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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50화 (50/183)

50화

째깍째깍.

조용한 침실에서 초침이 움직 이는 소리가 울렸다.

분발.

타르칸은 천장을 노려보았다. 노려보고 노려보고 또 노려보았다.

어느새 두툼한 암막 커튼 사이 로 빛이 파고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다.

타르칸은 조용하면서도 날렵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리스티네는 여전히 새근새근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그 얼굴을 내려다보던 타 르칸은 방을 빠져나왔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내딛는 발 걸음이 향한 곳은 개인 연무장이었다.

아무래도 몸을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막 떠오른 햇빛이 은빛 검날에 부딪혀 투명하게 부서졌다.

타르칸이 내지른 검격이 공기를 가르고 땅을 갈랐다.

쿠구구궁一!

연무장에 있던 기물들이 조각 나 무너지며 땅이 낮게 진동했다.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사이로 다시 은빛 검날이 번뜩였다.

엄청난 검풍에 먼지 구름이 회오리쳤다.

몸 푸는 아침 운동이라기엔 과하다 못해 과격했다.

그 중심에 선 타르칸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분발하라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도련님? 그게 뭐예요?”

무칼리 옆에서 차 시중을 들던 하녀들이 기웃기웃하며 물었다.

무칼리의 두툼한 손에는 자그마한 토끼,다람쥐,여우 등등 숲속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별일이시네?’

무칼리가 이런 귀엽고 앙증맞은 것들에 사족을 못 쓴다는 건 저택의 모두가 다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칼리가 애써 안 좋아 하는 척하고 있었기에 다들 속 으로 미소 지으며 눈 가리고 아응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도련님이 이런 깜찍한 세공품을 들고 계시다니?’

그것도 마치 하녀들에게 어서 관심 가져 달라는 듯 차도 안마시고 숲속 친구들만 만지작거 리고 있다.

원대로 하녀들이 관심 가져 주자 무칼리는 우쭐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뭐,나는 이런 거 전혀 관심 없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아,네.”

“그러시죠.”

하녀들이 익숙하다는 듯 흐린 눈을 한 채 대답했다.

무칼리는 그런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함빡 미소를 지었다.

〈무칼리 경,내 부탁을 들어줘 서 고마워.〉

어제 아리스티네를 왕궁에 데려다주었을 때,그녀가 나가려는 무칼리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 따라 무칼리가 손을 내밀자,차르록 무언가가 손바닥 위로 쏟아져 내렸다.

토끼와 다람쥐,여우,오목눈이 모양을 한 자그마한 장식품이었다.

무칼리의 얼굴이 왈칵 찡그려졌다.

〈이런 건 별로 받고 싶지 않 소!〉

하여간 이 조그만 엄지 공주는 꼭 자기 같은 것만 좋아한다.

〈응?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의아한 아리스티네의 물음에 무칼리가 펄쩍 뛰었다.

〈좋아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이런 것 하나도 좋아하지 않소!〉

그러면서도 그는 힐끔힐끔 장식품을 바라봤다.

귀를 종긋하고 있는 토끼와 도 토리를 움켜쥔 채 볼을 부풀리고 있는 다람쥐.

풍성한 꼬리에 코를 묻고 자는 여우,그리고 눈송이 같은 오목 눈이.

무칼리는 손을 움켜쥐지도,그 렇다고 아예 펴지도 못한 채 손가락만 움찔움찔했다.

〈아까 리트렌이랑 있었을 때 계속 쳐다보더만. 귀여운 거 좋아하면서 참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안 좋아한다니까 왜 자꾸 그러시오!〉

〈저택의 응접실에도 이런 거 많았잖아.〉

무칼리가 아리스티네를 대접한 응접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들로 가득했다.

〈그,그건……!〉

당황한 무칼리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사,사촌 여동생의 취향이라서! 그래서 그랬던 거요.〉

〈사촌이랑 같이 살아?〉

〈그건…… 아니지만.〉

무칼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럼 저택에 응접실이 하나야? 백작 부인의 취향이시라든 가.〉

〈그것도…… 아니지만.〉

〈흐응.〉

아리스티네가 묘한 비음을 내 며 무칼리를 쳐다봤다.

그 눈길을 당해 낼 수 없던 무 칼리가 고개를 획획 저었다.

〈하,하여간 절대 아니오!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니오.〉

〈그래그래.〉

아리스티네가 알겠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랏빛 눈동자가 따뜻했다.

〈하지만 혹시 마음에 안 들어도 받아 줘.〉

그때를 떠올린 무칼리의 얼굴 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해졌다.

“비전하께서 주신 선물이니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수 없이 방에 둬야지.”

그 말에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하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비전하께서요?”

“정말 비전하께서 주신 거예요?”

테이블가에 서 있던 그녀들이 무칼리 가까이로 옹기종기 모였다.

커다란 손 위에 앙증맞게 놓여있는 숲속 친구들이 어찌나 그 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엄지 공주님의 친구들!’

하녀들의 눈에서 초롱초롱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유리관이라도 주문할까요?”

“잘 보존해야 하잖아요.”

“나무나 꽃 같은 미니어처를 사 와서 거기에 놓으면 어떨까요?”

“어머,그게 좋겠다!”

“배치는 내게 맡겨 줘.”

하녀들이 재잘재잘 떠들더니 홱 고개를 돌려 무칼리를 바라보았다.

“안 되겠어. 도련님,훈련하러 가세요. 저희는 도련님 방을 싹 다 갈아엎어서 청소라도 해야겠 어요.”

뭐래.

무칼리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 숲속 친구들은 자신의 것이었다. 오직 자신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부산스러워. 나가.”

“힝 입니다.”

“힝 같은 거 없어. 안 통해. 나 가.”

“흥입니다.”

“홍도 소용없어. 나가.”

무칼리가 자유로운 왼손으로 하녀들을 향해 괘핵 손을 저었다.

그러면서도 숲속 친구들은 오른손에 소중하게 보듬고 있다.

쳇.

하녀들이 입술을 비죽이면서 방을 나갔다.

원래 상하 관계가 경직되지 않 은 아이루고였지만,무칼리는 그 중에서도 더 자유분방했다.

호방한 성격 덕에 하녀들도 장군이자 명문 귀족인 무칼리를 꽤 편하게 대했다.

그렇다고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녀들은 깎아지른 바위 같은 무칼리가 얼마나 다정다감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왼쪽 눈을 잃었을 때도, 하녀들이 본인보다 더 슬퍼하며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했다.

혼자 남은 무칼리는 차가 식는 것도 뒤로하고 손안의 장식품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작고 연약한 거 나는 딱 질색이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람쥐의 꼬리를 보듬는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만지작만지작.

‘……비전하께서 주신 거니까.’

왕자비의 하사품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아리스티네라는 사람이 주었기 때문에.

〈무칼리 경은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하는 전사인데 불편함만 더할 것 같은걸요.〉

〈무칼리 경은 전사라서 전투가 업인데요? 전투에 나가지 않더라도 매일 훈련하고요.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안대를 선물한 볼라튼에게 아리스티네가 했던 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아리스티네는 무칼리를 있는 그대로 보았다.

흉측한 얼굴을 한 괴물.

혹은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

괴물 같은 겉모습과 달리 사실은 좋은 사람.

그런 시선은 일절 없었다.

그냥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본 것처럼 아니면 푸른 옷을 입은 사람처럼 쳐다봤을 뿐이다.

무칼리는 유리 테이블 위에 장 식품을 내려놓았다.

아리스티네와 닮은 것들.

무칼리가 왼쪽 눈을 잃은 것은 마수 때문이었다.

치열한 전투였다.

왼쪽 얼굴 전체를 불에 태우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그는 동료들과 따로 떨어진 채였다.

피 냄새를 맡은 마수들은 그를 추격해 왔다.

상처를 돌볼 틈은 없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보름이 지나 무칼리는 동료들 과 합류했다.

그러나 극악의 환경에서 치료하지 못한 채 방치된 왼쪽 눈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파인 눈 주변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괴사되지 않도록 조처 를 했지만,소름 끼칠 정도로 흉측한 흉터가 남았다.

자신을 아끼는 하녀들은 울음 을 터트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부모님께서는 훌륭한 전사라며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가 잠이 들면 곁에 와 가슴을 쿵쿵 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칼리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무서워하고 흉측해하며 그를 피하진 않았다.

무칼리를 불쌍하게 생각해 주었다.

그건 그를 아끼기에,위하기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무칼리도 그걸 알아서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다만.

가끔은 자신이 비정상적인 괴물로 느껴져 참을 수 없는 밤이 찾아왔다.

그를 끔찍해하든,그를 동정하든 모두 그가 비정상이라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아리스티네는一.

아리스티네는.

무칼리의 검지가 잠든 여우의 귀를 톡,건드렸다.

‘정말 비전하께서 불륜을 저지를까?’

어제 아리스티네는 궁인들과 함께 무칼리의 저택에 방문했다.

아리스티네가 무칼리와 함께 대장간에 가서 리트렌을 만나겠다고 하자,궁인들은 모두 흔쾌 히 알겠다고 하며 왕궁으로 되 돌아갔다.

정말 불륜이라면 궁인들의 반응이 그랬을까?

또,아리스티네가 행선지나 만나는 상대를 숨기지 않고 대놓고 말할까?

그때부터 뭔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마음이 들떠서,무칼리 는 솔직하게 물어봤었다.

〈근데 왜 만나려고 하는 거요?〉

〈음,타르칸한테 사업 동의도 받았으니까 이 정도는 이제 말 해도 되겠지.〉

갑자기 나온 주군의 이름에 놀랐다. 그럼 주군께서도 알고 있 다는 건가?

〈내 사업에 필요하니까 그렇지.〉

〈사업?〉

〈응.〉

금시초문이다.

분명 디오나는…….

아리스티네 본인도 일전에 그 남자를 꼬시려고 한다고 그랬는데.

〈돈 많이 벌면 무칼리한테도 한턱 쏠게.〉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말하며 해사하게 웃었다.

정말 그것 때문이라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믿으려는 자신이 마음 속에 있었다.

무칼리는 그런 스스로를 느껴 서 더더욱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확인했다. 두 눈으로 직접.

아리스티네는 결백했다.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도,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무칼리는 힘들게 인정했다.

실바누스의 황녀.

자존심 때문에 몇 번이고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했다.

그녀를 제대로 본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냐고,너넨 속고 있다고 화를 냈다.

거기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비난하러 무례하게 쳐들어갔다.

심지어 돕는 척 속여서 불륜 현장에서 검거해 망신을 주겠다고 계획을 짰다.

‘부끄럽다.’

정작 아리스티네는 그 누구보 다 무칼리를 똑바로 보고 있었 는데.

무칼리가 ‘음!’ 하며 주먹을 꽉 음켜쥐었다.

‘충성을 바치자!’

아리스티네는 주군께 잘 어울 리는,멋진 여자였다.

타르칸과 잘 어울린다는 말은 무칼리에겐 최고의 찬사였다.

‘디오나에게도 알려 줘야겠지.’

오해는 풀었으니,가장 걱정하고 있던 그 아이에게도 안심하라 일러 줄 때였다.

타르칸의 행복을 빌고,아리스티네가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아이였으니 분명 기뻐할 것이다.

‘만나서 알려 주는 게 좋겠지?’

전보로 통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칼리는 기쁜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방을 나서려던 무칼리가 멈칫했다.

‘디오나는 어째서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지?’

남자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 닌다는 말은 분명 디오나가 했던 말이다.

계속 아닐 거라 부정하며 아리스티네의 역성을 들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은 리트렌 에 대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불 륜이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는데’

왜 디오나만.

무칼리는 일으켰던 몸을 다시 물렸다.

디오나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그다지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착한 아이고 워낙 주군을 위하 는 정성이 갸륵한 아이이니 걱정이 앞선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무칼리의 눈이 무겁게 침잠했다.

‘디오나가 어디서 비전하께서 리트렌에게 관심 가졌다는 정보를 손에 넣었는지,어떤 식으로 말을 들었길래 그런 걱정을 했는지 경로를 확인해 봐야겠어.’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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