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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29화 (29/183)

29화

풋맨이 아니라 신랑인 타르칸이 직접 아리스티네를 위해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손을 잡은 채 황금 마차에 올랐다.

그녀의 뒤로 긴 드레스 자락이 황홀하게 늘어졌다.

“ 하 아 아 아. ”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숨을 내 쉬었다.

모두가 가슴속에 한 번 씩은 꿈꾸는 장면이었다.

그냥 에스코트 받아 마차에 오 르는 것뿐인데 세상에 이보다 더 로맨틱한 장면은 없을 것 같았다.

신혼부부가 나란히 앉자 부드럽게 마차가 출발했다.

웨딩 퍼레이드는 왕도의 메인 로드를 따라 한 바퀴 돈 뒤,타르칸의 궁을 끝으로 마칠 것이다.

거기까지 끝내야 정말로 결혼식이 끝나는 거였다.

웨딩 퍼레이드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결혼을 알리는 과정이었지만,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왕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은 긴 여행,즉 일생을 의미했다.

웨딩 퍼레이드를 한 바퀴 돈 후 신랑과 신부가 함께 살 집에 도착하는 것은 부부가 일생을 무사히 함께 산다는 것을 의미 했다.

두 사람의 여정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집으로 돌아가듯, 앞으로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 어나도 함께할 거라는 뜻이었다.

미신이었지만 사실 기원이나 축복,혹은 다짐과도 같았다.

부부는 뭇사람들의 앞에서 확실히 맹세하고,사람들은 그런 부부의 앞길을 축복해 주며 증인이 된다.

‘……몇 년 후면 우린 이혼할 테지만 말이야.’

아리스티네는 무심하게 생각했다.

아무 문제도 없이 왕도를 한 바퀴 돈 후 타르칸의 궁에 도착 하겠지만,자신들에게는 예정된 결말이 있었다.

그건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었다.

‘타르칸을 왕위에 올리자마자 깔끔하게 이혼할 생각이니까.’

비록 웨딩 퍼레이드의 의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그래 도 사람들이 이렇게 호응해 주 니 기분이 묘했다.

아리스티네는 황녀면서도 공식 석상에 나갔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부끄럽고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환하게 벌린 입,반달 모양으로 흰 눈. 즐거운 표정.

딱히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아리스티네의 얼굴엔 사람들의 표정이 옮아 은은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마차는 아주 천천히 달렸다.

근위병들이 통제하고 있었으나,흥분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타르칸과 아리스티네 를 보고 싶어 하는 바람에 대열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사람들을 지켜보던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까부터 조금 이상한 상태였다.

말이 너무 없고 어딘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표정도 평소보다 사나 웠다.

‘아니,아무리 그래도 인상을 쓰고 있으면 안 되지!’

저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타르칸.”

“왜.”

불퉁한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이라면 타르칸의 위압감에 굳어 그대로 스르록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티네는 오히려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몸 을 아예 타르칸 쪽으로 돌리기 까지 했다.

“웃어 봐.”

“뭐?”

생뚱맞은 소리에 타르칸이 한 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너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백성들인데 웃는 얼굴로 대하면 좋잖아. 지금 표정이 완전 굳었어.”

“난 항상 이런 표정이었어.”

그런데도 카리스마 있다며 사람들은 타르칸을 추앙했다.

“그래도 오늘은 웃는 게 좋지. 우리 결혼했잖아.”

타르칸이 멈칫했다.

묘한 말이었다. 아주 은근하고, 어쩌면 달짝지근하게까지 느껴 지는 말.

“너…… 뭔가 착각하는 건一.”

미간을 찌푸린 타르칸이 아리스티네를 향해 무어라 말할 때 였다.

아리스티네가 에잇,하고 타르칸의 얼굴을 양손으로 답삭 감쌌다.

“까아아아아一!”

구경하던 인파들 사이에서 찢어질 것 같은 비명 소리가 울렸다.

이걸 환호성이라고 할 수는 없 었다. 그야말로 비명이었다.

신혼부부의 커플 행각에 사람 들이 오열했다.

기자들은 손가락 이 부러져라 마구마구 셔터를 눌렀다.

주변이 어떻든 마차 안에 있는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원래 남의 눈을 신경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타르칸은 아리스티네가 한 짓이 너무 황당해서였다.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의 뺨을 붙잡고 입꼬리를 살짝 문질렀다.

입술 근처를 매만지는 보드라운 손길에 타르칸이 움찔했다.

“웃어.”

“이거 놔.”

“웃으면 놓아줄게.”

“놓으라고.”

“웃으면 놓아준다니까?”

황금 마차 안에서 두 사람이 티격태격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새 신부 가 새신랑의 뺨을 살포시 잡고 알콩달콩한 두 사람만의 사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미남,미녀가 그러니 몹시도 흐뭇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켜보고 있자니 왠지 왼쪽 옆구리에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커플 지옥.......아 아냐! 다른 분도 아니고 우리 영웅 타르칸 전하신데.’

‘우리 유부는 건들지 맙시다.’

솔로교의 독실한 신자들이 은밀한 사인을 주고받았다.

자신들을 두고 한 종교 내부에서 어떤 협의가 벌어졌는지 모르는 부부는 아직도 웃는 얼굴 가지고 실랑이 중이었다.

“너랑 결혼한 게 내가 웃을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응”

아리스티네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너의 사업 파트너야. 그리고 우린 정치적 운명 공동체이기도 하지. 우리가 사이 나쁜 부부보다는 사이좋은 부부로 비치는 편이 좋지 않겠어? 특히 우 리 결합이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게 이유야?”

“어?”

타르칸의 질문에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외에 다른 이유가 뭐가 있어?

그렇게 묻는 얼굴이라,타르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여자는 결혼에 대한 아무 감각도 없는 것인가.’

번민도 없어 보이고 상념도 없어 보였다.

신부 중에선 결혼을 앞두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런 기색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결혼하더라도 우울증에 걸리는 판국에 그 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일절 없는 정략혼이었다.

‘이 여자는 멀쩡한데 왜 정작 내가 이딴……’

별 뜻 없는 아리스티네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고 있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오히려 타르칸 본인이 결혼한 다는 실감을 하며 더 상념에 젖는 것 같았다.

‘거기다 키…… 도.’

신부 쪽에서 그를 끌어당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었다.

아리스티네의 가느다란 팔로는 아무리 저를 잡아당겨도 꿈쩍하지 않을 터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인지,몸이 그녀 쪽으로 숙여졌다.

아리스티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돋움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생각난 광경에 타르칸의 미간이 구겨졌다.

귓불이 붉 게 달아오르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제 뺨을 감싸 쥔 아리스티네의 손바닥과 손가락이 선명하게 의식됐다.

전사인 그와 달리 굳은살 하나 박이지 않은,보들보들한 손이었다.

맨살이 서로 맞닿는 것.

〈이것도 키스나 다름없어.〉

아리스티네의 속삭임이 다시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타르칸은 여자의 손을 떨쳐 내 고 싶었다.

그러나 떨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그건.

‘내가 이 여자의 말에 너무 휩쓸리는 것 같으니까.’

그래,그 때문이다.

이 여자는 결혼식 중인 신부답지 않게 정치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왜 자신이.

“이보다 더 확고한 이유는 없는데……”

아리스티네의 중얼거림에 타르칸이 입을 열었다.

“알았다.”

“응?”

“웃는다고.”

“정말이지?”

“그래. 그러니까 이거 놔.”

아리스티네는 의외로 결이 매끄러운 뺨을 놓아주는 것에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손을 풀자 약속대로 타르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입 끝을 살짝 올린 것뿐인데도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야성적이면서도 나른한, 어딘지 배부른 맹수 같은 미소였다.

사람의 표정이 이렇게 변화하 는 것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신기한 기분이 들어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황녀님께서도 웃으셔야지.”

“아,맞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선남선녀가 함께 미소를 지으니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

“타르칸 전하께서 웃는 모습 처음 봐……”

“저렇게 다정하고 자상한 눈으로 신부를 바라볼 줄이야.”

“역시 얼음 같은 전하의 마음도 녹은 거지.”

“저런 신부라면 단번에 녹을 만도 하지.”

사람들이 흡족한 얼굴로 신혼부부의 공개 연애질을 지켜보고 있던 때였다.

덜컹一!

커다란 굉음과 동시에 마차가 획 기울었다.

“히 이이 잉!”

놀란 말이 비명을 질렀다.

말은 빠르게 달려 나가려 했고,말과 연결된 마차는 기울어 진 채 앞으로 끌려갔다.

마부가 고삐를 잡아당겼지만 패닉에 빠진 말은 더 흥분할 뿐이었다.

차체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질 주하자 마차는 견디지 못하고 더 기울기 시작했다.

아리스티네는 순식간에 지면과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눈을 꾹 감았다.

그대로 땅에 박는 것은 물론, 온몸이 바닥에 쓸려 너덜너덜해 질 것이다. 아니,어쩌면 아예 마차에 깔릴 수도 있다.

‘괜찮아. 아픈 건 익숙해.’

견디는 법도 잘 알았다.

그러니까 괜찮다.

마차가 완전히 기울고,중력의 힘을 받은 아리스티네의 몸이 속절없이 지면을 향해 낙하했다.

그 순간이었다.

견고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추락은 멈추고,되레 위로 획 끌어 올려진다.

뜨겁고 단단한 것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

살며시 눈을 뜨자 타르칸이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무수하게 찌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녀를 보호해 주었던 때처럼,이번에도 그녀를 보호해 준다.

그는 아리스티네를 안아든 것 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마차와 말을 잇는 연결부가 끊어졌다.

아리스티네는 놀란 눈으로 검을 바라봤다.

결혼식을 위한 의장용 검인데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게 금속이 베이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타르칸이 엄청난 거야,검이 엄청난 거야?’

자유로워진 말은 그대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다행히도 흥분한 말은 앞만 보고 달려서 사람들에게 돌진하진 않았다.

길을 따라 서 있던 근위병들이 말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보였다.

모두 기본적으로 기마술이 뛰어나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했다.

말의 상태를 확인한 타르칸은 관성에 의해 미끄러지던 마차를 꽉 밟았다.

그걸로 마차가 멈췄다.

아리스티네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마차와 타르칸을 번갈아 보았다.

마차가 무슨 종이 쪼가리도 아 니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금덩이나 다름없는 마차인데.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바라봤다.

타르칸이 검을 집어넣고 한쪽 팔로 휘감았던 아리스티네를 두 팔로 안아 들었다.

‘이건 꽤 익숙한 자세인데.’

공주님 안기.

어쩐지 편안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평생 연이 없던 자세지만 타르칸을 만난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아리스티네가 그를 올려다보자 타르칸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햇살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금안.

‘예쁘다.’

아리스티네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때도 분명 이런 식으로 눈이 마주쳤다.

아리스티네가 처음으로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을 인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괜찮아?”

“덕분에.”

그는 이제 정말 자신의 남편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처음에는 갑자기 균형을 잃은 마차에 깜짝 놀라서 피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 았다.

아니,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다.

마차는 쓰러졌고,말은 흥분해 달려 나갔으니까.

하지만 뭔가 획,탁,턱,하더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보긴 봤는데 단번에 이해하지 못 했다.

그냥 눈앞의 광경만 인지했다.

제 신부를 위기에서 구한 후, 소중하게 안고 있는 이 나라의 영웅.

그의 널따란 품에 안긴 아리스티네는 더 가녀리고 연약해 보였다.

칠흑같이 검은 타르칸과 순백 으로 빛나는 아리스티네는 지극히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생김새도,체구도,하물며 입고 있는 옷까지도 전혀 상반된 두 사람.

그러나 그렇기에 더 어울렸다.

짝,짝 짝…….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왜 치는지 본인도 몰랐다.

그런데 그걸 시작으로 다들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이 서 있 는 곳을 중심으로 박수 소리가 퍼져나갔다.

너무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정말 너무 근사하다..”

“감동했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이라니……”

이건 분명 연극으로 만들어져 후세까지 길이길이 전해질 결혼식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의 결혼식이 한 편의 연극으로 완벽하게 각색되어 지나갔다.

감격한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타르칸에게 안긴 채 아리스티네는 갑자기 박수를 치는 사람 들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다친 사람도 없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말도 사라지고 마차도 부서졌는데……. 이제 어쩌지?”

아리스티네가 엎어진 마차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차는 그 상태로도 휘황찬란 한 외양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탈 순 없다.

‘설마 내가 이혼할 걸 생각하면서 타서 그런 건 아니겠지.’

어쩐지 이 웨딩 퍼레이드에 얽힌 미신이 꽤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아니,느긋하게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야.’

이렇게 된 이상 웨딩 퍼레이드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웨딩 퍼레이드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이건 굉장히 중대한 문제였다.

그건 곧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의 결혼,즉 두 나라의 평화 조 약이 깨질 거라는 불길한 징조로 비칠 테니까.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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