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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3화 (3/183)

3화

“헉............!〉

아이루고인들 사이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새어나왔다.

아리스티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듀란테의 표정도 꽤 볼만했다.

다들 눈앞에서 폭탄을 집어삼키는 걸 본 것처럼 반응했다.

“크홈.”

듀란테가 헛기침을 한 번 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런 게 아니라 마수가 출몰 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출정했다는 건가. 아리스티네는 어떤 상황인지 알아챘다.

‘그냥 사냥이 아니라 마수 사냥이었나 보네.’

그렇다면야 예비 아내가 오는데 자리를 비운 게 이해된다.

‘하지만.’

“왜 내게 처음부터 그렇게 말 하지 않았지?”

아리스티네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듀란테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어디에 있는지 물으셨기에 그 에 대한 답을 한 것뿐입니다.”

그 말에 아리스티네는 멈칫했다.

그래,맞는 말이다. 딱히 제게 거짓을 고한 것도 아니고.

아리스티네는 듀란테를 보며 입 끝을 살짝 올렸다.

“거짓을 말하는 것만이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니지.”

첫 만남인 데다가 상대가 자신을 경계하니 조금 더 호의적으로 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따지지 않고 적당히 웃어 주며.

첫인상은 중요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아리스티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제국에서 있었을 때와는 다르다.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난 지금,이곳 아이루고에서 아리스티네는 움직일 생각이니까.

‘이제 웅크리고 있는 건 끝났어.’

첫 만남에서 용납하면 앞으로도 계속 오해할 만한 정보를 전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

이건 처음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나를 경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바꿔 말하자면 자신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니 저 역시 기대에 맞춰 잘 대해 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반쪽짜리 사실만 말해 거짓된 답으로 몰아가는 것도 사람을 속이는 짓이야.”

듀란테의 눈에서 처음으로 당황이 내비쳤다.

아리스티네는 그 눈동자를 직시하며 눈매를 휘었다.

듀란테는 일순 숨을 멈췄다.

흙과 먼지,땀이 뒤섞여 더럽기만 한 얼굴인데 이상하게도 황녀가 눈에 박혀 들었다.

새벽의 하늘이 비친 것 같은 보랏빛 눈동자.

“앞으로는 날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듀란테는 황녀에게 궁으로 가기 전 씻고 의복을 갈아입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실바누스 측에서 바로 항의가 들어왔다.

〈씻으라니,감히 우리 황녀님을 더럽다고 하는 것이냐!〉

〈입궁하기도 전에 황녀님께 아이루고의 옷을 입히려는 저의가 뭐냐.〉

그 전까지는 황녀가 뭘 하든 신경도 안 썼으면서 갑자기 그러는 게 어이없었다.

몇 번 대화가 오갔으나 낯짝만 번지르르한 실바누스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군이 안 계신 자리에서 분쟁을 일으킬 순 없는지라 결국 듀란테는 한발 물러섰다.

“진짜 저 꼴인 채 왕궁으로 데 려가도 될까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

“실바누스 놈들 말 따위 들을 게 뭐가 있습니까.”

“정략혼 와중에 국가 분쟁거리를 만들자고? 그 사고 수습은 네가 할 거냐?”

“저 꼴을 보면 우리가 아니어도 분쟁이 날 것 같은댑쇼.”

맞는 말이다.

아이루고의 왕이 황녀와 사절단을 보면 모욕당했다고 생각할 게 뻔하니까.

왕은 전쟁의 완전한 종결을 원 한다.

그러니 정략혼이 깨지진 않겠지만 잡음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잡음은 고스란히 주군의 몫이 될 터.

게다가 실바누스인들의 무례한 태도를 볼 때 작정하고 분쟁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분쟁의 시작이 우리여선 안 돼.”

그 말에 전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듀란테는 부디 타르칸의 궁에 아무도 없길 바랐다.

‘헛된 바람일 테지만.’

그래도 왕이 몸소 발걸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런데 황녀님이 저런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이 꾀죄죄할 줄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았다.

“장난 아니었지. 상상이랑 너무 달라.”

“주군께서,큽,수줍음이 많다니……. 푸흡!”

킬킬거리는 웃음이 전사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스럽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웃음이 나왔다.

주군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녀뿐일 거다.

“저는 마음에 듭니다.”

“나도 좋아.”

“응,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지. 처음 봤을 땐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지만.”

듀란테는 전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황녀가 탄 마차로 시선을돌렸다.

비렁뱅이 같은 몰골을 한 황녀가 타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 을 정도로 마차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웠다.

무슨 사연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아까 마주했던 황녀의 눈이 잊히지 않았다.

그 지저분한 얼굴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던 눈동자.

속이 비칠 듯 투명하면서도 깊은 심해처럼 감히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눈이었다.

듀란테는 이내 생각을 털어 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군이었다.

“너무 좋게만 보지 마. 실바누스 놈들은 영악해서 속을 모른다고. 황녀가 주군을 죽이러 왔을지도 몰라.”

Chapter 2. 변태구나

‘이 사람들 우리 주군보다 황녀를 더 기다리는 거 아냐?’

‘황녀를 신부 삼을 사람은 댁들이 아니라 우리 주군이신데.’

타르칸의 궁에 몰려온 사람들을 보고 전사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주군의 형제자매들이라 뭐라할 수도 없다.

정작 남편이 될 사람은 마수 때문에 신부를 마중 나오지도 못했는데 다른 왕족분들은 어쩜 그리 한가하셔서 이렇게 구경 와 계신지.

‘그래도 폐하께선 오지 않으셨어.’

다행히도 왕은 황녀의 더러운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주 긍정적인 건 아니 었다.

주군의 형제자매들이 무슨 생 각으로 여기까지 와 있는지는 뻔했다.

‘주군의 신부가 어떤지 염탐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그러는 거겠지.’

멀쩡해도 배알이 뒤틀려 홈잡을 자들이다.

그런데 황녀는 누가 봐도 커다란 홈이 있었다.

화려한 마차의 외관에 설핏 얼굴을 굳히는 왕족들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왕족들은 저 마차에 걸맞은 신부가 타고 있을 거라 생각할 거다.

부디 마차 문이 열리지 않기를. 갑자기 고장 났기를. 아니면 번개라도 떨어지기를.

야속하게도 문은 아무 문제 없이 부드럽게 열렸고一.

“세상에……!”

“이,이게 무슨……”

마차와 대비돼 거적때기를 입은 것 같은 황녀가 모습을 드러 냈다.

전혀 상상치 못한 몰골에 사람 들은 바로 비웃을 생각조차 하 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풋!”

곧 피식거리는 조소가 여기저 기서 터져 나왔다.

“과연 미천한 핏줄의 짝다운 모습이군.”

“수준이 맞는다고나 할까.”

“실바누스의 황녀라기에 기대 했는데 파뉴강 굴다리 밑 거지만도 못한 몰골이야.”

킥킥. 들으라는 둣이 모욕을 주며 비웃음을 흘린다.

위아래로 훌으며 품평하는 눈과 눈과 눈.

무수한 시선이 날카로운 창과 화살이 되어 아리스티네를 찔렀다.

고향을 떠나 먼 타향에 도착한 새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 막히는 적의였다.

원래라면 핍박받는 신부를 보호할,친정에서 함께 온 이들조차 깔깔거리며 그녀를 무시했다.

오히려 그들의 눈동자에 들어찬 희열이 다른 누구보다도 강 했다.

“저 꼴을 환영할 리가.”

“아이루고에 오면 뭐 다를 줄 알고 그간 이상하게 뻗대더니.”

“이제 제 위치를 깨닫고 고분 고분하게 굴겠지.”

듀란테를 비롯한 타르칸의 전사들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아리스티네를 비웃고 조롱했다.

그 순간.

펄럭이는 천 소리와 함께 보드랍고 매끄러운 것이 아리스티네를 뒤덮었다.

‘어?’

그녀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획 들어 올려졌다.

순식간에 발이 지면에서 멀어지고 대신 땅보다 더 단단한 손이 허리와 허벅지를 지탱한다.

“황녀.

맹수의 목울음같이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오싹.

소름이 돋는다.

아리스티네는 그 후에야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비단으로 감 싼 후 품에 안아든 것이다.

‘으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는데도 왜 상황 파악을 잘못한 것 같지?!

아리스티네는 당황해서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녀를 안고 있는 남자 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예 팔을 좀 더 들어 올려 제 가슴에 아리스티네가 기대게 만든다.

어찌나 품이 넓은지 아리스티네가 그의 뜨겁고 단단한 가슴에 폭 묻힐 정도였다.

“이봐! 멋대로 손대면 어쩌자는 거야!”

실바누스의 기사가 남자에게 꽥꽥 소리를 질렀다.

물론 아리스티네를 만진 게 무엄하다고 책하는 건 아니었다.

“이 비단이 어떤 비단인 줄 알아?! 순금 궤짝과도 못 바꾸는 귀한 거라고! 이건 특별히 아이루고 왕.. 에게.

기사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입이 꾹 다물리고 눈동자가 풍랑을 맞은 조각배처럼 떨렸다.

완전히 압도당해 눈치 보는 모 습에 아리스티네는 의아해졌다.

‘이 남자가 특별히 뭔가를 한 것 같진 않은데……?’

고개를 위로 들자 곧장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햇살같이 반짝반짝한 눈동자.’

예쁘다.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밝은 금빛이었다.

“그래서, 뭐.”

아리스티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남자의 입술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작은 목소리지만 맹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묘하게 위협적이었다.

“가장 귀한 것을 내 신부님께 드려야지.”

신부?

아리스티네는 그제야 깨달았다.

시선을 돌리자 듀란테를 비롯한 전사들이 남자와 자신 앞에 부복해 있는 것이 보였다.

거친 전사들이 일제히 예를 표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뒤로 실바누스의 기사들이 보였다.

불만을 품었지만 차마 다가오지도,뭐라 하지도 못하는 모습.

저 오만한 치들이 이렇게 구는 건 처음 본다. 그것도 우습게 보고 업신여기던 아이루고인에게.

남자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그 만큼 압도적이라는 뜻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一.’

남자의 눈과 아리스티네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그저 바라보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상대를 분명히 인지하고서.

‘내 남편이 될 사람이구나.’

* * *

타르칸은 제 신부를 구경거리 취급 하며 모인 형제자매들을 한 번 쭉 쳐다봤다.

찔끔한 왕족들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지라 타르칸은 발걸음을 떼 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궁인들이 주인의 귀환을 반기며 무릎을 꿇었다.

“착각하지 마.”

커다란 소파에 아리스티네를 가볍게 내려놓은 타르칸이 툭 내뱉었다.

“착각?”

아리스티네의 대꾸에 궁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의 주인에게 저렇게 편히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보통은 안 그러려고 노력해도 위축되기 마련인데 황녀의 얼굴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네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니까.”

‘그야 그렇겠지.’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말에 수긍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다.

거울을 안 봐도 자신의 몰골이 어떨지는 뻔했다.

아리스티네는 팔을 들어 쿵, 하고 냄새를 맡았다.

향수 냄새 대신 땀 냄새가 난다.

‘날 좋아해서 그런 거면 그거야말로 좀 위험한 거 아냐?’

먼지 덩어리에게 한눈에 반하는 취향이라.

변태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였다.

‘아,변태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건가.’

그런데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다.

‘그럼…….’

“변태?”

“뭐?”

타르칸은 대체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변태라니.

그런 말을 한 주제에 여자의 얼굴은 고요했다.

아까부터 표정 변화랄 게 거의 없다.

‘아니,뭐든 상관없어.’

“이 여자를 씻겨.”

타르칸이 혀를 차며 궁인에게 명했다.

일단 꼬질꼬질하니 먼지가 가득한 몰골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했다.

“우리 아직 혼전인데.”

그런데 여자가 불쑥 그렇게 말 하는 게 아닌가.

대체 또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당황이 가시니 대충 뭔지 알것 같았다.

여자들은 항상 그에게 이런 것을 원했다.

타르칸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씻기고 나서 잡아먹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누가 너처럼 더러운 여자를.”

말하고서 아차 했다. 황궁에서 곱게 큰 여자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럽다는 건 문자 그대로 더럽다는 건데 다르게 들릴수도 있는 말이었다.

타르칸은 슬쩍 아리스티네를 살폈다. 하지만 곧 귀찮아졌다.

‘신경 쓸 거 없지.’

이 여자가 뭐라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작해야 왕의 명에 따라 결혼 하는 상대일 뿐. 이 여자는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잡아먹어....?”

하지만 여자의 입술에서 그런 발언이 나오자 동요하지 않을수 없었다.

비록 그가 먼저 했던 말이지만 아내가 될 사람 입에서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너……”

잠시 말을 멈춘 여자가 그를 위아래로 훑더니 툭 내뱉었다.

“변태구나.”

단정 짓는 어투였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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