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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47화 (47/183)

47화

아리스티네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보단 안대에 살이 눌려서 불편할 것 같은데……”

아리스티네는 아예 발돋움까지 하면서 안대의 구조를 자세히 살폈다.

아무래도 끈 없이 아이홀에 딱 들어맞게 끼다보니 압박된 피부도 아플 것 같고,혹시 떨어트릴까 걱정도 됐다.

“말라카이트 원석이랑 금이면 무게도 상당하지 않아요?”

당연히 좋은 반응이 되돌아올거라 생각했던 볼라튼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무칼리 장군님은 아무래도 그런 문제는 초월하신 분이니까요. 저 큰 대도도 한 손으로 휘두르실 때가 많은걸요.”

단련된 팔 근육과 아이홀 피부는 다르지 않나?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그 부분을 더 파고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그래도 무칼리 경은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하는 전사인데 불편함만 더할 것 같은걸요.”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볼라튼은 난감했다.

“전투 중에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떨어질 것 같아요. 그러면 더 신경 쓰이잖아요.”

“아,그건……”

“떨어지지 않게 살짝살짝 움직여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어디 갔지 싶고. 전투에 집중 못 하지 않을까”

“그,이건 전투에 나갈 때 하시라고 만든 건 아니라서……”

볼라튼이 겨우 답했다.

이건 무칼리가 사람 앞에 나설 때 쓰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저 흉측한 흉터를 가리는 게 좋으니까.

흉터는 전사의 명예라고 하지만,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통하는 말이다.

“무칼리 경은 전사라서 전투가 업인데요? 전투에 나가지 않더 라도 매일 훈련하고요.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음, 그건 맞는 말씀이지만요……”

볼라튼은 이걸 대체 어떻게 말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아리스티네는 흉터를 가린다는 목적 자체를 전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려 주자니,무칼리 앞에서 대놓고 이 흉한 것을 가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 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죠? 굳이 불편한 걸 낄 필요 있나요.”

아리스티네는 진심으로 무칼리 의 얼굴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올 리 없으니까.

‘으음…….’

볼라튼은 힐끔 무칼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멈칫했다.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는 무칼리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깨달음이 찾아왔다.

믿기지 않는 것을 목격한 것 같은 얼굴.

크게 흡뜨인 외눈이 아리스티네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군.’

안 그런 척하지만 무칼리가 왼쪽 안부를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안대를 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칼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를 화려하게 가려 줄 안대가 아니었다.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었다.

‘이거,내가 큰 결례를 범했군.’

볼라튼은 후, 한숨을 내쉬고 무칼리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냥 장군님께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

“볼라튼 공의 호의는 제가 가장 잘 압니다.”

무칼리가 조용히 답했다.

아까는 선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는데,이제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다음에는 장군님께서 좋아하실 것으로 선물을 준비하지요.”

“굳이 그러실 필요는……”

“사과의 뜻도 있으니 부디 받 아 주세요.”

“그렇다면…… 더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훈훈했다.

아리스티네는 그 모습을 바라 보다가 핫,하고 숨을 삼켰다.

“아,제가 선물에 너무 안 좋은 소리를 했네요. 실례를 범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요,제가 먼저 의견을 구 했으니까요. 비전하께서는 진지하게 생각해서 답해 주신 건데 실례가 될 게 뭐가 있나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 에요.”

아리스티네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도로 상자 안에 들어간 안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것도 멋지지만,무칼리 경의 아이홀에 딱 맞게 제작하신 게 더 놀라워요. 본을 뜬 것도 아닌데요.”

깜짝 선물이니 기억에 의존해 만들었을 것이다.

눈대중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데,역시 최고의 대장장이는 다른가 보다.

“알아봐 주시니 기뽑니다.”

볼라튼은 다소 놀랐다.

겉모습의 화려함보다 기술력에 집중해 파악하는 아리스티네의 안목이 상당했다.

“카탈라만에서 비전하께 결혼 선물을 진상하긴 했지만,그래도 오늘 만남도 있으니 제 개인적으로도 선물을 제작해 드리고 싶네요. 받아 주시겠습니까?”

“어머나,기쁜 마음으로 기다리 고 있을게요.”

호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볼라튼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 주제가 어느 정도 소강된 것 같아서,아리스티네는 차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 때다.

아리스티네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 했다.

“그러고 보니,아까 대장간에 들어오기 전에 조금 걱정되는 일을 봤어요.”

“걱정되시는 일이라면……?”

볼라튼의 물음에 아리스티네가 리트렌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볼라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녀석들이 결국……. 이것 참,비전하와 장군님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 것보다,자칫하면 그 대장장이가 다시는 망치를 못 잡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아리스티네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거다.

제왕안으로 봤던 미래니까.

“……제가 녀석에게 관심을 끊으면 다른 놈들도 점차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제 오판이었나 봅니다.”

볼라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늙어 보였다.

“괜찮다면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볼라튼은 잠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전하께서는 녀석의 은인이니 당연히 아실 권리가 있으시지요”

리트렌에게는 빛나는 재능이 있었다.

볼라튼은 그걸 단번에 알아보고 대장간에 들였다.

나쁜 버릇이 들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않고,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직접 모든 것을 전수해 가며 가르쳤다.

과연 리트렌의 재능은 대단해서 기대보다도 훨씬 더 잘 따라 왔다.

‘이 아이야말로 내 후계자야!’

그렇게 확신할 정도의 성취였다.

볼라튼은 리트렌을 양자로 들였다.

“제 아들놈을 포함해 당연히 질투하는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녀석들도 리트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그만큼 뛰어 났습니다.”

뛰어난 대장장이의 기본 요건인 체력과 끈기도 좋았지만,그건 카탈라만에 있는 모든 이들 이 그랬다.

“리트렌은 감각이 뛰어나고 눈이 밝고 머리가 좋았죠. 이건 타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볼라튼의 얼굴이 아련했다.

“그 어린 녀석이 검의 미세한 뒤틀림을 알아봤을 땐 정말 보물을 찾은 것 같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왜……”

아리스티네가 받아 본 신상 명세서에는 리트렌이 카탈라만 대장간의 골칫덩이라고 적혀 있었다.

리트렌을 괴롭혔던 자들 역시 카탈라만에 폐를 끼친다고 말했고.

“무릇 대장장이는 불과 모루 앞에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리트렌을 떠올리니 답답해져 볼라튼은 담배 파이프를 찾다가 아차,하고 손을 거뒀다.

“하지만 그 녀석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걸 더 좋아하게 됐죠. 어디서 이상한 물이 든 건지.”

쯧,그가 혀를 찼다.

지식의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장장이에게 가장 중 요한 건 숙련된 경험이었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 리트렌은 그만한 경험을 쌓지도 못했다.

“대장장이란 모름지기 망치로 쇠를 두드리고 풀무를 밟아 불 을 다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아까운 재능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볼라튼은 열변을 토했다.

무칼리 역시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가 칼을 다루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 있는 걸 더 좋아한 다는 것만큼이나 웃긴 소리군! 지식보다는 실전이거늘!”

아리스티네는 의아한 눈으로 무칼리를 바라봤다.

‘무칼리 경은 공부하는 걸 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시선을 받은 무칼리가 큼큼, 헛기침했다.

“샌님처럼 앉아 있다간 대장장이의 혼이 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검도 만들지 않고. 이상하고 조잡한 것들이나 만들고……”

원래 리트렌은 성격이 온순해 작고 섬세한 것들을 좋아했다.

거친 대장장이의 세계에서는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다.

몇 번 성격을 바꿔 보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뭔가 자극이라도 될까 싶어서 저번 달에 왕궁에까지 데려갔는 데…. 오히려 더 방에 틀어박히게 되었습니다.”

“아,혹시 그게 제 환영 연회 였나요? 그때 본 것 같아서요.”

“비전하께서 기억하신다니 그 녀석에게 광영일 것입니다.”

볼라튼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그때 리트렌을 데려간 게 오늘 일의 계기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실의 연회엔 보통 수제자를 대동하고 간다.

리트렌은 방 안에 틀어박힌 지 오래라 더는 수제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카탈라만의 수치라 불렸다.

그런데 리트렌을 데리고 갔으니 다른 녀석들이 배신감을 느 낄 만했다.

거기에 일부러 리트렌에게 관심 없는 척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 녀석이 어서 다시 정신 차리길 바랐는데.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미련인 건지......”

다른 녀석들이 그런 범죄까지 저지르려 했다는 걸 들으니 정말로 리트렌을 놓아줄 때가 온 것 같았다.

“저도 이 대장간을 책임지는 자로서 불화와 분쟁을 감수하면서 언제까지 그 녀석만 고집할 순 없으니까요.”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리트렌을 끌어안고 가면 결국 내부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그 불만은 곧 볼라튼에게 향하고,카탈라만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리트렌은 어떻게 되지요?”

“기본적인 실력이 있으니 자기 앞가림하는 데 어렵진 않을 겁니다.”

수많은 대장간 중 명실공히 일인자인 카탈라만에서 인정받았던 실력이다.

아무리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해도 다른 곳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다만 녀석의 재능이 완전히 사그라들 거라는 게 아쉽네요.”

“저런, 너무 안타깝네요.”

아리스티네는 진심으로 안타까 웠다.

‘그러니까,리트렌의 재능이 시들었다고 결론 내리고,대장간의 수치라고 불리며 그런 괴롭힘을 당한 이유가 이들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아서라고?’

볼라튼은 참 고민이 많아 보였지만,결국엔 그거였다.

‘걱정 말아요. 그 재능,내가 반드시 살려 줄 테니까.’

재능이 죽은 적도 없으니 펼칠 기회만 주어진다면 스스로 살아날 것이다.

리트렌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이제 행동할 차례다.

‘좋아.’

아리스티네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는 후우,하아 심호흡을 했다.

순식간에 심약한 레이디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양새가 됐다.

거기에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 까지 더해지니,당장이라도 괜찮 으시냐고 묻고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무칼리는 얼떨떨한 눈으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 저러시지?’

그는 아리스티네가 ‘심약’과 얼마나 거리가 먼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무던하고 무심한지 오히려 자신의 주군이 더 섬세해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볼라튼은 깜짝 놀라 아리스티네 를 살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비전하? 찬 수건이라도 가져와야……”

“아니에요. 그냥,리트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떨궜다.

그것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처연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저는 검날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향하는 것을 처음 봤거든요. 검을 가까이서 볼 기회 자체도 없었고……. 아시겠지만 실바누스의 황궁에서는 허락받 은 자만이 검을 패용할 수 있어 서……”

무칼리는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 키만 한 검도 두려움 없이 바짝 들여다보던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건지.

심지어 아까도 위풍당당하게 그 소란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나.

“그런 폭력적인 광경은…… 정 말,잊힐 것 같지 않네요. 그런 건 생각도 못 해 봐서.”

불과 몇 시간 전,아리스티네 는 무칼리에게 남의 달걀을 깨트려 줘서 고맙다고 웃었다.

‘거기에 이빨을 뽑았다고 하니 의리가 있다고 칭찬했지.’

무칼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아리스티네는 생전 처음 본 잔혹한 일에 충격받은 무구한 새처럼 보 였다.

유약한 실바누스에서 소중하게 보듬어져 자랐을 황녀님이 거친 아이루고에 와서 얼마나 고생인가.

“비전하께 제가 면목이 없군요. 일단 천천히 심호흡을 하시 고……”

볼라튼은 어쩔 줄을 모르고 아리스티네의 심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종조차 찬 물과 찬 수건을 대령하며 부산스레 움직였다.

모든 사람이 여리디여린 비전 하가 겪었을 끔찍한 심적 고통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한 차례 깊게 숨을 내뱉은 뒤,미소 지었다.

딱히 의도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알아서 참으로 아픈 미소라고 생각했다.

“면목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덕분에 어느 정도 진 정되었는걸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만,좀 쉬시는 게……”

“제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 요. 가장 힘든 건 리트렌일 텐데. 그 끔찍한 일을 당한 당사자가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리스티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름에 잠긴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나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없었다.

볼라튼은 물론이고 방 안에 있 는 모든 사람이 아리스티네의 인품에 탄복했다.

이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남부터 챙기다니.

아리스티네는 동정심과 연민이 가득한 마음씨 좋은 왕자비 그 자체였다.

“부족하지만,제가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아리스티네를 돕고 싶었다.

“비전하께서 도움을 주신다는 데 부족한 게 어딨겠습니까.”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생긋 웃 었다.

“그럼 피해자를 따로 만나 보고 싶은데요.”

* * *

“비전하..?”

리트렌은 제 처소에 찾아온 아리스티네를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무릎을 꿇었다.

“비전하께 감사드립니다.”

아리스티네를 올려다보는 얼굴은 서글서글했다.

예전에도 생각했지만,커다란 대형견이 생각났다.

햇빛을 받으면 금발로 보이는 열은 갈색 머리칼 때문일까?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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