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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43화 (43/183)

43화

[..............!]

사내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남자가 미친 둣이 몸을 뒤틀며 반항했다.

[으흐흡! 으으읍!]

[가만있어!]

[야,더 꽉 잡아!]

막힌 입으로 소리를 지르며 구조를 요청했지만,열 명도 넘는 사내들을 당해 낼 순 없었다.

은빛 칼날이 손가락 위에 닿았다.

서걱.

소름 끼칠 정도로 아주 부드럽고,깨끗한 소리였다.

[으아아아아아아!]

목소리에 피가 맺힌 것 같은

절규였다.

수면 거울을 지켜보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깨끗이 절단된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끝없이 홀러나왔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사내들을 떨쳐 낸 남자가 피범벅이 된 제 손을 감싸 쥐었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절망으로 시꺼멓게 물들어 갔다.

남자의 얼굴이 파랑이 이는 수면처럼 흔들렸다.

그를 비추고 있던 수면 거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 * *

물결은 점점 심해지다가 이윽고 잠잠해졌다.

고요해진 수면은 언제 다른 것을 비추었냐는 듯 들여다보고 있는 아리스티네의 얼굴만 반사 했다.

아리스티네는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둣이 걸음을 옮겼다.

“아, 나오셨어요?”

“여기 편히 누우셔요,비전하.”

궁인들이 반색하며 아리스티네를 맞았다.

침대에 누워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손길을 느끼며 아리스티네는 눈을 감았다.

남자의 이름은 리트렌.

환영 연회 때 아리스티네가 봤던 그 남자였다.

[부디 저를 받아 주세요,비전하.]

[좋아,넌 이제 나의 것이야.]

[넌 이 나라,아니,대륙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거야.]

예전에 제왕안에서 봤던 영상이 감은 눈 사이로 떠올랐다.

그때 남자의 오른손에는 엄지가 없었다.

망치도,바이스도,집게도, 끌 도 다룰 수 없는 손.

대장장이로서 수명이 끝난 손 이었다.

그럼에도 미래의 자신은 그가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저번에 환영 연회에서 봤을 땐 아무 문제도 없었어.’

리트렌은 아무 문제도 없이 오른손으로 식사했다. 물론 엄지는 멀쩡했다.

‘사고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대장장이 일은 위험한 게 많으 니 일하다 실수로 다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련이 피어 있었지.’

방금 봤던 영상에서 엉켜 싸우는 사내들 뒤로 목련 나무가 보였다.

‘그것도 거의 지고 있었어’

꽃잎 몇 개만 남은 상태였다.

‘계절은 봄. 올해일까? 아니면 내년이나 그 후?’

남자의 얼굴과 머리 모양은 연회에서 본 것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워낙 일그러져 있어서 확신하기 어려웠다.

성인의 얼굴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기도 하고.

‘나는 대장장이를 빨리 구할 생각이었으니 올해일 가능성이 커.’

미래의 자신이 리트렌과 접촉한 시기는 올해를 넘기지 않았을 터.

올해 봄이면 딱 지금 이 시기였다.

‘이미 일어난 과거일까,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까운 미래 일까.’

일어난 과거라면 어쩔 수 없어 도,가까운 미래라면一.

‘내가 막을 수 있어.’

아무래도 왕자비인 자신과 미약한 연이라도 생기게 되면 사람들이 섣부르게 괴롭히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옳은 일일까?’

가슴속에서 의문이 싹 텄다.

등을 시원하게 문지르던 손길이 멎었다.

“비전하,몸을 돌려 주세요.”

궁인들의 말에 따라 몸을 돌려 똑바로 누우니 눈 위에 라밴더 향이 나는 온열 주머니를 올려 주었다.

그러나 라벤더 향기도 아리스티네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지 못했다.

‘만약에 내가 리트렌을 구하는 게 오히려 더 안 좋은 미래를 불러온다면 ……’

아리스티네는 어렸을 때부터 제왕안으로 다양한 상황을 끝없이 봐 왔다.

하지만 갇혀 살았기에 이미 보 았던 미래를 직접 행동해서 바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그녀가 바꾼 미래가 딱 하나 존재하긴 했다.

아비인 황제에게 제왕안을 지녔다는 것을 알리는 미래.

그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 난 후,아리스티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능력을 함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아리스티네가 아주 어 렸던 시절의 일.

그때 아리스티네는 지금처럼 생각이 많지 않았다.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많은 것이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변화를 바라면서 결정을 한 것이지만一.

‘그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 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몰랐지.’

아리스티네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는 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거야?’

팔과 다리를 문지르는 궁인들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아리스티네는 온전히 자리하고 있는 제 팔다리와 손가락 그리고 발가락을 느꼈다.

아리스티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리트렌은 이 감각을 온 전히 느끼지 못하게 되리라.

‘내가 리트렌을 구해서,그게 내가 상상도 못 한 방향으로 홀러서 더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겠지.’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선택은 완벽하니,좋은 결과만 이룰 거라고 자만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리트렌의 손은 멀쩡할 거야.’

망치도,바이스도,집게도,끌도…… 모두 멀쩡하게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손끝으로 꽃을 따고,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제 아이를 번쩍 안아 들 수도 있겠지.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설령 미래가 안 좋게 변한다 하더라도.

‘내가 다시 그걸 바로잡으면 돼.’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노력하자.’

적어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민을 마치니 기분이 좋아졌다.

궁인들의 손길에 온몸이 흐물흐물 녹고,은은한 라벤더 향기는 싱그러웠다.

아리스티네의 몸을 쭉쭉 늘여 스트레칭까지 마쳐 준 궁인들이 웃으며 아리스티네를 일으켜 주었다.

“후후, 비전하는 정말 유연하시네요.”

“그러게요. 정말 유연하세요.”

“정말 잘됐어요.”

“행복한 밤 되세요.”

“으응,뭐.”

아리스티네는 궁인들의 응원 (?)에 대충 대꾸하며 방을 나섰다.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알지만, 침대를 위해 이왕이면 자제 좀 하시고요.”

“어머,그건 타르칸 전하께서 하셔야지!”

“근데 우리 비전하를 보고 자 제할 수 있으시겠어?”

멀어지는 와중에도 궁인들이 까르륵꺄르록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쟤네도 참 정력적이구나.’

아리스티네는 감탄하며 침실로 이어지는 회랑을 걸었다.

날이 좋아 밤인데도 따스했다.

봄볕의 잔재가 아직도 회랑을 물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미래의 나는 리트렌의 어디를 보고 가능성을 알아본 걸까?’

망치질조차 할 수 없는 남자가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거라 확신한 이유.

아리스티네가 궁인들로부터 받은 리트렌의 신상 명세에는 딱히 그럴 만한 요소가 없었다.

제왕안으로 봤듯이,리트렌은 카탈라만 대장간의 모난 돌이었다.

대장간의 수치라고 불릴 정도니 능력이 좋을 리 없었다.

그 증거로 카탈라만 대장간에서 나온 수많은 명검에 리트렌의 이름이 붙은 건 단 한 자루도 없었다.

‘설마 엄지를 잃는 것으로 재능을 각성하게 되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사 람이 그 절망을 이겨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다는 건,천재들에게 꽤 있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그를 구함으로 인해, 그 계기가 사라진다면?

‘하지만 대장장이의 재능이라는 게 그렇게 한순간에 꽃피는 건 아니잖아?’

창의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숙련도와 기술이 받쳐 줘야 하는 세계였다.

사지 멀쩡한 지금도 기술력이 없는데 오른손 엄지를 잃고 기 술이 좋아질까?

‘……나를 믿자. 내가 선택한 미래의 핵심 직원이니까!’

아리스티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쩌면 실수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부딪쳐 보자.’ 이전에는 실수도 못 해 봤다.

실수하거나 성공할 기회조차 주 어지지 않았으니까.

실패 역시 자신에게는 새로운 자유의 경험이 될 것이다.

‘실패하는 자유.’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스티네 침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침실의 상태가.............

* * *

“...........”

오늘은 붉은 장미 꽃잎이 아니라 핑크빛 장미 꽃잎이었다.

촛불은 여전했고 조도는 더 어두워 은밀했다.

‘대체 이거 언제까지 할 생각이지.’

궁인들은 시중드느라 바쁘게 움직이는데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건지 모르겠다.

침실에 먼저 와 있던 타르칸이 미치겠다는 얼굴로 침대를 노려 보는 것이 보였다.

“타르칸.”

부르자 그가 살짝 동요하며 이 쪽을 돌아보았다.

아리스티네는 문을 닫고 침대 로 다가갔다.

타르칸의 곁에 서니 좋은 향기가 풍겨 왔다.

쌉쌀하면서도 부 드러운,그러면서 묘하게 달짝지근한.

향욕을 했다더니 그래서 그런 듯했다.

“향이 좋네.”

“무,뭐?!”

타르칸이 대놓고 놀라며 한 발 짝 뒤로 물러났다.

“왜 그렇게 반응해? 그냥 향이 좋다고 칭찬한 건데. 꼭 내가 너를 추행이라도 한……”

一까지 말한 아리스티네는 입 을 다물었다.

남의 가슴을 갓 나온 빵 취급 하며 주물렀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미안”

지은 죄가 있기에 할 말이 없었다.

타르칸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렇게 숙연하게 사과를 하니 자신이 정말 아리스티네에게 농락당한 것 같았다.

아니,농락당한 게 맞긴 했지만.

“아,이왕 침대 새로 들이는 김에 더 넓은 걸로 해 달라는거 깜빡했네.”

아리스티네가 침대 매트리스를 꾹꾹 눌러 보며 말했다.

푹신푹신한 촉감이 좋았지만 어제 것만큼은 아니었다.

급하게 구했다더니 이게 최선이었나 보다.

‘역시 그 매트리스는 엄청난 거였나 봐.’

아리스티네는 장미 꽃잎을 훌훌 털어 버린 후 침대에 쏙 들어갔다.

누워서 위를 올려다보는데 타르칸은 여전히 침대맡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또 그 얼굴이었다.

털을 잔뜩 세운,경계심 많은 흑표범.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던 아리스티네가 손을 내밀었다.

“자.”

타르칸이 미심쩍은 얼굴로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진짜 손만 잡고 잘 테니까. 일어날 때까지 놓치지 않을게.”

타르칸은 안심시키듯 미소를 짓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얼굴에서 자신을 직시하는 보랏빛 눈동자가 샛별처 럼 빛났다.

“누나 믿지?”

결국 피식,웃은 타르칸이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리스티네의 손을 꼭잡았다.

“남의 가슴이나 빵 취급 하면서 만지지 마시지.”

작고 보드라운 손이 손안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럴 때면 타르칸의 가슴께에도 무언가가 꼼지락꼼지락 움직 이는 것 같았다.

여자의 손을 잡은 건 단순히 잠결에 가슴을 만질까 봐 그런 것이라고.

그저 그뿐이라고.

타르칸은 눈을 감았다.

아리스티네의 향기가 밀려온다.

숨결과 함께 그의 안에 들어 와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 같다.

묘한 느낌에 타르칸이 뒤척였다.

나란히 누워 있는 이 여자도 이런 느낌을 받을까.

그때,아리스티네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왜 그래? 잠이 안 와?”

그녀는 고개를 한 번 가웃하더 니 물었다.

“누나가 자장가 불러 줄까?”

“……뭐라고?”

타르칸은 할 말을 잃었다.

‘하여간 섬세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여자는 그냥 ‘침대가 어제 보다 덜 푹신하네’ 따위의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확실하다.

결혼식에서도,초야에서도 아리스티네보다 타르칸이 더 생각이 복잡했고 감상적이었다.

“나는 보모 역할은 딱 질색인데 그래도 너한테는 불러 줄 수 있어.”

말이 없는 타르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아리스티네가 말했다.

“넌 좀 손이 많이 가는 남편이니까.”

타르칸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손이 많이 간다고 하는 사람은 이 여자가 유일할 것이다.

“……됐다.”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으니 아리스티네가 맞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뭔가 싶어 옆을 돌아보자 희미한 어둠 속에서 아리스티네가 히히 웃었다.

타르칸은 획 고개를 돌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나 이상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잠자코 있던 타르칸은 조용히 아리스티네를 곁눈질했다.

그녀는 천장을 향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달빛과 촛불이 그녀의 얼굴을 밤의 빛으로 덧칠했다.

속눈썹이 풍성하고 길었다.

타르칸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시선을 느낀 건지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달싹였다.

“잘 자.”

그 인사는 너무나 기묘했다.

타르칸은 단 한 번도 그런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잘 자.”

타르칸은 그녀에게 마주 인사 했다. 어찐지 낮게 잠긴 목소리 가 나왔다.

Chapter 13. 전투 식량 아니었어?

아리스티네는 소파에 느긋이 기댄 채 흥차를 홀짝였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발치에 무릎 꿇은 자들을 향해 있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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