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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60화 (60/183)

60화

“브로디 영애,어쩌면 좋아요.”

실바누스 시녀들이 브로디의 처소에 모여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무릎은 좀 괜찮아요?”

“정말 타르칸 전하께서도 너무 하시지.”

그렇게 말은 하지만 시녀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브로디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남성에게 그렇게 거칠게 거절을 당하다니.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이 브로디가 황녀 취급도 못 받은 그딴 반편이보다 못한 게 뭐라고!’

브로디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이 흉터!’

손끝으로 살짝 우툴두툴한 피부가 만져졌다. 손톱으로 확 파내 버리고 싶었다.

“이,이것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타르칸 전하께서 저를-. ”

“브로디 영애……”

“왜 내가……”

브로디가 헐떡이며 흐느꼈다.

“괜찮아요, 영애. 나중에라도 신관을 불러서……”

“너무 오래된 흉터는 신관이라도 어쩔 수 없잖아요!”

브로디가 꽥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애초에 이런 흉을 달고 있어야 하는 건 그 천더기인데……!”

브로디가 이를 까드득 갈며 옮조렸다. 눈동자에 독기가 일렁였다.

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 장구쳤다.

“맞아요. 원래라면 끓는 물을 뒤집어쓰고 화상을 입어야 할 사람은 황녀였죠.”

그걸 위해 브로디는 끓는 물을 들고 황녀에게 다가갔었다.

“흉터 가득한 얼굴로 타르칸 전하와 만났다면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타르칸 전하께서도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천더기의 본질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바로 알아봤을 텐데요.”

시녀들이 브로디를 위로했다.

그럴수록 브로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모든 것은 그 천더기 황녀가 아니라 자신의 것이 됐을 터였다.

강인하고 멋진 타르칸도,아리스티네가 걸치고 있는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과 스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비단도,전부,전부 다!

‘원래대로였다면……!’

쿵!

브로디가 침대를 내려치며 오열했다.

“영애……”

로잘린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브로디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진정할 시간 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자리를 비켜 주죠.”

로잘린의 말에 다른 시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가에서 물러났다.

로잘린 역시 몸을 일으키며 한 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지금쯤 황녀는 흉 하나 없이 타르칸 전하의 팔짱을 끼고 있겠죠. 방금 케이크 들고 연무장에 갔다고 하던데. 어쩜 그리 꼬리를 잘 치는지.”

그녀는 혼잣말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다 전사들에게 아양을 떨 작정으로 무슨 칼을 만든답시고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던데.”

브로디의 눈이 획 돌아가며 로잘린을 향했다.

“날붙이라니,하여간 황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교양 따윈 없다니까. 야만스럽게.”

“……칼이라고요?”

브로디의 물음에 로잘린이 아차,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뒤돌아봤다.

“아,네. 조금만 그어도 바로 상처가 날 정도로 아주 날카로운 검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로잘린은 티 나는 눈짓으로 브로디의 얼굴을 숙 훌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속상하네요. 이런 흉터는 황녀에게 있었어야 하는데.”

그 눈빛을 받은 브로디가 흉터를 가리듯 고개를 획 돌렸다.

지금은 화장을 하지 않아 흉이 잘 보일 터였다.

“아니,브로디 영애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 그딴 버러지한테는 이보다 더 흉측한 흉터가 어울리죠.”

로잘린의 말에 브로디가 고개를 들었다.

브로디의 눈빛이 음 험한 빛을 띠며 어둡게 반짝거 렸다.

“……황녀가 칼을 만들고 있다고요?”

“아,네. 이미 다 만들었을걸요? 방에 보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요……”

브로디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렇단 말이죠……”

손톱을 깨물며 중얼중얼하는 브로디를 내려다보던 로잘린이 몸을 돌렸다.

천천히 방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로잘린 영애,나오다가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이렇게 늦게……”

“아뇨,브로디 영애가 뭘 좀 물어봐서요. 중요한 건 아니었어 요.”

나머지 시녀들이 뭐였는지 되 묻기 전에 로잘린이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브로디 영애가 걱정 이네요.”

“타르칸 전하께서 그렇게 거칠 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역시 야만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녀들은 서 로의 눈치를 봤다.

로잘린이 씩 웃었다.

“우리 솔직해지죠.”

그녀는 인적 드문 외벽에 기댄 채 다른 시녀들을 둘러봤다.

“야만적이다, 기사도가 없다, 무례하다. 그렇게 말하지만 다들 타르칸 전하가 근사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말에 시녀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강한 수컷.

타르칸은 그들이 봐온 모든 남자를 압도했다.

얼굴,몸,능력,재산,지위,카 리스마.

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게 없다.

겉으로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냐고 욕을 해도, 사실은 가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과 하나 내올 때도 부득불 모두 함께 가져왔다.

“솔직히 타르칸 전하처럼 잘난 남자가 브로디 영애의 그런 유혹에 넘어올 리가 있나요? 전 넘어갔으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예요.”

로잘린의 말에 서로를 힐끔거 리던 시녀가 주저하며 입을 열 었다.

“그건…… 그래요. 알다시피 브로디 영애의 얼굴이 조금…… 상했잖아요?”

“그런 사람이 들이대면 당연히 타르칸 전하도 기분 나쁠 수밖 에 없죠.”

로잘린이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며 이어 말했다.

“타르칸 전하는 이 나라의 영 응이에요. 얼마나 보는 눈이 높겠어요? 아무나에게 쉽게 곁을 허락하는 남자가 아니라고요.”

그의 선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 말은 시녀들의 가슴을 더더 욱 설레게 했다.

“셀리안 영애,멜로디아 영애. 우린 브로디 영애와 다르지 않 나요?”

로잘린이 은근한 눈짓을 하며 그들에게 속삭였다.

우린 거절당한 브로디와 달라. 우리는 특별한 존재야.

달콤한 말이었다.

곤란한 둣 머뭇거리던 시녀들 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기 시작 했다.

“맞아요. 이런 말 하긴 그렇지 만,수준이 다르죠.”

“용감하다니까요. 그런 얼굴로 그렇게 경우 없이 들이댈 줄이야.”

로잘린이 교활한 얼굴을 감추 며 빙긋 웃었다.

“우리는 고상한 레이디답게 행동해 야죠.”

“그 천더기와 수준이 다른 우아함으로요.”

“타르칸 전하께서 좋아하는 게 뭘까요?”

시녀들이 적극적으로 타르칸을 유혹할 계획을 논의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머나,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니……”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 녀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 았다.

큰 키와 늘씬하고 요염한 몸, 바람에 흔들리는 군청빛 머리카 락.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누구 인지 알았다.

그도 그럴 게 타르칸의 곁에 계속 붙어 있는 여자였으니까.

“디오나

저도 모르게 이름을 말하자, 여자가 바닷빛 눈을 휘며 싱긋 웃었다.

“네,디오나라 불러 주세요,실바누스의 시녀님들.”

Chapter 19. 역사는 밤에

“정말 혁명입니다! 진작 왜 이 생각을 못 했는지……!”

메스를 쥔 채 감탄하는 의사를 보고 아리스티네는 하하,웃었다.

“쓰기 편하다니 다행이네. 근데 일단 수술에 집중해 줄래? 피가 막 흐르고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치료를 받던 전사가 근육을 불끈하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아니,보는 내가 안 괜찮아.’

아리스티네는 흐린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후……. 전사분들의 잦은 부상으로 그간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의사가 애수에 잠긴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것보단 일단 수술에...... ”

“괜찮습니다!”

전사가 또 근육을 꿈틀하며 외쳤다.

그가 근육에 힘을 줄 때마다 배에 난 상처에서 피가 푸숙푸숙 샘솟았다.

“치료하고 치료해도 환자는 끝 없이 밀려오지,환자 놈,아니, 환자분들은 말을 드럽게 안 처 듣지.”

“알겠으니까 떠드는 건 나중에 하자. 피 줄줄 난다고. 이대로 가다간 이 사람 죽겠어. 부상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비전하께서 저 같은 일개 평 전사를 이렇게나 신경 써 주시다니!”

감격에 눈가를 붉게 물들인 전사를 보고 아리스티네는 이마를 짚었다.

‘여긴 틀렸어.’

그 와중에도 의사인지 장의사인지 모르겠는 놈의 회고는 계속되었다.

“거기다가 연장은 그따위지. 다른 건 둘째 치고 제 연약한 손목이 엄청나게 혹사당했다고요. 불쌍하게도.”

의사가 훌쩍훌쩍 울상 지으며 메스를 쥔 오른손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솔직히 아리스티네가 보기에 잘 훈련한 전사만큼이나 단련된 손목이었다.

“이거라면 힘도 덜 들어 가면서 더 정밀하게 작업할 수 있고……”

“그래,알겠으니까 치료 좀……아니다. 네 맘대로 해.”

아리스티네는 설득을 포기했다.

뭐,환자 본인이 괜찮다고 했 으니 이러다 죽든 말든 알게 뭐람.

어쩐지 지친 기분이 되어 아리스티네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행히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견학을 마치고 나오자 타르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

타르칸의 물음에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메스야 당연히 완벽하지. 그런데 저 의사 정말로 괜찮은 거야?”

“그래 봬도 최고의 외과 의사야.”

“최고의 장의사가 아니라?”

아리스티네의 말에 타르칸이 피식 웃었다.

“별거 아닌 상처에는 조금 대충이긴 하지.”

“한 번만 더 대충하면 사람 잡겠던데.”

“그래도 딱 안 잡을 정도로만 하니까.”

“흐음?”

아리스티네가 묘한 눈길로 타르칸을 쳐다봤다.

“왜?”

“아니,꽤 그 의사를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타르칸이 입매를 비틀었다.

“실력만은 믿지. 나머지는 전부 신뢰할 수 없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의사의 실력을 믿는다는 건 목숨을 맡긴다는 거잖아.”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몸에 나 있는 수많은 흉터를 떠올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실력을 믿을 수 있는 의사가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다행이네. 그런 사람이 네 곁에 있어서.”

타르칸은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초여름의 햇 살이 그녀의 얼굴에 머무르는 듯했다.

“……다행,인가.”

“그럼 내 남편님의 말을 믿고 나도 그 의사한테 안심하고 맡겨 볼까.”

아리스티네가 싱긋 웃었다.

테스트를 해 보고 싶다는 아리스티네의 말에 타르칸이 병동에서 메스를 사용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타르칸이 직접 지휘할 정도의 대규모 전투는 하고 있지 않지만,전사들은 지금도 평원을 정찰하며 조우한 마수를 격퇴하고 있다.

외과술이 필요한 환자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사용 소견을 듣는 것도 좋지만,판매 전략으로 사용하려면 이런 것도 체크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리스티네의 눈짓에 궁인이 서류를 내밀었다.

제왕안을 통해 본 전생의 지식을 참고해 만들어 본 검표였다.

그 서류를 넘겨 보던 타르칸이 고개를 들고 아리스티네를 바라 봤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타르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유폐당한 채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홀로 살았다면서 이렇게 체계적인 자료를 준비한다고?’

심지어 아리스티네는 딱히 뿌듯해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적당히 상식선에서 만든 자료인 듯했다.

‘실바누스 황제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못 알아봤군.’

이런 자질을 가진 자를 후계로 정하지 않고 오히려 유폐하다니.

거기다가 아예 타국으로 보내 버렸다.

“오,그럼 제가 봐야 하는 건 가요?”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가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우미루라고 합니다. 이 빌어먹게 바쁜, 아차 실례. 대단하신 전사분들의 수많은 부상을 다루 는,이 영광스러운 병동의 총책임자입니다.”

실례라고 말하긴 했지만 우미루는 딱히 타르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타르칸 역시 신경도 안 쓰는 듯했고.

“응, 다른 의사들까지 꼼꼼히 작성해 주길 부탁할게.”

“우리 비전하의 부탁이신데 어련하겠습니까. 모두 성심을 다해 작성할 겁니다.”

우미루가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티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리스티네가 그 손에 손을 얹자 우미루가 두 손으로 감싸며 음미하듯 살짝 매만졌다.

“정말 보드라운 손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는 우미루의 눈동자는 타 오르는 듯 일렁이는 붉은빛이었다.

‘묘하게 아름다운 사람이네.’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길게 뻗은 속눈썹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미루가 아리스티네의 손등에 살포시 키스했다.

“이 우미루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비전하.”

타르칸이 미간을 찌푸리며 거칠게 우미루를 아리스티네에게서 떼어 냈다.

“이 녀석 여자야.”

“아,그래?”

타르칸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미루를 바라보았다.

인종적으로 달라서 그런가.

큰 키와 넓은 어깨,살짝 근육 잡힌 체형을 보고 남자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을 보며 물었다.

우미루가 여자든, 남자든 일하 는 데에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리스티네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그냥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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