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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26화 (26/183)

26화

“그,그게,그런 거 아니에요, 오라버니!”

퍼렇게 질린 디오나가 소리쳤다.

그러나 듀란테는 반응하지 않고 아리스티네에게 깔끔하게 인사했다.

“그럼 비전하,딱히 준비에 차질은 없는 듯하니 저는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그래.”

고개를 숙인 후 뒤돌아 나가던 듀란테가 우뚝 멈춰 섰다.

“아,결혼 축하드립니다.”

뒤돌아보며 하는 인사에 아리스티네가 입매를 길게 늘였다.

“고마워. 두 번째로 축하받네.”

“아니요. 제가 첫 번째일 겁니다.”

그 말에 아리스티네는 멈칫했다.

묵례하곤 대기실을 나서는 듀란테의 걸음이 단호했다.

‘오,꽤 화났나 보네.’

하긴,디오나의 말은 딱 오해하기 좋았다.

전후 사정을 다 알더라도 용납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니까 의도를 곡해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애인 자랑이라고 들어 준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턱도 없었어.’

아리스티네는 유폐당한 채 성장했으면서도 훌륭한 자신의 인품에 탄복했다.

달칵,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듀란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디오나 는 그 소리에 홈칫 놀랐다.

그녀는 앞뒤 재 볼 것도 없이 서둘러 듀란테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어디 가?”

아리스티네가 갑자기 인사도 없이 나가려는 디오나를 보고 물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딜 가겠어!’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그럴 수는 없었다.

디오나는 급하고 짜증 나는 마음에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화,화장실이요……!”

그 말만 남기고 뛰쳐나가는 모 습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 화장실이 급했나?’

아,혹시 변비인가.

의문 뒤에 바로 깨달음이 찾아왔다.

‘쾌 변하시길.’

아리스티네는 디오나의 무운을 빌어 주었다.

* * *

“오라버니!”

디오나의 부름에도 듀란테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빨라지지도,느려지지도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 럼 일정한 간격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뿐.

디오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뛰었다.

단단한 팔을 붙잡고 나서야, 듀란테는 걸음을 멈췄다.

“오 라 버 니.’

듀란테의 검푸른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디오나는 뭐라 해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차마 아무 말도 하지못했다.

지금 이곳은 식장 로비였다.

그냥 왕족의 결혼도 아니고 전쟁의 종결을 가져온,제국과의 국혼이다.

고위 귀족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귀족은 물론,기자와 각 계층의 저명한 인사들까지 모였다.

왕태자의 결혼식도 이보다 더 주목받진 못할 것이다.

디오나가 큰 소리로 듀란테를 부르며 쫓아온 바람에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있었다.

“아니에요,아니에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속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나지막한 물음에 듀란테의 팔을 음켜쥔 디오나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럴 순 없다.

‘내 오라버니 덕에 당신들이 살아 있는 건데.’

디오나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내 오라버니가 당신들을 살리고 죽었는데……!’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내 편을 들어 주어야지,나를 귀하게 여기고 떠받들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냐며 따지고 싶었다.

“나가서, 나가서 이야기해요.”

하지만 디오나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듀란테는 아무 말도 없었다.

“오라버니,제발……”

디오나의 목소리는 곧 사라질 것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듀란테는 잠자코 디오나를 내려다보았다.

숙인 고개 위로 군청빛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내리고 있어 얼 굴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팔을 꽉 붙들고 있는 손마디가 도드라졌다.

작게 한숨을 쉰 듀란테가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자신을 내버려 두고 가나 싶어서 움찔한 디오나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곧 그가 향하는 곳이 빈 방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밝아졌다.

디오나는 서둘러 듀란테의 뒤 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 * *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무칼리는 디오나와 듀란테가 함께 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듀란테가 신부 대기실에서 나오고 그 후에 바로 디오나가 쫓아 나와서 깜짝 놀랐다.

디오나가 황녀와 함께 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듀란테는 디오나의 부름을 무시하기까지 했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디오나를 그렇게 대하면 안 되지’

디오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들지도 못하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하여간 저놈의 성질머리.’

무칼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그들이 향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엿들을 생각은 없다.

그런 건 얌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문 앞에 선 무칼리는 흥,하고 콧김을 뿜었다.

자신은 그저 혹시라도 듀란테가 디오나를 괴롭히나 안 괴롭히나 확인하려는 것뿐이다.

성질 나쁜 듀란테에게서 그 불쌍한 아이를 보호해 주어야 하니까.

그래, 그것 뿐이다.

‘근데 그러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

무칼리는 아닌 척 , 문에 가까이 붙으며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라버니,정말 제게 너무하세요……”

희미하지만 물기에 젖은 디오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쩜,어쩜 그러실 수 있나요.”

디오나는 가족을 잃고서도 항상 당당하고 여유로운 아이였다.

제 오빠를 홀로 두고 살아 돌아온 자신들에게 서운한 티 한 번 내지 않았던 아이.

그런 애가 저렇게 굴다니.

당장이라도 방문을 쾅 열고 들어가 디오나를 감싸 주고 싶었다.

하지만.

‘……듀란테 놈이 아무리 성격 나빠도 이유 없이 패악 부릴 놈이 아닌데.’

그런 생각에 문고리를 잡은 손이 주춤했다.

“오라버니를 그렇게 갑자기 잃고 나서…… 전 오라버니들을 제 오라버니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어떻게……!”

그러나 그 말이 들려오는 순간,무칼리는 주춤했던 이유도 잊고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광!

활짝 열린 문이 벽에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났다.

듀란테는 문을 꽉 막듯이 서 있는 무칼리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 돌 린다.

무칼리는 방문을 다시 거세게 닫았다.

“무칼리 오라버니!

디오나의 목소리에는 섭섭함과 서운함 그리고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무칼리는 얼른 그녀에게 다가 갔다.

“그래,디오나. 이 오라비가 왔다.”

무칼리의 두툼한 손이 디오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바로 뒤돌아 듀란테를 질책했다.

“듀란테,너 디오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

“……난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이야”

무칼리를 바라보는 듀란테의 눈빛엔 귀찮음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 하면서 말을 얹지 말라는 거였다.

무칼리는 움찔했다.

확실히,자신은 전후 사정을 모른다.

그래도一.

“무조건 네가 잘못한 거지!”

무칼리는 디오나를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디오나가 어떤 아이인데!”

그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 보던 듀란테가 후,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은 네가 부럽다.”

“뭐?”

“그렇게 단순한 점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중얼거리듯 말한 듀란테는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디오나를 스치기 직전, 멈춰선 그가 나직이 옮조렸다.

“디오나,내가 한 말 명심해라.”

그녀를 내려다보는 듀란테의 얼굴은 서늘하니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네가 황녀랑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상관 없다.”

무칼리가 눈썹을 찡그렸다.

‘황녀? 황녀가 얽힌 일인가?’

작고 하찮은 엄지 공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칼리가 멈칫하는 사이,듀란테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주군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면.”

듀란테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무기질적인 검푸른 눈동자가 디오나의 얼굴을 훌었을 뿐이다.

듀란테는 두 사람을 스쳐 방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라도 들어 볼 걸 그랬나.’

뒤늦게 쩝,하고 입을 다신 무 칼리가 이미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디오나는 주먹을 콱 틀어쥔 채 고개를 숙였다.

타오르는 시선으 로 듀란테가 서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황녀님께서 제 말을 곡해해서 이해하셨나 봐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황녀님이 타르칸 전하와 잘 지냈으면 해서…….〉

디오나는 듀란테와 단둘이 방 에 들어오자마자 생각했던 변명을 늘어놓았다.

힐끔 눈치를 살폈지만 듀란테의 얼굴은 아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걸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제가 전하의 기호를 알고 있는 이유를 설명드리려고 제가 전하와 어렸을 적부터 가까운 사이라고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저도 설마 황녀님께서 그걸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셨을 줄 몰랐어요. 저는 그저 도움이 되길 바란 것뿐인데.〉

자신은 순수한 호의에서,황녀를 도와주려고 말한 것뿐이다.

황녀가 오해한 거다.

디오나의 길고 긴 말은 결국 그거였다.

듀란테가 가만히 듣고 있자 용기를 낸 그녀가 살짝 덧붙였다.

〈황녀님께서 왜 오라버니께 그 런 식으로 오해 사도록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제 의도 정도는 잘 읽으실 정도로 총명하신 분이잖아요?〉

디오나의 말은 명백했다.

아리스티네가 일부러 자신을 모함한 거다.

황녀를 총명하다 포장하고 있지만,결국 그 뜻이었다.

〈디오나.〉

〈네,오라버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네?〉

〈내게 설명할 필요 없다. 이미 전에 말했을 텐데.〉

전이라면 무칼리와 대화한 직후 마주쳤을 때를 뜻한다.

그 순간,디오나는 깨달았다.

‘들었구나……!’

그때 무칼리와 했던 대화를 다 들은 것이다.

상황 판단이 빠른 듀란테라면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단번에 간파했을 터.

디오나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지,지금 그것 때문에 저를 탓하시는 거예요? 듀란테 오라버니도 제 마음을 아시잖아요, 저는...!〉

〈그건 타르칸 전하께 별 도움이 안 되는 마음이지.〉

잔인한 말이었다.

〈너무하세요,정말. 오라버니,정말 제게 너무하세요…….〉

우는 시능을 했지만 듀란테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비장의 카드인 죽은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꺼내도.

그 대신 무칼리가 방에 들어왔다. 그녀를 감싸기 위해.

“……무칼리 오라버니.”

디오나는 조용히 무칼리를 불렸다.

“아,디오나. 괜찮니?”

그런데 왜 황녀와 자신의 일에 이렇게 화를 내는지.

말로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태도는 자신에게 명백히 경고하고 있었다.

끓는 속을 숨긴 디오나는 애잔 한 미소를 지으며 무칼리를 올려다봤다.

“괜찮아요, 전 이해해요. 제가…… 뭔가 잘못했나 봐요. 제 가 듀란테 오라버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디오나의 바닷빛 눈동자에 물기가 글썽였다.

“디오나!”

무칼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네 탓이 아니다. 다 듀란테 그놈 탓이야. 내가 가서 그놈을혼내주마, 응?”

그 말에 디오나가 눈가를 홈치며 빙그레 웃었다.

“후후,무칼리 오라버니는 참 다정하시네요. 정말…… 제 오라버니 같아.”

“그래,난 네 오라비다.”

그 말에 디오나가 눈을 내리깔았다.

“듀란테 오라버니를 친오라버니처럼 생각했는데……. 듀란테 오라버니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디오나, 듀란테도 속으론 널 아끼고 있을 거다.”

“글쎄요……. 전에는 안 그러셨 는데 갑자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황녀님이 듀란테 오라버니께 저에 관해 무슨 말을 한 걸지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말한 디 오나가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에요. 방금 말은 실수예요!”

디오나가 애써 웃으며 손사래 쳤다. 무칼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신부 대기실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무슨 일은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디오나의 얼굴은 누가 봐도 무슨 일 있는 표정이었다.

“저어, 무칼리 오라버니. 제가 저번에 황녀님에 관해 말씀드렸던 거 있잖아요.”

“그래.”

“그건 역시 잊어 주세요.”

원래 잊어 달라고 하면 더 잊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이 실패했으니 흥분한 무칼리가 식장에서 행패라도 부렸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무칼리의 입장 역시 난처해지겠지만,디오나가 알 바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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