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40화 (40/183)

40화

“타르칸 전하,황녀님.”

디오나가 두 사람에게 예를 갖췄다.

‘음,자리를 피해 줄까?’

외교 문제로 번지지 않게 잘 처리했다는 설명은 나중에 해도 된다.

일단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

아리스티네가 그런 생각을 하 고 있는데,디오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황녀님,죄송하지만 타르칸 전 하를 잠시 빌려 가도 괜찮을까요?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손을 붙잡고 있는 손을 떼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그런데 타르칸이 빠져나가는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는 것이 아닌가.

놓을 생각 말라는 듯 아예 힘 주어 꽉 잡는다.

아리스티네는 놀라서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부인과 나도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부인.

타르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단어에 디오나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하지만 그녀는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실례했습니다.”

그러더니 아리스티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황녀님.”

‘아니,왜 내게 사과를 해?’

아리스티네는 다소 황당한 기 분으로 디오나를 바라봤다.

이러면 마치 자신이 타르칸과 디오나의 데이트를 막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니,거절한 건 내가 아니라 네 남친이라고.’

아리스티네는 연인 사이에 낀 이물질처럼 걸쩍지근한 상태에 놓이기 싫었다.

“나한테 사과할 건 없어. 아니면 너도 같이 갈래? 나랑 타르칸이 할 이야기는 딱히 비밀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동안 오른쪽 뺨이 따끔따끔했다.

돌아보지 않아도 타르칸이 엄청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얘는 대체 왜 이런담?’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나중에 디오나가 가고 난 뒤에 하면 될 것 아닌가.

두 사람은 어차피 같은 침실을 쓰기 때문에 밤에 이야기를 나누면 되었다.

“어머,그래도 될까요?”

디오나가 반색하며 물었다.

“응. 차 마시자. 타르트랑.”

아리스티네는 은근슬쩍 제 사심을 내비쳤다.

“감사합니다,황녀님.”

디오나가 눈매를 가늘게 휘며 농밀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르칸이 그녀를 불렀다. 딱딱한 부름이었다.

“디오나.”

“네?”

디오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슨 일이 있냐는 둣 그를 올려다봤다.

잠시 디오나의 얼굴을 바라본 타르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따라올 생각이군.’

디오나는 눈치 빠른 여자였다.

그래서 항상 타르칸이 말하기 도 전에 그의 뜻을 읽고 행동하곤 했다.

지금도 따라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 분명 눈치챘을 터였다.

‘어쩔 수 없지.’

아리스티네가 먼저 권유했는데 타르칸이 물릴 순 없었다.

그건 아리스티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게 되니까.

무엇보다,그렇게까지 해서 디오나를 돌려보내고 아리스티네 와 단둘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불쾌하지?’

“황녀는 이제 나의 비가 되었으니 앞으로 비전하라고 부르도록”

타르칸의 서늘한 말에 디오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결혼했어도 아리스티네는 여전히 실바누스의 황녀였다.

하지만 이제 아이루고의 왕자비이기도 한데,아이루고 사람이 그녀를 타국의 황녀라고 부르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그래도 설마 타르칸이 그걸 지적할 줄은 몰랐다.

타르칸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남자였다.

‘그런데 왜……!’

아리스티네만 관련되면 왜 자꾸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걸까.

디오나는 치맛자락 사이에 콱 틀어쥔 두 주먹을 감추었다.

“아……. 송구합니다. 제가 습관 때문에……”

물론 습관 때문에 그렇게 부른 건 결코 아니었다.

아리스티네를 타르칸의 비라고 부르기 싫었으니까.

그 자리는 디오나 자신의 자리여야 하니까.

디오나의 바닷빛 눈동자에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비쳤다.

디오나는 칼날을 움직이는 기분으로,헛바닥을 움직였다.

“……비전하.”

그 단순한 발음에 입 안이 다 베여 피가 솟는 것 같다.

디오나는 분명 웃고 있었으나, 웃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리스티네는 어서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응,그래. 앞으로 잘 부르면되지,뭐. 그럼 갈까?”

빠르게 주제를 전환하자 타르칸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은 채였다.

넓은 어깨와 발달한 견갑골. 허리는 늘씬하게 조여져 있고, 쭉 뻗은 다리는 우아하다.

남신 같은 타르칸의 옆에 선이 여리고 부드러운 아리스티네가 함께 걸으니 그 자체로 유미했다.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은 뒷모습 조차 신화 속 한 장면처럼 신비 로워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 들었다.

디오나의 눈에 궁인들이 넋을 놓고 두 사람을 쳐다보는 게 들어왔다.

그중에는 디오나를 친근하게 따르는 궁인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디오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두 사람의 모습이 잘 어울리니 다른 사람에 겐 오죽하겠는가.

어제 결혼식에서 두 사람을 찬양하던 군중이 떠올랐다.

웨딩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사 람들 중에는 오열하는 사람마저 있었다.

곧바로 팬클럽이 결성되기까지 했다.

거기다 신문은 또 어땠는가.

아이루고의 영웅인 왕자의 결 혼식에다가,심지어 실바누스 제국과의 정략혼이다.

대서특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논조가 이상했다.

결혼식의 내용이나 각 지도 계층의 반응,정략혼으로 인한 정치적 변화,앞으로의 기대 등을 다루기보단…….

‘그놈의 세기의 로맨스!’

두 사람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어떤 식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는지,웨딩퍼레이드 중간에 어떤 위기에 처했고 그걸 어떻게 사랑으로 해결했는지.

그딴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사진은 또 얼마나 많이 실어 놨는지.

이게 신문인지,삽화가 있는 연애 소설인지 햇갈릴 지경이었다.

디오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신문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것도 모자라 불에 태우며 기 자들을 저주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아리스티네에 대한 안 좋은 루머가 있을 까 집착적으로 가십지를 사 모았다.

하지만.

신혼 초야, 침대가 부서져 왕자비 부부의 침대 사정

[단독] 왕자비 부부의 침대 사진

가십지는 약속이라도 한 듯 타르칸과 아리스티네가 첫날밤에 침대를 부쉈다는 기사를 냈다.

심지어 침대 사진을 단독 보도 한 가십지는 창간 이래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가십지를 읽고 미친 것처럼 울부짖던 디오나는 참지 못하고 타르칸을 만나러 궁에 왔다.

직접 눈으로 보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에게 마음을 내어 줄 리는 없으니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 타르칸은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평화를 위한 정략혼이니,초야 를 안 치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각방을 쓰는 순간 온 나라가 난리 날 테니까.

왕후 쪽도 공격해 올 테고,무 엇보다 어제 결혼식으로 들뜬 백성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하니 지금쯤 타르칸은 황녀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언제나 그렇듯 집무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디오나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만 가는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데,어떻게 단 한 번 도 뒤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을 까.

아리스티네의 손은 여전히 잡고서.

까드득一.

디오나가 작게 이를 갈았다.

바닷빛 눈동자에 해일 같은 분 노가 일었다.

‘내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알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타르칸 전하는 내 것이 되어 야 하니까.’

Chapter 12. 디오나 힘내!

달콤하고 진한 홍시를 곱게 갈아 잔뜩 올린 후 구운 타르트는 보기만 해도 상큼하고 달콤했다.

아리스티네는 감격해서 타르트를 바라봤다.

서둘러 포크로 한 입 떠먹자, 고소한 아몬드 크림과 흥시로 만든 크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저절로 눈이 감겼다.

거기다 황금빛 타르트지는 어 찌나 바삭바삭하고 버터 향이 능밀한지!

가슴속에서부터 감동이 우러나왔다.

이 궁의 파티시에는 스콘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끝내주게 잘 만들었다.

나중에 타르칸과 이혼하면 얼 굴 한 번 보지 못한 파티시에가 제일 그리울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타르트에 손댈 생각도 하지 않는 디오나를 보고 권했다.

“디오나, 어서 먹어 봐. 여기 파티시에 실력이 진짜 좋아서 다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건 영업해야 한다.

“……파티시에가요?”

디오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 으로 되물었다.

타르칸은 이런 디저트류를 즐기지 않았다.

먼저 찾는 경우도 없고,차와 곁들여 나와도 손대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타르칸의 궁에 소속된 파티시에는 실력이 그저 그랬다.

밖에 나가면 수준급일지 몰라 도 왕궁 내에서는 실력이 확실히 떨어졌다.

그런데 실력이 좋다니.

‘유폐당한 채 살아왔다더니 미각도 섬세하지 못한 모양이지.’

속으로 비웃는데,문득 무칼리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군께서 스콘을 활용해 전투 식량을 만드실 생각이신가 봐.〉

〈스콘을요?〉

〈그래. 갑자기 스콘을 잘 만드는 파티시에를 섭외해 오라고 하지 않더냐. 얼마가 들어도,다른 궁 소속이어도 상관없다면서.〉

〈다른 궁의 파티시에를 데려오 면 갈등이 생길 텐데요…….〉

〈그건 자칼렌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머리 좋은 녀석이니까. 주군이 원하시니 우리는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스콘으로 전투 식량을 만드나 황당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가씨,들으셨어요? 예니카 공주님이 파티시에를 해고했대요.〉

〈정말? 꽤 아끼던 파티시에였 잖아. 자랑도 많이 하셨고.〉

〈글쎄요, 그건 잘……. 그래서 다른 가문에서 그 파티시에를 섭외하려고 다들 난리라는 거예요.〉

〈예니카 공주님의 티 파티가 인기 있었던 이유 중에는 디저트도 있었으니까.〉

하녀와 수다를 떨었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들었을 땐 별생각 없었다.

디오나의 머리를 빗겨 줄 때면 하녀들은 으레 다른 가문의 하녀들과 나눴던 수다를 입에 담 곤 했다.

그래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 왕궁에서 가장 실력 좋은 파티시에를 꼽으라면 단연 예니카리나의 파티시에였다.

당연히 스콘도 가장 잘 만들 터였다.

“디오나? 혹시 타르트 싫어 해?”

아리스티네가 타르트에 손댈 생각을 하지 않는 디오나를 향해 물었다.

“아,아니요.”

디오나는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너무 길었다.

“비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다니 기대되네요. 한 입 먹어 볼까요.”

디오나가 그렇게 말하며 포크를 든 순간이었다.

“아,이런. 내가 눈치 없었구나.”

아리스티네가 탄식하며 자신을 탓했다.

“안 먹어도 돼. 디오나, 미안해.”

갑자기 사과하는 모습에 디오 나는 얼떨떨했다.

‘왜 이러는 거지?’

대화를 곰곰이 곱씹어 봐도 아리스티네가 사과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아,혹시 타르칸 전하의 앞에서 나를 나쁘게 만들려고?’

왕자비의 친절한 권유에 디오나가 싫다는 눈치를 줘서 되레 왕자비가 사과하게 만들었다.

‘一라는 식으로 몰아가려는 건가? 영악하긴.’

디오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 금으며 눈썹을 내렸다.

항상 거의 무표정하게 있는 황 녀와 달리,디오나 자신이야말로 표정 관리와 이미지 관리의 고 단수였다.

‘나한테 상대도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주지.’

“부디 사과를 거두어 주세요, 비전하. 저를 생각해 주시는 비 전하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해서 잠시 말이 안 나왔을 뿐이람니다.”

디오나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다.

“그런데 사과를 하시다니……. 혹시 이 디오나가 비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힌 건 아니겠지요?”

그녀는 일부러 불안한 척 아리스티네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걸로 아리스티네가 자신의 말에 빨리 대답하지 않았다고 디오나에게 눈치를 준 게 되었다.

디오나는 만족스럽게 홋,하고 미소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이 이미지 관 리도 제대로 못 하는 황녀는 자 신의 말에 대놓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야 그럴 테지. 이렇게 역공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그러게 감히 누구한테 덤비 래.’

“응? 네가 왜 내 기분을 상하게 해. 그게 아니라一.”

아리스티네가 부정하며 힐끗 타르칸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디오나는 속으로 성대한 비웃음 을 터트렸다.

‘저렇게 어설퍼서야.’

대체 어떤 핑계를 댈지 궁금했다.

무슨 핑계를 대든 아주 깔아뭉개 줄 자신이 있었다.

이윽고 아리스티네가 툭,나머지 말을 내뱉었다.

“너 속 안 좋잖아.”

“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디오나는 대체 아리스티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이…… 음,장운동이 원활하지 않으니까……

“장운동이요?”

“응,그런 병증이 있으면 이런 음식은 좋지 않잖아. 그래서 일부러 안 먹고 있었던 건데 내가 먹으라고 권해서……

아리스티네의 말은 분명 대륙 공용어인데 디오나는 도통 그 뜻을 파악할 수 없었다.

“난처했지? 그것도 모르고 내가 눈치 없이 한 번 더 권하기까지 했으니..”

아리스티네가 딱하다는 눈으로 디오나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눈빛이었다.

“저번에는 좀 괜찮았어? 그렇 게 급히 화장실로 달려갈 정도면......”

즐겁고 시원한 배출이었니?

아리스티네의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디오나는 입을 떡 벌렸다.

설마,설마 지금一.

‘나 변비 걸렸다고 하는 거 야?!’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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