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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42화 (42/183)

42화

“무칼리 오라버니!”

디오나가 곧 눈물이라도 떨굴 것처럼 가련한 얼굴로 무칼리에게 뛰어갔다.

“디오나?”

무칼리는 깜짝 놀라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조금 전 주군과 비전하와 함께 티타임을 하러 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애가 대체 왜 이러는 지.

“정말…… 황녀님께서 너무하셔요.”

“……비전하께서?”

“일부러 타르칸 전하 앞에서 저를 모욕하고,괴롭히고……”

“어떻게 하셨길래?”

“그건……

디오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자신을 ……똥쟁이 취급 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불이 번쩍일 정도로 화가 났다.

눈앞에 아리스티네가 있다면 뺨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었다.

“차마 제 입에 담기엔……”

디오나는 한층 더 애처로운 표 정을 지으며 무칼리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무칼리가 저보다 더 분개하며 황녀를 향해 분노를 터트릴 거라 예상하고.

그런데.

“음……. 정말 악의가 있었다면 주군께서 제지를 하지 않으셨겠냐. 그러진 않으셨지?”

디오나는 지금 무칼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문화가 다르다 보니 뭔가 뜻이 잘못 전달된 모양이겠지.”

자신의 역성을 들며 황녀를 찢어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어야 하는 거 아닌가?

“디오나,넌 마음이 넓은 아이가 아니니. 네가 이해해라.”

무칼리는 무쇠 같은 손으로 디오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어젯밤,무칼리는 꽤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자신의 주군을 그렇 게…… 대할 수가 있지?’

실바누스의 기사들에겐 아리스티네가 주군이었다.

그런데 그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다니.

이건 무칼리의 예상과 너무나 달랐다.

‘그 작고 하찮은,별 볼 일 없는 엄지 공주를 괴롭힐 데가 어디 있다고.’

무칼리에게 피해자를 괴롭히는 취미 따위는 없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우리 주군의 비가 아니시더냐.”

“오라 버 니.”

“아까 주군께서 네게 그에 맞 는 호칭을 쓰라고 지적하셨는데, 아직도 황녀님이라고 부르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그건 습관 때문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실수한 거예요.”

“그래,디오나. 갑자기 부르려 니까 어색하긴 하겠지.”

무칼리가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 다른 왕족들이 보면 어찌 생각하겠어.”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의 결합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은 무칼리도 알았다.

디오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오라버니는……”

“응?”

“아니,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든 디오나는 무칼리를 향해 차분하게 미소 지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너무 감 정적으로 반응했나 봐요. 타르칸 전하가 어떤 분인데,당연히 비 전하께서 제게 안 좋게 대하셨

으면 막아 주셨겠지요. ”

“응”

무칼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럼 역시 비전하에 대한 조사도 접는 게 좋겠지요?”

“응?”

“그…… 비전하께서 다른 남자를.....”

디오나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무칼리는 입을 벌렸다.

아리스티네는 안타까운 피해자였다.

정의로운 전사로서 무칼리는 피해자를 보호해 줘야 했다.

거기다 이제는 명실공히 주군의 아내가 아닌가.

충성스러운 전사로서 무칼리는 왕자비를 보호해야 했다.

‘하,하지만.’

무칼리는 왠지 모르게 안달이 나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아리스티네와 만나게 된 이유가 불륜 조사를 위한 거였으니 그 조사를 멈춘다면.

‘딱히 그 엄지 공주와 만날 일도 없어지지 않나? 그럼 검 이야기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가슴속 조바심이 흑 부풀어 올 랐다.

‘아니야,아니야. 아직 밝혀내지 못했잖아.’

피해자여도,왕자비여도 무칼리의 심판을 피해갈 순 없다.

계속 조사하는 게 옳았다.

또,이 결혼이 아무리 정치적 으로 중요하다고 해도,주군을 상대로 감히 바람피우는 여자를 놔둘 순 없지 않은가!

‘그래,그런 만큼 제대로 밝혀 내야지!’

무칼리는 콧김을 흑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편이 엄지 공주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일인 걸.’

이건 그러니까,어디까지나 아리스티네가 결백하다면 말이다.

쓸데없는 소문과 의심이 따라 붙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으니까.

무칼리는 자신의 왼쪽 눈가를 문질렀다.

그냥 그뿐,딱히 아리스티네가 억울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작고 여리게 생긴 것에 쉽게 마음을 내주는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

자신은 냉철하고 잔정 없고 무 자비한 평원의 전사니까!

“조사를 접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디오나! 그거와 이거는 다른 일이지!”

무칼리는 디오나의 어깨를 덥석 잡고 강하게 말했다.

“내 뜻을 오해한 것 같구나, 디오나.”

“오해요?”

“나는 비전하께서 좋은 사람이니 네게 악의가 없었을 거라는 말이아니다.”

무칼리는 디오나의 얼굴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우리 주군을 믿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 속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전우의 얼굴을 찾는다.

“주군께서 자기 사람은 얼마나 잘 챙겨 주시는데,네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당연히 널 보호해 주셨겠지.”

그 말에 디오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나는 타르칸 전하께 특별한 여자야.’

타르칸을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무칼리도 그리 말하지 않는가?

지금 타르칸이 아리스티네를 유하게 대하는 건,그저 평화를 위한 대의가 담긴 혼사라 그런 것뿐이다.

그 황녀가 냉대당한다며 울며 불며 난리를 피우면 안 되니까.

“맞아요. 전하께서는 늘 제게 친절하셨죠.”

“그럼. 찬트라의 친동생인 너를 주군께서 냉대하실 리 없지 않으냐.”

그 말에 디오나의 미소가 가뭄에 든 강바닥처럼 바싹 말랐다.

디오나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찬트라를 이용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이 그녀를 찬트라의 동생으로서만 바라보면 화가 났다.

특히 타르칸과 연관되면.

‘……오라버니가 없었어도,나는 타르칸 전하께 특별한 여자야. 그따위 것도 모르다니!’

바닷빛 눈동자가 한순간 음험한 기운을 품고 무칼리를 노려봤다.

하지만 무칼리는 그녀에게 열심히 제 뜻을 설명一변명一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주군께서 가만히 계셨으니 오해일 거라 했을 뿐,왕자비께서 좋은 사람이니 그럴 일 없다는 건 절대,절대 아니었다.”

“그렇군요.”

디오나는 언제 그를 노려봤냐 는 둣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래!”

무칼리는 자신의 뜻이 오해 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아 만족했다.

“디오나,걱정 말거라. 그 일은 내가 아주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테니!”

“꼭 걱정한 건 아니었지만... 저는 타르칸 전하의 행복만을 바라니까요.”

“그래,만약 비전하가 우리 주 군을 배신했다면 이 무칼리의 검을 피하지 못할 것이야. 이 무칼리는 상대가 왕자비라 해도 위축되지 않아!”

무칼리가 검집을 두들기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디오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 무식하고 단순한 놈이 정말로 황녀를 찔러 버리면 좋을 텐데.’

물론 무칼리가 말한 검은 진짜 검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단순하다고 해도 무칼 리는 멍청하진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 숨기며 디오나는 무칼리를 향해 눈매를 요염하게 휘었다.

“역시 무칼리 오라버니께서는 타르칸 전하의 가장 충심 높은 전사셔요.”

“음!”

무칼리가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타르칸 전하의 안녕만을 바라는 이 디오나도 오라버니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래! 맡겨 두거라!”

디오나는 떵떵거리는 무칼리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무칼리를 등진 그녀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다른 전사들한테도 황녀가 불륜하는 것 같다고 소문을 내라고!’

이가 으득 갈렸다.

‘그래도 뭐,불륜을 조사한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 소문이 안 날 리 없지.’

피식, 뒤틀린 웃음을 지은 디오나는 아리스티네가 있는 다실을 바라봤다.

‘두고 봐. 결국 타르칸 전하의 옆에 서서 웃는 건 내가 될 테니까.’

* * *

시원한 물이 얼굴 위로 흘렀다.

상쾌한 기분에 아리스티네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깨끗한 물로 편하게 씻 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입욕은 이미 했기 때문에 아리스티네는 간단한 세안만 하며 잘 준비를 했다.

‘……간단하다고 해도 되는 건가?’

지금은 아리스티네가 스스로 세안을 하는 중이라 간단한 느 낌이지만,푸른 비단으로 만든 발 너머에는 궁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사지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궁인들이 무슨 소리냐며 성화였다.

〈첫날밤도 중요하지만 둘째 날 밤도 중요해요!〉

〈타르칸 전하께서 하루 종일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밤만 기다리고 계시겠어요!〉

〈타르칸 전하께서는 지금 무려 향욕 중이시래요! 향욕!〉

〈어머어머,타르칸 전하께서도 차암! 으홍홍!〉

〈비전하께서도 하시면 좋을 텐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향유를 들었다.

미련이 뚝뚝 남는 얼굴로 쳐다 봐서 마음이 약해졌다.

솔직히 뜨겁고 좋은 향이 나는 물에 몸 담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머리 말리기 귀찮아.’

빨리 침대에 눕고 싶은 사람에 게 그건 정말 크나큰 장벽이었다.

거기다 타르칸은 자기가 목욕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이다.

‘나와의 밤을 기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겉으론 금슬 좋은 쇼윈도 부부로서 그 사실을 말할 순 없어서 아리스티네는 대강 말했다.

〈괜찮아. 딱히 향을 안 입혀도.〉

어째서인지 그 말에 궁인들의 눈과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어머머,그러시구나!〉

〈향을……. 그래,그렇죠!〉

〈타르칸 전하께서는 이딴 향유보다 비전하의 향기를 더…….〉

한 방울이 같은 크기인 금의 가격과 동일한 최고급 향유가 ‘이딴 향유’가 되어 버렸다.

〈원래 가장 흥분되는 건 연인 의 살 냄새라고 하니까요.〉

〈페로몬이라고 하죠?〉

〈성심껏 모신다고 생각했는데 저희가 부족했어요.〉

〈이렇게 또 배워 가네요.〉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참 능력이다 싶었다.

아리스티네는 그게 아니라고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곧 다 물었다.

귀찮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해해서 특별히 나쁠 게 없었다. 오히려 좋았으면 좋았지.

〈그래도 마사지는 받으세요.〉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는 편이 좋을 거예요.〉

〈아무래도 두 분 체격 차가…… 으흐흥!〉

〈침대는 새로 놨어요! 급히 구 하느라 처음 거만큼 푹신하지 않으니 당분간은 살살 해 주세요.〉

〈어머,얘는! 신혼부부가 그게 조절이 되는 줄 아니?!〉

〈맞아맞아! 그게 됐음 첫날에 침대도 안 부쉈지! 으항항항!〉

아이루고 사람들은 웃음소리가 참 특이한 것 같았다.

얼굴이나 몸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길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아리스티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지면 머리를 말릴 필요도 없고.

옆에 놓인 부드러운 천으로 대강 물기를 홈친 아리스티네는 궁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발 너 머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응?”

마노로 된 물그릇 안에 고여 있던 물이 스스로 흔들렸다.

수면 거울에 무언가가 비칠 낌새에 아리스티네는 걸음을 멈추고 물그릇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제왕안에 무언 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였다.

그녀가 본 적 있는.

[또 이딴 쓰잘데기 없는 짓이나 하고 있어?!]

[넌 우리 대장간의 수치야!]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거칠게 고함치며 한 남자의 몸을 붙잡았다.

[너 때문에 우리 카탈라만 대장간의 명성이 떨어지고 있어!]

[도틀텐 대장간 놈들이 우릴 얼마나 무시하는 줄 알아?!]

[너 같은 모자란 놈이 있는 대장간이니 개나 소나 다 들어가겠다고!]

온순한 얼굴과 달리,남자의 몸은 근육으로 다져져 있었다.

그는 사내들의 우악스러운 손 길에 반항했다.

엎치락뒤치락할 때마다 황동처 럼 단단한 근육들이 엉켰다 풀어지길 반복했다.

격렬한 반항이었으나,남자는 수적 열세를 이겨 내지 못했다.

[크윽……!]

남자는 땅바닥에 몸이 짓눌린 채 신음했다.

두 팔이 등 뒤로 꺾였다. 사내 들이 몸으로 남자를 누르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구속했다.

[너 같은 놈이 왜 우리 대장간에 아직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 어.]

[사부님도 마음씨가 너무 좋으시다니까.]

[위대한 카탈라만의 명성에 폐가 되면 알아서 나갈 줄도 알아야지.]

사내들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바투 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에 침을 뱉으며 킬킬거렸다.

[걱정하지 마. 네가 나갈 용기가 없다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같이 커 온 동기간이잖아?]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마지막이니 특별히 네가 만든 것으로 보내 주지.]

사내들은 그렇게 남자의 오른 팔을 땅바닥에 딱 붙여 고정시켰다.

사내 하나가 품에서 꺼내든 칼날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은빛으로 빛났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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