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61화 (61/183)

61화

“푸하하하,맞아요.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비전하.”

우미루가 웃으며 한 손으로는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어깨를 감싸며 친밀하게 에스코트했다.

“여자끼리인데,이 정도의 에스코트도 괜찮지요? 보통은 남편이 하겠지만,안타깝게도 남편분은 절 노려보느라 바쁘니 말입니다.”

우미루가 샐쭉 웃으며 타르칸을 바라봤다.

“비전하께는 정말 좋은 향기가 나네요. 땀내만 나는 전사 놈…… 아니,전사분들과 다릅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저쪽은 밖에서 훈련하고 나는 실내에 있는데. 땀이 안 나지.”

대수롭지 않게 되묻는 아리스티네를 보면서 우미루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키득키득 웃었다.

“이것 참,우리 타르칸 전하께서 속이 많이 타시겠네요.”

우미루의 시선을 받은 타르칸이 눈살을 찌푸렸다.

“별로.”

그가 고개를 획 돌리며 내뱉듯 말했다.

“어머,그러세요?”

우미루는 기분 좋게 걸음을 옮기며 아리스티네를 의료용 기물 창고로 안내했다.

“자,여기에 일반 메스들이 있습니다.”

우미루가 보여 준 곳에는 단도 형태의 메스들이 소포장된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 비전하께서 만들어 주신 메스가 훨씬 좋아서 미리 사 놓 은 것들을 다 폐기 처분 할 것 같은데……

이걸 다 폐기 처분 하는 것 도 큰일일 것 같았다.

“메스를 엄청 많이 구비해 놨네?”

“예,하나를 여러 번 쓰자니 관리하기가 힘들어서요.”

“아,날 때문에?”

의료용 메스의 날은 워낙 얇아서 쉽게 상한다고 들었다.

‘전생에서도 메스 날이 환자의 몸속에서 부러진 걸 모르고 그대로 봉합해 난리 났다고 신문에서 그랬지.’

엑스레이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는데 검은 사진에서 하얗게 빛나는 날이 섬뜩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여기 의료용 메스 날은 지구보다 더 두꺼운데? 한두 번 썼다고 날이 상할 것 같지않은데”

“날 문제보다는 관리해 가며 쓰기 힘드니까요.”

우미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그런데,비전하께서 주신 시제품도 더 많이 준비해 주 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리트렌에게 말해 볼게.”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칸의 궁에 있던 기존의 대장간 인력을 동원해 시제품을 만들고 있으니 딱히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런데 칼날 문제가 아닌데도 오래 쓰기 힘드나? 이렇게 대량으로 미리미리 구비해 놓아야 할 만큼?’

물론 메스는 오래 쓰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아예 한 번 쓰고 버린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에 관한 질문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우미루 님! 긴급 환자입니다!”

창고 문을 벌컥 열며 다른 의 사가 외쳤다.

그 말에 우미루가 칫,하고 혀 를 차더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오,이게 의사인가.’

아리스티네는 감탄했다.

“그럼,비전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검표는 제가 직접 보고 할테니까요.”

창고를 나가기 직전,우미루는 아리스티네를 돌아보며 윙크를 날렸다.

순식간에 감탄이 날아간다.

“우미루 님! 진짜 급해요!”

의사가 신경질을 내며 우미루 를 잡아끌었다.

우미루는 끌려가면서도 아리스티네에게 손 키스를 날렸다.

‘정말 여기 괜찮은 걸까.’

아리스티네는 수술실에서 했던 생각을 다시금 할 수밖에 없었다.

* * *

“부왕 폐하.”

아리스티네의 인사에 아이루고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네프테르가 타르칸과 아리스티네에게 티타임을 함께 하자고 초대했다.

흑마노를 이용해 꾸민 왕의 중정은 엄숙하고 장엄했다.

낮게 흐르는 물소리가 고즈넉 한 분위기에 운치를 더해 주었다.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이 나란히 착석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떤가.”

웨딩 퍼레이드 때의 마차 사고를 묻는 것이다.

아리스티네가 미소 지었다.

“타르칸 덕분에 다치지도 않았는걸요. 괜한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행이군.”

“또 부왕 폐하께서 친히 내려 주신 마차를 타고 다니니 어찌나 편하고 아늑한지 몰라요. 감사합니다.”

네프테르는 별 대답 없이 홈, 하고 턱을 쓸었다.

하지만 타르칸은 부왕이 꽤 흡족해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아리스티네를 상당히…… 아니,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시는군.’

의외였다.

네프테르는 의심이 많은 성정이었고,이렇게 쉽게 타인에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윽고 궁인들이 다과를 내왔다.

야외인데다가 슬슬 더워지는 날씨에맞춰 얼음을 가득 넣은 아이스티였다.

그리고 차와 곁들이는 다과로는 프링프랑 젤리가 나왔다.

‘또? 아이루고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라더니 정말 자주 나오 네.’

타르칸의 궁에서는 매번 다른 디저트가 나와서 몰랐는데,왕과 만날 때는 항상 프링프랑 젤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뭐,맛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드는데 타르칸이 굉장히 미묘한 눈길로 지그시 네프테르를 바라보 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네프테르 를 쳐다봤지만,왕은 언제나 그렇듯 딱딱한 얼굴이었다.

“프링프랑 젤리군.”

네프테르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렇네요.”

긍정했으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중정에 물 흐르는 소리만 날 뿐.

그동안 네프테르의 눈동자는 한번의 빗나감도 없이 아리스티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혹시 먹고 싶다는 건가?’

깨달음에 아리스티네는 얼른 프링프랑 젤리를 집었다.

“드세요, 부왕 폐하.”

그 말에 냉큼 받아먹는 딱딱한 얼굴을 보니 어쩐지 흐뭇했다.

이 순간만큼은 어릴 적 여동생처럼,아무것도 모르는 채 아빠 한테 웃으며 배운 식사 예절을 자랑하는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흙을 빚어 포크로 집는 연습을 한 게 마냥 허사는 아니어서.

보여 줄 사람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리스티네도 프링프랑 젤리를 얌,먹었다.

‘역시 맛있어!’

강렬한 신맛과 단맛의 조화!

거기에 차가운 아이스티를 한 모금 쭉 마시니 입 안이 순식간에 상쾌해진다.

네프테르는 행복해하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매에는 그도 모르는 옅은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왕후와 후궁부터 아들과 딸까지 모두 그를 어려워했다.

예니카리나가 살갑게 굴며 애교를 부리지만,사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눈치를 보며 조심하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네프테르는 이 거친 평원의 제패자.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제왕을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달랐다.

‘그렇다고 천지 분간 못 할 정도로 순진한 건 아니고.’

흐뭇하게 며느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아들 녀석이 탐탁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홈?’

네프테르는 다소 놀랐다.

‘저놈이 저런 눈도 할 줄 알아?’

튀르쿠아즈빛 눈동자에 흥미가 어렸다.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네 아내한테 한 입 달라고 하든가.”

네프테르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응?’ 하고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타르칸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그녀와 마주쳤다.

그 시선을 받은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도 집어 달라고? 넌 손이 멀쩡하잖아? 내가 왜?’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솟아 오르다가 하나로 딱 정리되었다.

‘아,설마 저번처럼 나한테 양보해 줘야 하나 고민하는 건가?’

환영 연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 사실은 먹고 싶었던 건가 싶어서 아리스티네는 미안한 기분이 되었다.

“먹고 싶으면 먹어.”

그렇게 말하자 타르칸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됐다. ……부왕께서 저리 좋아하시니 많이 드리든가.”

말하고 난 뒤 타르칸은 곧장 후회했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하지만 이미 늦었다. 타르칸의 귓등이 붉게 달아올랐다.

노란빛 오후 햇살이 조약돌처럼 놓인 화단을 고집스레 노려 보던 타르칸이 힐끔 두 사람을 살폈다.

아리스티네는 여전히 의문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고,부왕은…….

‘아주 신나셨군.’

근엄한 얼굴이었지만 조금이라 도 잘못 건드리면 박장대소할 낌새였다.

지금도 입매가 썰룩거린다.

타르칸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리스티네가 제게도 젤리를 먹여 주길 바랐던 것은 절대 아 니다.

그런 걸 바랄 리가 없지 않은 가.

“크홈,그러고 보니 특이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네프테르가 헛기침하며 아리스티네에게 물었다.

‘역시.’

아리스티네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칸의 궁 안에서만 진행되는 일인데도 왕의 시선을 피할 순 없다.

‘거기다 딱히 기밀처럼 다루진 않았으니까.’

티타임에서 이 얘기가 나올 줄 예상했던 바다.

“막 결혼한 왕자비가 바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건 흔치 않 은 일인데.”

“그건 그렇죠. 하지만 저는 .....”

돈벼락을 맞고 싶어서요.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리스티네는 욕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청렴한 사람처럼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전에 부왕 폐하의 질문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말에 네프테르의 뇌리에 처음 아리스티네를 본 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루고가 야만의 나라라는 오명을 씻는 것.〉

분명 이 당돌한 왕자비는 그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건 네프테르의 염원이기도 했다.

풀어져 있던 네프테르의 눈이 냉철하게 꽉 조여졌다.

“부왕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가 추진하고 있는 건 의료 메스 사업이에요. 이전에 없었던 혁신적인 메스를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지요. 만약 성공하면 아이루고는 ”

아리스티네는 뒷말을 끌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만만한 미소였다.

“의료 강국으로 급부상하겠군.”

아리스티네가 싱긋 웃었다. 눈매가 반달 모양으로 휜다.

“네,맞아요.”

그 누구도 의료 강국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로 수백 년간 들어온 오명 을 한 번에 뒤엎을 수 있다.

의료는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다.

대체재가 없는 이상 타국에서 너도나도 아리스티네가 만든 메스를 사려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루고의 야금술을 따라올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건 곧 대체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무조건 아이루고산 메스를 쓰게 된다.

이걸로 아이루고는 외교 관계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똑똑하군! 영리해!’

아니,그 말로도 부족했다.

네프테르는 당장이라도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고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동시에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는지 지나간 시간이 아까웠다.

본디 아이디어를 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엔 전제가 깔려 있다.

‘지금 아리스티네가 만든 메스가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특출날 것.’

네프테르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게 아니면 실패한다.’

“네가 만든 물건에 자신 있나?”

네프테르의 물음에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더 편한 메스가 나왔다는 수준이면 안 돼. 쓰면 좋긴 하지만 안 써도 그만인 것으로는 돈 좀 만지고 말뿐. 절대 의료 강국이 될 수 없다.”

그 말에 아리스티네는 초조해 하긴커녕 오히려 침착하고 느긋하게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건 그 돈 좀 만지는 것인데.’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국왕인 네프테르가 반대한다면 이 사업은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엎어질 수밖에 없다.

시원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싱긋 미소 지었다.

“자신이 없었다면 부왕 폐하께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네프테르는 말없이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위압적인 시선임에도 아리스티네는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한 눈으로 마주했다.

‘좋은 눈이군.’

메스가 그저 그래서 시장 반응이 별로라고 해도,사실 손해 볼것은 없다.

그것 때문에 아이루고가 야만적이라는 편견이 깊어질 리는 없으니까.

‘그러나 왕후 쪽은 다르지.’

사업을 하다 보면 작은 실수라 도 생기기 마련이다.

왕후파는 그 실수를 가만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걸 빌미잡아서 아리스티네에 게 호의적인 여론을 바꾸려고 할 터.’

이런 상황에서 괜한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을 벌이는 건 좋지 않다.

“리네,실패하면 왕후가 움직일 거다.”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게 답하는 아리스티네의 눈동자는 깊은 우물처럼 맑고 고요했다.

네프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널 한번 믿어 보마.”

네프테르 역시 아리스티네가 만든 메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를 받았다.

‘그거라면 확실히 성공할 만 해.’

그런 생각이 드는 물건이었다.

“부왕 폐하의 믿음에 꼭 부응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말하며 타르칸을 바라봤다.

곧장 눈이 마주쳐 와 싱긋 웃었다.

‘어때? 나 잘했지?’

그 뜻을 담아 눈짓을 하자 타르칸이 피식 웃었다.

‘후후! 내 돈도 벌면서 파트너 역할까지 하다니. 나란 사람 정말 완벽하군!’

아리스티네는 뿌듯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예상했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 아름답고 웅장한 중정을 감상할 여유가 생겼다.

그녀의 시선이 중정을 가로지 르는 물길로 향했다.

아까부터 흐르는 물소리가 기분이 좋았다. 듣기만 해도 시원 했다.

맑고 깨끗한 물에는 초여름의 수목이 비치고 있었다.

물결을 따라 나무 그림자가 일렁인다.

‘어라?’

나무 그림자가 이상했다. 물이 흐르는 대로 일렁이지 않는다.

아니,정확히는.

‘물이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흔들리고 있어.’

제왕안의 징조였다.

아니나 다를까,수면 위에 수목 대신 다른 것이 비쳤다.

[여, 역시 저 때문에 문제가…….]

수면에 비친 것은 리트렌의 얼굴이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물 기가 가득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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