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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64화 (64/183)

64화

이건 다른 데에 두고서 잊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메스만 가져갔다는 뜻이다.

“네,여기……”

궁인이 빈 함을 들고 왔다.

부드러운 남색 벨벳으로 안을 마감해 놓은 함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확실하게 메스를 노리고 홈쳐 간 거다.

‘설마 산업 스파이?’

메스의 디자인 자체가 혁신이니 가져가서 그대로 본떠서 만들면 큰일이다.

‘물론 이쪽은 여기에 추가로 개량해서 일회용 교체 날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 메스를 만들겠지만.’

따라 만든다고 해도 성능은 이 쪽이 확실히 우월할 터.

병}지만 스테인리스 스틸을 개발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니 오히려 내가 후발 주자가 될 거 야.’

역으로 아리스티네가 메스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오명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디자인을 최초로 공개해야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파급력이 나온다.

‘까 보면 달라요’랑 ‘보이는 것 부터 달라요’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대체 어디서 내 메스를 노린 거지?”

엄청난 기밀로 취급하진 않았 지만,어느 정도 보안은 지켰었다.

기밀 취급 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 누구도 메스 사업에 관심 있지 않을 테니까.’

처음 리트렌에게 메스를 만들 겠다고 했을 때 반응이 어땠는가.

〈아시겠지만 그쪽 분야에는 문제가 많아요. 다들 기피하는데…….〉

〈비전하께서는 오히려 그렇기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손해 를 감수하고 그 힘든 분야에 뛰 어들겠다는 말씀인데.〉

기본적으로 의료 메스 분야는 의료 과실로 소송이나 당하는 동네북이었다.

그렇기에 리트렌도 아리스티네 가 희생한다는 오해를 했던 것 이고.

‘나를 견제하고 있을 왕후 입 장에서도 내가 아무 문제 없이 메스 사업을 추진하길 바라겠 지.’

출시한 메스에 문제가 생길 거 라고 백 퍼센트 확신하고 있을 테니까.

‘제왕안으로 봤던 미래에 내 메스가 실패하게 된 이유에도 왕후가 깊게 관련되어 있을 거고.’

메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의사 탓인데 그걸 왕후가 크게 부풀리고 덧붙여서 아리스티네 의 메스에 문제가 있다고 책임을 전가했으리라.

“홈……. 정말 알 수 없네. 후발 주자가 되면 곤란한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타 르칸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응?”

“메스를 그대로 따라 만들 생각으로 홈쳐 갔을 가능성은 적어. 오히려-.”

타르칸이 이어 나가던 말을 멈췄다.

“……아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산업 스파이가 아니라고?’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뭐야,뭔데?”

따라서 메스를 만들 목적이 아니라면 대체 왜 가져간단 말인가.

비싸게 팔릴 물건도 아니고, 장신구처럼 미관이 아름다운 물건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타르칸은 딱 잘라 말했다.

“흐응.”

아리스티네의 눈초리가 새초롬히 가늘어졌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멈추는 거고一.”

계속될 것 같던 아리스티네의 말이 뚝 멈췄다.

타르칸의 눈매가 꿈틀했다.

옆에서 귀를 종긋 세우며 듣던 궁인들이 갸웃거리며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두 번째는요? 두 번째는?’

그렇게 묻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티네의 입술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타르칸을 바라보며 흥, 턱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타르칸이 피식 웃었다.

그의 아내는 정말 특이한 여자였다.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야. 확실해지면 말해 줄게.”

아리스티네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그래도 눈초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정말이지?”

“응”

타르칸이 고개를 끄덕이곤 흘러내린 아리스티네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걱정하지 말고 너는 메스를 개량하는 데 집중해. 최대한 빨리 끝내.”

그렇게 말하는 타르칸의 눈이 살짝 어둡게 빛났다.

마음 같아서는 메스 개량 따원 그렇게나 좋아하는 직원한테 전부 맡겨 두고 상관하지 말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듣지 않을 테니 까.’

아리스티네가 얼마나 이 사업 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는 옆에서 지켜본 타르칸이 가장 잘 알 았다.

메스가 없어진 이유를 짐작해 볼 때 아리스티네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메스 개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놈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요즘 아리스티네는 대부분의 시간을 리트렌과 함께 대장간에 박혀 보내고 있었다.

타르칸이 기웃거려도 뭐가 그렇게 비밀인지 안 된다고 난리였다.

‘마음에 안 들어.’

타르칸은 미간을 찌푸리며 팔걸이를 툭툭,두드렸다.

“이유도 안 알려 주면서 개발에 집중하라고?”

아리스티네는 황당하단 얼굴로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메스가 없어진 상황에서 어떻 게 그래,싶었지만.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끄덕여졌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신기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아리스티네는 어려서부터 뭐든 스스 로 해결해 왔다.

그 탓에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스스로 생각해야 안심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런데 타르칸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매일매일 함께 지내면서 어느 새 남편을 꽤 신뢰하게 되었나 보다.

‘사람을 신뢰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이 소유한 능력을 알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굉장히 안심되고 편안하고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뭐랄까,정말로 그 좁고 어두운 방에서 나와 사람과 연을 쌓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조금 더 이런 사람들이 늘어 났으면 좋겠다.’

“타르칸.”

부르자 타르칸이 그녀를 돌아 봤다.

금빛 눈동자에 아리스티네 의 얼굴이 담긴다.

아리스티네가 히히 웃으며 그 의 팔을 탁탁 두드렸다.

“네가 내 파트너여서 정말 다행이야.”

“무슨......”

타르칸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획 돌렸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그는 당황했다.

아리스티네는 붉어진 그의 뺨 을 보지 못한 채 어깨를 으쪽였다.

“뭐어, 좀 손이 많이 가서 성 가시기도 하고, 수줍음이 많은 데다가 유치한 면도 있고,무엇보다 변一.”

타르칸이 기겁해서는 아리스티네의 입을 틀어막았다.

저 악랄한 우미루가 ‘변태’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

“너 진짜 그 소리 좀 그만 해”

타르칸이 말을 멈췄다.

손바닥의 한가운데,오목 파인 그 예민한 살에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닿은 채였다.

부드럽고, 말캉하고,뜨거웠다.

아리스티네가 숨을 작게 내쉴 때마다 뜨겁고 습한 숨결이 그 의 손바닥을 간질였다.

타르칸은 어쩔 줄 모르고 손가 락을 움찔거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다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작은 얼굴이었다.

입을 막느라 한층 더 가까워진 거리에서 아리스티네와 눈이 마 주쳤다.

깜짝 놀라 크게 뜨인 눈에는 만월 모양의 흥채가 온전히 다 드러나 있었다.

새벽하늘에 박힌 무수히 많은 별처럼,보랏빛 눈동자에는 우주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우미루는 흐린 눈으로 꽁냥꽁냥하는 신혼부부를 바라봤다.

“크흠.”

살짝 헛기침했으나 둘 다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안 들리나 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궁인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줄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윽 일어났으나 신혼부부도, 그 둘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궁인들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미루는 괜히 소파를 발로 툭 찼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이쯤 되면 한 번이라도 쳐다볼 법하잖아?’

왠지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아 서러웠다.

어디서도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 없거늘.

‘췟.’

우미루는 배웅도 없이 터덜터덜 홀로 방을 나섰다.

* * *

뜨거운 불길이 주홍색 혀를 날 름거리며 무쇠를 녹였다.

쇳덩이가 붉게 타오르며 홀러내린다.

리트렌이 마력 풀무 손잡이를 잡아당길 때마다 그의 견갑골이 발달한 근육 너머로 두드러지길 반복했다.

움푹 파인 채 쭉 뻗은 등마루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완전히 녹은 쇳물을 붓는 것만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엄청난 열기였다.

또르록,땀방울이 섬세한 잔 근육을 타고 흘러내렸다.

쇳물을 식히는 사이 리트렌은 이미 식혀 둔 다른 합금을 다시 달구기 시작했다.

불꽃이 튀었다.

땀에 젖은 리트렌의 몸을 주흥 색 빛과 짙은 그림자가 다투어 어루만졌다.

“하아..

아리스티네는 더운 숨을 내쉬 었다.

푹푹 찌는 열기에 숨이 막혀 오는 듯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 게 더운데 불 바로 앞에서 계속 해서 움직이는 리트렌은 오죽할까.

하지만 리트렌의 얼굴엔 힘든 내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 다 진지했다.

꾹 다문 입매와 살짝 힘이 들 어간 미간,꽉 조여진 눈빛.

그 얼굴에서 평소와 같은 사근 사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아리스티네는 듬직한 직원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는 대장장이구나.’

순한 대형견처럼 서글서글한 얼굴과 달리,리트렌의 몸은 야성적이었다.

어깨부터 팔,둥과 배까지 탄 탄하고 섬세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제련하고 담금질할 때마다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이렇게 몸을 움직이니 근육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아리스티네는 자료 차트를 체크했다.

“그거 퍼센트는 저번이랑 똑같아.”

“네,압력이랑 열처리를 해 보죠”

리트렌이 모루 위에 합금을 올리고 망치로 세게 두들기기 시 작했다.

카앙,캉!

철과 철이 부딪칠 때마다 날카롭고 쨍한 소리가 대장간에 울 려 퍼졌다.

아리스티네는 어쩐지 그 맑으 면서도 거친 울림이 철의 노래 같다는 생각을 했다.

“후.”

리트렌이 이마에 맺힌 땀을 거칠게 닦았다.

헝클어진 금갈색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평소보다 색이 짙었다.

‘이게 아니야……!’

망치질을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콰장창!

공기를 깨트리는 파열음이 공간을 흔들었다.

엇나간 망치가 모루 모서리를 빗겨 치며 커다란 소리를 울렸다.

빗맞은 강철이 제자리를 벗어나 땅에 떨어졌다.

붉게 달아오른 강철은 망치로 내려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푹 패었다.

아리스티네는 바닥을 구른 합금의 상태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던 리트렌에게 이런 거친 일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리트렌은 호흡을 골랐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대흉근이 부풀어 오르고 단단한 어깨가 들썩였다.

아리스티네는 잠시 그가 진정 하길 기다렸다가 슬쩍 물었다.

“왜 그래? 별로여서 그래?”

리트렌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망치를 모루에 내려놓고 아까 달궜던 쇠에 물을 부었다.

치이 이익一.

수증기가 흑 치솟으며 허공에 흰 얼룩을 그렸다.

“죄송합니다.”

수증기에 가려져 리트렌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의 턱이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경도가 생각보다 낮아요. 이렇게 되면 얇은 메스 날은 너무 쉽게 부러질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평소와 다른 초조함과 사나움이 낮게 깔려 있었다.

“흠……”

아리스티네는 리트렌이 떨어트린 강철이 어느 정도 식은 것을 보고 툭,발로 찼다.

고철 더미 쪽으로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스테인리스 스틸이 물에 담가진 채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 부 다 녹이 슬지 않고 있다.

철과 니켈, 크롬을 섞어 합금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비율이지.’

니켈이 적어지면 가공성이 떨 어지고,많으면 단가가 올라간다.

‘그리고 가공 방법도.’

혼합 비율이나 또 어떤 물질을 추가로 첨가하는지,그 후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도나 내식성,내열성 등이 조금씩 달 라졌다.

리트렌은 어느 것이 의료 메스 용으로 가장 적합한지 계속해서 찾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어느 정 도 타협할 생각이었는데.’

아리스티네로서는 잘 모르는 분야이니 녹이 잘 슬지 않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걸 바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의료용 메스의 디자인에 혁신 을 가져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지구에서도 안 쓰이는 곳이 없었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은 금속이다.

‘여기서도 엄청나게 많이 쓰일 수 있겠지.’

한국에서 직접 썼던 스테인리스 제품을 떠올린 아리스티네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대박이 아니야. 초대박이야!’

돈벼락,돈방석 수준이 아니다.

‘나라마다 수도에 건물을 사 놓을까?’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수준이다.

타르칸과 이혼하고 나서 제왕 안으로만 봤던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려면 그것도 좋을 것 같 았다.

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등 공신 직원님이 저 상태이시니.

아리스티네는 리트렌을 바라봤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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