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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53화 (53/183)

53화

남편한테 너 유부녀라고 한 소리 들은 게 며칠 전이다.

이런 식의 며느리 입후보는 사절이다.

‘거기다 왕후는 내 시모잖아? 하미르 왕자는 내 시숙이고.’

갓 결혼한 새 며느리에게 다른 아들을 소개해 주는 시어머니라.....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왕후를 바라보는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한층 더 떨떠름해졌다.

‘아무리 내가 탐이 나도 그렇지!’

이쪽은 이미 타르칸과 사업 계약을 맺었다.

일방적 계약 파기나 사기는 있을 수 없다.

아리스티네는 바짝 경계하며 왕후를 바라봤다.

* * *

왕후와 예니카리나,파엘라미엔 과 스탈리나는 할 말을 잃고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그건 티타임 시중을 들던 궁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하던 일도 멈춘 채 멍하니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지금……’

‘무슨……?’

한차례의 침묵 후에야 그들은 온전히 지금 상황을 이해했다.

왕후의 얼굴이 분노로 하얗게 질렸다.

그보다 더 흥분한 것은 예니카리나였다.

“지금 그게 무슨 뜻이에요,황녀?”

“어?”

“유부녀라니,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말 그대로…… 난 유부녀라는 뜻인데. 미혼은 아니잖아.”

아리스티네는 흥분한 예니카리나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미르와 자신이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절망한 것인가.

‘예니카리나의 성격상 그럴 리가 없는데……. 얘 날 싫어하잖아?’

그렇게 생각했지만,지금 이 상황을 달리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음,그래도 난 예니카의 새언니니까.”

하미르와 결혼하지 않아도 이미 예니카리나의 올케였다.

기분 풀라며 웃었는데 어째서 인지 예니카리아의 얼굴이 파사삭 구겨졌다. 꼭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아니,지금 무슨…! 설마 우리 오빠가,예니카의 오빠가 너 같은 애랑…”

광!

예니카리나가 티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쳤다.

달칵거리는 소음과 함께 찻물 이 튀고 접시가 흔들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가슴이 들먹거렸다.

파엘라미엔은 두통을 느꼈다.

왕후의 눈동자가 아리스티네를 찢어 죽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왜 이 자리에 온 것인지 후회만 가득했다. 왕후의 부름에 그냥 다른 일이 있다고 핑계 댈 것을.

불똥이 튀기 전에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진정해, 예니카. 황녀님께선 그냥 자신이 결혼했다는 것과 네 올케라는 사실을 밝힌 것뿐이야”

예니카리나의 사나운 시선이 파엘라미엔을 향했다.

파엘라미엔은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며 어깨를 으쪽였다.

“모두 사실이잖아? 이렇게 흥분할 이유는 없어.”

“모두 사실? 언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왜 그딴 말이 하미르 오빠 이야기하면서 나오냔 말이야! 꼭,꼭……”

차마 뒷말은 끔찍해서 입에 꺼낼 수가 없었다.

“예니카,진정해.”

아리스티네 역시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예니카리나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파엘라미엔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내가 비록 유부녀지만 우리는 이미 한 가족이 되었으니까.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필요 없어.”

예니카리나는 눈앞이 새까맣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혈압이 순 식간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것이다.

“황녀.”

분노를 어느 정도 가라앉힌 왕후가 딱딱하게 아리스티네를 불렸다.

“네,왕후 폐하.”

“내 뜻을 오해한 것 같은데, 나는 그저 내 아들에 대해서 말 한 것일 뿐이야.”

정확히는 타르칸과 비교해 아리스티네의 속을 긁으려 했다.

‘아,민망하구나. 내가 구혼을 거절해서.’

아리스티네는 살짝 애잔한 눈으로 왕후를 바라봤다.

하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게 왜 며느리에게 그랬단 말인가. 아무리 타르칸이 제 배로 나은 아들이 아니어도 그렇지.

아리스티네는 왕후가 덜 쪽팔 리도록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그럼요. 저도 그냥 제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아리스티네의 얼굴에 한없이 자상한 미소가 떠올랐다.

왕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거 분명히 내 말을 잘못 이 해하고 있는 건데.’

“아니,정말로 그냥 내 아들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야. 이제 왕실의 일원이 되었는데 비가 아직 하미르를 못 봤으니까,별 뜻없이.”

“네, 저도 그냥 유부녀라구요. 별 뜻 없이.”

아리스티네가 다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무슨!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고!’

머리가 지끈지끈해 왕후는 이마를 감쌌다.

더 말해 봤자 같은 말이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럴수록 설명하는 자신만 더 구차해질 뿐이다.

안 되겠다.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대로 오해한 채 두려니 엄청난 패배감과 자괴감에 휩싸였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제 수족처럼 구는 공주들과 판 짜서 아리스티네를 불러낸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지친 왕후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눈치보던 스탈리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 잘못한 게 있으니 왕후와 예니카리나의 심기를 풀어놔야 했다.

“사실 왕후 폐하께서 하미르 오라버니 이야기를 많이 하실 만하죠. 저도 나중에 그런 아들이 생기면 매일매일 자랑하고 싶을걸요.”

“맞아,저도 그래요.”

파엘라미엔이 옳다구나 맞장구를 쳤다.

“정말 대단하시지 않나요? 마력석 광산의 총책임을 맡으시다니.”

‘마력석 광산?,

파엘라미엔의 말에 아리스티네의 귀가 종긋했다.

“폐하께서도 가장 신임하는 자식이니 그 중요한 것을 하미르 오라버니께 맡기신 거겠지요.”

실바누스 황녀를 타르칸과 맺어 주는 것에 반발하는 귀족들을 달래기 위한 것도 있었다.

하미르를 추대하는 무리가 강력하게 반발했었으니까.

하지만 하미르 본인의 능력이 일천하면 마력석 광산이라는 거 대한 국가사업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얼마나 바쁘겠니. 그 일 때문에 왕궁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능력이 너무 뛰어나 쓰임새가 많으면 이리 고생하는 법이지.”

두통이 조금 가신 왕후가 홋, 하고 미소 지었다.

마력석 광산을 진두지휘하며 하미르의 정치적 입지 또한 더 더욱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럼 공무로 자리를 비우신 게 마력석 광산 때문이었나요?”

아리스티네의 물음에 왕후가 옳다구나,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꽤 배 아플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티네의 눈에는 감탄만 어려 있었다.

“그래요,리네 언니도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시겠지요? 마력석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부왕께서는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우리 하미르 오라버니한테 맡기신 거예요.”

예니카리나가 뻐기듯이 말했다.

기분이 다시 살아난 건지,진정한 것인지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와있었다.

그녀의 눈이 새초롬히 아리스티네를 흘겼다.

‘네 남편보다 우리 오빠가 훨씬 더 잘났어.’

그런 뜻을 담아서.

아리스티네는 예니카리나가 그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과연,그러면 대외적으로 공무가 뭔지 안 알릴 법해.’

전생으로 따지자면 석유가 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바누스와 아이루고의 정략혼으로 국제 정세에 파동이 일고 있는 판이니 발표를 미루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네. 좋겠다.

아리스티네의 얼굴에는 순수한 부러움이 가득했다.

아리스티네는 마력석 사업의 대단함을 잘 알았다.

‘정확히는 얼마나 대단한 돈이 되는지 말이지.’

하지만 아리스티네가 마력석 사업을 맡을 일은 요원했다.

전략적 국가사업이니 개인이 다룰 수 없는 사업 분야였다.

‘부럽다,금수저들.’

약속된 승리의 사업인데.

아리스티네도 이제 아이루고 왕족이니 국가사업을 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갓 결혼한 왕자비에게 마력석 같은 중요한 국가 사업을 맡기겠는가.

정치적으로도 꽤 이권이 얽힐 거고.

아리스티네 본인도 딱히 국가 사업에는 관심 없었다.

‘이혼할 때 인수인계하기도 힘들고,국가사업으로 번 돈이 모두 내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어떤 의미로는 월급쟁이나 마찬가지다.

부러움이 가득한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본 왕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마력석 광산 이야기를 들으니 깨달음이 왔나 보지?’

타르칸이 썩은 동아줄이고 하 미르야말로 진정한 왕이 될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렸나 보다.

‘그럼 오히려 일이 쉽지.’

아리스티네가 이쪽 편으로 돌아서면 확실한 이득이었다.

비록 아리스티네가 워낙 재수 없고 속 터지게 군 전적이 많긴 하지만,왕후는 이 나라의 군주였다.

그런 사감으로 정치적 이권을 포기할 정도로 그릇이 작진 않 았다.

원래 정치란 어제의 적이 오늘 의 친구고,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인 법 아닌가.

‘아리스티네와 타르칸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고.’

이 결혼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만큼,타르칸의 입지는 한순간에 하락할 것이다.

“리네.”

왕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리스티네를 불렀다.

“네가 이미 결혼한 게 아쉽구나. 내게 이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으니 말이다.”

예니카리나가 기함해서 모후를 바라보았다.

‘엄마!’

새하얗게 질린 채 벙긋대는 입술에서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왕후는 그런 딸을 무시한 채 아리스티네에게 미소를 지었다.

‘자,난 네게 손을 내미는 거야.’

물론 수틀리면 언제든 팽할 생각이다.

아쉽다곤 해도 이혼녀를 하미르한테 붙여 주는 건 가당찮았다.

머리가 좋은 아이니 아리스티네 역시 감히 그럴 생각도 하지 않을 터.

손을 내밀고 있다는 뜻만 알아 채면 된다.

느낀 게 있으니,아리스티네 역시 저와 손을 잡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알 터.

남편과 아내가 서로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경우는 흔했다.

“그래도 네 말대로 너는 내 며느리가 아니니. 그것도 첫 번째 며느리지.”

어서 내게 붙으렴.

왕후의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그럼 하미르가 왕이 될 때 타르칸과 함께 숙청당하지 않고. 너도 평안하고 부유한 노후를 보장받을 거야.

“어떠니? 우리 친딸과 친모 같은 고부 사이가 되어 보는 건.”

* * *

“주군.”

타르칸은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자칼렌.”

그의 전사이자 책사인 자칼렌이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며 서 있었다.

“저어,비전하에 관한 것은 사소한 것까지 다 보고하라 말씀 하셔서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칼렌은 슬쩍 타르칸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것까지 보고한다며 시간 낭비하지 말라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 문이다.

“뭐지?”

“왕후께서 비전하를 궁으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왕후가?”

“예,파엘라미엔 공주와 스탈리나 공주 그리고 예니카리나 공주까지 합석했습니다.”

전부 왕후의 끄나풀이었다. 타르칸의 왼쪽 눈썹이 획 올라갔다.

“아주 작정했군.”

“어쩔까요?”

“뭘 어째. 놔둬.”

어차피 정략혼이다.

이런 정치적 알력을 견뎌 내는 것도 왕자 비의 역할이었다.

게다가 아리스티네 본인이 직접 혼전에 타르칸과 협상하며 말하지 않았던가.

파트너.

이 정도는 그녀가 그의 파트너로서 할 기본 업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만약 왕후와 공주들이 괴롭혀서 그걸로 아리스티네가 속상해 해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리스티네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뿐인데.

또,레이디들의 티타임에 타르칸이 달려가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게다가 마수 토벌 계획에 집중해야 해. 그런 사소한 것 따위에 쏟을 정신은 없어.’

타르칸은 완전히 신경을 꼈다.

“저,주군.”

자칼렌이 당황해서 그를 불렀다.

“왜 그러지.”

“어딜 가십니까?”

“뭐?”

타르칸은 인상을 찌푸리고 자칼렌을 보았다.

“이렇게 걸음도 서두르시고.

자칼렌의 말대로 타르칸은 거의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자각한 타르칸은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산책.”

“……산책이요?”

타르칸은 그렇게 왕후의 궁까지 산책을 나갔다.

궁인들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는 것을 무시하고,바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왕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떠니? 우리 친딸과 친모 같은 고부 사이가 되어 보는 건.”

* * *

“음,그런 말이 있죠. 친정 엄마 같은 시모는 없다고.”

아리스티네가 생긋 웃었다.

“왕후께서는 제가 유부녀인 게 아쉽다고 하셨는데,저는 하나도 안 아쉬워요.”

아리스티네가 테이블 위에 양 팔꿈치를 올려놓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저는 제 남편이 마음에 들거든요.”

조금 손이 많이 가서 성가시고 수줍은 변태이긴 하지만,그래도.

‘무엇보다 근사한 파티시에도 있고 말이지.’

왕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설마 자신이 손을 내밀었는데 거절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직 어리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 전부처럼 느껴지나 본데,생각 잘하는 게 좋을 거야. 인생은 결국 자기가 결정하는 거니까.”

왕후의 눈이 매섭게 아리스티네를 노려봤다.

“나중에 후회하며 남 탓 하지 않으려면 잘 결정해야지,응?”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아리스티네가 왕후에게 굽히지 않으면,꼭 후회하게 만들겠다

“저 스스로 결정한 거예요. 제가 타르칸이 좋다는데 왜 그러세요?”

“사랑에 눈이 멀어 인생을 망치려고? 젊은 날의 혈기에 너무 모든 것을 거는 것 아닌가? 정신 차려,너는 황녀이자 왕자비야.”

‘앗,사랑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마음에 든다는 거였는데.’

왕후의 질타에 오해가 섞여 있었지만,아리스티네는 입을 다물었다.

‘뭐,오해하는 쪽이 편하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파엘라미엔이 물었다.

“타르칸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음..............”

아리스티네는 잠시 고민했다.

“침대를 잘 부숴서?”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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