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스트리머다-509화 (479/548)

509회

의미

봉두난발의 머리를 한 사내가 입술을 물어 뜯으며 하늘을 쳐다 보았다.

회색빛의 하늘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으나 기묘하게 빛 한 줄기가 그곳을 뚫고 사내에게 비춰졌다.

사내는 이내 눈을 감고 중얼 걸렸다.

"스스로를 희생을 하오니… 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

"보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부디 이 마음의 뜻을 이해해 주소서!"

"스스로를 희생을 하오니… 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

"보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부디 이 마음의 뜻을 이해해 주소서!"

"스스로를 희생을 하오니… 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

"보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부디 이 마음의 뜻을 이해해 주소서!"

미친듯이 이 말만 반복하던 그의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쳤군."

"벨페… 고르!"

사내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벨페고르였으며 봉두난발을 하여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의 존재는……

"루시퍼. 정말 미친건가?"

루시퍼였다.

벨페고르의 물음에 루시퍼는 그것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조의 신에게… 접선을 해줄 수 있는가? 마계를 위해 한 팔을 거두어주기 위해 온 것인가."

"아니. 그냥 미친 짓을 하고 있길래 권유를 하려고 그랬지. 적당히 하라고."

벨페고르의 말에 루시퍼의 얼굴은 와장창 찌푸려졌다.

"흥! 홀로 고고한 척 하는 것이 그대의 존재 이유인가."

"무슨 그런 실 없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냥 사니까 사는 거지."

정신적으로 좀 고된 것들을 많이 당해서 그런지 몰라도 상당히 맛탱이가 간 듯한 모습에 벨페고르는 자신이 가속 버튼을 누르긴 했지만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컥해서 진행한 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되기를 희망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을 권고 받은 것을 어겼더니 지금 이렇게까지 흘러간 것인가.'

황제의 말을 들었다면 저렇게 반쯤 미치광이가 된 루시퍼를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 비웃으며 넘길 수 있었을텐데 속이 꼬여서 그렇게 된 것인가 싶기도 했다.

'너무 오래 그냥 있어서 그랬나. 아니면 나도 이걸 기대한 건가.'

어쩌면 루시퍼의 집착 어린 광기에 자신도 오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그렇게 소멸 시킨 둘은 더러웠지만 마계의 구원은 이해했다. 하지만 너는 무엇이지? 그 강력한 힘으로 마계의 멸망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너는 무엇이냐!"

"흠. 구원을 이해했다고 보기에는 좀 그러던데. 그냥 네 밑에서 딱 날 뛰기 좋아서 그런 거잖아?"

"타락을 했을 지라도 그 뜻은 알고 있었던 자들이다."

"뭐,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쩔 수 없고."

벨페고르는 자신이 시발점의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저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루시퍼의 감정을 이해하는 녀석들은 오히려 자기 단련을 하며 근육을 키우고 있는 녀석들이지 그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루시퍼가 강하게 그들에게 호소를 했다면 모습을 드러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사라져라."

"나야 뭐,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은 없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너의 행위를 막을 생각도 있고."

"벨페고르!"

"이봐 마계는 너의 것이 아니야. 왕이라고 불러준다고 마계가 네 것처럼 구는 것 아니지. 다른 지배자들에게 너의 사상과 행동에 대한 부분을 동의를 받았나?"

벨페고르의 말에 분노를 표출하던 루시퍼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건!"

"네 이상을 마계 전체에 진행을 하려면 9할 아니다 8할 이상의 동의는 그래도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

"중간계로 간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 같나? 그건 그대의 생각일 뿐 다른 누구의 동의도 없이 그걸 진행한다고? 기가 차군. 그래 간다고 쳐도 만약 중간계에서 대규모 토벌이 일어난다면? 지금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드래곤들이 깨어날 것이다. 밸런스를 위해서 제한된 힘을 모두 풀 수 있는 수준이겠지. 지배자들 수준이 아니라면 그들의 숨결 앞에서 죽는 녀석들은 천지에 널렸을 건데… 정말 동의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러면! 가만히 있다가 전부 몰락해서 죽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버림 받고 버림 받다가 결국엔 익사해서 죽으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러니 동의를 제대로 받으라고 전부 익사해서 죽을래… 아니면 뭐라도 해보고 죽을래. 물어 보고나 이야기를 하란 말이지. 괜히 엄한 마족들까지 싹 끄집어 내어서 골 때리는 상황 만들지 말고. 어차피 살 놈은 그 와중에도 살고 또 나아가니까."

맞는 말이지만 루시퍼는 벨페고르의 마지막 말에 분노했다. 결론은 힘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살 것이고 약한 자들은 그냥 또 그렇게 죽어간다는 뜻이었다.

여전히 그는 마계의 존재들에 무관심했다.

"여전히 이기적이군."

"마계의 모두가 이기적이지. 그래서 멸망한 거다. 적어도 괜찮은 놈팽이들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

"그리고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루시퍼 그대 역시 이기적이지 않은가? 누구를 구하기 위해서 누구를 희생되게 한다는 논리 자체가 이상한데 말이야. 더군다나 이게 실패할 경우 마계의 몰락은 물론이고 기존의 중간계도 파괴되어 또 다른 마계로 편입될 수도 있지. 자, 그러면 누가 이기적인거지?"

"그래. 내가 이기적이라고 하게. 하지만 날 막을 순 없을 것이네."

"그러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시작은 루시퍼 자네가 했지만 가속도를 붙인 것은 나니까."

오묘한 벨페고르의 이야기에 루시퍼는 멈칫하더니 이내 이야기를 했다.

"혹… 이것이 인조의 신이 내린 뜻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래. 그런 것이겠군. 자네가 이렇게 움직이는 일은 없었지. 그랬나. 그대가 인조의 신이 지정한 마계의 감시자였군!"

"환장할 소리를 내뱉는데."

자신이 무슨 감시자인가? 그냥 가만히 있는게 좋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마족인데 말이다.

더군다나 그때 인조의 신을 만난 이후로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기르메쉬와 협상을 할 때 슬쩍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다가 괜한 긁어 부스럼이 될까 입을 다물며 살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저런 개소리를 내뱉으니 뭔가 울컥하는 것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 이건가?'

자신을 자꾸 울컥하게 만드는 그 단어가 인조의 신이라고 여겼다.

마계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결론은 자신은 하나의 부품에 불과했다. 언제든지 대처 가능한 부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부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빌어먹을 감정을 주었다. 특히 고고하게 앉아 인조의 신과 동등하게 이야기를 하는 황제의 모습을 떠올리면 강렬한 무엇을 선사했다.

'이게 그 열등감 같은 거지?'

바로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고 그게 이번 사태의 가속화를 시키는 이유임을 알 수 있었다.

아주 길고 긴 세월 동안 알면서도 외면하며 이렇게 살았다. 그러니 계속해서 신경을 긁는 루시퍼의 이야기가 자신을 폭발시켰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하. 그런가. 어쩌면 그가 이걸 심어 놓았을 지도."

"무슨 뜻이지?"

"아니야. 뭐, 그래. 나쁘지 않겠어. 자네 마음대로 진행해. 마계를 중간계에 보내든 말든 음, 그래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지."

"……."

갑작스러운 벨페고르의 변덕에 루시퍼는 깨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수작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의 표정에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말의 불쾌함이 담긴 눈동자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불쾌함이 아니라 어떠한 존재에 대한 불쾌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계속 수고하게~ 하지만 이야기를 해둔다면 그런 것은 무의미하네. 그저 그런 것은 멸망의 존재만 일깨울 뿐이야."

마계 대륙에는 비밀이 많다. 루시퍼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잠들어져 있다. 하지만 벨페고르는 그걸 안다.

마계를 유지하는 핵으로써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루시퍼의 행위가 결코 인조의 신을 부르는 행위가 아닌 미친 짓을 하는 행위임을 알고 있다.

'뭐, 그 미치광이도 마계보단 중간계가 낫겠다 싶겠지.'

파괴를 하려면 이미 쇠퇴한 마계보단 활기 넘치는 중간계가 낫지 않겠나 싶었다.

"무슨 의미지."

"귀찮아졌다. 내 본질이겠지. 흠. 그냥 쉬어야겠어. 뭐가 되더라도 알아서 진행되겠지. 그게 끝이던 말던 왕 마음대로 하라는 이야기야."

마치 이제는 이것마저도 귀찮아졌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 대답한 벨페고르는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졌고 루시퍼는 그의 영역으로 가서 해당 상황에 대해 들어보려 했지만 그의 영지에 둘러 쌓인 거대한 막을 느꼈다.

"그건…! 황제의?"

기르메쉬가 쓰는 결계와 같은 것인데 절대적인 무력의 우위가 있어야 가능한 기술이었다.

그걸 두르고 자신의 성에 틀어 박혔다는 것은 이제 마계의 방향성에 대해서 아예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루시퍼는 되려 결심이 흔들렸는데…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뭐라도 말을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되려 찝찝한 경고만 남기고 사라졌다.

"시험인가? 내 불안정한 마음을 시험한 것인가."

벨페고르의 말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보면서 결심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 라는 의문도 들면서 이게 맞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결론을 내렸다.

"구원의 목적에 흔들림이 있어야 되겠는가."

이 말과 함께 루시퍼도 그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결계를 펼치며 다시 의식에 들어갔다. 뭐가 되었든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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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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