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회
밸런스
지은이 결혼에 대한 어그로를 방송에서 추가로 이야기를 한 덕에, QGN에서 진행하는 라온 크루의 MT 방송까지 무난하게 버틸 수 있었다.
호치에 대한 이야기도 쏘옥 들어갔고 뀽도 꾸준히 신경을 써준 탓에 표정이 밝아져서 한결 편안하게 MT 장소까지 올 수 있었다.
해당 장소까지 오면서 정말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모두 즐겁게 왔는데, 그 과정에서 진솔한 마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준혁의 경우에는 더 그러했다.
"음, 요즘에 방송이 조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했어요. 뭐, 나름 새롭게 이것저것을 해보려고 하는데… 솔직히 무던하게 넘겼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더라고요."
이중근PD는 이러한 준혁의 발언을 좀 더 담고자 하면서도 이게 기획력에 대한 고찰임을 깨닫고 나름의 위로를 해주었다.
자신도 젊을 적에 저런 한계를 느낀적이 많으니 말이다.
"그게 참 힘들지. 콘텐츠를 짜는 입장에서 그게 힘든 거야."
"히어로 크로니클을 메인으로 잡고 진행을 하지만 이제 슬슬 콘텐츠적으로 한계가 오는 것 같더라고요. 나름 최초로 할 것들은 다 한 것 같고. 추가적인 콘텐츠들은 그냥 재탕 콘텐츠 느낌도 나서요. 그래서 2부로 인디 게임이나 다른 게임을 하면서 종합 게임 스트리머로의 성향을 굳히고는 있는데 이래저래 고민이 많네요."
"한 가지를 메인으로 잡고 운영을 해버리면 곤란하긴 하지."
"아마 점진적으로 라온 크루나 라온 길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 거에요. 단체로 하는 것이 아닌 개인으로 해야만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것들만 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온 길드, 라온 크루는 거의 늘 같이 하는 콘텐츠를 했으니 남은 것들은 혼자 하는 것들이거든요."
이중근은 준혁의 이야기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실제로 그렇다고 여겼다.
"그래서 최근에 각자 방송을 진행해본 거에요. 콘텐츠를 진행하는 역량도 키워보면서 체크를 한 거죠. 뭐, 그 과정에서 크루 멤버들간의 유대감이 더 상승하기는 했고 더 돈독한 사이가 되었죠. 하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요."
준혁이 최근에 고민을 하는 것들이 다 이런 것이었다.
자신이 레벨 1로 돌아가게 되고 난 뒤에 라온 크루가 어떠한 형식으로 진행되어야 가장 이상적으로 운영이 될 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신이야 개인 콘텐츠로 빼면서 버티기를 한다고 하지만 라온 크루 멤버들은? 횡액 맞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불안한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면 라온 크루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이게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니 요즘에 정말 심적인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나마 자신의 비밀을 치트키 사의 대표에게 잘 털어나 문제를 해결해 놓았다는 것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음. 확실히 그렇네. 개인적인 콘텐츠들만 남은 것 같아."
"뭐, 파티 사냥 이제 나오게 될 던전 콘텐츠들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저희가 걸어온 길 만큼이나 길지는 않을 거에요. 보통 일반적으로 RPG 게임들의 경우에는 스트리머들이 아무리 잘 이끈다고 해도 1년 ~ 2년 정도면 어지간한 콘텐츠는 다 소비가 되거든요. 그래서 반복적으로 진행하는 레이드, 단체 퀘스트 콘텐츠가 정도가 남게 되는데. 쩝. 뭐, 이것도 한계죠. 사실."
미래에 대해서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준혁의 모습에 이중근 역시 위로를 해주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라온 크루의 성장이 멈추게 된다면 죽어나가는 것은 QGN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QGN의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라온 크루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일부 시청자들이 QGN이 라온 크루 홍보 방송국이냐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것 참 곤란한 상황이네."
"네. 던전 공략 콘텐츠나 이런 걸로 제가 보기엔 짧으면 1년 길면 2년 그 이상 버티기는 힘들 것 같더라고요. 이럴 때 히어로 크로니클 관련으로 프로 리그가 창설 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프로 리그?"
"네. 뭐, 저희가 나름 콜로세움 결투장 관련으로 콘텐츠를 한번 풀어본 적이 있거든요. 이게 근데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 이런 부분을 좀 어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오면 초기에 저희가 밑밥 설계를 한다는 개념으로 6개월 정도 돌릴고 이후에 프로 리그가 바톤 터치해서 이어 나가면 수명 연장은 될 것 같은데."
썰만 풀어도 상당히 나올 것이고 해당 관련 콘텐츠를 6개월 정도 진행하면서 쌓인 짬밥으로 해설도 가능할 테니 이래저래 라온 크루의 콘텐츠가 살아날 수 있었다.
"음!"
"그리고 전투 말고 일상을 즐기는 분들도 많으니까 이런 부분들을 좀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대회를 열 생각이에요. 예를 들어서 이번에 낚시 관련 대회를 한번 열 생각인데… 각 나라,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낚시 명소들을 찾아 다니는 거죠. 옛날에 도시의 어부라는 방송이 있었잖아요? 낚시 하는 방송."
"아! 그거 괜찮네?"
"그렇죠? 이렇게 나름 콘텐츠를 좀 빼내서 돌려 보려고요. 이런 건 장기 콘텐츠를 해도 확실히 매니아 층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까지 구상하면 뭐, 괜찮지 않을까? 미래 말이야."
"적어도 이런 콘텐츠가 20개 이상은 되어야 3년 이상 볼 수 있어요. 괜히 중간에 스폰서 받는 게임들의 대회를 여는 게 아니에요. 콘텐츠 소모 속도를 최대한 늦추려고 쓰는 거에요. 한국인 게이머들의 콘텐츠 소모량을 아시잖아요. 특히 공략 가이드 라인을 맞추고 난 뒤에 진입하는 분들이면 더 타이트해요."
단순하게 콘텐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콘텐츠의 소모도들까지 염두하는 준혁의 발언은 이중근에게 있어서 꽤 충격이었다.
그저 라온 크루와 잘 지내고 지원 및 홍보만 해주면 알아서 잘 풀린다는 조금은 구시대적 생각을 갖고 있던 그였기에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단순히 지금도 이 진솔한 생각을 좀 더 따내려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순간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것 참 부끄럽네. 이렇게 준혁이 네가 고민을 하는데. 뭔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린 기분이랄까."
"하하, 아니에요. QGN에서 라온 크루의 다양성을 보여준 계기도 충분히 됐어요. 고수를 찾아라 콘텐츠도 꽤 재미있잖아요. 많은 분들도 만났고."
"음. 그렇긴 한데."
"아무튼 다방면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버티면서 길드랑 크루를 지켜볼 요량이에요. 이후에 한계치가 오거나 혹은 특별한 사유가 생기게 된다면 음~ 홀로 방송을 꾸려나가게 되더라도 잘 유지할 수 있게 고민도 해보고요."
"근데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별 일 있겠어? 마계화 관련 부분도 잘 되고 그러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크루장, 길드장처럼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최선의 상황을 생각하기 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이래저래 낫더라고요."
뭔가 뒤통수를 한방 맞은 듯한 느낌을 또 한번 받은 이중근은 머쓱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진짜 QGN이 능력만 있으면 준혁이 너를 PD로 데리고 오는 건데. 그러면 대박 프로그램 하나 뽑을 수 있을 건데."
"에이~ 아니에요. 아무튼 이번 방송에서는 좀 머리 좀 식히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그러게요. 안팎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제대로 쉬지를 못했거든요."
"하긴. 결혼식 준비도 하고 있다며? 그게 많이 바쁘긴 하지."
"네. 뭐, 양가 부모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계시지만 당사자인 저희도 좀 체크를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근데, 이동 중에도 이렇게 계속 카메라 켜실 거에요."
"흐흐. 이동부터 녹화지. 휴계소에서 깜짝 간식 경쟁도 있을 거고. 스태프랑 라온 크루의 간식비 대결."
"이런. 잘못하면 출연료보다 지출이 더 크겠는데요?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야무지게 QGN의 제작비를 뺏어 보겠습니다."
"하하하. 좋아!"
진지했지만 결국엔 즐거운 분위기로 준혁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이중근은 카메라를 잠시 끄면서 준혁의 옆에 앉아 말했다.
"내가 이 방송 세계에 오래 있어보면서 느낀건데. 그냥 너무 힘이 들어가면 재미가 없더라고. 뭐,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낸 적은 없지만 재미있던 것도 힘이 들어가면 재미가 없더라."
"그런가요?"
"응.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고. 건강 생각하면서 적당히 해. 이게 정신적으로 압박이 상당할 거다. 결혼도 하면 가정도 생각해야 하는데. 일에 너무 얽매이면 그게 안좋아. 왜 일과 일상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하잖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말이야."
준혁은 이중근의 말에 확실히 현재 라온 크루는 이 워라밸이 맞아 떨어지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긴 하네요."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 거야. 롱런을 생각하면 언제나 최고일 순 없다고 생각을 해. 흥할 때도 있고 가라 앉을 때도 있는 거지."
꽤 의미있는 말들이었기에 준혁은 이 말을 가슴에 고이 담기로 했다.
스트리머로써의 삶을 다시 살아가지만 회귀 전과는 다른 스트리머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이것도 그 끝이 있는 법이니 흥망성쇠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면서 이 밸런스를 조절해보자고 여겼다.
적어도 아름답게 마무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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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