여한 인원들은 큰 만족을 할 것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장비 4 부위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네에게 귀족 임명권을 부여하도록 하지. 그랜드 마스터인 만큼 백작으로 직위를 올리고 남작 위 4명, 자작 위 2명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해주지."
"!!!"
"물론 그건 자네와 달리 다른 곳에서는 인정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공적을 쌓으면 타 국에서도 인정 받도록 조정을 해주도록 하지. 조정이 된 인원이 빠지면 다시 임명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말이야."
저 말은 우르크에 계속 충성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자작과 남작을 계속 찍어내듯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모험가들이 마족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파악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미치게 날 뛰도록 하게. 토벌령은 계속 보내줄테니."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건승을 빌지. 호치는 곧 돌아갈 것이네. 이래저래 수습할 것들을 수습하고 말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몸 조심하게. 자네는 가장 큰 재물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야. 수 십번 재물로 받쳐도 되는 그랜드 마스터이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식은땀이 나오는 기르메쉬의 이야기에 준혁은 그가 왜 호치를 붙여 주려는 지 알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잘못 되는 것을 넘어서 중간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블루디카에 돌아간다면 마족에 대한 방비를 지금부터 해 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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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