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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48화 (48/183)

48화

“뒤늦은 인사를 사죄드립니다. 아깐 미처 감사드리지 못한 제 불찰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그땐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답하며 아리스티네는 리트렌을 살펴봤다.

보랏빛 눈동자에는 대망의 첫 번째 직원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처진 눈에 유순한 인상과 다르 게 리트렌은 굉장히 크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기야, 그 우락부락한 사내들과 엎치락뒤치락할 때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리트렌 역시 숙련된 대장장이라 몸의 곳곳에서 그 흔적이 보 였다.

옷깃 틈으로 보이는 가슴 근육 은 팽팽했고,손등에서부터 돋은 힘줄이 살짝 걷은 소매 안쪽까 지 이어졌다.

옷으로 가려진 부분도 근육으로 팽팽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흡족했다.

볼라튼은 책상물림이라고 했지만,매일매일 불과 철을 다룬 대 장장이의 몸이었다.

‘하긴,검 말고 다른 것을 주로 만든다는 소리도 했었지. 그러니까 결국 날마다 제련이나 망치질을 했겠네.’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 확신 할 수 있는 몸이었다.

‘좋아,좋아.’

인재를 향한 아리스티네의 탐욕적인 시선에 리트렌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의 뺨이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올랐다.

‘아차,너무 바라봤나.’

아리스티네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일어나렴.”

“감사합니다,비전하.”

리트렌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손은 괜찮아?”

“예,괜찮습니다.”

“다행이다. 내가 돌아간 뒤에 개네가 괴롭히진 않았고?”

우리 소중한 직원님을!

아리스티네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자신을 챙겨 주는 걱정 어린 말에 리트렌은 더더욱 부끄러워 졌다.

그는 아리스티네를 마주 보지 못한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귀끝이 빨겠다.

“괜찮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그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리트렌은 힐끔 고개를 들어 아리스티네를 쳐다봤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시선을 획 아래로 내렸다.

보랏빛 눈동자.

내포물 하나 없이 투명한 자수정을 정밀하게 연마한 것 같은 색이었다.

그 반짝임과 그 아름다움.

리트렌은 갑자기 자신의 방에 나타난 왕자비 전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칼리 장군이 자신을 흉흉한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이건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노려보는 거다.

‘흠,상당히 잘생겼군.’

무칼리는 탐탁지 않은 눈으로 리트렌을 평가했다.

그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바닥을 거세게 탁탁 쳤을 것이다.

‘아니,우리 주군께 비할 바는 전혀 아니지만.’

주군은 우주에서 가히 최강이 라고 할 수 있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신급의 미모이니 일개 인간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주군의 얼굴 생각에 무칼리는 반사적으로 뿌듯하게 가슴을 부 풀렸다.

“이건 뭐야? 구경해도 돼?”

아리스티네는 방 안에 놓여 있 는 세공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물론입니다. 그건 토끼상 인데……”

자신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깨진 것에 반색하며 리트렌은 세 공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리스티네는 반쯤 설명을 흘려들으며 방 안을 살폈다.

금속으로 만든 정교한 세공품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토끼,다람쥐,오목눈이,강아지와 고양이.

‘검보다는 이런 걸 좋아하는 건가?’

완전히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세공품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보며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리된 마감이 살짝 다른 느낌인데.’

만져 보니 강도가 달랐다.

그래서 같은 기법으로 세공을 해도 마감 처리가 어떤 것은 딱 딱하고,어떤 것은 부드러웠다.

‘쇠 냄새.’

가까이서 냄새를 맡자 확연히 느껴졌다.

‘쇠 냄새가 나는데 성질이나 무게는 다르고……. 그럼 각기 다른 조합의 합금강인가?’

같은 모양으로 세공한 것은 일종의 성질을 비교해 보려는 시도 같았다.

시선을 돌리니 철 말고도 다른 금속이 많았다.

금,은,구리,동,납 등등 다양 한 것들.

깨달음이 흑 치고 들어왔다.

‘정밀한 가공을 하며 실험해 본 거야!’

이 수많은 세공품들은 모두 리트텐의 실험이었다.

〈리트렌은 감각이 뛰어나고 눈이 밝고 머리가 좋았죠. 이건 타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볼라튼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정말 그렇구나.’

아리스티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볼라튼은 옳았다.

하지만 동시에 틀렸다.

〈샌님처럼 앉아 있다간 대장장 이의 혼이 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검도 만들지 않고. 이상하고 조잡한 것들이나 만들고…….〉

‘이 물건들을 보고 빛나는 재능을 쓸데없는 것에 썩히고 있다고 생각했지.’

보기만 해도 속 터지니 자세히 볼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대충 봐도 물품의 세공은 뛰어났다.

왜 이런 능력을 가지고,그것도 가장 체력이 좋은 나이에 일 분일초라도 더 투자해 검을 제조하지 않는가.

진심으로 그렇게 통탄했을 것이다.

‘다른 놈들 역시 이 재능을 알아봤기에 더더욱 그 난리를 쳤던 거고.’

차라리 리트렌이 검을 만들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탁월한 재능.

그런데 그 재능을 이용해 쓸데 없는 짓만 하고 있다.

이보다 더 열등감을 자극하는 일이 어디 있을까.

‘내 기우였어.’

리트렌의 재능이 혹시 어떤 계기를 통해 각성하는 것 아닐까, 걱정했었다.

혹시 자신의 개입으로 리트렌의 천재성이 개화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 빛나는 재능은 스스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주변의 수많은 무시와 반대 그 리고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해서 만들어 본 겁니다. 그렇게 하면 무게는 더 가벼우면서 단단해요. 하지만 가공률이 떨어져서...”

“가공률이 떨어졌다지만 이 세 공품들은 다 정교한데?”

“꽤 힘들었어요. 효율도 떨어지고. 몇 날 며칠 그것만 잡고 있었던거예요.”

“그래도 검은 괜찮을 것 같은 데? 이렇게 세밀하게 커팅할 필요도 없고. 굉장한 합금인데.”

아리스티네가 리트렌의 말을 귓등으로 홀려 넘기는 동안 무칼리는 귀담아들었나 보다.

두 사람은 세공품을 함께 보며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의외로 무칼리랑 말이 잘 통하네.’

두 사람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전혀 다른데도.

‘하긴,무칼리는 공부하는 거 좋아하니까. 과학에도 관심 많고’

안 그런 척하지만 말하는 거 보면 다 티가 났다.

아리스티네는 세공품을 구경하 던 것을 멈추고 흐뭇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무칼리가 핫,하 고 정신을 차렸다.

자기도 모르게 정신없이 떠들어 버렸다.

‘이,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이 얼굴만 번드르르한 놈과 아리스티네가 혹시 불륜하는 현장을 잡기 위해 온 것이었다.

맨 처음 디오나와 이야기했을 때와 달리 잡는다기보단 정말인가 사실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강해졌지만.

‘으음,생각해 보니 얼굴만 번드르르한 건 아닌 거 같아. 몸도 좋고. 그리고 꽤 말도 통하 고……’

과학 친구는 소중했다.

무칼리는 열심히 리트렌을 변호해 주었다.

애초에 아리스티네는 리트렌보 다 세공품을 더 관심 있게 살펴 보는 중이었고,리트렌은 자신과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 빛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이론 이야기는 검을 좋아 하는 전사도,검을 만드는 대장장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 제였다.

무칼리가 보기에도 이런 건 샌님 같은 짓거리였다.

위대하고 용맹한 전사나,불과철을 지배하는 대장장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기자 아리스티네가 그들에 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말 멋진 물건들이야.”

“비전하께서 그리 봐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리트렌이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혹시 내가 원하는 것들도 만 들어 줄 수 있어?”

그 말에 리트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제,제가요?!”

“응.”

왕자비가 자신을 지목해 물건을 맡기고 싶다고 한 것은 굉장한 영예였다.

왕자비가 아니라도 리트렌에겐 아리스티네의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저,저는……”

흥분과 기대 그리고 기쁨으로

리트렌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리트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올리브빛 눈동자가 빛을 잃은 것처럼 탁해졌다.

한순간 잊었던 자신의 위치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저는…… 비전하와 같이 대단한 분께서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못 됩니다.”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리트렌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 같은 골칫덩이가 존귀하신 비전하의 물건을 만들면 그녀의 명성에도 흠이 갈 것이다.

안목도 없고 수준도 낮아 사람도 물건도 볼 줄 모른다고.

감히 아리스티네에게 그런 불 명예를 안겨 줄 순 없었다.

“그런 건 누가 정하지?”

아리스티네의 말에 리트렌이 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저는 이곳에서도 폐만 되어서…. 카탈라만의 이름에 먹칠이나 하고,절 거둬 주신 것도 모자라 양자로 삼아 주신 사부님께도 은혜를 원수로一.”

“그래서?”

아리스티네가 리트렌의 말을 툭 끊었다.

“난 내 눈을 믿어.”

아리스티네는 리트렌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확신을 담고 있는 아리스티네 의 보랏빛 눈동자.

그 투명하고 깊은 눈.

리트렌은 숨을 삼켰다.

그의 눈동자에는 아직 체념하지 못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아리스티네의 눈과 마주하는 순간,그 갈망이 흑 몸피를 부풀렸다.

‘만들고 싶다.’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이분을 위해,이분께 걸맞은 물건을.’

어서 망치를 쥐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리스티네는 리트렌의 안에서 욕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미소지었다.

재능을 잃어버린 자.

혹은 재능을 낭비하는 자.

리트렌은 그렇게 규정당했을 것이다.

‘둘 다 틀렸어.’

리트렌은 재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샘솟는 아이디어와 영감을 따라가기에도 벅찼겠지.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아는 것이다.

이 놀라운 재능을 갈고닦는 법을.

주머니 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다.

그만큼 날카롭고 예리한 재능이었다.

“리트렌.”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리스티네는 알아봤다.

“이곳이 네 그릇에 맞지 않을 뿐이야. 너라는 인재를 담기에 이곳의 그릇이 너무 작을 뿐.”

상상한 적도 없는 말이었다.

리트렌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이루고 최고의 대장간은 곧 세계 최고의 대장간이나 마찬가 지였다.

자만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그 누가 세계 최고의 대장간을 그릇이 작다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나 와 비교해서.’

리트렌은 감히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스승 볼라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위대한 대장장이였다.

"하지만……”

아리스티네의 말을 믿고 싶었다.

자신 안에 넘쳐나는 것들.

이것을 숨기고 감추고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 꺼내 놓고,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매시간,매초가 아까웠다.

그리고 그 모든 게 헛짓거리가 아니라,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 고 싶었다.

스스로가 은혜도 못 갚고 기대 도 채우지 못하는 버러지가 아 니라一.

‘어떤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감히 그런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리트렌의 눈동자가 답을 찾듯 절박하게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나와 함께 가자.”

마치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아리스티네가 말했다.

리트렌 본인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을,믿어도 되는지조차 모르겠는 것을,아리스티네는 단언하고 있었다.

이곳을 나오라고.

구원자.

은빛 머리카락은 꼭 햇빛에 부서지는 검의 빛깔과도 같았다.

리트렌이 평생을 매료된 금속 의 빛깔이다.

“네가 결정해.”

결정권이 주어졌다.

“이곳에 계속 있어도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 눈이 네게 닿았다는 것을 아 니까 그런 식으로 괴롭히진 못 하겠지.”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리트렌은 어째서인지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안달이 났다.

"함께 가자고 하셨으면서.’

의식의 저변에서 그런 억울함 마저 솟아올랐다.

“단,내 사람이 되면.”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움직였다.

“나는 너를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로 만들 거야.”

Chapter 15. 힘입니다

“무칼리와 카탈라만에 다녀왔다면서.”

“응.”

아리스티네는 하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폐당한 뒤로 제대로 된 외출이란 것을 처음 해 봤다.

이야기 나누고 차를 마신 게 대부분인데도 몹시 노곤했다.

“뭐 하러?”

‘응? 무칼리가 말 안 했나?’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하곤 대답했다.

“스카우트하러.”

“스카우트.”

타르칸이 중얼거렸다.

어째서인지 마음에 안 들었다.

“대장장이를?”

“응”

“카탈라만을 나올 대장장이가 있을까?”

대장장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곳이었다.

왕궁에도 소속된 대장장이가 있긴 했지만,카탈라만이나 도틀텐보다 실력이 떨어졌다.

주로 수리를 맡고 있으니 당연 하긴 했지만,그만큼 명문 대장 간의 위세가 대단했다.

“있던데.

“뭐?”

“내 것이 되겠대.”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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