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회
의미
"소시민이라 말하지만 숫제 괴물이었던 녀석인가. 미천한 자질로 그곳까지 기어 올랐다면 그 삶은 필시 불굴이었겠지."
기르메쉬는 랜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상향 평가했다.
"선생은 당대의 [영웅]이 될 싹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흥미롭겠군."
인조의 신이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어쩌면 써번트를 양도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나저나 전대 수호자라면 내가 얼굴이 익었을 터인데… 녀석은 분명 아니었거늘."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들이 있었기에 기르메쉬는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이건 조사를 하는 것이 낫겠다 여겨 간달푸를 호출하여 말했다.
"5000년 내의 수호자 기록을 다시 한번 꼼꼼이 살펴 보거라. 다른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비교하면서 말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음~ 중점적으로는 1000년 정도의 기록을 파면 좋을 것이다. 트리톤의 뀽과 연관된 것을 살피면 더 좋을 것 같구나."
"예.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간달푸는 다답에 기르메쉬는 그를 내보냈고 자신의 오랜 기억을 다시 더듬어 떠올리기로 결정했다.
모든 것을 살피다 보면 아마, 이상한 부분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만에 기억의 보고에서 고생 좀 해야겠군. 흠. 건방진 선생 녀석 같으니."
그 말을 내뱉고 난 뒤, 기르메쉬는 권좌에서 긴 상념에 빠진 듯 눈을 감았다.
* * *
준혁은 예상을 했던 일이 빨리 일어나자 당황스러움이 적잖게 있었다.
그래도 1개월 ~ 2개월 정도는 지나서 이러한 만남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흠. 더군다나 내가 뭘 말을 할 처지도 안되는 상황이지.'
황제와 만나 이야기가 된 상대에게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무력도 감당할 수 없다.'
선지자라고 한다면 써번트도 존재할 것이고 머릿속이 마구마구 복잡해졌다.
'왜 왔을까.'
모양새를 봤을 때는 시비를 걸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할 말이 있거나 그래서 온 것 같기는 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을 무렵, 어느새 다가온 지은이 자신의 뺨을 콕콕 찔러 상념에서 벗어났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어?"
"응? 아아. 뭐, 좀 이것저것 생각할게 많아서. 미안. 왜? 무슨 이야기 할 거 있어?"
"이야기 할 건 많지."
"뭔데?"
"아니~ 그게 음. 우리 부모님이 너랑 같이 사는 것도 좀 알고 그러니까… 뭔가 책임지는 행동을 하고 해야 한다고 하셔서."
책임지는 행동이라는 말에 준혁은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혼인신고?"
"응… 그게 또 걱정이 많으셔서."
"그거야 나도 당장에 하고 싶지. 어디 도망 못가게 옆에 딱 붙들어 놓으면 나는 좋은데."
"정말?"
"응. 당연히 좋지."
지은은 준혁이 결혼을 할 상대라고 말을 하기는 하지만 혼인신고에 대한 부분은 딱히 크게 거론을 하지 않아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또 작은 불안이 있었다.
그런데 준혁이 이렇게 밝게 이야기를 해주니 기분이 썩 좋아지면서 걱정을 한 자신이 조금 바보 같았다는 생각을 가졌다.
"헤헤, 그랬구나~"
"혼인 신고… 당장에 할까?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하고 난 뒤에 맛있는 거나 먹고 올까?"
"에엣? 이렇게 빨리 결정해?"
"양가 부모님께 이미 허락은 받은 상태고… 결혼식이 조금 밀리는 거지 그거는 상관이 없잖아."
"으응… 그렇긴 한데."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지금 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하네. 히어로 크로니클 내부 사정이 타이트하게 돌아가면… 좀 우리가 다 바쁠 것 같지 않아?"
최근 들어 크루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계화가 이렇게 살짝 허무하게 물러나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굵직한 침공으로 이어진다면…
적어도 마계화 초기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이들을 막고 길드 안정을 시키고 행정 업무를 바쁘게 하면서 쉴 틈도 없이 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보다 못한 2차 공습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하긴 이런 것도 내가 먼저 챙기고 그래야 했는데.'
전에 이야기를 자신이 먼저 꺼낼까 싶었다가 괜히 또 부담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았었다.
게임 스트리머로써는 나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도 미성숙했다.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을 했고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냥 부모님이 절망하시는 것이 싫어서 인생을 그냥 그렇게 살았다. 딱히 누구와 관계를 갖지도 않았으며 말이다.
'서툴구나. 정말.'
자신의 부족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어서 준혁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겸손함이 온 몸에 퍼졌다.
게임을 잘한다는 것과 회귀라는 말도 안되는 운이 겹쳐진 것 외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었다.
'그렇다고 공부에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이런 여자를 만나서 혼인 신고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자신의 팔자가 얼마나 폈는지, 그리고 얼마나 바뀌었는지 갑작스레 확 물 밀듯이 들어오는데 옆에 지은이 없었더라면 그 기분을 표출하고자 난동을 피웠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성격이 점점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솔직히 말해서 불안하고 초초함 같은 강박증이 적잖게 있었다.
늘 불안했고 걱정이 많았다. 계획을 꾸리고 수 많은 변수까지 또 집어 넣어서 계획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게 안되면 불안했고 수 많은 걱정과 상념이 가득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해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게 지은이랑 사귀기 시작할 때 같은데.'
정신적으로 좀 안정감이 오니 이래저래 여유도 생겼고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발 물러나 상황을 살피는 여유와 같은 버릇도 생겼다.
뭐, 지금처럼 다시 불안감이 휘몰아 칠 때는 조급증 같은 것이 다시 올라오지만 지은과 대화를 하고 나면 이런 것들이 많이 해소 되었다.
"진짜로 바쁘겠네. 일정 꽉 차버릴 것 같아."
"생각하니까 갑자기 피곤해진다."
"생각하지맛! 피곤해지지맛!"
"푸훗. 알겠어."
피곤해진다는 것에 예민하게구는 지은의 말에 준혁은 웃으며 넘겼다.
"일 하나가 끝나면 일이 두 개가 늘어나는 것 같아."
"그게 다 콘텐츠라서 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요즘에는 대연맹 소속 스트리머들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나눠 먹으니까 괜찮잖아."
"그건 그래. 대신에 초기에는 일이 팍 몰린단 말이야. 그리고 확실히 임원분들 월급 올려준 것 잘한 것 같아. 일이 거의 2배는 몰렸는데 월급 뽕맛을 잊을 수 없다고……."
"감사할 따름이지. 진짜 무슨 기업을 이끄는 것처럼 되었다니까."
"맞아! 딱 그런 느낌이야. 드라마 같은 거 보면 회사끼리 합치고 교류하고 그러잖아. 그런 느낌!"
"그렇지… 연구도 같이하게 되었고. 다들 즐겁게 게임하려나?"
"다들 좋아하던 걸? 몇몇 분들은 사교성이 자기가 부족했는데 라온 길드에서 함께 퀘스트를 하면서 좀 나아졌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그러더라. 그리고 인연을 찾은 분들도 많아. 우리처럼!"
라온 길드는 대표적으로 준혁의 팬 미팅 1회 외에는 라온 길드 전체를 상대로 모임을 가진 적이 없다.
초기 때에도 너무 많은 신청자가 몰려서 당시 준혁이 꽤 큰 마음 먹고 진행 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일반적으로 2개월 이상 진행되는 퀘스트 의뢰를 끝내고 나면 본인들끼리 정모를 진행하는 것이 마치 문화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현실에서 만날 수도 있고 게임 내에서도 진행 가능했다.
2개월 이상 진행된 퀘스트로 인해서 길드 명성 및 퀘스트 완료 보상이 길드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이에 관련된 금액 일부를 이런 만남의 지원 금액으로 쓰도록 진행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금액이 엄청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볍게 호프 집에서 맥주 한 두 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금액 정도였다.
덕분에 이런 만남에 드는 비용이 조금은 절감되니 부담 없이 현실 정모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 지원금 효과가 괜찮나 보네. 근데 문제는 없나?"
"아직 그런 문제는 하나도 없지.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아니고 맥주 한 두잔 먹고 그냥 노래방 정도 가는 정도로 마무리를 짓는데. 아무래도 그런 부분 이야기를 하기도 하니까."
"음, 다행이네. 이건 지원하기로만 하고 신경을 못 썼는데."
"아무튼 그래서 커플 비율이 꽤 많아졌어."
"아니 그러면, 채팅창에서 나를 타박하는 사람들은 기만자라는 건가?"
"쿡쿡. 그럴지도. 일단 널 놀릴 기회가 많이 없잖아."
"끄응. 뭐, 그렇긴 하지."
준혁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최근에 자신을 놀릴 기회가 없었던 시청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번 놀림을 받아줄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이야기 하다 보니까 느낀 건데."
"응. 뭘?"
"우리 혼인 신고 관련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된 거 알아?"
"알지? 왜. 뭔가 가볍게 흘러간 것 같아?"
"뭔가 안심도 되면서 복잡미묘 한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한 거라서 그래. 숨 쉬듯이 당연한 일이니까."
"… 그, 그런 거면 뭐 괜찮을 지도."
"자, 그럼 진짜 가자. 말 나온 김에 손 잡고 딱~ 가서 신청하고 오자."
"어~ 음! 부모님한테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차에서 통화하면서 가지. 혼인 신고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데이트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준혁의 말에 지은은 풋- 하고 웃으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러면 가자!"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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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