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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22화 (22/183)

22화

“와,진짜 깨끗하네!”

아리스티네가 감탄하며 다가와 자신의 키만 한 검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같아. 물결무늬도 이렇게 선명하구나.”

겁에 질려 물러서긴커녕 아예 코를 박을 기세였다.

유심히 검날을 살펴보던 아리스티네는 심지어 검을 향해 손을 뻗기까지 했다.

하지만 칼날에 닿기 전 멈칫하고는 무칼리를 힐끔 살폈다.

“혹시 만져 봐도 돼?”

다른 사람이 검을 만지는 건 싫다. 어느 전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정말로,진짜로,완전히 어쩔 수 없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신다면.”

“고마워.

생긋 웃은 아리스티네가 조심스레 검면을 만졌다.

서늘한 철의 감촉.

살짝 소름이 돋는 게 기분이 묘했다.

“대단한걸. 날에 닿기만 해도 베일 것 같아.”

“사람의 피부라면 힘을 주지 않고 닿는 것만으로 베이오.”

무칼리가 자랑스레 말했다.

“응, 굉장한 연마가공술이야. 확실히 마수의 껍질은 단단하니까. 이 정도의 예리함은……”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손을 떼고 무칼리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무칼리는 흠칫했다.

검을 보느라 아리스티네는 자신의 바로 앞에 있었다.

갑자기 왼쪽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그 징그러운 흉터를 자세히 본 아리스티네가 뒤로 물러서는 걸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리스티네는 뒤로 물 러서지도,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냥 사람을 대할 때 으레 그 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작은 얼굴 위에서 혐오감이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녹 관리는 어떻게 해?”

그냥 그렇게 물을 뿐.

진지하고 심각한 물음이었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섬뜩하고 혐오스러운 흉터가 아니라,검이었다.

무칼리의 자랑인 검.

“녹스는 거 말이오?”

무칼리는 목이 잠긴 것을 느꼈다.

“응.”

녹 관리라니.

설마 전사도 아닌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검에 관심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하는 질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야 녹슬지 않도록 손질을 하는 수밖에 없지. 나는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하고 있소.”

“역시 손이 많이 가네.”

“이 녀석은 귀한 녀석이니까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줘야지.”

무칼리가 검날을 퉁,튕기며 말했다.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관리해주면 이 녀석도 그만큼 좋게 반응해 주오. 이 녀석은 이렇게 커다란 몸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탄성이 굉장하오. 이건 이 검을 만든 장인이 열을 부분적으로 다르게 처리해서 그런 거요. 그 렇게 하면 각 부분의 경도가 달라지고, 이때 경도는 탄소와 관련이……”

과학 쪽 이야기는 아리스티네 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아리스티네는 얼추 추측해 가며 이야기를 들었다.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인 무칼리가 이렇게 어려운 원리를 이야기하는 게 신기했다.

과학 분야는 학문이 발달한 실바누스에서도 고급 학문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정말 검을 좋아하는구나.’

둑이 터진 것처럼 제 애검을 자랑하던 무칼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런 이야기는 같은 전사들도 싫어했다.

이렇게 세세한 원리를 파고드는 것은 대범한 전사가 아니라,책상물림이나 하는 유약한 치들 이나 좋아하는 거라고.

‘그래서 보통은 남에게 말하지 않는데……’

그의 커다란 덩치에도 안 어울리는 짓이었다.

멋쩍은 기분이 되어 아리스티네의 안색을 살피는데 그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 줘서 고마워. 꽤 도움이 되었어.”

“……다행이오.”

무칼리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대화가 잠시 멈추자 무칼리는 어찐지 어색함을 느꼈다.

황녀가 뭘 하고 있는지 신경 쓰이는데 어쩐지 돌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속으로 검 손질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까지 아무 말 없으면 뭐라도 말해 볼 생각이었다.

딱히 황녀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 정보를 얻어 내려는 계략일 뿐.

첫 번째 과정을 복기하던 무칼리는 참지 못하고 생각했다.

‘……그냥 두 번째 단계에서 말을 걸어 볼까?’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그가 아리스티네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아악!”

갑자기 아리스티네가 비명을 질렀다.

무칼리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 떴다. 저절로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커다란 무칼리의 몸이 단단한 벽처럼 아리스티네를 막아섰다.

예리하게 날 선 눈빛이 방의 곳곳을 훌는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위험 요소는 없었다.

‘뭐지?’

무칼리가 의아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차가 다 식었어……”

가슴 밑에서 작은 목소리가 웅얼응얼 들렸다.

‘……차?’

내려다보니 황녀가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에는 찻잔을 꼬옥 쥔 채.

“스트로베리 크림 티……. 정말 먹어 보고 싶었는데……”

이보다 더 우울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무칼리의 입술이 몇 번 달싹이 다가 다물렸다.

뭔가 황당하고 어이없고 어쩐 지 조금 화도 나는데,허탈해서 인가 웃기기도 했다.

“후,이야기에 너무 집중했나 봐. 이 중요한 걸 잊다니.”

아리스티네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붉은 찻 물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을 비우긴커녕 미련이 뚝뚝 남는 눈빛이었다.

아쉬운 둣 입맛을 다신 아리스티네가 무칼리를 올려다보며 어깨를 으쏙였다.

“하지만 경과의 대화가 재미있었으니까.”

그걸로 됐지,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무칼리는 잠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차 같은 거,얼마든지 다시 우려 오라고 하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리스티네에게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시녀들을 다시 부를 생각을 하지 않는 건一.

‘나 때문인가.’

시녀들이 자신을 다리가 스무 개 달린 벌레 보듯 봤던 게 기억 났다.

당연히 무칼리는 그녀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

무칼리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가 떠나고 난 다음,아리스티네는 시녀를 불러 그렇게나 먹고싶어 하는 차를 다시 내오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분명 그러겠지.

하지만.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오시는 건 어떻겠소.”

“응?”

“그런 차는 우리 집에도 있으니 말이오.”

크흠,무칼리는 괜히 헛기침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황녀를 가까이에서 감시하기 위해서다.

“와,정말?”

아리스티네가 반색했다.

초대받아 누군가의 집에 간다는 것.

그건 홀로 갇혀 살아온 그녀에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그럼 나는 스콘을 가져갈게.”

말하고 난 뒤,아리스티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져가도 되겠지? 어디 초대 받은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 정도는 요구해도……’

아무리 타르칸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너무 재산을 축 내는 건 좋지 않다.

그래서 밥도, 다과도 항상 내 주는 대로만 먹고 있다.

‘왠지 최근 양이 많아져서 기쁘지만.’

특히 타르칸이 올 때엔 꼭 티 타임을 갖는데,그는 디저트에 손을 안 대서 좋았다.

“스콘, 말이오?”

“응,여기 스콘 정말 맛있거든. 식어도 맛있어. 먹어 봐.”

무칼리는 미심쩍은 눈으로 테 이블 위에 놓인 스콘을 바라봤다.

‘분명 주군께서……’

자신이 외부 일로 참석하지 않은 회의에서 타르칸이 파티시에를 구하라 명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스콘을 잘 굽는 파티시에를.

다들 새로운 전투 식량을 개발 하려 하시나 보다고 말이 많았다.

그런데.

‘설마.’

갑자기 든 생각에 무칼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아니,아닌 게 확실 해.’

주군을 곁에서 모신 게 몇 년 인가.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곧 새로운 전투 식량이라며 스콘을 가져오실 거다! 황녀를 시험체로 쓰시는군! 음!’

무칼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스티네가 권한 스콘을 먹었다.

맛있었다.

Chapter 8. 여기 두 사람만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물어본 사람?

“후후,황녀님 기분이 어떠세요?”

“제가 다 두근거리고 설레네요. 하아.”

아이루고 궁인들이 아리스티네 의 몸에 옷을 대며 몽롱한 얼굴을 했다.

“어차피 결혼할 생각으로 한 달도 더 전에 실바누스에서 출발했는걸.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건 없지.”

아리스티네의 무신경한 대답에 궁인들이 흥분해서는 빠르게 재잘거렸다.

“새삼스럽다니요! 오늘이 결혼식인데!”

“아무리 그래도 오늘만은 기분이 다르죠!”

“이렇게 웨딩드레스도 입으시는데! 입는 것만으로도 설레잖아요”

“드레스도 이미 전에 입어 봤으니까……”

피팅하느라 몇 번이나 입어 봤다.

실바누스에서 가져온 예복은 너절해져 다시 입을 수조차 없었기에 새로 드레스를 맞춘 것이다.

“그렇게 입어 본 것과 결혼식 날 입는 건 전혀 다르죠!”

“맞아요! 어떻게 그게 같을 수있어요.”

“그런가……”

중얼거리며 아리스티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웨딩드레스는 실바누스의 비단을 사용해 아이루고 전통 웨딩 드레스 양식으로 지었다.

아리스티네가 공식 알현 때 그런 식으로 드레스를 지어 입었던 게 모티브가 되었다.

양국의 화합을 위한 혼인에 딱 걸맞은 옷이었기 때문이다.

왕족의 결혼식은 당연히 회자가 된다.

부케와 장식,예물,규모,동선, 초대된 손님 등등.

그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단연 신부가 입는 드레스다.

웨딩드레스가 두 국가의 문물을 결합해 하나로 엮어 낸 것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상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드레스를 입은 나도 평화의 상징으로서 백성들의 뇌리에 박히겠지.’

정치는 곧 이미지다.

무의식중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되는가는 굉장히 중요했다.

‘거기에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어.’

이것이 아리스티네의 아이디어이며,처음 선보였을 때 비웃음을 샀다는 게 알려지면 꽤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건 왕위 다툼 여론전에 꽤 쓸 만하겠어.’

대등한 사업 파트너로서 타르칸의 왕위 다툼을 도와주기로 했으니 열심히 해야 했다.

‘어서 빨리 타르칸을 왕으로 만들어 주고 나도 자유를 되찾고 싶다.’

뭐,일단은 그 전에 돈을 왕창 모아 놔야겠지만.

‘평생 내 마음대로 놀고먹고 살 돈!’

아리스티네가 유심히 웨딩드레스를 바라보자 궁인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무관심했던 황녀님이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여 뿌듯했기 때문이다.

‘역시 새 신부는 이래야지.’

‘얼마나 설레실까.’

‘후,괜히 내 마음까지 울렁거리네.’

그들은 설마 아리스티네가 정치 여론과 왕위 쟁탈전,심지어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때론 모르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는 법.

궁인들의 손길을 받으며 아리스티네는 거울 한편에 비친 실바누스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날이 날인 만큼,오늘은 시녀들도 시비를 걸지 않고 조용했다.

결혼 자체가 파투 나면 시간을 벌어야 하는 실바누스 역시 곤란해진다.

그럼에도 아리스티네를 더럽게 꾸며 아이루고를 조롱한 이유야 하나였다.

‘아이루고 쪽이 더 평화 협정에 절박하니까.’

아이루고는 언제 마수가 공격 할지 몰라 빨리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 협정을 공고히 해야 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고 있으면서도 실바누스보다 더 평화를 원했다.

‘내 아버지도 참 치졸하고 비겁 하시지.’

먼저 침략해 놓고 전쟁에서 밀리자 평화 협정을 맺자고 제의 하고,딸까지 보냈다.

그러면서 뒤통수칠 생각부터 한다는 것도 참 없어 보였지만, 그 와중에 상대의 사정을 이용 해 조롱할 수 있는 부분에서 조롱한다는 게 더 졸렬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저 시녀들이 황제보다 나은가.’

그렇게 생각할 때,로잘린과 나머지 시녀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결혼이 파투 날까 자중 한 게 아니었어?’

아리스티네에게 시비를 걸지않는 건 자기들끼리 서로 으르렁대느라 바빠서 그런 거였다.

아무래도 갑자기 아리스티네의 입 안의 혀처럼 굴며 자신들의 말을 사사건건 받아치는 로잘린에게 더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흐음.’

아리스티네는 흥미롭게 그녀들을 구경했다.

결혼을 위한 긴 치장이 지루했던 차다. 그 와중에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

로잘린의 성격이 가장 드세지만,다른 시녀들은 쪽수가 많았다.

막상막하이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오,저러다 머리채라도 잡겠는데?’

궁인들은 주인의 결혼에 두근 거리고,아리스티네는 싸움 구경에 두근거리는 사이 치장이 다 끝났다.

사람이 너무 감탄하면 말이 안 나오는 거였다.

궁인들은 말을 잊은 채 아리스티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쁘다는 생각도,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몸이 둥둥 뜬 것 같은 상태로 아리스티네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역시 예쁜 건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 게 재밌는 거였다.

“다 끝난 거야?”

아리스티네의 말에 홈칫,정신을 차린 궁인들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황녀님 정말,정말 아름다우세요!”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하셔 요.”

“정말,정말 황녀님의 치장을 돕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아이루고의 웨딩드레스가 아니었다면 이들이 아니라 친정 시녀들이 치장을 도왔을 터다.

소란스러운 궁인들의 감탄에 싸우던 시녀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 예뻐 봤자 얼마나 예쁘다고.”

“방정맞게 저렇게 호들갑을 떨다니.”

“황녀님 정도는 우리나라에서 꽤 흔한 외모인데,역시 아이루고인들은一.”

一까지 말하던 시녀들의 입이 딱 다물렸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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