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하암,아리스티네가 재차 하품 하며 말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타르칸이 계속 말을 시켜서 대답하고있는 참이다.
타르칸은 딱히 피곤하지 않은 지 침대가에 앉아 아리스티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것이 되겠다고?”
“응.”
타르칸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스티네의 어깨 를 붙잡고 탈탈탈 흔들고 싶었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지,뭐 가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그 놈팡이는 어떤 놈인 지.
하지만 타르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라 한단 말인가.
부부 사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그런 걸 캐묻는 건 이상하다.
‘아니지.’
타르칸은 생각을 바꿨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아리스티네가 어떤 놈팡…… 아니,어떤 직원이 생겼는지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일은 타르칸과 관계 없는 아리스티네의 개인 사업이다.
하지만 그녀와 정치적으로 엮 인 이상 그에게도 영향이 올 것 아닌가.
‘이건 그저 확인일 뿐이야.’
그리고 일적으로 만나는 데에 사적인 연애 감정을 개입시키면 안 된다는 점 역시 단단히 알려 줘야 한다.
그래야 파트너의 사업이 망하지 않을 테니까.
“이상한 놈 같은데.”
첫 직원의 입사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던 아리스티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아리스티네는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떠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뭐 가?”
“카탈라만 대장간을 놔두고 왕궁에 오겠다니.”
“아니지. 왕궁이 아니라 나한테 오는 거야.”
아리스티네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왕실과 전혀 관계없는 내 개인 사업이었다.
어째서인지 타르칸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쪽 눈썹을 세웠다.
“너한테 온다고.”
“응,나한테.”
다시금 확인하니 그의 표정이 더더욱 뒤틀렸다.
아니,뒤틀린 건 아니다. 타르 칸은 입 끝을 올리고 있었으니 까.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어 찐지 사납게 느껴졌다.
“그것도 이상해.”
“아니, 그러니까 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초 치는 타르칸의 말에 아리스티네는 기분이 상했다.
“네 사업은 아직 시작도 전이 잖아.”
“인재는 인재를 알아보는 법이거든.”
흥,하고 아리스티네가 턱을 치켜들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 카탈라만을 두고 네게…… 네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게. 사업 말고 다른 데 관심있는 거 아냐?”
“뭐?”
“그냥 직원이면 직원인 거지, 뭐가 네 것이야? 걔가 그랬어? 분명 이상한 수작 부릴 생각 만 만일걸. 너 유부녀야.”
아리스티네는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
아니,여기서 유부녀 이야기가 왜 나온담?
말 없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에 왠지 초조해진 타르칸이 허리를 숙였다.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 졌다.
맹수의 갈기 같은 그의 머리카 락이 아리스티네에게로 흘러내렸다.
누워 있는 아리스티네의 위로 그의 상체가 덮듯이 자리했다.
지척에서 시선이 교차하고,그 의 입술이 아리스티네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완만한 뺨의 곡선을 비껴 귓가 에 속삭인다.
“너 나랑 결혼했잖아.”
아리스티네는 눈을 굴려 타르 칸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 남자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도 알아.”
퉁명스러운 대답에 타르칸이 귓가에서 얼굴을 살짝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결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내가 그걸 까먹겠어.”
제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얼굴이 종알종알했다.
“그리고 리트렌에 관해서 그런 말 하지 마. 완전히 오해야.”
스윽,타르칸의 눈동자가 선명 하게 아리스티네의 눈을 향했다.
“오해?”
“응, 걔가 말한 게 아니라 내가 말한 거니까.”
“뭐?”
타르칸의 얼굴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당장 긴장해 몸을 굳히거나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하지만.
팍,아리스티네가 답답하다는 듯 타르칸의 얼굴을 밀어냈다.
“잠 좀 자자. 위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오던 잠도 달아나겠네.”
타르칸은 아리스티네가 미는 대로 밀려났다.
너무 황당해서 버티거나 피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밀려난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보들보들한 새하얀 손이 귀찮다는 둣 그의 얼굴을 누르고 있었다.
타르칸이 허리를 세우자 아리스티네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진짜로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의 얼굴을 밀어낸 것이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에 그는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복잡한 금안이 아리스티네를 향했다.
그녀는 답답하게 위를 뒤덮던 그가 없어진 것에 만족한 듯 아예 눈을 감고 이불을 야무지게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체온과 무게가 같은 침대에 있는 타르칸에게 온전히 느껴졌다.
‘……뭐,됐나.’
타르칸은 픽 웃곤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나니 뒷전으로 밀려났던 문제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랐다.
‘리트렌,이라고 했지.’
그가 이름도 모르는 대장장이이니 실력이 썩 좋은 놈은 아닐 터다.
‘무칼리에게 좀 더 자세히 말 하라고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타르칸은 아까 무칼리와 마주 쳤던 일을 떠올렸다.
타르칸은 연무장으로 향하다가 궁에서 나오는 무칼리와 마주쳤다.
〈주군.〉
〈오늘 휴무 아니었나?〉
〈아,예 맞습니다. 비전하와 함께 외출해서 모셔다드린 참입니다.〉
〈……비와?〉
아리스티네에게서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어젯밤에 함께 잠들 때도 오늘 디저트가 정말 맛있었다는 이야기밖에 없었다.
아니,꼭 그녀가 자신의 일정을 시시콜콜 그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그 역시 딱히 관심 있는 건 아 니었고.
〈예. 대장간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무슨 일 있었나?〉
〈아니요,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묘하게 단호한 대답이었다.
평소 무칼리의 성격상 ‘실바누스의 황녀’에 대해 이것저것 떠 들 법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 었다.
타르칸이 바라보자 무칼리가 대장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리스티네가 대장간에 가서 뭘 했는지,어떤 물건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뭘 눈여겨봤는지,
취향은 어떤지.
그런 이야기는 하등 나오지 않았다.
무칼리 자신이 좋아하는 검 이야기만 잔뜩이었다.
〈.......〉
타르칸은 탐탁지 않은 시선으 로 즐겁게 떠드는 무칼리를 바라봤다.
그런 것보다 아리스티네가 가서 뭘 했는지나 말할 것이지.
하지만 자신이 먼저 물어보는 건 뭔가 걸렸다.
아리스티네에게 너무 관심 있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아리스티네와 그는 정치적 동맹을 결성한 파트너였다.
어느 정도의 정보 파악은 필요했다.
이건 절대 캐묻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속삭이며 타르칸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주군.〉
〈왜 그러지?〉
심각해진 무칼리의 모습에 타르칸은 내심 반색했다.
드디어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자기 이야기를 끝내고 아리스티네에 대해 말하는가 보다.
그러나.
〈스콘을 잘 만드는 파티시에를 섭외한 건 무슨 뜻이셨는지,감히 주군의 의중을 여쭈어도 되 겠습니까.〉
무칼리의 입에서 나온 것은 타 르칸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었다.
그것도 그에게 안 좋은 쪽으 로.
예리한 지적에 타르칸은 입을 다물었다.
단순하고 다혈질이라는 것과 무식하다는 게 똑같은 말은 아 니었다.
무칼리는 꽤 똑똑했다.
눈치가 없고,눈치 볼 생각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타르칸은 대체 어떻게 대답해 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는 당연히 새로운 전투 식량을 개발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전투 식량?〉
대체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스 콘으로 전투 식량을 만든다고.’
타르칸은 조금 전 무칼리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취소했다.
존경하는 주군께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모르는 무칼리가 순진하게 입을 놀렸다.
〈예,제가 그날 회의에 불참했지 않습니까? 다른 놈들이 스콘으로 전투 식량이 개발될 거라고,주군께서 파티시에 섭외를 명했다고 하더군요.〉
타르칸은 통탄했다.
바보는 무칼리뿐인 줄 알았는 데 모두가 바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제가 부족해서 주군의 뜻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알려 주십시오.〉
타르칸은 침묵했다. 대체 뭐라고 하겠는가.
〈일이 있는 것을 깜빡했군.〉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뜰 수밖에.
아리스티네에 대해선 하나도 묻지 못했다.
“리트렌……”
회상을 끝마친 타르칸이 낮게 읊조렸다.
대체 어떤 놈인지 날이 밝는 대로 보고서를 올리라고 해야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사업 파트너가 다른 사업을 하다 사기당하지 않는지 확인해 주기 위해서다.
“대체 그렇게 싸고도는 이유가 뭐야.”
내 것이라고, 리트렌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감싸던 아리스티네를 떠올리니 머리가 뜨거워졌다.
아리스티네는 감았던 눈을 떠 그를 바라봤다.
‘잰 왜 야밤에 잠도 안 자고 중얼중얼하는 거람?’
아직도 리트렌에 대해 의심하나 보다.
생각해 보면 타르칸 입장에선 유폐당했던,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가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나 서는 거니 불안할 만했다.
“괜찮아. 개 진짜 좋은 애야. 아니더라도 내가 잘할 테니까 나쁘게 말하지 마.”
“그러니까 왜 그렇게 감싸냐고.”
마음에 들었냐?
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내 직원이잖아.”
아리스티네는 빙긋 웃었다.
꽤 사장님이 할 법한 소리였다.
아리스티네는 자신이 그런 말 을 했다는 것에 매우 만족스러 웠다.
‘흠……. 직원이라고.’
‘직원’이라고 딱 선을 긋는 아리스티네의 말에 타르칸의 표정 이 조금 풀어졌다.
앞에 소유격이 붙은 것이 마음 에 안 들었지만.
리트렌을 떠올리는 아리스티네 의 표정이 뿌듯하다는 것 역시 걸렸지만.
“잘 챙겨 줘야지. 내 첫 번째 직원!”
“……첫 번째?”
“응,첫 번째.”
타르칸의 손이 애꿎은 이불을 파악 움켜쥐었다.
내 첫 번째.
거슬리고 짜증 났다.
그리고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더더욱.
팩,타르칸이 거칠게 이불을 젖혔다.
놀란 이불이 비명을 지르듯 펄럭였다.
얌전히 누워 있던 아리스티네 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타르칸은 약간이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몰랐다.
자신에게 이런 심술궂은 마음이 있을 줄은.
“뭐야,자려고? 곱게 좀 들어오지.”
아리스티네가 엉망이 된 이불을 주섬주섬 끌어 올렸다.
그리고 살짝 젖힌 채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자,어서 들어와’ 하고 말하듯.
심술은 다 어디 갔는지 타르칸은 얌전히 아리스티네의 옆에 커다란 몸을 뉘었다.
이불 속에 계속 있어 따뜻한 몸이 그의 왼편에 닿아 왔다.
아리스티네의 손이 그의 손을 잡아 왔다.
말랑하고 따끈하고 보들하다.
어쩐지 닿아 오는 감촉뿐만이 아니라,그의 마음까지도.
“그러고 보면.”
나란히 누운 채, 잠시 침묵하던 타르칸이 입을 열었다.
“네 첫 번째 사업 파트너는 나 아닌가”
“그렇지.”
아리스티네가 눈을 감은 채 대강 대답했다.
내 첫 번째 직원이라고 하면서 눈을 빛냈을 때의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타르칸은 조금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물었다.
“그럼 나도 좀 잘 챙겨 주나?”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떠 그를 바라봤다.
이 손 많이 가는 남편님께서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그녀는 타르칸을 향해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 움직임에 따라 고운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타르칸의 목덜미와 뺨,어깨를 스 쳤다.
움찔,아리스티네와 맞잡은 타르칸의 손가락이 들썩였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가 시선을 획 천장에 고정시켰다.
나란히 누운 채 마주 보게 되니 시야가 묘했다.
“난 내 역할은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아리스티네가 그렇게 물었다. 타르칸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하고 있지.”
흥,아리스티네가 콧김을 뿜었다.
‘그럼그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며 잘 챙겨 주는데!’
그녀는 샐쭉한 눈으로 타르칸을 보았다.
“넌 좀 분발해야겠더라.”
그렇게 한마디 툭,던지고 아리스티네는 다시 똑바로 누워 눈을 감았다.
‘분발…… 하라고?’
덩그러니 남겨진 타르칸의 동자가 흔들렸다.
분발하라고?
분발?
그게 무슨 뜻이지?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