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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62화 (62/183)

62화

‘왜 그러지?’

아리스티네는 상황을 바로 이 해할 수 없었다.

입술을 꾹 깨문 리트렌이 외쳤다.

[제가 메스를 잘못 만들어서……!]

수면을 바라보던 아리스티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메스 사업에 문제가 생기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도 안 돼. 실패할 요소 따위는 없는데....

현실의 아리스티네가 패닉에 빠진 것과 달리 수면 거울 속 아리스티네는 침착했다.

[아니야,리트렌. 다 내 불찰이야.]

그렇게 말하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은 침통했다.

[이 문제를 미리 생각해야 했 는데 내가 자만했어. 너무 들떴 나 봐. 예상하지 못할 것도 아니 었는데....]

수면 거울에 비친 아리스티네 의 낯빛은 조금 창백했다.

부족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 과 후회로 점철된 얼굴.

그 모습을 본 리트렌은 아픈 주인을 본 강아지처럼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비전하께서 저처럼 모자란 놈을 쓰셔서…….]

[아니.]

아리스티네는 단호하게 리트렌 의 말을 끊었다.

[넌 잘해 주었어. 내 기대 이상......]

[비전하…….]

[이 메스가 완전히 실패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걸로 끝났다.

수면이 흔들리더니, 다시 원래 대로 물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 위에 비치는 것은 리트렌도,아리스티네 본인도 아닌 푸른 하늘과 중정의 수목이었다.

‘어째서?’

제왕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보 여 주지 않음에도 아리스티네는 우두커니 수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파란이 일고 있었다.

‘잘못 만들 수는 없는데……?’

백번 양보해서 잘 안 팔릴 수 는 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는 없다.

신약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완전히 새로운 의료도구를 만든것도 아니다.

기존에 있던 메스에서 형태만 발전시킨 것뿐인데 문제 생길 리가?

“……아리스티네?”

타르칸이 희게 질린 채 물길을 바라보는 그녀를 불렀다.

뭔가 싶어서 흐르는 물을 바라 보았지만,딱히 특이한 것은 없 었다.

아리스티네는 그의 부름도 들리지 않는지,여전히 시선을 물길에 향한 채였다.

긴 속눈썹이 깊은 생각에 잠긴 눈동자 위로 드리웠다.

‘생각해 내.’

미래의 자신은 분명히 말했다.  예상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고.

들뜨는 바람에 자만해서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할 수 있어.’

처음으로 경험하는 외부 생활, 상호 작용 하는 인간관계,스스로 이룩해 나가는 것들,순차적 으로 착착 진행되는 사업 계획.

갇혀 살며 그 무엇도 맛보지 못했던 아리스티네로서는 그 모든 것들이 믿기지 않도록 설레는 일이었다.

들뜰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착각 하면 볼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 착각 속에서 벗어났어.’

아리스티네의 머리가 팽팽 돌

아가기 시작했다.

뛰어난 그녀의 기억력은 여태 까지 메스 사업을 진행하며 그녀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렸다.

원하는 대로 깨끗하게 그어지던 메스.

가볍고 날카로웠던 감촉.

〈정말 혁명입니다! 진작 왜 이 생각을 못 했는지……!’

감탄하던 경험 많은,최고의 외과 의사.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소포장 된 기존의 메스들.

〈하나를 여러 번 쓰자니 관리 하기가 힘들어서요.〉

〈날 문제보다는 관리해 가며 쓰기 힘드니까요.〉

우미루는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티네에게도 메스를 최대한 많이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 기존의 메스와 똑같은 문제가 새로운 메스에도 있다는 뜻일 터.

번뜩이는 깨달음이 아리스티네 의 뇌를 스쳤다.

아리스티네는 팟, 고개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대장 간에 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든 그녀의 시야에 당혹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타르칸과 네프테 르가 비쳤다.

‘이런.....’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해 주변의 시선을 잊었다.

여태까지 혼자서 살았기에 제왕안이 발현될 때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써 본 적이 없기도 했다.

두 사람이 보기에는 갑자기 아리스티네가 흐르는 물을 바라보 며 멍하니 있었던 것으로 보였을 거다.

‘제왕안으로 보는 것은 감각으 로 인지하는 거라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지만.’

수면 거울에 비쳤던 장면은 현실이었어도 몇 분밖에 안 될 정도로 짧았다.

그러니 아리스티네가 제왕안을 발현했던 시간은 불과 십수 초 밖에 되지 않았을 터.

그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내가 너무 동요한 티를 냈다는 거지.’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가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야지.’

지금은 그녀의 편인 타르칸과 그녀에게 호의적인 네프테르만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왕후나 적대적인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 책잡혔을 것이다.

“죄송해요. 흐르는 물길이 아름다워서 잠시 저도 모르게 넋을 놓았네요.”

창백해졌던 얼굴이 딱히 정취에 취한 것 같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안쓰러운 눈길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유아 때부터 학대당하다 못해 유폐까지 당한 황녀.

그걸 알고 있다 보니 아리스티네가 갑작스럽게 동요를 보여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과거의 안 좋은 기억 을 떠오르게 한 거겠지.’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아리스티네가 편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이곳에 너를 학대할 사람은 없다고,그 누구도 너를 가두지 못 한다고.

네프테르는 그런 마음이 드는 스스로에게 당혹했다.

권력이 집중된 왕가에서 알력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정적을 핍박하고 몰아붙이는 일이 생긴다.

‘그걸 이겨 내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했거늘.’

두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리스티네는 미소 지으며 초조함을 감췄다.

당장 새로 알아낸 사실을 시험 하고 싶지만 먼저 일어날 순 없었다.

‘타르칸의 정치적 파트너로서 멋대로 굴 순 없지.’

왕의 총애가 타르칸에게 있지만,그게 절대적이고 영원할 거 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루고 왕은 냉철하고 현명한 정치가였다.

실제로 타르칸을 왕태자 자리 에 올리지 않고 하미르와 재 보 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어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이건 타르칸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았다.

새벽하늘을 닮은 눈은 다급하고 절박했다.

그 모습을 본 네프테르가 ‘홈?’ 하고 한쪽 눈썹을 세웠다.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 혼란 에 빠졌던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의 팔을 잡으며 애타는 눈길로 쳐다본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줄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둣이.

‘과연 서로 의지하는 게 부부 사이지.’

하긴,타르칸과 아리스티네는 밥상에서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튀는 신혼이었다.

‘그러고 보니 첫날밤에 침대를 부쉈다지.’

유부남인 네프테르는 이럴 때 어떤 식으로 위로를 해야 하는 지 참 잘 알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눈치가 없었군.”

“네?”

“이만 물러가 보거라.”

네프테르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이만 물러가고 싶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대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망설이는데 그 고민을 끝내 주둣 네프테르가 먼저 일어섰다.

“역사는 꼭 밤에만 이루어지라 는 법은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네프테르가 타르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아들을 바라보는 왕의 눈빛이 뿌듯했다.

사실 아리스티네는 그가 처음으로 들인 며느리였다.

수많은 자식들 중 결혼한 건 타르칸이 유일했다.

그도 사람인지라 솔직히 어서 토끼 같은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타르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아닙니다.”

그의 항변에도 네프테르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렇겠지. 하지만 네 아내는 아이루고인보다 체력이 훨씬 약하니 네가 알아서 자제..........”

“그런 거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녀석 참. 부끄러워하긴.”

아이루고 왕은 흐뭇흐뭇한 얼굴로 아들 부부를 바라봤다.

타르칸은 기가 막혔다.

네프테르는 타르칸이 대마수 무르지카를 쓰러트리고 귀환했을 때조차 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대체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그래,너희 부부 사이의 일인데 내 더 이상 참견하지 않으마. 너무 주책 부렸구나.”

아니,지금도 주책이십니다.

타르칸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이 악물고 참았다.

* * *

네프테르의 기대와 전혀 달리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을 내팽개 치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리트렌!”

“비전하?”

리트렌은 작업하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맞았다.

“이렇게 급하게……. 무슨 일 있으세요?”

선량한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어리자 그렇게 천사 같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아리스티네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생길 뻔했지.”

“예?”

“하지만 막을 거야.”

아리스티네가 씨익 웃었다.

날 문제가 아닌데도 메스를 여 러 번 쓰지 않는 이유.

생각해 보면 간단하고 뻔하다.

“산화 작용!”

“네?”

눈을 동그랗게 뜬 리트렌을 보고 아리스티네가 흐홍,하고 웃었다.

“메스의 산화 작용을 최소화해 보자!”

쉽게 말해서 최대한 녹슬지 않 는 메스를 만들어 보자는 소리 였다.

‘우미루가 그런 식으로 메스를 쌓아 뒀던 이유.’

아무리 수술이 많아도 평균적 으로 사용하면 그럴 이유는 없다.

‘하지만 메스를 일회용으로 쓴 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외과술이 언제부터 이뤄졌는지 를 생각하면 지구에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일체형 메스가 사용되 었다.

‘하긴 19세기인가에 의사들에게 수술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고 말하니까 신사의 손은 더럽지 않다며 난리를 피웠다고 했지.’

씻지도 않은 맨손으로 수술하는 게 당연한 시기였다.

수술 장갑을 끼지도 않은 맨손으로 수술하는데 수술 기구나 수술실을 소독했을 리가.

전생의 자신은 신사의 손은 더럽지않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어이없어했다.

물론 이곳의 상식으로도 어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우미루 역시 수술 전에 깨끗이 소독했고,함께 들어가게 된 아리스티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위생 관리를 할까.

타르칸의 궁에 있는 병동은 아이루고에서 가장 체계가 잘 잡힌 병원 중 하나였다.

거기다 병원의 운영비도 걱정할 필요 없기까지 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현금 보유량 이 많다 할 수 있는 타르칸이 자신의 전사들을 위해 무상으로 운영하는 곳이니까.

아무리 막대한 비용이 들어도 메스를 일회용 취급 하며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절대 그렇 게 못 하지.’

무조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관리라도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곳이 상당할 것이다.

〈녹 관리는 어떻게 해?〉

예전에 무칼리의 검을 구경하며 물었던 게 기억났다.

〈그야 녹슬지 않도록 손질을 하는 수밖에 없지. 나는 매일매 일 아침저녁으로 하고 있소.〉

다양한 상황에 있는 크고 작은 병원들. 그곳에서 모든 메스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건 확률적으로 힘들다.

‘어쩌다 한 번 소홀해도 환자 입장에서는 100퍼센트야.’

왜 그렇게 대장장이 탓을 하는 의료 과실 공방이 많은지 이제알 것 같았다.

‘물론 메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병원 측에 가장 큰 문제가 있지만.’

만만한,실력 없다 소문난 대장간에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한 거다.

수술 절차상의 다른 문제는 없었고 메스를 통해 감염된 건 맞으니까.

“비전하,철에 녹이 스는 것을 막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메스는 사람 피와 물에 계속 닿으니 더더욱.....”

리트렌의 조심스러운 말에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그래서 아예 일회용으로 만드는 건 어때?”

“일회용으로요? 탁월하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녹 관리를 따로..”

반색해서 말하던 리트렌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러면 구매자의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예전에는 한 번 사서 몇 달에 한 번씩 교체했는데,일회용으로 쓰면 비용이……”

“알아. 금전적 부담이 되면 아 무리 좋다는 걸 알아도 사는 걸 꺼리겠지.”

“그래서 손잡이는 계속 쓰고 날만 교체하는 식으로 만들 거야.”

그런 식이라면 일회용으로 쓰는 비용이 최소화된다.

‘지구에서도 날만 교체하는데 겉모양만 본뜨는 것에 집중했어.’

미래의 자신이 왜 그렇게 후회 를 했는지 알겠다.

‘아무리 일회용이라고 해도 부식에 대한 저항성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네프테르의 말대로,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특출 나야 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을 안 한 채 나 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리트렌이 실험했던 합금 중에 녹이 잘 안 생기는 게 있었어?”

“죄송합니다. 저도 관심 있어서 여러 가지를 실험해 봤지만 그런 건……”

리트렌이 면목 없다는 얼굴로 시무룩하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리스티네가 씨익 웃었다.

“내가 알고 있으니까.”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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